쩐의 전쟁이 승부 갈랐다…빛나는 현정은 회장의 뚝심

현대건설이 드디어 현대그룹 품에 안겼다. 현대그룹의 승리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물론 소액주주들의 예상까지 뒤엎는 충격적인 결말이었다.

외환은행, 한국정책금융공사, 그리고 우리은행을 비롯한 현대건설 주주협의회는 11월 16일 이번 현대건설 지분 공동매각과 관련한 입찰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현대그룹컨소시엄, 예비협상대상자로 현대자동차컨소시엄이 최종 선정됐다고 밝혔다.

주주협의회는 11월중 우선협상대상자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이어 본실사 및 본계약 등 내년 1분기까지는 우선협상대상자와의 모든 절차를 마무리 할 계획이다.
이번 입찰에는 현대자동차 컨소시엄과 현대그룹 컨소시엄 2곳이 최종 참여했다. 이런 가운데 현대그룹은 4조으로 예상됐던 낙찰가를 훨씬 넘는 금액을 써내면서까지 마지막까지 치열한 승부근성을 보였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현대그룹이 입찰 가격으로 약 5조5100억원을, 현대자동차그룹은 이보다 4000억원 적은 약 5조1000억원을 써낸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현대그룹와 현대자동차그룹의 승부는 비가격 부분에서 현대자동차가 앞섰지만, 가격부분에서 현대그룹이 앞선 것이 이번 승리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현대그룹이 약점으로 꼽혔던 자금력 부분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높은 금액을 제시한 것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이처럼 현대그룹이 승리를 일군 요인이 가격에도 있지만, 그동안 현대차를 상대로 치열하게 전개됐던 심리전를 비롯해 적통성을 내세운 광고전도 한몫을 했다. 또한 현정은 회장의 일관된 목소리도 채권단의 마음을 흔들었다. 현정은 회장은 무려 7년동안 현대건설 의지를 공개적으로 내비쳐 현대건설을 향한 강력한 의지를 표현했다.

이에 본지는 현대건설을 둘러싸고 현대그룹이 현대차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던 비결과향후과제는 무엇이 남았는지 살펴봤다.

 

먼저 현대그룹이 이번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현정은 회장의 한결같은 확고한 인수의지에 있었다. 현 회장은 2003년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현대건설 대한 인수의지를 밝혀왔다.
현 회장은 취임 100일 기자 간담회에서 “장기적으로는 현대건설을 되찾아 와야 하지 않겠느냐”며 “고(故) 정몽헌 회장도 건설을 끝까지 지키려고 노력했으며 그러한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만큼 나 또한 건설에 대한 애착이 크다”고 말했다.

 

현정은 회장의 일관된 인수의지 표명

 

지난 2006년 8월 6일 고 정몽헌 회장 3주기 추모식 기자 간담회에서는 적통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현 회장은 이 자리에서 “현대건설은 현대그룹의 모태로 정몽헌 회장이 지키려고 애썼던 회사다”며 “지키려고 자신의 사재까지 털었다. 현대건설 인수를 위해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 2008년 3월 20일, 고 정주영 명예회장 7주기 선영참배시에서는 “현대건설을 반드시 인수하여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고 재천명하기도 했다.

이어 현 회장은 매년 신년사에서도 현대건설 인수의지를 전 임직원들에게 강조해왔다. 지난해 신년사에서는 “현대건설 인수 준비는 물론 북방사업 등 신규사업들이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 달라”고 말했다.

2010년 신년사에서는 한발 나아가 “현대건설 인수는 그룹의 미래를 위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확실한 신성장 동력으로 언젠가 매각이 시작될 때 차질 없이 인수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임직원들에게 강조했다.

특히 인수전 시작 후 지난 취임 7주년을 맞아 전임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미션완수’를 뜻하는 스페인어 ‘미시온 쿰플리다(Mision Cumplida)’를 인용하며 현대건설 인수에 대한 힘을 모으자고 당부했다.

이같은 노력 때문일까. 현 회장의 확고한 인수의지는 계열사의 임직원은 물론 채권단의 마음까지 움직인 요소로 작용했다. 비가격에서 부분에서 약했던 현대그룹의 약점을 한결같은 의지력으로 돌파한 것이다.

 

적통성과 약점 자극하는 광고전도 한몫

 

이번 인수전이 다른 인수합병(M&A)보다 치열하게 진행된 것은 현대그룹이 제작한 광고의 영향도 크다. 업계에서도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에 대해 신문과 방송 광고를 활용한 적절한 여론몰이가 한몫했다고 평가했다. 현대그룹은 이번 인수전 과정에서 TV·라디오 3건, 신문 지면 6건 등 총 9건의 광고를 제작했다.

