결혼 브로커 A씨, 필리핀 여성에게 학대, 강제이혼 등 성폭력까지

지난 2월 여성부에 따르면 전국가정폭력 상담소에 접수된 가정폭력 상담건수는 2001년 11만4천6백12건으로 99년 4만1천4백97건에 비해 무려 3배에 달한다. 또한 신체적 폭력은 99년의 경우 66.4%, 2001년에는 58.8%으로 7.6% 줄었지만, '매맞는 아내들'은 아직도 도움의 손길없이 남편의 폭력에 무방비 상태에 있다. 이는 비단 국내 결혼만의 문제가 아닌 국제 결혼에서도 해당된다. (물론 국제결혼을 했다고 해서 모든 이들이 가정 폭력에 노출되어 있지는 않다.) 독신 여성의 증가, 이혼율 증가, 농어촌 남성들의 내국인 배우자 찾기의 어려움 등과 같은 한국 사회 현상으로 점차 한국 남성들이 외국인 여성을 아내로 맞는 경우가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990년 한국남성과 결혼한 외국여성은 한 해 619명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에는 그 수가 1만1017명으로 17배 이상 불어났다. 이중 81%가 중국·동남아시아계 여성들이다.(중국 64%, 동남아 17%) 이들 외국인 여성들은 의사소통의 어려움, 가정폭력, 문화적 갈등 등으로 결혼 생활에 고충을 겪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 이혼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현행 국적법에 발목이 잡혀 본국으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온 외국인 여성들이 각종 폭력과 허위결혼 등에 시달리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일 오후 3시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이주 외국인 여성들의 상담단체인 '안양 이주여성 쉼터 위홈(wehome)' 주최로 '국제결혼과 여성폭력 문제에 대한 정책 제안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개최됐다. 이날 토론회의 패널들은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필리핀 여성들의 피해 사례를 상세히 소개하며, 이들을 위한 정부, 여성단체 등의 지원과 함께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결혼브로커 A씨, '성관계' 강요 천주교 광주교구 이주노동자 사목 마리안나 수녀는 한국 남자와의 결혼을 알선하는 결혼 브로커 A씨로부터 피해를 당한 필리핀 여성들의 사례를 소개했다. 결혼브로커 A씨는 젊은 필리핀 여성에게 한국에서 보수가 좋은 일자리 보장과 잘 살고 착한 한국사람과의 결혼을 내세운다. A씨는 한국인과의 결혼을 조속히 결정하도록 필리핀 여성들에게 강요했으며, 한국 남성이나 필리핀 여성의 정보를 조작해 알려줬다. 또한 한국 남성들을 이용해 허위결혼을 시켰으며, 젊은 필리핀 여성들이 한국으로 입국할 때 자기 대신 진주 보석을 착용케 했다. 뿐만 아니라 스포츠 마사지나 가정부 생활을 제공, 학대, 강제이혼, 성폭력 등을 일삼았다. 아냐(24)의 남편은 A씨의 말과는 달리 가난한 농부에 술고래였으며, 건강도 좋지 않았다. 게다가 사전에 듣지 못했던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네 명의 아이들까지 있었지만, 아냐는 한국의 생활과 언어를 배우면서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고, 아이들까지 돌보았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아냐에게 '너를 소개받는데 많은 돈이 들었다'라는 말을 반복했으며, 남편은 '필리핀에 가'라며 폭력적인 말을 걸핏하면 내뱉었다. 견디다 못한 아냐는 자기를 소개해 준 A씨에게 상담을 했지만 결국 남편이 이혼을 원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혼했고 후에 남편이 이혼을 원한 게 아니라 A씨에 의해 강제 이혼당했음을 알게 됐다. 또 다른 필리핀 여성 죠쉬(26)는 자국에서 허위결혼 후, 한국으로 입국해 남편을 찾는 동안 A씨의 집에 머물러야 했다. A씨는 죠쉬에게 성관계를 강요했고, 그녀는 자신을 위해 많은 돈을 사용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 제니(35)는 "A씨가 한국에 온 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했으며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무시를 했으며 매일 술을 가져와서 필리핀 여자들에게 함께 있기를 강요했고 술에 취한 필리핀 여성 중 한 여자를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가거나 밖으로 나가 다음날 아침에 돌아오는 것을 봤다"고 털어놓아 A씨에 의해 성폭력이 자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리안나 수녀는 "이같은 사례로 미뤄 새로운 현상인 국제결혼에 대한 관심과 함께 외국인 여성 보호를 위한 구체적인 발판이 필요하다"며 "외국인 여성이 한국에서 삶의 현실과 문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보조와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10층 베란다서 뛰어내려 천주교 서울교구 혜화동 성당의 글랜 신부는 종교단체를 통해 국제결혼을 한 필리핀 여성들의 가정폭력 피해 사례(Ⅰ)를 소개했다. 