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려오는 北風, MB 돌파구?

[시사포커스=권현정 기자] 집권 하반기, 으레 레임덕이 거론되곤 한다. 국정 운영의 방향과 선택에 따라 찾아오는 시기에 차이가 있겠지만 권력을 잡은 이에겐 피해갈 수 없는 하나의 현상으로 간주되고 있다. 2년 남짓한 기간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곳곳에선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을 거론하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대포폰을 둘러싼 광범위한 민간인 사찰과 국민 대부분이 반대하는 4대강 사업, 북한의 도발과 핵 문제, 사정 역풍 등이 여야를 떠나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을 압박하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 발생한 북한의 연평도 도발은 기존 정치 현안을 한순간에 뒤집어 버렸다. 북한 문제로 모든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추가 증거들이 쏟아진 ‘민간인 사찰’ 문제로 야당은 국정조사와 특검을 요구하며 거세게 몰아붙였지만 북한의 연평도 도발로 주춤한 상황이다.

사정정국을 통해 조기 레임덕의 차단을 기대했던 이명박 정부에게 ‘북 도발’이라는 또다른 과제가 주어지면서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른 현 상황에서 정부가 남북관계라는 난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어떤 해결책으로 레임덕을 차단하며 국정을 이끌어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북한의 연평도 공격
   MB 대북정책 비판 거세


11월 22일 북한의 급작스런 도발로 대한민국 전체가 전쟁 공포에 요동쳤다. 민간인 사찰 문제로 대치하던 여야 정치인들은 국회로 모여 한목소리로 북한의 도발을 규탄, 평화적 해결을 촉구했다. 도발에 대한 규탄 성명이 이어지고 결의문이 발표되는 등 여야 의원들은 북한의 추가 도발 및 확전 가능성의 차단을 위해 정부가 적절히 대응해 줄 것을 거듭 촉구했다.

하지만 야당을 중심으로 사태를 여기까지 몰고 온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는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지난 25일 민주당 전병헌 정책위의장은 “본질적으로는 비핵개방 삼천이라는 지난 3년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가져온 결과가 오늘날과 같은 참상과 비극만 남긴 것 아닌가하는 자괴감이 들어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비핵개방삼천은 이제 그 효과가 다했다는 점을 인식하고 대북관계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우리군의 대처 능력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같은 날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유연한 정책을 썼던 과거 민주정부 10년간 이런 불상사는 없었다”면서 “청와대가 발표를 부인하고 마사지하고, 장관은 이런 중요한 국민의 희생을 ‘스타크래프트’, 전쟁을 어린애들 게임에 비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정부 발표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민주당 서종표 의원은 “1차 피격은 우리가 도발적으로 당했다 하더라도 2차 피격이 있을 때는 과감하게 적의 해안포 동굴 입구라던가 또는 사격하고 있는 포병 부대에 직접 타격을 가해야 했다”며 “다른 엉뚱한 주둔지 집결지에 대응사격을 해봐야 이미 그때는 병력이 밖에 나가 있는 상황으로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민간인 거주 지역까지 공격해 민간인 사상자가 나온 만큼 정부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28일 한국과 미국 정부는 핵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를 서해에 파견,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이번 사태가 극히 우려스러운 것은 과거 10년의 민주 정부와 달리 국지적 군사 충돌이 발생할 경우 고위급간의 대화통로 자체가 차단돼있다는 것이다.

현 정권하에서 북한의 도발은 별다른 해결 수단이 없는데다가 무력 충돌의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현 정권의 대북 정책은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강경’과 ‘자제’의 딜레마에 빠진 정부가 오락가락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비난을 부추기고 있다. 이러한 중차대한 시기에 권력의 ‘무능’ 또는 ‘부실함’이 드러난다면 이는 곧 권력의 누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핵시설 공개
   현 정부 대북정책의 오류인가?


북한이 최근 지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을 북으로 초청해 원심분리기 시설을 공개했다. 이 같은 시설은 경수로 연료의 조달을 위한 것이기 보다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무기 제조용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북한이 원심분리기 시설을 공개한 것은 사실상 핵 개발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북한은 2000여개의 원심분리기를 보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정도의 규모라면 1년에 1개씩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간 ‘비핵?개방?3000’ 정책의 원칙으로 대북 제재와 압박에 치중했던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요구하며 긴 시간 대화와 협상을 중단해왔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먼저 보여줘야 대화와 지원이 가능하다고 주장해온 정부는 북한에 대한 압박으로 오히려 북한의 핵능력만 키워 상황을 악화시킨 셈이다. 이에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또한번 된서리를 맞게 됐다.

지난 23일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남북관계가 위기다”라고 강조한 뒤 “이제 북한 핵문제가 크게 불거져서 미국이 나서는 등 온 세계가 북한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괜찮다’ ‘별 것 아닐 것이다’라는 안이한 생각을 갖고 있다”며 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꼬집어 비판했다.

진보신당은 지난 22일 논평을 통해 “우리 정부의 제재에 기초한 북한에 대한 압박 정책은 비핵화는커녕 북한의 핵능력만 증강시키는 처참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고 평가했다.


