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없이 몰아치는 ‘北風’... 그 배경은?

▶ 연평도 사고 현장  [사진제공=인천시청]

[시사포커스=권현정 기자] 북한은 영악했다.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원심분리기 시설을 공개해 핵제조 능력을 과시한 후 연평도 공격을 감행했다. 포격 전 김정일⋅김정은 부자는 관련 부대를 비밀리에 방문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이로써 한반도를 중심으로 주변 4대 강대국과 남한에게 북한은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북한은 대외적으로 ‘핵 카드’를, 대내적으로는 ‘초강수’를 둠으로써 ‘실익’과 ‘견제’ 모두를 챙길 태세다.

이와 달리 우왕좌왕 혼란과 공포 속에서 남한은 자중지란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때 주식시장은 폭락에 술렁였지만 곧 안정을 되찾았고, 시민들도 큰 동요 없이 상황을 예의 주시했다. 하지만 청와대를 중심으로 정치권은 대통령의 첫 지시(확전 자제 논란 등)에 대한 적절성 논란과 국방장관의 사퇴, 보고 체계의 문제점들로 연일 혼선을 빚고 있다.

정부는 딱히 내놓을 만한 대응카드가 없는데다가 뚜렷한 대응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향후 이명박 정부가 전시작전권의 권한 밖에서 어떻게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문제를 풀어나갈지 나라 안팎으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의 도발과 핵문제를 놓고 보이는 주변 4대강국의 입장과 반응, 정부의 대응책 등을 분석해봤다.


중국 압박하는 미국


미국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3일 이명박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갖고 강도 높은 훈련을 실시하기로 합의했고, 미군은 28일부터 12월 1일까지 서해상에서 핵항공모함인 조지워싱턴호를 파견, 연합훈련을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조속히 전달했다.

같은 날 백악관 상황실에서는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마이크 멀린 합참의장 등 최고위 국가안보 관계자들이 긴급 소집돼 한반도 상황을 논의했다.

다음날(24일) 미국 국무부는 한반도의 긴장 완화와 북한의 변화를 위한 중국의 (대북)영향력 행사를 촉구했다. 이날 필립 크롤리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는 정례브리핑을 통해 “중국은 북한의 변화를 이끌 중심축”이라며 “중국이 한반도의 긴장 완화를 위해 영향력을 행사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 오바마 대통령도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공개하고 민간 공격을 자인한 만큼 중국은 입장을 명확히 하고 협조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두 정상은 북한에 대해 24시간 공동대응 태세를 유지하며 단호히 대응하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추가 도발이 있을 때에는 제재를 강화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해졌다.

미국의 주요 언론과 대북 전문가들은 주로 중국의 북한에 대한 위상과 영향력을 강조하고, 중국이 나서줄 것을 요구했다. 또 오바마 정부가 북한 문제를 좀 더 비중 있게 다뤄주길 희망하며 6자 회담의 재개를 촉구, 북한 문제에 대한 미국 정부의 새로운 전략과 협상을 주문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해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 포스트>지의 기고문을 통해 그는 “북한의 연평도 공격과 원심분리기 공개는 그들의 미래를 결정할 협상에서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한 것”이라며 “북한은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일관되게 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그는 “우리가 북한이 원하는 양자 대화에 응하지 않으면, 북한은 그들을 변화시키려는 미국의 공격에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그 어떤 조치라도 취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독자적 추가제재, 일본


일본은 독자적으로 추가제재를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정부 대변인 센고쿠 요시토 관방장관은 23일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하겠다”라고 밝혔다. 기본적으로 각국의 대응을 보면서 한국과 일본, 일본과 미국 등의 연계를 통해 제재할 것임을 시사했다.

같은 날 간 나오토 총리는 관계 각료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는 간 총리와 센고쿠 관방장관, 기타자와 도시미 방위상 등이 참석했고 북한의 동향과 대응 전략, 자국민의 안정 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간 총리는 “예측할 수 없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확실한 대응을 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할 것”을 지시했다.

