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사정정국 ‘역풍’ 몰려온다

[시사포커스=권현정 기자] 결국 청와대라는 ‘몸통’이 드러나는 것일까? 민간인 사찰과 관련해 청와대 개입설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고 연관된 정황도 꾸준히 드러나고 있다. 검찰의 ‘부실수사’, ‘축소⋅은폐 수사’ 등의 논란은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 아니었다. 구체적인 물증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의 ‘재수사 불가’ 방침엔 변함이 없지만 이대로 묻고 가기엔 사안의 무게감은 엄청난 것이었다.

관련 증거들이 속속 불거져 나오면서 청와대는 코너에 몰리는 형국이다. 지난 1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정선재 부장판사)는 민간인 사찰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인규 전 지원관에게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또 같은 혐의로 기소된 김충곤 전 점검1팀장에게는 징역 1년 2월, 원모 전 조사관에게는 징역 10월이 각각 선고됐고 지원관실 파견 직원 김모씨에게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이를 두고 야권에서는 ‘꼬리 자르기’로 사안을 덮으려한다며 청와대와 검찰을 맹비난했다. 지난 16일 국민참여당은 논평을 통해 “BH하명 메모와 총리실 보고 파일, 대포폰과 디가우저를 이용한 증거 인멸 등 민간인 불법사찰에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검찰은 수사내용을 은폐하기에 급급했다”며 “‘꼬리 자르기’로 민간인 불법사찰사건을 매듭지으려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지난 15일 민주당 이춘석 대변인은 “민간인을 사찰하고, 하드디스크를 없애는 일을 하명 없이 단 세 명이 저질렀다는 것을 어느 국민이 믿겠는가”라며 “일부 하수인을 처벌하는 것은 국민적 요구가 아니다. 숨은 몸통을 찾아 그 책임을 묻고 단죄해야 한다. 국정조사를 통해 이 사건의 배후를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BH 하명 메모, Blue House는 어디?


청와대의 개입설을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BH 하명’메모는 여러 차례 언급돼왔다. 보고 차원을 넘어 지시까지 더 이상 청와대는 관련 의혹을 부인하는 것조차 힘겨운 지경에 이르렀다. 검찰의 ‘봐주기’와 ‘축소⋅은폐’ 수사에 대한 변명도 날이 갈수록 옹색해지고 있다.

지난 18일 박주선 민주당 최고위원은 <SBS 전망대>와의 인터뷰에서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의 판결문에 “총리실이 청와대에 보고하고, 청와대는 대포폰을 지급하고, 사건부에 ‘BH 하명’이라고 명백히 기재돼 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가 민간인 불법사찰을 주도하고 보고 받았다는 것이 법원 판결문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지난 17일 민주당 이석현 의원은 청와대 행정관이 현직 국정원장과 차장, 야당 대표까지 사찰했다고 주장하며 관련 문건을 공개했다. 이 의원이 공개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조사관들의 메모는 광범위한 사찰의 정황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 의원이 지목한 문제의 인물은 이창화 전 청와대 행정관으로 이 전 행정관은 경북 포항 출신에 ‘영포 라인’으로 박영준의 사람으로 알려졌다. 다수의 사찰이 그를 통해 이뤄졌고 청와대 쪽으로의 보고도 그를 통해 이뤄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 의원은 “2008년 3월 공천 갈등으로 여당 내 남경필⋅정두언⋅정태근 의원 등이 이상득 의원의 퇴진을 요구하자 이 전 행정관이 이들 부인에 대해 사찰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이재오 쪽 인사인 전옥현 당시 국정원 1차장의 부인도 내사했다고 한다. 이뿐 아니라 이 의원은 김성호 전 국정원장과 당시 야당 대표였던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과 친박 인사인 이성헌 한나라당 의원 등도 사찰했다고 주장했다. 그 외에도 지원관실의 조사관들 메모를 보면 트로트 가수는 물론, 기획사와 기업의 이름이 다수 기록돼 있어 민간인 사찰이 광범위하게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지난달 21일에는 법무부의 국정감사에서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BH 하명’의 메모를 공개했다. 이는 소환돼 조사를 받고 있는 총리실 직원의 압수수색 물품 가운데 나온 것으로 ‘BH 지시사항’ 등의 내용이 담겨져 있다. 메모에 나와 있는 ‘BH'는 Blue House의 약자로 청와대를 지칭한다.

