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퇴고민 끝내 丁, 전당대회 악몽 헤어나나?

민주당 정세균 최고위원의 행보가 눈길을 끈다. 그는 지난 10월 29일 전북 전주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주변 지지자들이 대선 도전을 권유하고 있다”며 “도전에 앞서 대중성을 얻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게을리 않고 국민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차기 총선과 관련해선 “약속대로 수도권에 출마하겠다”며 지역구(무주·진안·장수·임실) 불출마 의지를 거듭 확인했다. 정 최고위원은 지난 7일 서울 관악산에서 수도권의 지지자들과 함께 대규모 산행에 나설 계획이다. 그동안 조용한 행보를 이어왔던 그가 이같이 강력한 의지를 담은 발언과 지지자들과 대규모 산행은 ‘대권 신호탄’ 또는 ‘결단’의 의미로 해석되는 측면이 커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민주당 10.3 전당대회에서 연임에 실패한 뒤 조용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정세균 최고위원이 내달 7일 서울 관악산에서 수도권의 지지자들과 함께 대규모 산행에 나설 계획을 세우는 등 정치활동 재개에 시동을 걸었다.

정세균, 대규모 산행 계획 등 ‘대권도전’ 시사

이날 산행에는 전당대회 선거 캠프의 좌장이었던 김진표 의원을 비롯해 윤호중 김교흥 김영주 전 의원 등 수도권 지역위원장과 지지자 400여명이 동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12월에는 광주를 비롯한 호남 지역 지지자들과의 산행을 계획하고 있다. 이번 산행은 내년부터 야권 내에서 차기 대선을 앞두고 잠재적 대권주자간 물밑경쟁이 본격화될 것에 대비한 몸풀기 차원으로 분석된다. 전대를 통해 결집시킨 조직을 방치했다가는 자칫 흐트러질 수도 있다는 우려 또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움직임을 놓고 당내에서는 정 최고위원이 대표직을 떠난 후 목소리가 더 선명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당 대표시절 주요 현안에서 딱 부러지는 입장을 내놓지 않아 비주류측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던 그가 최고위원이 되면서부터 절제됐으면서도 단호한 입장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당내에서 고(故)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에 대한 조문 논란이 일었을 때에도 “훈장추서와 현충원 안장이 적절한가”라고 정부를 질타했고, 한미FTA(자유무역협정)에 대해서는 “MB식 재협상은 안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주로 여권을 겨냥한 이 같은 발언이 당 정체성을 놓고 선명성 공세로 손학규 대표를 견제하는 정동영 최고위원과는 차별화된다는 분석도 있다.
이에 앞서 그는 지난 10월 29일 전북에서 대권 도전을 간접 시사했다. 전북지역 언론과 기자간담회를 갖고 “먼저 국민적 신뢰를 받고 후 욕심을 내겠다”면서 대권 도전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정 최고위원은 “국회 4선 의원을 지냈고 산자부 장관을 비롯해 당 의장 등 정책과 정치를 두루 맡아 훈련과 검증이 됐다”고 자신의 이력을 부각시키면서 다른 대권 주자들과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이어 “대권 도전에 앞서 대중성을 얻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게을리 않고 국민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당원 동지를 비롯해 주변 지지자들이 대권 도전을 권유하고 있다”면서 “자신의 정치적 진로문제를 심사숙고하기 시작했다”고 말해 대권도전에 대한 의지가 확고함을 드러냈다.
그는 정권교체에 대해서도 “지난번 지방선거에서도 인천의 경우처럼 연대한 지역은 성공했고 그렇지 않은 지역은 실패했다”며 “연대를 성공시킨 노하우을 살려 정권교체 위해 힘을 쏟겠다”고 자신의 정치적 철학을 밝혔다.

