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침묵정치 청산하고 ‘복지’ 앞세워 대권 행보 본격화

[시사포커스=권현정 기자] 최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복지’라는 화두로 그간의 침묵을 깨고 본격적인 대권 행보를 시작했다. 내년 초가 될 것이라는 정치권의 예상보다 한 발 앞선 행보를 보인 것이다.

한동안 공식 활동을 자제해왔던 박 전 대표가 대외적인 정책 활동으로 침묵을 깬 것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논쟁이 한창이다. 현재의 안보 위기 상황과 정치적 현안에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간 정치권에서는 4대강 사업과 민간인 사찰, 예산안 파동 등 주요 정치 현안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입장 표명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그럼에도 최근의 행보에는 대권을 겨냥한 정책 검증적 성격이 짙어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은 상황.

이 가운데 대선 후보들을 중심으로 정치권은 박 전 대표의 이 같은 움직임에 긴장하는 눈치다. 야권은 연일 견제구를 날리고 있고 여권 내에서는 친이계를 중심으로 대응책 마련에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이번 공청회를 시작으로 박 전 대표가 현 정권과 거리두기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집권 하반기에 접어든 이명박 대통령과 ‘차별화’를 시도해 차기 대선의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 할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한동안 박 전 대표는 정치 현안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왔다. 지난 8월 이명박 대통령과의 회동 이후 정권에 부담을 줄 수 있는 발언을 삼가 해온 것.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표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크다. 특히 4대강 사업을 비롯해 박 전 대표까지 사찰 의혹이 불거졌던 민간인 사찰 문제, 예산안 파동 등 주요 현안에 대해 박 전 대표가 침묵으로 일관하자 정치권은 박 전 대표의 침묵을 문제 삼으며 입장 표명을 강하게 요구해왔다.


‘복지’로 대권 행보 나서


이런 가운데 지난 20일 박 전 대표는 ‘사회보장기본법 전부 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열며 침묵을 깨고 대권 행보에 시동을 걸었다.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주요 이슈로 부각된 ‘복지’는 대선 주자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정책 화두. 이에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표의 이번 공청회를 본격적인 대권 행보의 신호탄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 공청회에는 여야 의원 70여명을 비롯해 박 전 대표의 지지자들이 대거 참석해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박 전 대표는 이 자리에서 단순히 돈을 급여 형식으로 나눠주는 구시대적 복지의 차원을 넘어 생애 주기에 따라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맞춤형 복지서비스’를 강조, 한국형 복지 국가 건설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인사말을 통해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국민들이 실제 느끼는 복지 체감도는 낮다”면서 “바람직한 복지는 소외계층에 단순히 돈을 나눠 주는 게 아니라 그들이 꿈을 이루고 자아실현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라며 바람직한 복지의 개념을 피력했다.

이어 그는 “한국형 복지 모델의 핵심은 선제적이면서 예방적인, 지속가능한 복지 서비스로 실질적인 도움이 가능한 통합복지 시스템”이라고 강조한 뒤 “누구나 맡은 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기초적인 삶에 대한 두려움 없이 안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사회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선제적 틀 마련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박 전 대표는 내년 초를 시작으로 그동안 준비해온 정책 구상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정책 행보에 나설 계획이다. 이번 공청회의 ‘복지 이슈’에 이어 내년에는 ‘경제’와 ‘과학’ 등 주요 분야에 대한 접근이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한 친박계 의원은 “박 전 대표가 그동안 정치 현안에 직접적인 언급을 피해 왔지만 그것은 현 정부와의 정책에 대한 입장차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면서 “그간 정책적 내공 쌓기에 주력해온 만큼 년 초 부터는 좀 더 적극적인 활동에 돌입할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제껏 약점으로 지적됐던 ‘컨텐츠 부족’에 박 전 대표는 그동안 전문가 그룹과의 교류와 주기적인 세미나를 통해 학습하는 등 내년에는 외부 강연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근혜식 복지론...
당내 친이계 반응은?


이번 공청회를 두고 한나라당 내 친이계와 친박계의 반응은 사뭇 조심스러웠다. 그동안 박 전 대표와 함께 침묵을 지켰던 친박 진영은 박 전 대표의 공개 활동을 반기는 분위기다. 박 전 대표의 움직임이 있어야 친박계에 힘이 실리기 때문이다.

이런 고무된 분위기 속에서 친박계 의원들은 ‘속빈 강정’, ‘빈수레형’ 복지 정책이라는 야권의 비아냥에도 일일이 대응하지 않는 여유를 보였다. 정책적 접근이 아니라면 소모성 비판에 굳이 대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달리 친이계 쪽에서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예산안 강행처리로 여론도 좋지 않은데다가 당의 지지율도 하락하고 있어 박 전 대표가 나서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

당 안팎의 어려움과 상관없이 박 전 대표가 대권 행보를 공식화한 것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또 예산안 강행처리 과정에서 복지 예산이 삭감된 것과 관련, ‘복지’ 담론을 펼친 것에 대한 엇박자를 질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반면 친이계 주류 쪽에서는 박 전 대표의 공식적인 행보에 조심스러워하면서도 경계하는 눈치다. 아직까지 친이계 쪽에서는 대선 주자로 내세울만한 대표 후보가 딱히 없는데다가 박 전 대표를 섣불리 흔들었다가는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향후 친이계를 중심으로 박 전 대표의 사생활에 대한 공략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내년부터 당내 대선경쟁이 본격화되면 다양한 의혹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다.