박 의원은 당시 “김종익 전 NS 한마음 대표와 남경필 의원의 사찰과 관련해 80쪽에 달하는 원충연 전 사무관의 수첩은 이미 검찰이 갖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원 전 사무관 수첩에 등장하는 BH 문구는 USB에 담겨 있는 수사기록의 복구된 데이터에도 여러 번 등장, ‘민정’, ‘사회수석’에게도 보고했다는 내용이 있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명확한 증거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서무담당 직원이 사찰업무를 수행하던 팀원들의 얘기를 듣고 ‘BH 지시사항’으로 적어놨다”고 해명한 검찰을 “누가 하명했는지 몰라서 형사처벌 할 수 없다고 하느냐, 눈감고 수사하느냐”며 따져 물었다.

박 의원은 “이인규 전 지원관에 대한 수사기록 1500페이지에도 ‘BH 지시사항’이라는 말이 수없이 나온다”며 “수사지휘권을 발동해서라도 재수사하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하지만 이 날 출석한 이귀남 법무부장관은 “청와대와의 관련성을 입증하기 위해 열심히 했는데, 당사자들이 묵비권을 행사하고 증거를 인멸하거나 훼손해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총리실 보고 파일, 영포라인의 사람들


민간인 사찰과 관련해 ‘BH 하명 메모’뿐 아니라 청와대 민정수석과 총리에게 사찰한 내용이 보고된 관련 문건이 다수 나옴으로써 청와대가 불법 사찰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의혹은 더욱 짙어졌다. 지난달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김종익 전 NS 한마음 대표의 사찰 내용이 청와대 민정수석과 국무총리에게 보고된 정황의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하드디스크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0927 BH 보고’, ‘081001 민정수석 보고용’, ‘1001 총리 보고’ 등 다수의 보고 문건이 확인됐다. ‘0927 BH 보고’의 경우 작성자가 2008년 10월 7일 총리실에 파견된 류 모 사무관이다.

그는 포항 출신으로 윤리지원관실의 김충곤 전 점검1팀장, 이인규 전 지원관과 함께 영포라인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검찰은 “컴퓨터 복원 과정에서 보고서 형태의 문서를 다수 발견했지만 제목만 있고 내용은 없어 이러한 사실을 이미 법원에 보고, 제출했다”고 발뺌했다.

지난 1일 민주당 이석현 의원은 국회에서 열린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서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청와대에 보고한 ‘내사보고서’를 공개했다. 그는“청와대가 지시만 한 것이 아니라 일일이 보고를 챙겨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이 제시한 문건은 A4 용지 두 장 분량으로 ‘남○○ 관련 내사건 보고’라는 제목으로 ‘공직 1팀’에 의해 작성됐다.


대포폰,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제3자의 명의로 개설되는 소위 ‘대포폰’은 주로 범죄에 이용되는 수단이다. 이를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의 불법 사찰에 사용했다는 사실은 정치권은 물론 사회 전반에 던지는 충격이 적지 않다. 검찰은 모두 조사했다고 주장하지만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정보통인 박지원 원내대표는 대포폰에 대한 자료를 계속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보고서가 지속적으로 야당에 흘러들어가는 것은 무분별한 사찰과 더불어 관련 증거 자료 또한 다양하게 퍼져있다는 것을 방증해준다.

민주당은 대포폰 게이트를 중심으로 민간인 사찰에 당력을 집중할 태세다. 청목회 사건과 관련해 소환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민간인 사찰에 총력을 기울여 사정 바람에 맞설 움직임이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소속 의원 50여명과 당직자들은 18일 국회 본청 앞에서 결의대회를 갖고 ‘민간인 사찰, 대포폰 게이트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결의문을 통해 이들은 ▲ 한나라당의 국정조사와 특검 수용 ▲ 이귀남 법무부장관과 김준규 검찰총장의 파면 ▲ 청와대의 민간인 불법사찰과 대포폰 게이트의 진상 자백 등을 요구했다.

이러한 야권의 흐름에 청와대는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닌 만큼 내부에서는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실제 민간인 불법 사찰 문제와 관련해서 ‘대포폰’은 청와대의 아킬레스건으로 그 위법성과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시인한 점 등으로 실체가 밝혀질 경우 후폭풍은 대단할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 이석현 의원이 처음 제기한 ‘대포폰 의혹’은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장모 주무관이 검찰의 압수수색을 앞두고 하드디스크의 영구 삭제를 위해 사용했다. 대포폰은 청와대 행정관이 타인의 명의를 도용해 만들었고 비밀 통화를 위해 장모 주무관에게 지급한 것으로 총 5개가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대포폰의 지급 사실을 시인한 바 있지만 “(검찰이) 발표는 안했지만 법정에서 모든 내용을 포함해 적법한 절차가 진행 중”이라며 재수사할 방침이 없음을 드러냈다.


