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 직영사찰 '지정'...'찜찜한 봉합'


[시사포커스=권현정 기자] 8개월간 끌어온 봉은사 직영사찰 문제가 지난 9일 마무리됐다. 이날 조계종 총무원은 종무회의를 통해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 안건을 의결했고, 같은 날 명진 스님은 봉은사를 떠남으로써 사태가 마무리된 셈이다. 절묘한 시점에 한 쪽은 떠났고 한 쪽은 뜻을 관철시켰다. 갈등이 치유되지 않은 채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고 신도들을 중심으로 잔잔한 항의가 이어졌다. 최근 기독교 청년들을 중심으로 ‘봉은사 땅 밟기’와 이상훈 전 국방부장관의 발언 논란이 더해지면서 다양한 문제가 중첩됐던 봉은사. 명진 스님은 왜 그토록 강력하게 반발하며 직영 사찰 문제를 표면화 시켰던 걸까. 신도들은 왜 명진 스님을 지지하고 봉은사의 직영 철회를 요구하고 나선 걸까. 이 강남의 한 사찰을 둘러싼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다시 한 번 자세히 짚어봤다.


명진 스님은 4년 전인 지난 2006년 지관스님에 의해 봉은사 주지로 임명됐다. 명진 스님은 사찰의 재정 상태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천일기도 등을 통해 신도들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게 되면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사찰의 부흥을 주도했던 명진 스님은 그간의 행적과 정부에 대한 날선 비판 등으로 봉은사의 직영사찰 문제에까지 봉착, 정치권과의 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조계종 임시중앙종회의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 결의안이 통과되면서 상황은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최근 불거졌던 개신교 청년들의 ‘봉은사 땅 밟기’ 논란과 이상훈 전 국방부장관의 봉은사 좌파 본부 발언 등으로 봉은사는 다시 언론의 조명을 받게 됐고 한동안 잊혀졌던 직영 사찰 문제도 다시 불거졌다.


봉은사를 둘러싼 논란들


‘봉은사 땅 밟기’ 동영상은 개신교 신도들이 봉은사에 들어와 불상과 불교에 대해 폄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도들은 대구의 동화사, 미얀마의 사찰, 봉은사에 이르기까지 땅을 밟는 곳은 ‘하나님의 땅’이라는 논리로 종교 간의 갈등을 자극했다.

이에 지난 3일 명진 스님은 CBS(기독교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배타성, 독선적인 것, 오직 예수라는 이름의 120년 된 기독교가 지금 1천700년 된 불교를 핍박하는 형상이 돼 버렸다”고 개탄하면서 “기독교의 노골적인 공격성 같은 것들을 피부로 느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담형식으로 진행된 이날 방송에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권오성 목사가 함께 출연해 관련 논란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다. 명진 스님은 “내가 믿는 하나님이 정말 믿을만한 하나님인가에 대한 물음을 전제로 하지 않고는 기독교가 독단에서부터 빠져나올 수 없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이에 권 목사는 “흐름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퍼센티지로 보면 대다수라든지, 전반적인 흐름은 아니다”라고 한발 뒤로 물러섰다. 또 “기독교가 영적전쟁 혹은 개종, 싸움, 그래서 뭘 해야 된다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는 충분히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종교가 우리 사회에서 갈등의 치유자가 돼야 되는 것이고 오히려 갈등의 당사자가 되선 안 된다”고 강조하며 두 사람 간의 대담은 유연하게 마무리됐다.

지난달 29일에는 보수단체 회원 1000명이 모인 ‘G20 정상회의 성공기원 국민대회’에서 이상훈 전 국방부장관의 발언이 문제가 됐다. 이날 이 전 장관은 “현재 81개 좌파단체가 코엑스와 인접한 봉은사에 본부를 두고 북한이랑 연결돼 있는데, 이처럼 국가적 쾌거인 G20정상회의를 반대하는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 매국노다”라면서 “반대 세력의 저지 움직임을 우리가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봉은사를 직접 겨냥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명진 스님은 지난 2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는 분명히 명백한 거짓말이고 허위사실로서 강남, 오래된 고찰이고 또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그런 사찰에 대고 하는 그런 비방”이라며 “전통문화의 보고인 천년고찰 봉은사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아주 악의적인 비방”이라고 강한 어조로 이 전 장관을 비판했다.

이어 “6공 시절 율곡비리로 형사처벌을 받았던 사람이 한국 사회 보수단체 애국총연합회 회장도 하고 KBO총재도 하고 지도층에 들어가 있다는 건 우리 사회의 부패가 심하거나 지나치게 너그러운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지난 1일 봉은사 측은 이 전 장관의 발언에 대해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이 전 장관을 고소하고 서울중앙지법에다 비방행위금지 가처분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 뿐이 아니다. 주요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 관련한 안내문 지도에는 봉은사가 누락돼 신도들이 반발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강남구청 측은 봉은사의 항의가 이어지자 봉은사가 포함된 추가 유인물을 뒤늦게 배포해 비난을 샀다.

명진 스님의 발언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난 7일, 봉은사 법왕루에서 열린 법회에서 명진 스님은 “봉은사 직영 문제는 종단과 정치권력의 문제”라고 지적하며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득 의원이 개입돼 있다”고 직접 실명을 거론하기도 했다. 최근 쏟아져 나온 명진 스님의 방송 인터뷰 및 법회 발언들은 봉은사 문제를 대통령과 직접 연계해 사안의 관심을 고조시켰다.

이러한 정황으로 명진 스님은 작년 11월에 안상수 원내대표가 자승 총무원장을 만났을 때 자승 원장이 안 대표에게 “이명박 대통령과 20분 간 통화했다. 더 이상 얘기하지 말라”라고 말한 것을 들었다. 또 명진 스님은 “자승 원장이 문제를 어렵게 끌고 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승 총무원장의 퇴진을 함께 요구하기도 했다.