하지만 박근혜라는 구심점을 중심으로 내부 결집이 견고해지고 있는 친박계와는 달리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하반기, 조기 레임덕까지 거론되며 힘이 빠지고 있는 친이계는 조직력이 점점 약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번 공청회에도 친이계 의원 몇몇이 참석여부를 묻거나, 직접 참석한 것을 비롯해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은 21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일각에서는 친이계가 이미 무너졌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다”라며 친이계를 보는 주변의 시각을 전하기도 했다.
 

야권의 제동, ‘박근혜 흔들기’


차기 유력 대선 주자로 박 전 대표는 늘 정치권의 집중 조명을 받아왔다. 박 전 대표의 입장표명을 기다려왔던 정치권에서는 이번 공청회로 복지 논쟁이 한창이다.

21일 진보신당은 정책 논평을 통해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보수 진영이 ‘복지국가’라는 담론을 일부에서나마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면서도 “‘박근혜식 복지국가’에는 알맹이가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전병헌 정책위의장은 21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복지 론에 “속빈 강정, 빈수레 형 복지정책”이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박 전 대표의 복지론은 “우리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인 양극화문제, 저출산․고령화, 사각지대 빈곤문제, 빈곤의 대물림, 청년실업 등의 구조적인 사회문제에 대한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 같이 비판했다.

다음날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복지를 하려면 반드시 예산이 필요한데 이번에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가 내년도 예산을 날치기 하면서 복지예산을 몽땅 삭감했다”며 “박근혜 의원은 ‘한국형 복지’를 어떤 재원을 갖고 해 나갈 것인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박 원내대표의 ‘박근혜 때리기’가 사실상 대권 행보를 시작한 박 전 대표에 견제적 성격이 짙은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나 야권 내에서도 민주당의 ‘박근혜 때리기’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이 같은 해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민주당 김영근 부대변인은 20일 논평을 통해 “대권을 준비 중인 여당 유력 정치인이 행사 개최 시점이 적절한지도 판단하지 못했다”며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이 중산층 서민복지의 기본인 영유아 예방주사 지원비와 보육시설 아동 양육수당, 장애인 연금지원, 기초노령연금 등을 삭감한 예산안을 날치기로 통과시킬 때마저 입을 다물었다”고 지적, 박 전 대표의 복지론을 ‘가짜복지’라고 비판했다.

박근혜식 복지론에 대한 야권의 반응은 일단 보수 진영에서 복지 담론을 펼친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대안이나 예산의 확보 등이 구체적으로 제시돼지 못해 결함으로 지적됐다.


다음 수순은 MB와의 거리두기?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일부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표가 대선 행보를 시작하면서 곧 이명박 대통령과의 거리두기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집권 하반기에 접어든 이명박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통해 차기 대선을 좀 더 유리한 상황으로 몰고 가겠다는 의도가 곧 가시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8월 이명박 대통령과의 회동 이후 박 전 대표는 현 정부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정치 현안에 대한 언급을 지극히 자제해왔다.

하지만 이번 예산안 파동으로 민심 이반이 가속화됨에 따라 박 전 대표에게 당의 지지율 하락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여기에 앞으로도 정치 현안에 침묵으로 일관할 경우, 현 정부의 정책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모양새가 돼버려 대선 가도에 불리하게 엮일 가능성도 있다.

박 전 대표의 ‘신뢰 정치’가 힘을 얻어가고 있는 반면 집권 하반기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기조로 떠오른 ‘공정 사회’는 이미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국정 운영의 중간평가와 다름없었던 6.2 지방선거에서 참패함에 따라 이명박 대통령은 ‘공정 사회’와 ‘친서민’ 카드로 정국 주도권을 확보하려 했다.

하지만 그 동안 외교부 특채 파동과 대포폰, 예산안 파동 등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공정 사회’ 카드는 크게 흔들렸던 게 사실이다. 최근 여당이 내년도 예산안을 강행처리하면서 서민․복지 예산이 대규모 삭감, 누락된 것도 ‘공정 사회’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여기에 불교계와의 갈등과 남북 간의 대치 상황까지 이명박 대통령과 여당 안팎에서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청와대 쪽에서도 곧 박 전 대표가 이명박 정부와 대립각을 세울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하고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생활 검증 가능성도


이 가운데 박 전 대표의 대권 행보로 일각에서는 ‘박근혜 불가론’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2007년 대선 당시 ‘여성대통령’과 ‘독재자의 딸’, ‘사생활 검증’ 등의 논란으로 불가론이 퍼졌던 것처럼 올 대선에서도 갑작스럽게 몰아친 북풍으로 ‘안보 리더십’까지 더해져 2007년의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전 대표는 대권 도전의 발걸음을 늦추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박 전 대표가 예상 보다 빠른 대권 행보를 보이는 것은 그간 쌓아온 정책적 내공에 그 만큼의 자신감을 드러낸 것 아니겠냐”며 “그럼에도 박 전 대표가 정치현안에 침묵하며 대권행보만 이어간다면 정치권은 물론 여론도 부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동안 계속될 북풍의 회오리 속에서 박 전 대표가 당장 큰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양한 위기 속에서 뚝심 있게 대권 행보에 나선 박 전 대표가 나름대로 목소리를 키울 것으로 예상돼 추가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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