일본 외무성은 한국에 대한 여행주의보를 발령, 한국에 체류하고 있거나 관광 목적으로 방문하는 일본인들에게 “북방한계선(NLL) 근처에 접근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지난 25일 ‘강제합병 100년, 조국과 함께 한 재일본대한민국민단 65년’ 행사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강연 도중 북한의 도발 사건에 대해 “한⋅일 양국이 신속하게 전 세계와 연대해 문제에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적극적으로 한국 정부를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대화를 통한 평화로운 해결을 제시하며 “6자회담을 통하는 방법밖엔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동아시아가 혼란 없이 함께 발전하기 위해 공동체를 구상하려면 과도한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자립과 공생의 긴밀한 국제 협조의 룰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북한의 고립을 막고 국제정치의 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열쇠를 쥐고 있는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북한 문제에 독자적인 제제를 공언했지만 이미 지난 3월 천안함 사건으로 쓸 수 있는 카드를 대부분 써버려 추가 제재 수단이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추가제재 검토’라는 일본의 입장은 국내 정치용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냉정’과 ‘자제’?...한수 위 中


북한의 연평도 공격에 미국과 일본은 중국이 나서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이 북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만큼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자바오 총리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노력할 것이며 어떤 군사적 도발도 반대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히고 있을 뿐이다. 아울러 관련국들의 자제와 냉정을 요구하며 북핵 6자회담을 재개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동북아는 엄중하고 복잡한 정세에 당면하고 있다”며 “국제사회가 한반도와 그 주변의 긴장국면을 완화하는데 유리한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26일로 예정됐던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의 방한을 돌연 연기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28일부터 시작되는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대한 항의 표시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 중국은 25일 서해훈련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바 있고 대화와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제여론이 중국의 책임론을 들쑤시자 중국은 불쾌감을 드러내면서도 천안함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냉정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중국의 주요 언론들은 현지 상황을 전하는데 초점을 맞추다가 ‘선제공격을 받았다’는 북한의 입장을 확인하고서는 한미 서해훈련을 비판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25일자 사설을 통해 “중국은 미국 핵항공모함의 서해 투입을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일단 중국은 최근 북한이 원심분리기를 미국에 공개하고, 군사적 도발까지 감행한데 대해 마땅치 않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이로 인해 북한을 압박하거나 비판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 언론에서는 북한에 대한 입장 표명을 자제하고 있는 중국에 북한 편을 드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하지만 핵제조 시설을 공개하고 기습적인 공격을 남한에 가한 북한을 중국조차 경계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앞서 지난 24일 중국 정부는 북한의 연평도 공격에 대한 성명을 발표하고 “남북한은 냉정과 자제로 최대한 빨리 대화와 접촉을 가질 것”을 촉구했다.


유보적 태도의 러시아, 북한 규탄에 합류


러시아는 북한의 공격에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러시아 언론들은 북한의 갑작스런 공격을 신속히 보도하며 상황을 알렸다. 지난 23일 러시아 외무부는 “북한의 연평도 공격은 한반도의 긴장을 높이는 행위”라며 북한을 비난했다.

24일 보도된 인테르팍스 통신에 의하면 러시아 재난대책기구인 비상사태부 극동 지역지부가 북한의 포격으로 국경지역의 대비태세를 강화했다고 전했다. 관영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북한의 연평도 공격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며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원인을 제공한 북한을 규탄하면서도 러시아는 큰 동요 없이 지난 천안함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냉정한 자세를 잃지 않고 있다.


핵제조 능력 배경으로 초강수 두고 있는 북한


북한은 변함이 없었다. 남쪽에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단호한 태도를 보이며 당당히 맞서고 있다. 핵무기 제조가 가능한 원심분리기 시설의 공개 이후 공격을 감행해 다분히 의도적이었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또 연평도 공격 직전 김정일 부자가 황해도 포병대대를 방문해 북한의 해안포 성능과 우리군의 연평도 사격훈련 상황을 확인, 사전에 미리 계획한 바가 있었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를 두고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면서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김정일의 건강 악화설과 김정은의 후계체제 안정화, 경제 위기 극복과 실익을 위한 벼랑 끝 전술, 대화 없이 공전되고 있는 남북 및 한미관계 등 북한은 원심분리기라는 배수의 진을 친 채 초강수로 한반도를 위협하고 있다.