현대그룹은 광고를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내보내며 현대건설의 적통성이 현대그룹에 있다는 점을 강하게 어필했다. 이런 점은 국민의 여론을 무시할 수 없는 채권단도 간접적으로 압박하는 히든카드로 활용했다.

이들 광고 문구는 현대차그룹의 약점을 교묘하게 자극했다. ‘세계 1위의 자동차 기업을 기대합니다’, ‘지난 10년간 현대건설을 인수할 여력이나 계획이 없다' 등의 말을 했던 사람은 누구입니까?’, ‘비상장 기업과 합병하지 않겠습니다, 시세차익을 노리지 않겠습니다, 경영권 승계의 도구로 쓰지 않겠습니다’ 등이 그것이다.

신문 광고가 날 선 비방전이었다면 TV·라디오 광고는 현대그룹의 적통성을 인정받기 위한 명분으로 활용했다. ‘아버지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아들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국민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공정한 평가를 기대합니다’ 등의 말로 적통성과 명분을 호소했다. 특히 현대그룹은 적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재산권 위임장을 공개하기도 했다.

반면 현대그룹의 공세에 대해 현대차그룹은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였다. 현대건설 인수에서 가장 중요한 자금력에서 자신감을 가진 상황에서 ‘진흙탕’같은 싸움에 빠질 이유가 없다는게 현대차그룹의 판단이었다. 그 대신 현대차그룹은 오는 2020년까지 현대건설에 10조원을 투자키로 해 현재 9만여명인 직·간접 고용인력을 41만명으로 늘리겠다는 청사진만을 제시했다.
하지만 결국 현대차그룹의 무대응 전략은 오히려 현대그룹의 명분만 높게 세워준 꼴이 되고 말았다.

 

현대그룹, 가격 약점 ‘가격’으로 승부하는 전략구사

 

현대그룹이 이번 인수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또 한가지 비결은 바로 절묘한 베팅에 있다.
현대그룹이 이번 승부에 던진 금액은 5조 5100억원. 현대차그룹이 제시한 금액은 5조 1000억원으로 약 4100억원에 차이가 난다. 일각에서는 시장에서 예상한 최대 4조원을 훌쩍 넘는 금액이기 때문에 너무 높은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이같은 금액을 현대그룹이 제시하지 못했으면 경영능력, 자금조달 능력 등 비가격 부분에서 우위를 차지했던 현대차그룹이 선정됐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사활을 건 이번 싸움에서 아주 적절한 금액을 베팅했다는 칭찬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 회장은 본입찰이 가까워지자 그룹 계열사에 총동원령을 내려 인수전에 필요한 ‘실탄’을 마련하는 지휘력도 보였다. 인수전이 시작될 무렵 현대그룹 전체 현금 보유액이 1조5000억 원밖에 없는 상황에서 현대상선 등의 계열사를 통해 유상증자와 기업어음, 회사채 발행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인수 자금 마련에 나섰다.

현대상선이 회사채 4500억원, 기업어음 5000억원, 현대부산신항 주식처분금 2000억원, 유상증자금 3968억원 등을 마련해 인수주체로 나서고, 현대엘리베이터가 회사채와 기업어음 발행 등으로 3000억원, 현대증권은 1700억원 정도의 현금성 자산을 지원하기로 했다.

또 전략적 투자자로 유치한 독일 M+W그룹이 막판 인수 의사를 철회하자 동양종금증권을 재무적 투자자로 끌어들여 7000억 원을 유치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적통성으로 치고 가격으로 후리고, 절묘한 수 발휘

 

특히 이번 승부는 막판까지 드라마틱했다. 애초 현대그룹은 가격은 물론 비가격적 부분까지 현대차그룹에 밀렸다. 하지만 광고전에서 적통성을 내세워 이를 만회했다. 또한 입찰에 들어가기까지 그룹 총동원령을 내려 그동안 약점으로 꼽혔던 실탄부족을 만회하는 배수의 진을 치는 전략까지 구사했다. 하지만 이걸로 부족했다. 풍부한 자금력을 가진 현대차그룹이 입찰가에서 앞설거라는 것을 예상한 현대그룹은 막판에 현대차보다 높은 가격을 쓰는 절묘한 수를 발휘했다. 한마디로 연막작전이었다. 이는 현대차그룹도 예상하지 못한 수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현대그룹이 적통성으로 앞을 치고 높은 가격으로 뒤통수를 후렸다”고 평가했다.