글랜 신부는 보통 남편이 술에 취했거나 아내와 단둘이 있을 때, 남편이나 시부모, 남편의 친척들에 의한 언어적 폭력이나 외국인 카드나 여권을 남편이 찢어서 버리는 경우, '이혼하자'고 하면서 아이들의 양육권도 없이 필리핀으로 돌아가라고 위협하는 등의 형태로 폭력이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지방에서 파출부로 일하고 있는 제시카(가명)는 남편과 1년 반을 함께 사는 동안 수차례에 걸쳐 폭행을 당했으며, 테레사(가명)는 술에 취한 남편에게 매일 폭력을 당했다. 테레사는 3번이나 남편으로부터 도망치려 했지만, 아기 때문에 다시 돌아와야 했다. 남편의 때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후 집에 갔지만, 남편은 다시 폭력적이 되었고, 견딜 수 없던 테레사는 마지막으로 집을 떠났다. 또다른 필리핀 여성 타타는 8년의 결혼 생활 동안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두 달 전에 아파트 10층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숨졌다. 타타의 남편은 그녀를 구타하고, 얼굴에 칼로 상처를 내는 등 온갖 폭력을 일삼았다. 글랜 신부는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과 함께 가정 폭력 예방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친정 식구들 앞에서 폭력 행사 마리안나 수녀는 종교단체를 통해 국제결혼을 한 외국인 여성들의 가정폭력 사례(Ⅱ)를 소개했다. 필리핀 친구를 통해 한 종교단체를 알게 된 린다(32·가명)는 이곳에서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작은 실수에도 폭언과 구타를 일삼았으며, 시어머니는 쉬거나 아이들과 노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린다의 남편은 무조건 시어머니의 편에 섰으며, 결국엔 폭력으로 끝이 났다. 더구나 남편은 필리핀에 갔을 때도 친정 가족 앞에서 그녀를 때렸다. 그러나 친정 가족의 한국행 만류에도 아이 때문에 남편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노라(36·가명)는 한 종교단체를 통해 중학교 중퇴였던 남편을 받아들였다. 필리핀에서의 생활, 가족, 일들을 포기한 노라의 삶은 남편과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 엉망이 돼 갔다. 남편은 술 마시고, 친구들과 도박하고, 집에 있을 때면 명령하기 일쑤였다. 뿐만 아니라 시부모와 아이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했다. 술에 취한 남편은 군인처럼 명령했으나, 3살인 막내가 말을 듣지 않자 아이의 머리를 때렸으며, 이를 저지하자 노라에게도 폭력이 가해졌다. 한나(37·가명)는 매달 필리핀에 돈을 보내 가족을 도와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결혼했다. 그러나 이는 남편이 폭력을 행사하는 원인이 되었다. 한나의 아버지는 입원을 필요로 했고, 오빠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으로 죽을 때까지 비싼 약을 사 먹어야 할 형편이었다. 한나는 남편의 친구 회사에서 일해서 받을 돈을 남편에게 빼앗겼고, 한국 음식이 입맛에 안맞아 한나에게 맞는 음식을 사면 화를 냈다. 남편은 '비자를 없애버리겠다'고 협박을 하며, 멍투성이가 될 때가 한나를 때렸다. 여성단체측은 "가부장적 성향이 강한 한국 남성들이 외국인 아내와의 문화적 갈등을 폭력으로 풀기 때문이다"며 "특히 중국동포나 동남아 여성들에 대한 인종차별적 경시 풍조가 이를 더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결혼 2년내 이혼할 경우 아이 버리고 본국행 토론에 나선 이금연 위홈 대표는 "국제결혼을 한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아내 구타 및 여성 폭력은 충분히 예견된 것이다"며 "매매혼이 아니더라도 국내에서 장기체류하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과 내국인과의 자연스런 혼인도 멈추지 않을 현상이 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국제결혼 중매업체에 대한 각 부처별 철저한 관리감독 ▲국제결혼을 원하는 남성들에 대해 결혼의 의미와 가정의 소중함에 관한 가치인식 교육 ▲외국인 여성에 대해 한국적 문화의 특수성과 기본적으로 필요한 실생활 교육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외국여성들이 결혼 2년안에 이혼할 경우, 아이를 버리고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이혼 결심이 어렵다는 제도적 문제가 지적됐다. 현행 국적법에 따르면, 결혼상태를 2년 이상 지속한 뒤 소정의 귀화 절차를 통과해야 한국국적을 얻을 수 있다. 이에 따라 혼인상태가 2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자신의 귀책사유 없이 정상적인 혼인생활을 할 수 없거나 미성년자를 양육해야 할 경우, 한국 국적을 주도록 하는 국적법 개정안이 지난해 10월 김경천 의원 등 31인으로부터 국회에 제출됐으나, 아직 통과되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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