한미 FTA 재협상
   조기 레임덕 뇌관 될 수도


대북 정책만큼이나 이명박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이슈로 한미 FTA가 있다. 북의 도발로 사안이 가려져 있지만 언제든 정치쟁점화 될 수 있을 만큼 민감한 사안 중 하나다.

협정문의 점하나 고치지 않겠다고 공언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의 말과 달리 지난 19일 정부는 한미 FTA의 재협상을 공식화했다. 이에 야5당은 거세게 반발하며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의 해임까지 요구했다.

22일 민주노동당은 대변인논평을 통해 “밀실 굴욕 퍼주기 협상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 만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을 즉각 해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며 “이명박 정부가 FTA 비준을 포기하고 독소조항을 제거하는 전면재협상에 나설 것을 거듭 요구한다”고 밝혔다.

또 민주당은 “‘한미 FTA 재협상은 없다’고 국민 앞에 공언을 해온 정부가 스스로 재협상임을 시인한 것은 정부의 대국민 사기극”이라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정부의 국민기만 행위에 대해 즉각 사과하고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등 재협상 관계자 모두를 즉시 해임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그동안 쇠고기 시장의 추가 개방을 막기 위해 자동차 부문에 양보를 거듭해왔다. 미국산 자동차의 환경규제를 완화하고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포함하는 등 사실상 미국이 원하는 대로 국내 시장을 내준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픽업트럭 관세 철폐 시한 연장과 배기량 규제 완화, 미국자동차 안전기준 수용 등 추가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협정을 위반하거나 기대되는 이익이 무효화 될 때 관세철폐를 무효화할 수 있는 스냅백(Snap-Back)조항이나 한번 개방하면 개방된 수준에서 축소가 불가능한 래칫, 제3국과의 개방을 미국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한 ‘미래 최혜국 대우 조항’, 미국 기업이 영업에 불리할 경우 한국정부를 국제민간기구에 제소할 수 있게 한 투자자 국가제소제(ISD) 등의 독소 조항도 다수 포함돼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 22일 이명박 대통령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의원들과의 만찬 자리에서 한미 FTA 재협상 논란과 관련해 협상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국익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한미간의 이익 균형점은 이미 깨졌고 막판 협상에서 미국이 쇠고기 시장의 추가 개방까지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 일각에서는 제2의 촛불 정국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시장을 성급하게 내줬다가 ‘촛불 시위’의 역풍을 맞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번 재협상은 합의 자체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익을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 한국의 이익은 예상치에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다. 정부가 미국의 요구에 손을 들어준다면 ‘촛불 정국’만큼은 아니더라도 전국민적 비판여론에 직면해 레임덕의 뇌관으로 작용 될 수 있는 상황이다.


대포폰 둘러싼 민간인 사찰
   광범위한 사찰 정황 잇따라


이러한 가운데 민간인 사찰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상당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민간인 사찰의 추가 정황이 드러나면서 지난 23일 민주당 전현희 대변인은 “청와대 불법 사찰 의혹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고 레임덕의 시작”이라 규정했다.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여당 의원은 물론 언론사, 정부 부처, 노동계에 이르기까지 전방위 사찰을 한 사실이 지난 22일 추가로 공개되면서 정국은 다시 들썩였다. 북한의 연평도 공격으로 이또한 사안의 중대성이 다소 가려졌지만 관련 정황이 잇따라 드러난 상황에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원관실 점검1팀의 원충연씨 수첩에서 드러난 오세훈 서울시장, 원희룡 한나라당 사무총장, 이혜훈 한나라당 친박계 의원은 물론, 친이계 공성진 의원과 한국노총의 전직 위원장, YTN 임직원 등에 대한 사찰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사찰범위도 그렇지만 원 씨의 기록에 의한 동향보고 수신자가 청와대와 경찰청, 국정원 간부까지 국가기관에 공유되었던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에 한나라당 내에서는 사찰 대상으로 거론된 의원과 소장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재수사에 대한 필요성이 연이어 제기되고 있다. 이미 사찰 대상으로 거론된 정두언, 남경필, 정태근 의원과 소장파 의원들, 여기에 친박계 의원들까지 가세하면서 당 내 분위기는 심상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나라당 친박계 서병수 최고위원은 23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민간인 사찰의 의혹은 여전히 남아 있고, 검찰 수사 후에도 새로운 정황이 발견되고 있다”면서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지 않으면 국정운영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찰 피해자로 거론된 남경필 의원은 23일 CBS라디오에 출연해 “수첩이 나왔는데 이는 ‘수첩1’로 수첩2, 3도 있을 것”이라면서 “검찰이 모르쇠로 일관하다가는 결국 야당의 국정조사와 특검 요구의 정당성만 높이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민간인 불법 사찰 문제에 따른 레임덕의 가능성에 대해 “지금이라도 아픈 부분을 도려내야 한다”며 “병을 키우면 회생불능한 암덩어리로 전이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레임덕이 거론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북 도발과 핵문제 등 다양한 정치적 쟁점이 중첩되면서 MB 정권은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 향후 국정 운영의 방향에 따라 MB 정권은 비판 여론에 직면할 수도 지지 여론을 이끌어 낼 수도 있다.

하지만 남북관계와 북핵 위기, 4대강 사업, 대포폰, 민간인 사찰, 한미 FTA, 사정 정국 등 넘어야할 산이 많은 만큼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은 조기에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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