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관가 등서 유출된 유언비어에 한전 입단속 공문

한국전력공사의 안팎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이달 초 관가와 공기업 주변에서는 연말을 맞아 개각을 앞두고 공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이동 분위기가 갖가지 설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한 공기업에서는 최고경영자의 진퇴를 확인하는라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논란의 주인공은 김쌍수 한국전력 사장. 그가 돌연 사의를 표명했다는 소식이다.

소관부처인 지식경제부는 물론 고위 당국자들까지 갑작스러운 소식을 확인하느라 바빴고 한전 또한 관련 소식에 당혹스러운 눈빛을 보였다. 물론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이를 두고 한전 안팎에서는 말들이 많았다.

오죽했으면 한전에서는 이와관련 함구하라는 공문도 하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한전에 따르면 한전 감사실은 지난 11월 2일 처장과 실장 및 사업소장들에게 ‘유언비어 차단 긴급지시’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이에 본지는 한전에서 이와같은 공문이 하달된 이유와 어떻게 해서 이런 소문이 났는지 그 배경을 취재해 봤다.

12월 6일 한전에 따르면 한전 감사실은 지난 2일 처장과 실장 및 사업소장들에게 '유언비어 차단 긴급지시'라는 제목의 공문을 발송했다.

감사실은 공문에서 "최근 인사이동을 앞두고 경영진의 거취와 관련한 근거 없는 유언비어가 급속히 유포되고 있다"며 "유언비어를 전파하거나 단순 문의하는 사례라도 확인될 경우 해당자는 물론이고 상급관리자까지 문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한전 측이 유언비어 차단 공문을 돌연 사내에 뿌리게 된 것은 지난달부터 김 사장과 관련된 갖가지 루머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주로 증권가나 관가 등에서 유출된 것으로 보이는 김 사장 관련 내용은 사퇴설을 비롯해 인사청탁 거절로 정치권 등으로부터 괘씸죄 적용을 받을 것이라는 등 음해성 루머다.

LG전자 부회장 출신인 김 사장은 2008년 8월 민간경영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한전 사장에 취임하면서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이후 원자력발전 해외수출 등에서 상당한 성과를 내기도 했다. 내년 8월에는 3년 임기가 만료된다.

공기업 CEO 자리이동 소식에 김 사장 관련 루머 확산

한전 안팎에서는 연말로 접어들면서 한전의 직속 정부부처인 지식경제부 장관이 교체를 앞두고 있는 것과 관련해 공기업 CEO들의 자리이동이 점쳐지면서 김 사장과 관련한 루머가 확산된 것으로 풀이했다.
하지만 한전은 이 같은 루머를 불식시키기라도 하듯 처?실장급 인사를 단행했으며, 팀장급 인사도 진행할 계획이다.

한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공기업들의 경우 CEO 임기가 얼마 남지 않으면 이러저러한 루머가 돌기 마련인데 이번의 경우 정도가 심각해 내부조치를 취한 것"이라며 "루머처럼 CEO가 흔들린다면 인사를 단행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같은 엄포성 '공문'을 계기로 김쌍수식 리더십에 대한 비판적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김 사장은 2008년 8월 민간경영인(엘지전자 부회장)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한전 사장에 취임한 뒤 변화와 혁신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요란함과 달리 별 성과는 없어 조직 내부에 피로감만 높였다는 분석이 많다.

이를 두고 업계 관계자는 “기술과 경험 축적이 중요한 공기업 특성은 무시한 채 일반적인 회사처럼 수익성과 비용절감만 강조해 내부 불만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사장의 개인적 신념에 따라 조직 효율성을 중시하는 6시그마 경영기법을 도입한 것을 두고서도 '공기업과 어울리지 않는 모델' 이라는 지적인 것이다.

발전 자회사들 통합 무산, 김사장 리더십에 타격

또한 발전 자회사들과의 통합 무산이 김 사장의 리더십에 가장 큰 타격을 입혔다는 분석도 있다. 김 사장은 한국수력원자력과 5개 화력발전 자회사들과의 재통합이 소신임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는데, 정부는 이와 달리 지난 8월 발전자회사의 독립성을 더욱 강화하도록 하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안을 확정했다. 이 과정에서 발전 자회사에 대한 경영평가와 임원 선임권 등이 한전에서 기획재정부로 넘어갔다.

한전 안팎에서는 “자회사와 통합하겠다고 큰소리치다가 되레 인사권까지 빼앗겨 김 사장으로서는 망신을 당한 셈이었다”며 “그때부터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많았다”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게다가 김 사장이 이같은 사퇴설에 시달리는 이유 불도저식으로 추진해왔던 일련의 정책들이 좌초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많았다. 잔여임기가 9개월이나 남아있음에도 빠르게 찾아온 레임덕이 바로 그 때문이다.

김 사장은 취임 이후 줄곧 하나의 한전을 표방한 '원 캡코(ONE CAPCO)'를 강조해왔다. 지난 1999년 전력산업구조개편 이후 그룹사로 조각난 한전을 다시 하나의 한전으로 합치자는 것. 하지만 지난 8월 정부가 확정한 전력산업구조개편안은 이와 정반대로 나왔다.

개편안으로 한전은 오히려 전보다 더 회사를 조각내야 했다. 정부는 현행 한국수자원공사과 화력발전 5사 체제를 유지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경쟁 촉진을 위해 이들 발전사를 한전이 아닌, 정부의 통제를 받는 시장형 공기업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한전의 발전사 장악력은 전보다 더 감소하게 됐다.

원전 수출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해외원전개발처를 원전수출본부로 격상하기로 했지만 이 역시 모양새가 이상하다. 아랍에미리트(UAE) 이후 가장 유력한 수출 대상국인 터키가 한전과의 협상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최근의 사퇴 루머는 김 사장이 불도저식으로 추진해왔던 일련의 정책들이 `좌초`를 겪으면서 정부와 갈등을 빚게 되고, 사장의 지도력이 힘을 잃는 과정에서 불거져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전력산업구조개편과 관련한 후속작업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직접 사퇴서를 제출했을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충분히 가능해 보이는 이유다. 김 사장의 거취를 둘러싼 루머가 확산되는 것을 보고 업계의 한 관계자는 “난해 KDI(한국개발연구원)가 전력산업구조개편에 대한 연구용역에 착수한 시점부터 이미 한전의 재통합은 물 건너 간 것이었다고 본다. 김쌍수식 개혁은 애초 공기업으로서 한전이 갖는 한계와 부딪칠 수밖에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한편 한전 관계자는 “중도 사퇴설은 사실무근이다”며 “공문발송은 단지 근무기강 확립 차원일 뿐, 엄포성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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