이번 사태의 배경으로 김정은의 후계체제 안정화가 설득력을 얻고 있지만 미국과의 대화를 통한 총체적 난국의 돌파 등 다양한 목적이 반영된 것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5일 연평도 포격과 관련해 “조선 서해가 분쟁 수역화 된 것은 미국이 제멋대로 우리의 영해에 그은 북방한계선(NLL) 때문”이라 강조하며 “남조선이 다시 군사적 도발을 하게 되면 주저 없이 2차, 3차 물리적 보복을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북한의 연평도 공격은 단순한 견제 차원의 공격이 아닌 것으로 관측된다. 추가 보복 운운하며 상황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모양새가 뭔가 급박한 상황을 방증하는 것은 아닌지 일각에서는 의구심을 제기하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는 이를 통해 북한이 남한과 미국을 동시에 압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북한은 이번 사태에 대해 분쟁의 불씨를 제공한 건 NLL을 그은 미국이라 지목하고 서해에서 포사격 훈련을 실시한 남한이 정전협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해 남쪽이 북방한계선을 침범하지 않고 포사격 같은 군사적 훈련도 자제해야한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일본 산케이신문은 북한이 수개월내에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중거리 미사일을 발사, 실험준비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북한의 이러한 미사일 발사는 이란과 공동으로 진행될 것이며 지난달 평양 군사퍼레이드에 이란 대표단이 참관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전했다.

‘무수단’으로 불리는 북한의 핵탄두 탑재 미사일은 사전거리가 3km 이상으로 기존에 알려진 대포동 미사일보다는 성능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6.25 전쟁 이후 유례없는 포격을 가하며 초강수를 두고 있는 북한은 2, 3차 추가 보복은 물론 핵탄두 미사일의 시험 준비까지 예정에 두고 있어 극한 대치 상황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우왕좌왕 대한민국, 딱히 내놓을 카드가 없다


북한의 갑작스런 공격에 상황은 심상치 않아 보이는데 뚜렷한 대책 없이 국내 상황은 청와대의 지휘 문제, 교전규칙 전면 개정, 군의 허술한 대응, 국방장관 사퇴 등으로 논란만 가열되고 있는 양상이다.

청와대는 초기 ‘확전 자제’를 발표했다가 이내 ‘강경 대응’으로 말을 바꿨다. 사건 직후 “단호하게 대응하되 확전되지 않도록 관리를 잘하라”던 이 대통령의 말은 이후 “확전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로 수정됐고 나중에는 “‘확전되지 않도록 관리하라’라는 말은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청와대의 말 바꾸기는 혼란만 가중시켰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초기 대통령의 발언으로 군의 보복 강도가 낮아졌다고 지적하기도 했고 ‘교전수칙을 뛰어넘는 대응’이라는 강경 발언은 자칫 확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청와대는 연평도 포격의 대응 실패에 김태영 국방부 장관의 사퇴로 비난 여론을 차단하려 했다. 하지만 우리군의 사격훈련에 북한이 경고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훈련을 지속하고 연평도 주민을 대피시키지 않았던 점과 ‘호국훈련’인지 ‘사격훈련’인지 주장이 엇갈린 점 등으로 비난 여론은 높아지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모노리서치가 지난 24일 북한의 도발에 대한 긴급 국민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북한의 공격에 대응하는 정부와 군 당국의 조치에 ‘잘못하고 있다’라고 답한 응답자가 63.6%에 이르렀다. 정부의 오락가락한 말 바꾸기와 민간인 사상자까지 발생한 것에 대해 정부와 군 당국이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여론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일단 정부는 이번 사태에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외교통상부는 북한의 연평도 공격과 관련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회부를 검토 중에 있고 향후 전반적인 분위기를 살펴 신중하게 접근하겠다고 한다.

이와 동시에 대북 지원은 잠정적으로 중단했고, 남북적십자회담도 무기한 연기됐다. 통일부 쪽에서는 개성공단의 방북을 불허하고 연평도 피해 지역에는 정부차원의 국고를 지원할 예정이다.

앞서 군 당국은 최고 수준의 대북 경계태세를 유지하면서 서해 훈련 일정을 중국에 알려 북한을 압박해달라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미국과 일본, 중국이 해결책으로 ‘6자회담’을 꼽고 있는 것과 달리 정부는 특단의 대책 없이 후속 조치와 강경 대응에만 주력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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