덕분에 시장에선 많아야 4조원 후반대를 예상했지만, 현대그룹은 그보다 1조원 가까이 더 부르며 9년 만에 현대건설을 되찾을 절호의 기회를 맞은 것이다. 현대그룹을 재무개선약정 대상으로 꼽으며 압박했던 채권단도 불과 1년 만에 입장을 바꿔 현대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꼽았다.

한편 이제 실사 등의 절차가 남았지만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현대그룹이 현대건설의 새 주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그룹으로서는 그룹의 모태인 건설을 되찾게 돼 지난 10여년 동안의 최대 숙원을 이루는 동시에 현대건설이 보유하고 있는 현대상선 지분을 확보함으로써 경영권 불안을 해소할 수 있게 됐다. 또 사업구조 다각화와 함께 향후 남북관계 개선과 대북사업 재개가 이뤄질 경우 북한의 사회간접자본(SOC) 개발 등에서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현재 경색국면인 대북사업이 다시 활기를 찾을 경우 현대건설을 중심으로 북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서 이익을 극대화시킬 수도 있다. 현대상선·현대로지엠은 건설자재·플랜트 설비 등의 국내외 수송을 담당하고, 현대증권은 현대건설과의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등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도 가능하다.

이와관련 현 회장은 “고 정주영, 정몽헌 두 선대 회장이 만들고 발전시킨 현대건설을 되찾은 만큼 현대그룹의 적통성을 세우고 옛 영광을 재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에따라 이번 인수전에서 보여준 현 회장의 역량를 통해 현대건설 인수를 제대로 마무리될 경우 그룹 규모도 재계 14위(지난해 말 기준 자산규모 22조 2000억원)로 올라서게 돼 현 회장의 재계 위상은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그룹, 남은 난제는 노조 달래기와 차입금 상환

 

그러나 현대그룹이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5조 원대의 막대한 인수자금 마련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시장에선 이번 인수에 대해 ‘승자의 저주’라는 루머까지 나돌고 있다.

현대그룹은 기존 현금성 자산 1조 원과 계열사의 보유자금, 유상증자,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한 2조 원을 모두 합쳐 3조 원 정도 자체 자금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동양종금증권에서 빌린 7천억 원, 프랑스 나티시스은행의 1조2천억 원 지원 등으로 5조 원대의 자금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외부차입금을 어떻게 해결할지가 난제로 꼽히고 있다.

만약 프랑스 나타시스은행 등 재무적 투자자(FI)에 대한 보상에 대한 무리한 조건을 제안했을 경우 곧장 ‘승자의 저주’로 연결될 수도 있다. 예전 대우건설을 인수했던 금호아시아나 그룹은 6조원이 넘는 인수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FI에 무리한 옵션을 제안했다가 결국 대우건설을 다시 내놓아야 했던 경우도 바로 이때문이었다.

M&A업계 관계자는 “현대그룹도 재무적 투자자에게 어떤 식으로든 수익을 보장해주기 위한 옵션계약을 체결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문제는 이 옵션의 내용이 무엇이냐 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현대그룹 측은 내년 1분기까지 인수대금을 모두 현금으로 지급하기로 약속함에 따라 자금조달 후폭풍은 앞으로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건설 노조를 설득하는 일도 현 회장으로서는 풀어야 할 또 하나의 숙제다. 현대건설 노조는 지난 11월 17일 주요 일간지를 통해 광고를 게재하고 “채권단은 현대건설 매각에 있어 비가격 요소 반영을 높이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지만 결국 우려하던 가격을 기준으로 결정하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며 “우리는 대우건설의 잘못된 M&A를 답습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천명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채권단의 가격이 최우선 매각 기준으로 그대로 반영되고 말았다”며 비난했다.

뿐만 아니라 노조는 현대그룹의 과도한 차입금이 현대건설의 재무구조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 또한 제기했다. 노조는 채권단이 매각 기준과 결정 방법 등 세부적인 사항을 공개하지 않을 경우, 현대그룹 실사를 저지하겠다는 방침이라 향후 문제들을 잘 처리하는 것이 현 회장에게 몫으로 남게 됐다.
이와관련 현대그룹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FI와의 계약 조건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 계열사 매각은 시장의 루머에 불과하다”며 “현대건설 노조의 반대 문제 역시 아직까지 이렇다 할 대응방침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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