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사고 터지지만 뒤늦은 안전대책…예견된 산업재해

최근 철강업체에서 사망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업체들의 안전관리 소홀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에따라 실질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부제철의 경우 최근 화재사건과 함께 사망사고가 연이어 벌어져 충격을 주고 있다. 하지만 업체에서는 조치를 취했다는 답변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다른 업체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환영철강에서 벌어진 사망사건은 언론은 물론 인터넷 상에서도 대표적인 사망사건이다. 환영철강에서 사망한 청년의 경우 추모시까지 퍼져 넷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파문이 퍼지자 당황한 환영철강측은 사망사고 이후 잘못을 통감한다며 사고여파가 퍼지는 것을 조기에 진화하기도 했다. 

이처럼 철강업체에서 빈번히 벌어지는 사고가 사람의 목숨까지 뺏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업체들의 경우 뾰족한 대응책이 내놓지 못하는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예견된 산업재해라고도 불리고 있다.
이에 본지는 철강업체의 잇따른 사망사건을 통해 안전불감증에 빠진 철강업계 실태를 취재해봤다.

지난 8월 17일 오전 10시 30분께 서구 가좌동 동부제철 인천공장 아연도금라인에서 질소가스 주입장치를 설치하던 가스설비업체 직원 김모(35)씨가 600℃의 포트(쇳물을 담아두는 큰 용광로)에 빠져 전신에 94%의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여흘 뒤인 28일 숨졌다.

동부제철에 따르면 당시 포트는 뚜껑이 덮여 있었으나 사람이 들어갈만한 틈이 벌어져 있었다. 김씨는 250℃의 고온을 견딜 수 있는 안전복과 안전화, 안전모를 착용하는 등 최소한의 안전조치만을 했다.
김씨의 동료는 경찰에서 “포트 주변에 주의표시나 CCTV가 없었다”면서 “5분간의 안전교육도 복장 등을 철저히 하라는 주문만 있었을 뿐 특별한 내용이 없었다”고 진술했다.

동부제철, 환영철강 사망사고 잇따라 발생

동부제철의 사망사고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 11월 3일 오후 1시20분께 충남 당진군 송악읍 한진리 동부제철 열연공장에서는 전기시설 설치작업을 하던 인부 편모(45)씨가 10m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당진소방서에 따르면 편씨는 이날 동료 인부 3명과 함께 용광로에 전기를 통하게 하는 시설인 3단 전극봉 조립작업을 하던 중 1번 전극봉이 쓰러지면서 함께 추락해 변을 당했다.

화재사건도 벌어졌다. 충남경찰과 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14일 오전 3시 52분께 당진군 송악읍 고대리 동부제철 열연공장 전기로에서 쇳물이 넘쳐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공장내부(165㎡)와 주변 설비시설 등을 태워 4천800여만원(소방서 추산)의 재산피해를 내고 2시간40여분만에 진화됐으며, 업체 직원 1명이 이마가 찢어져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동부제철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사고 후로 안전교육을 강화했고 안전시설물을 검토한 뒤 새롭게 보강했다. 안전펜스의 경우 기존에도 설치됐지만 사고 이후 이중으로 설치했다”며 “유가족에 대한 보상문제도 다 이뤄진 상태”라고 밝혔다.

한편 환영철강업체에서 사망한 한 청년의 죽음은 대표적인 산업재해다. 지난 9월 7일 오전 2시께는 충남 당진군 석문면 환영철강에서 이 업체 직원 김모(29)씨가 5m 높이의 용광로 위에서 작업을 하던 도중 발을 헛디뎌 용광로에 빠져 숨졌다.

용광로에는 섭씨 1천600도가 넘는 쇳물이 담겨 있어 김씨의 시신 수습이 어려움을 겪게 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네티즌 사이에선 김씨의 죽음을 애도하는 조시(弔詩)가 트위터 등을 타고 급속히 퍼졌다.

환영철강 관계자는 “사고가 난 전기로 기계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하고 회전체에 커버를 착용하는 등 진단검사에서 지적된 사항들을 개선하고 있으며, 더불어 직원 안전교육 등을 강화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철강업체의 안전관리 미비로 벌어지는 사고는 대규모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올해 2월 초 당진 현대제철에서도 유독가스가 누출돼 현대제철과 삼성엔지니어링, 협력업체 등 직원 27명이 병원으로 후송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마터면 사망사고로 이어질 뻔한 사고였다.

뒤늦은 안전대책,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철강업체들은 여론의 비판이 커지자 뒤늦게 안전대책을 마련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러한 안전사고의 문제는 철강업체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에 행태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애초 제대로 된 안전시설이 있었다면 사고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었는데 이마저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아 화를 더 키웠다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철강업체의 사망률은 전체 업종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노동부 산재통계에 따르면 환영철강 같은 제강업체들이 속한 금속재료품제조업에서 발생한 재해자는 936명, 사망자는 20명이었다. 재해율은 1.53%, 사망만인율은 3.27이었다. 재해율은 노동자 100명당 발생하는 재해자수 비율, 사망만인율은 노동자 1만명당 발생하는 사망자수를 말한다.

재해율과 사망만인율 모두 같은 기간 전체 사업장 평균(0.7%, 1.57)의 두 배를 웃돌고 있는 것이다.
노동시민단체에서도 구조적인 안전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것에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한노동세상, 노동건강연대,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민주노동당,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 등은 지난 9월 15 청계천 소라광장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산재사고가 발생하면 많은 기업이 이를 노동자의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만다”며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모든 산재사고 원인의 7-80% 이상이 경영 혹은 안전 시스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번 산재 사망도 원천적으로 작업 오류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작업 오류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이 나서지 않아도 되도록 작업 구조가 설계되었더라면 생기지 않았을 죽음”이라며 “정부가 진정으로 문제 해결에 의지가 있다면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전시 행정과 정책 추진에 그치지 말고, 실질적 정책 도입과 강력한 법 집행이 뒤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철강업체에서 한달에 한 두건 정도 꾸준히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며 “해당 업체에서도 수시로 점검했겠지만 계속해서 사고가 나는 걸 보면 안전점검이 미흡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업체가 사고조치를 취해도 수동적일 뿐 사고에 앞서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는 이같은 사망사고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안전사고에 대한 제대로 된 매뉴얼이 필요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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