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단체 “인권위원 자격기준 및 검증절차 법으로 마련돼야...”

인권단체 “현 위원장, 김영혜 내정자는 무자격자”
현 위원장 “부여된 소임 다할 것”, 사퇴 안해...


[시사포커스=이태진 기자] 지난 1일 문경란, 유남영 국가인원위원회 상임위원 2명이 사퇴한 데 이어 10일에는 조국 비상임위원 사퇴, 닷새 뒤인 15일에는 급기야 자문위원과 전문위원, 상담위원 등 61명이 집단사퇴했다. 인권위는 소속 위원들의 줄사퇴로 큰 내홍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태가 어떻게 결말지어질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사진: 유용준 기자] 지난 16일 오전 11시 '현병철 인권위원장 사퇴를 촉구하는 인권시민단체대책회의'는 청와대 근처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이명박 정부의 인사권 행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현재 인권위는 2001년 출범한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난 1일 인권위 문경란, 유남영 상임위원 2명이 동반사퇴한 데 이어 지난 10일에는 조국 비상임위원도 임기 만료일로부터 44일을 앞두고 사퇴했다. 또한 지난 15일에는 자문위원과 전문위원, 상담위원 등 61명이 집단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지난 10일 문경란, 유남영 상임위원의 사퇴로 상임위원직 3석 중 2석이 공석이 되자 이명박 대통령이 인선을 단행, 유남영 상임위원 후임으로 법무법인 ‘오늘’의 김영혜 대표변호사를 내정했다.

또한 지난 18일에는 문경란 상임위원 후임으로 한나라당이 추천권을 행사, 사단법인 ‘시대정신’의 홍진표 이사를 추천했다.

시민단체와 前인권위원들은 한 목소리로 현병철 위원장의 사퇴와 상임위원으로서 자격이 없는 인사를 추천한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 인권위 사태, 현병철 위원장의 개정안 상정이 발단

지난 달 25일 현 위원장은 상임위원회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인권위 운영규칙 개정안’을 상정했다. 이 개정안은 상임위원회에서 안건에 대해 합의를 해도 위원장 독단으로 그 안건을 전원위원회에 회부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상임위원회가 의결했던 긴급 인권 현안에 대한 의견 표명 및 권고도 전원위원회에 이관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사실상 3명의 상임위원의 권한을 축소하고 상임위를 무력화시켜 현 위원장 본인 의도대로 인권위를 끌고 가겠다는 것이다.

지난 1일 동반사퇴한 문경란, 유남영 상임위원은 한 언론을 통해 “현 위원장은 인권위의 판단을 인권의 잣대가 아닌 권력기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지 그 여부의 잣대로 접근하고 있다”며 현 인권위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소속 위원들의 사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문경란, 유남영 상임위원 사퇴에 이어 조국 비상임위원까지도 사퇴했다. 조 위원은 언론에 배포한 사직서를 통해 “현재 인권위가 처한 상황의 심각성을 상기시키기 위해 위원직을 사임한다”고 전하며 사퇴이유를 밝혔다.

◆ 정부는 현 위원장 임명 책임지고, 김영혜 위원직 내정을 철회하라

지난 16일 오전 11시 ‘현병철 인권위원장 사퇴를 촉구하는 인권시민단체 대책회의(이하 인권대책회의)’는 청와대 근처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의 본기능을 마비시키고 독립성을 훼손하는 이명박 정부의 무책임한 인사권 행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날 열린 기자회견에는 국가인권위제자리찾기 공동행동의 명숙 집행위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류제성 변호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김현주 수석 부위원장, 한국진보연대 안지중 사무처장 등이 참가했다.

인권대책회의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현재의 인권위가 파국으로 치닫게 만든 현 위원장과 이명박 정부의 책임없는 인사에 대해 강하게 비난했다. 또 지난 10일 이명박 대통령이 내정한 국가인권위 상임위원으로 김영혜 변호사를 내정한 것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명 집행위원은 이 기자회견에서 “이번 국가인권위 상임위원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는 문제가 있다”며 “자격이 없는 사람을 상임위원으로 내정한 것은 인권위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처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어 “이명박 정부는 검증절차도 거치지 않고 현병철 위원장을 임명하더니 이번에도 검증없이 자격이 없는 김 변호사를 인권위 상임위원으로 내정했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현 위원장을 임명한 것에 책임지고, 김 변호사를 상임위원으로 내정한 것을 즉각 철회하라”고 말하며 현정부의 인권위 인사행태를 맹비난했다.

김 부위원장도 “인권위 위원장에 대한 잘못된 인선이 지금의 인권위 파행을 부른 것”이라며 “김영혜 의원은 상임위원으로서 자격이 없는 자”라고 비난했다.

▲ 이날 있은 기자회견의 한 참가자가 김영혜 변호사에게 보내는 서한을 낭독하는 모습.

◆ 인권위원 자격기준과 검증절차 법으로 규정해야

류 변호사도 이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내정한 김영혜 변호사는 인권에 대한 전문성이 결여된 인사로 인권위 상임위원으로서 자격이 없으며, 그는 친정부 인사로 그를 상임위원으로 내정시킨 것은 인권위 독립성을 훼손하는 인사”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는 “인권위 위원들이 연이어 사퇴한 데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무자격자 현 위원장을 임명하면서부터 인권위 파행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면서 “위원장에 대한 임명권은 대통령한테 있다지만 자격에 대한 검증을 거친 후 인사권 행사가 이루어져야 했다”며 이명박 정부의 인사행태를 비판했다.

류 변호사는 본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인권위 인권위원에 대한 자격기준과 검증절차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면서 “인사청문회 등을 통해 인권에 대한 이해도, 감수성, 성찰의식을 가지고 있느냐를 따져봐야 한다”고 설명하며 법개정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김영혜 변호사를 인권위 상임위원으로 내정한 것은 아무 검증없이 이명박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인사를 행사한 처사”라며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자격검증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그러한 인사 검증을 통한 인권위원 인사가 이루어져야 인권위의 본기능과 독립성이 보장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류 변호사는 “인권침해는 대부분 국가가 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설명하고, “현 위원장이 취임한 이후, 용산사태, PD수첩, 미네르바, 촛불집회 사건 때 인권위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는 이유로 인권침해에 대한 언급을 회피해 왔다”며 “이같은 이유로 인권위가 본기능을 수행하지 못해 독립성이 훼손됐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현 위원장은 인권단체들의 위원장 사퇴 압박과 인권위 소속위원들의 잇따른 사퇴와 관련해 ‘국민께 드리는 말씀: 최근 논란과 관련한 국가인권위원장 입장’이란 글을 언론에 배포했다. 그는 이 글에서 “저는 위원장으로서 저에게 부여된 소임을 변함없이 충실히 수행할 것”이라고 말해 사퇴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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