그에 앞서 지난 4일 명진 스님은 불교방송(BBS)과의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전과 14범”이라고 표현하면서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이어 “권력에 비판적인 주지를 바꾸기 위해 총무원장에게 압력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또 “부동산 투기에 위장 전입, 세금 포탈까지 파렴치한 범죄행위를 저지른 사람이 지도층에 있다”고 비판했다.


급히 봉합된 직영 사찰문제 왜?


9일 오전 종무회의에서는 봉은사의 직영 전환 안건이 의결됐고 명진 스님은 봉은사를 떠나면서 사태는 일단 매듭지어졌다. 명진 스님 후임으로는 진화 스님이 결정됐다. 지난 8일 화쟁위원회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명진 스님의 후임으로 봉은사 부주지인 '진화스님'이 사실상 확정된 상태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명진 스님은 지난 8일 저녁에 열린 ‘봉은사 직영 지정 철회촉구 특별법회’에서 “문제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며 봉은사 직영 전환 문제의 복합적인 요인을 언급했다. 먼저 명진 스님은 권력과 결탁한 종단을 비판했다. “종단 내 주요 요직으로써 영향력이 큰 종회의원직을 놓고 봉은사 주지직이 거래됐다”며 그간 물밑 작업이 이뤄져 왔음을 시사했다.

사찰의 한 관계자는 “종회의원의 과반수 이상이 찬성하면 종단 차원에서 주지 선임에 대한 결정을 임의적으로 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실제 종회의원의 선거 때만 되면 지방의 가난한 절도 억대에 달하는 선거 비용을 치르게 된다고 주장했다. 종단 내에서는 금권선거와 총무원장에게 지나치게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 정치집단화로 인한 종단 내부 갈등 등으로 비판이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명진 스님은 “MB 형제가 봉은사 문제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고 말한 뒤 “2006년 12월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고 당선을 축하하는 만찬장에서 이미 자승 현 총무원장과 이명박 대통령의 만남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일부 신도들 사이에서는 권력과의 결탁설에 대한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명진 스님은 “봉은사 문제를 함부로 하면 내 몸에 피를 묻히고 더러운 냄새를 풍기더라도 봉은사를 통해 올바른 불교의 모습을 구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가능한 극단적인 방법은 회피하고 싶다”고 밝힌 뒤 “신도 의사가 배제된 채 봉은사의 직영이 지정된다면 승적을 파는 한이 있어도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신도회를 향해서는 “신도회의 입장이 곤란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과격한 농성은 선택 말고 항상 예의를 잃지 말고 자부심과 당당함을 지키라”고 당부했다. 봉은사 신도회 측의 한 관계자는 “처음에는 봉은사 주지직을 두고 종회의원직이 거래됐고 이후 법등 스님의 중재로 직영 지정을 수용하되 주지는 현 부주지인 진화 스님으로 요구됐었다. 하지만 총무원이 명진 스님의 임기까지 시간을 끌며 진화 스님의 권한을 축소, 진화 스님의 주지 임명까지 무력화 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조계종 화쟁위원회는 지난 8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직영사찰 지정과 관련해 명진 스님의 주장은 세 차례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처음에는 직영사찰 지정 철회, 두 번째는 직영사찰 지정 수용과 자신의 연임, 세 번째는 후임 주지로 진화 스님의 임명 등이었다고 밝혔다. 이날 화쟁위는 명진 스님을 떠나 9일 총무원이 종무회의를 통해 봉은사의 직영사찰 지정과 운영 개선안 등의 안건을 처리할 예정이라 밝혔다.

명진 스님이 주장했던 자승 총무원장과 진화 스님의 만남과, 만남을 통해 이뤄진 진화 스님의 종회 의원 포기 요구에 대해 화쟁위는 “원장 스님이 진화 스님을 만난 것은 사실”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4년 임기 보장과 종회 의원 겸직 금지 등은 화쟁위 안이었다”고 해명했다.


신도회 중심으로 남아있는 갈등


봉은사 신도회는 8일 논란의 해결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서에서 신도들은 이상훈 전 국방부장관의 사과, 봉은사 직영사찰지정에 대한 철회, 종교의 자유 보장 등을 요구했다. 신도들은 “봉은사는 신도들에 의해 유지되는 도심의 포교사찰”이라며“소통 없는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은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봉은사에 좌파단체가 본부를 두고 북한과 연계해 있다”고 주장한 이상훈 전 국방부 장관을 향해 “무책임하고 근거 없는 망언”이라 규정짓고 봉은사와 봉은사 신도들을 모욕한데 대해 공개 사과와 참회를 촉구했다.

또 일부 개신교 청년들의 ‘땅밟기 논란’에 대해서는 “다른 종교는 모두 이단이요 무너져야 할 대상이라고 부추겨온 개신교 일각의 행위는 위험 수위를 넘어서 우리사회가 더 이상 아름다운 다종교사회로 유지되는 것을 심각하게 방해하고 있다”고 비판, “일부 종교인의 불교 폄훼 행동, 종교 평화와 종교의 자유를 해치는 어떠한 행동에도 단호히 대처해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얼마 남지 않은 스님의 임기 연장과 직영 철회 등을 요구하며 지난 8일 총무원을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송진 신도회 회장은 “명진 스님은 제대로 불법을 이뤄왔다. 참 스승을 지키기 위해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8일 법회에 참석한 한 신도는 “명진 스님처럼 열심히 하는 스님은 처음 봤다”며 “스님의 수행하는 모습에 신도가 몰려들고 봉은사가 참다운 기도도량으로 만들어져 스님의 연임을 바래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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