‘디가우저’ 라는 하드디스크 파괴 장비


민주당 우제창 의원에 의해 제기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사찰 문건 삭제 의혹은 ‘디가우저’라는 하드디스크 파괴 장비를 통해 이뤄졌다. 총리실 쪽에서는 우 의원이 제기한 의혹에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우 의원은 조목조목 반박함으로써 관련성에 무게를 더했다.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자리에서 우 의원은 총리실로부터 제출받은 디가우저 구매 영수증과 디가우저 사용일지를 공개했다. 이를 통해 우 의원은 “총리실은 지난 2006년 5월 25일 ‘디가우저’를 구입했고 2009년 1월 박영준 국무차장이 취임한 이후 본격적으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총리실은 2009년 7월8일 처음 사용했으며 당일에만 23차례에 걸쳐 2000GB가 넘는 자료를 삭제했다.

그는 “검찰이 총리실을 압수수색한 것은 올해 7월 5일인데 디가우저를 넘겨받은 것은 8월 18일”이라며 “검찰이 디가우저를 확보했을 때는 이미 내부에서 모든 파일이 삭제 돼있었다”며 검찰의 봐주기 수사를 지적했다.

우 의원은 “총리실은 올 8월 검찰의 압수수색이 이뤄지자 디가우저를 21차례나 사용해 5000GB 중 2000GB에 해당하는 자료를 삭제했다”고 주장하며 사찰이 본격화 되면서“삭제한 기록만 수십만 건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실제 검찰은 지난 7월 5일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를 시작했고 8월 18일 지원관실의 증거인멸 혐의를 조사했다. 이후 검찰은 “총리실의 사찰 증거 인멸은 없었다”고 결론내고 총리실 관계자는 “우 의원이 2009년부터 디가우저 사용을 본격화했다고 하는데 그 이전의 관리대장은 불에 타 제출하지 못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재수사 불가피론


지난 6월 21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처음 제기된 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이제는 수습 자체가 불가능한 지경이다. 검찰은 개입 정황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이미 다 확인했고 추가 의혹은 없다”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부분은 모두 수사했다”라며 재수사 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여당 내에서도 재수사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재수사에 대한 압박 여론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여권 내 개혁소장파 의원들은 지난 18일 재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내 개혁성향 초선의원 모임인 ‘민본 21’의 권영진 의원은 “국민적 의혹이 있는 사건은 어떠한 성역이나 예외를 인정해서는 안되며 공정하고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국정조사를 촉구하고 특검 도입까지 주장하며 파상 공세를 이어갔다. 지난 19일 민주당을 비롯한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등 야5당은 ‘민간인 사찰, 대포폰 게이트’에 대한 특검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민주당은 청목회 수사에 일단 응하겠다며 정면대응으로 가닥을 잡고 ‘대포폰’을 정조준해 자료를 확보하는 등 반격에 나설 태세다.

레임덕의 조기 차단을 위해 사정정국을 몰고 온 것 아니냐는 의혹이 다수 제기되기도 하지만 광범위한 사찰의 정황으로 결국 이명박 대통령은 입지가 좁아지는 모양새다. 검찰 또한 부실수사와 더불어 내부 저항에 부닥쳐 비판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 있는 상황이다.

이번 사정정국은 여권 내 내부 갈등은 물론, 야권의 공동 대응으로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에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사정정국의 역풍과 민간인 불법사찰로 총체적 난국에 직면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또 이명박-이상득-박영준으로 이어지는 권력의 삼각축은 야당은 물론, 국정원장과 연예인 기획사까지 전방위 불법 사찰의 배후로 지목되고 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18일 야5당 원내대표 회담에서 “민간인 사찰, ‘대포폰 게이트’의 중심 인물인 ‘영포라인’의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을 외국으로 도피시키려고 하는 공작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민주당에서 인지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발언은 사실상 권력 차원의 은폐 의혹을 제기한 것과 다름없다. 실제 검찰은 지난 7월 국무총리실을 압수수색하면서 민간인 사찰 사건의 핵심인물인 이인규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의 컴퓨터를 압수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진행된 데에 검찰도 더 이상 ‘모르쇠’로만 버티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출혈이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청목회 수사를 수용함으로써 ‘민간인 불법 사찰, 대포폰 게이트’에 집중하는 것은 검찰과 청와대를 압박해 재수사를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청와대와 야권의 중간 지점에서 검찰이 어떠한 결정을 내릴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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