한 동안 진퇴 문제 고민

그동안 정 최고위원은 민주당 대표 연임에 실패한 뒤 진퇴 문제를 고민해왔다. 지난 10월 3일 전당대회 직후 당 대표직에 도전했던 정 전 대표는 전당대회에서 손 대표와 정동영 최고위원에 이어 ‘빅3’ 중 가장 낮은 득표를 한 뒤 신임 지도부에 힘을 실어주는 차원에서 최고위원직 사퇴 여부를 놓고 경선 캠프 핵심 관계자들과 잇따라 만나는 등 고심을 거듭해 왔던 것.
그는 한 측근 인사를 통해 “전직 대표로서 손 대표 등 신임 지도부가 힘을 받으며 안정적으로 당을 이끄는 길에 있어 내 역할이 어떤 것인지,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정신으로 고민하고 있다”는 심경을 밝혔다.
그는 이 측근 인사에게 “처음부터 (최고위원이 아니라) 당 대표직에 출마한 것이었고, 타의에 의해 결정된 선출방식(당 대표-최고위원 통합선출)에 따라 최고위원에 당선된 현실에 고민이 깊다”며 이같이 토로했다고 한다.
이 인사는 기자들과 만나 “당분간 고민을 좀 하면서 그동안 도움을 준 원로.중진들과 상의해 거취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다수의 인사가 “정 전 대표를 지지한 당원.대의원을 뜻을 무시하면 안된다”, “경선 불복종으로 보일 수 있다”며 최고위 합류를 권했다고 정 전 대표측 인사들이 전했다.
복귀 결정에는 현 지도부에 구주류의 입장을 반영할 인사가 없다는 현실적인 측면이 고려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손 대표와 정 전 대표를 제외한, 4명의 선출직 최고위원 중 정동영, 천정배, 박주선 최고위원은 비주류 연합체인 ‘쇄신연대’ 소속이며, 중립 성향인 이인영 최고위원은 전대에서 손 대표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 관계자는 “정 전 대표의 결정에 따라 손 대표, 정동영 최고위원과 화합하고 경쟁하는 관계를 형성할 것”이라면서 “당 지도부를 조기에 정상 가동할 수 있게 된 것은 당을 위해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카리스마 없지만 ‘부드러운 리더십’

정 최고위원은 ‘경제통’으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그는 전북 신흥고,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페퍼다인대 경영학과에서 석사, 경희대 경영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각각 취득했다.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1978년부터 1995년까지 쌍용그룹에서 근무하다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에 영입됐다.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에 영입된 그는 정치권 입문 후에는 국회 재정경제위원을 거쳐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국회 예결특위위원장을 거치며 경제분야에서 탁월한 정책역량을 과시했다.
그런 그가 리더형 정치인으로 한단계 도약한 결정적 계기는 2005년 1월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맡으면서다.
당 내부적으로는 화합의 카리스마로 갈등과 분열을 잠재우면서도 대(對) 한나라당 전선에서는 소신과 뚝심을 지키고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위기 때마다 당을 구출해내는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2005년 10.26 재선거 패배이후 3개월간 임시 당의장과 원내대표를 겸임하며 대표적 개혁입법인 사립학교법 개정안 통과를 진두지휘한 것을 계기로 ‘구원투수’, ‘화합형 투사’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또 국가보안법 등 이른바 ‘4대입법’ 처리 실패로 흐트러진 당의 전열을 추스르면서 야당의 반대에 부딪혔던 주요 법안을 통과시키는 수완을 발휘했다.
특히 같은 해 3월에는 한나라당의 단상점거를 뚫고 행정복합도시특별법을 통과시킨 데 이어 근현대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과거사법 처리를 일사불란하게 지휘했다. 이때 치밀한 전략 수립과 용의주도한 실행력으로 ‘컴도저’라는 호칭을 얻었다.
2006년 1월 산업자원부 장관에 임명된 이후 ‘1.2 개각 파문’에 휩쓸려 잠시 당내 위상이 흔들리기는 했지만 이내 제자리를 잡았고 11개월의 산자부 장관 재임 기간에는 수출 3천억달러 시대를 열어 ‘3천억달러의 사나이’란 별명도 얻었다.
그 뒤 그의 정치 인생은 말 그대로 탄탄대로였다. 그는 당 의장에 두 번이나 합의 추대됐다. 원내사령탑인 원내대표도 무투표로 당선했다. 심지어 네 차례의 국회의원 공천에서 그의 경합자는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정 대표의 지역구인 무주·진안·장수 가운데 2곳의 기초자치단제장 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그에게 도전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자신을 “운이 좋은 정치인”이라고 말한다.
정 대표가 특유의 ‘통합의 리더십’을 과시하며 구원투수로 재등판한 것은 당이 분열로 치닫던 2007년 2월이다. 복잡한 당내 계파의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당 의장에 합의 추대된 그는 같은 해 8월까지 열린우리당을 마지막까지 지켜내며 통합의 초석을 놓았다.
그러나 경력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가 낮은 데다 ‘관리형’ 이미지가 여전히 강해 그의 정치적 ‘업그레이드’ 가능성은 아직까지 공란으로 남아 있다는 시각도 있다. 그는 지난 10월 3일 특유의 온화함으로 지난 2년여 간 민주당을 이끌다 자진사퇴 2개월여 만에 지도부에 재입성 했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