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달아 가격 낮추며 결투 태세...‘창고형 할인점’ 확전 임박

우리나라 대형마트를 대표하는 이마트와 미국계 창고형 할인점의 대명사 코스트코가 이른바 ‘10원 단위 전쟁’으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 11월 26일 이마트가 경기도 용인에 창고형 할인점인 이마트 트레이더스 구성점을 열자 같은 업종의 매장인 코스트코 양재점이 즉각 구성점보다 비싼 품목들의 가격을 내렸다. 특히 이들 점포는 인기 품목인 농심 신라면의 판매 가격을 사흘 사이에 서너 번씩이나 낮춰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창고형 할인점인 코스트코 양재점과 이마트 트레이더스 구성점 간 가격 인하 전쟁이 ‘너 죽고 나 살자’식의 혈투로 치닫고 있다. 지난 11월 26일 이마트가 경기 용인에 첫 창고형 할인점인 ‘트레이더스 구성점’을 개장한 이후, 농심 신라면 등 동일 판매 품목을 놓고 두 점포가 조금도 물러나지 않고 상대 점포보다 잇달아 가격을 낮게 내리고 있다.

‘신라면에서 밀리면 끝장이다’?

양측이 이렇게 ‘벼랑 끝 전술’을 불사하게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즉 초기 대응에서 밀리게 되면 매출 면에 있어 완전히 끝나게 된다는 위기감이 대단히 팽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마트와 코스트코의 가격 경쟁은 ‘신라면 대전쟁’으로 요약된다. 유난히 신라면 가격을 둘러싸고 전투가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신라면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라면 제품이다. ‘국민 라면’의 가격을 싸게 내릴수록 매장의 상징성이 그만큼 향상된다는 계산에서다. 

이마트와 코스트코가 신라면을 두고 혈투를 벌이는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신라면은 일반 소비자뿐 아니라 두 점포의 주요 이용객 층인 자영업자들이 선호하는 품목이기 때문이다. 이마트 구성점의 주요 타깃은 용인과 분당 및 수원 영통지구의 자영업자들이다. 이는 코스트코 양재점의 고객층과 거의 그대로 겹친다.
분식집 등 라면을 메뉴로 내놓고 있는 가게들은 소비자의 취향에 맞춰 주로 신라면을 끓여준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하면 신라면의 가격이 얼마나 내려가느냐 따라 자영업자들은 매출로 바로 이어지는 바람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은 지난 달 이들 두 점포에서 안성탕면·너구리·짜파게티 등 다른 농심 제품의 가격도 함께 대폭 내렸음에도 유독 신라면만 날마다 품절사태를 빚는데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밖에 신라면은 단순히 서민들이 즐기는 ‘국민 라면’의 위상을 뛰어넘는다는 조사 결과도 나와 있다. 신라면은 서울 강남의 상징 도곡동 타워팰리스 스타슈퍼에서도 가장 잘 팔리는 품목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원래 스타슈퍼는 유기농 채소나 이른바 웰빙 식품을 주로 판매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타워팰리스의 부유층도 간식거리나 식사대용으로 신라면을 즐기는 게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인 듯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마트와 코스트코의 신라면을 사이에 둔 자존심 대결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두 점포 모두 창고형 할인점답게 똑같이 서른 개 들이 포장 상품만 판매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신라면의 제품 가격을 곧바로 비교할 수 있는 상황이다.

알고 보면 ‘골육상쟁’?

코스트코 양재점의 신라면(30개들이) 가격은 지난 11월 26일 기준 1만6490원(개당 550원)에서 연쇄적으로 내려가, 지난 12월 5일에는 8,790원(293원)으로 반값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편 이마트 트레이더스 구성점에서는 1만5990원(개당 533원)에서 9490원(개당 313원)으로 40.7%가 내려간 상황이다. 

이에 대해 농심 관계자는 “대형마트에서 신라면은 거의 마진 없이 파는 미끼 상품”이라고 전제한 뒤 “업체마다 판매가가 비슷하게 형성되게 마련이다. 그런데 신라면이 개당 300원 수준이면 생산 원가에도 훨씬 못 미치는 가격”이라고 밝혔다. 결국 두 점포는 신라면  한 개를 판매할 때마다 200원가량 손해를 보는 셈이다.

이들 간의 경쟁은 라면에 국한되지 않는다. 생수·콜라·고추장·소주·인공감미료 등도 ‘혈투’의 대상에 포함되고 있다. 고추장의 경우 지난달 29일 코스트코가 ‘해찬들 찰 골드’ 고추장(14㎏)을 2만7590원에, 이마트 구성점이 2만7690원에 팔다가 12월 6일 현재 코스트코는 2만2290원, 이마트 구성점은 2만2190원으로 낮췄다.

이 같은 출혈 경쟁에 대해 이마트나 코스트코 관계자들은 표면적으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이마트 관계자는 “창고형 할인점을 표방한 이마트 구성점이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상품을 두고 코스트코와 가격 경쟁이 붙은 것”이라며 “개점 초기 단계를 지나 안정되면 경쟁 양상은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마트 관계자의 입장 표명과는 달리 이마트와 코스트코는 앞으로도 출혈 경쟁을 불사하며 두 점포 간 가격 전쟁을 이어갈 자세다. 이마트 관계자는 “구성점은 자영업자들에게 상품을 국내 최저가로 판매하는 전략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팽팽한 만큼 ‘전쟁’ 분위기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이마트와 코스트코는 자사 가격 조사요원을 상대 점포에 파견해 가격 동향을 거의 실시간 단위로 체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두 점포 간 가격 전쟁은 앞으로 이마트와 코스트코가 본격적으로 격돌할 창고형 할인점 혈투의 전초전 성격을 띠고 있다. 이 때문에 양측이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 이마트는 구성점을 시작으로 전국 주요 광역 상권에 창고형 할인점을 낼 예정으로 알려져 있다. 가격 인하 정책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태세인 것이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이마트와 코스트코는 앞으로 곳곳에서 충돌할 수밖에 없다”며 “주도적 위치에 서기 위해 기선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두 점포 간 가격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이마트와 코스트코의 오래된 인연을 감안하면 의외의 상황이라는 평가도 있다. 신세계는 1990년대 초 대형마트 사업을 시작하면서 회원제 창고형 매장 프라이스클럽을 운영했다. 1998년 외환위기로 이 사업을 접으며 미국 프라이스에 지분을 넘겼다.

이후 프라이스는 코스트코와 합병하면서 지금의 코스트코로 이름을 바꿨다. 신세계는 현재도 코스트코 코리아의 지분 3.3%를 갖고 있다. 결국 뿌리가 같은 동업자끼리 상권을 놓고 가격 경쟁을 벌이는 ‘골육상쟁’인 셈이다.

이 때문에 유통업계에서도 두 점포 간 경쟁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관망하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의 전쟁이 아직까지는 점포와 품목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이라 회사 차원의 손실도 크지 않고 마케팅 효과 또한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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