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전성기’를 위한 ‘수순밟기’...대권이냐 당권이냐?

[시사포커스=이행종 기자]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의 최근 강경행보가 눈에 띈다. 지난 10월 3일 민주당 새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에서 손학규 후보가 대표직에 선출 됐다 2위는 정동영 최고위원이다. 이에 앞서 대다수 정치 전문가는 민주당 전당대회(이하 전대)에서 표출될 당권의 향방이 곧 2년 후인 2012년 대선 구도로 직결될 것으로 봤다. 최근 정 최고위원이 손 대표를 향한 견제구를 던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당안밖의 시선이다. 그렇다면 그의 노림수는 무엇일까?

정동영 최고위원은 최근 새로운 활로와 진로를 놓고 고민 중이다. 손 대표는 연일 주가가 고공행진하면서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에 맞설 야권의 유력 대선후보로 부상했다. 그의 정치인생도 오랜만에 봄을 맞았다.
반면 정동영 최고위원은 지도부에 2위로 입성하면서 선전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요즘 표정이 그리 밝지 않다. 활로가 고민이다. 승승장구 중인 손 대표를 견제할 명분 찾기 뿐아니라 연말까지 자신의 역할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정동영, 당내 존재감 부각 고민

물론 손 대표에게도 큰 과제는 있다. 당에 뿌리를 내리고 리더십을 다지는 문제가 여전히 큰 과제로 남아있다. 그가 4대강 예산전쟁을 선포한 만큼 성과물을 얻어낼지를 비롯해 당직 인선 과정의 잡음과 혼선을 잘 마무리 짓느냐가 연말까지 넘어야 할 산이다. 한 핵심 당직자는 20일 “당장 비주류가 반격을 하려고 전열을 정비 중인 만큼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동영 최고위원이 반대만 하는 비주류로 비쳐 진다면 그만큼 운신이 줄어들게 된다. 때문에 당내 한미FTA특위 위원장 같은 공식직함이라도 맡아야 정치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한 측근은 “얼마나 균형있게 손 대표를 견제하고 존재감을 부각시킬지가 고민”이라고 말했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최근 정 최고위원의 행보가 바빠지기 시작했다. 돌파구를 찾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손 대표에게 견제구를 던진 것이다.
그는 지난 10월 6일 광주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손 대표로부터 마이크를 넘겨받은 직후 “광주 정신은 진보”라고 운을 뗀 뒤 “민주당 3기 지도부는 집단지도체제인데 대표 개인의 생각이 정체성이 아니라 당헌과 강령이 정체성”이라고 말했다. 손 대표를 겨냥해 작심한 발언으로 보인다.
또 최근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한미, 한-EU FTA(자유무역협정)에 대해 손 대표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에 대해 상대적으로 신중한 입장인 반면 정 최고위원은 재협상을 추진해야 한다며 확고한 입장을 보이며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였다.
손 대표는 지난 10월 8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한-EU FTA추진 자체가 G20회의를 겨냥해서 무리하게 추진했고, 관세 환급조치에 대한 양보가 이뤄졌다”며 “이에 대한 깊이 있는 검토를 통해 국익을 추구하고 피해산업을 구제하는 일을 당의 과제로 삼을 것”이고 밝혔다. 이를 위해 전날 박지원 원내대표가 밝힌 대로 당내에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덧붙였다.
한미 FTA에 대해서는 “미국에서 자동차, 쇠고기 문제 등에 대해 사실상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 민주당 의원들도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을 뿐 뚜렷한 입장을 말하지 않았다.
한미 FTA 재협상을 강조해온 정동영 최고위원은 “비밀협상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초안에 독소조항이 들어 있는 것이 명백한데 자동차 쇠고기 섬유 등에서 일방적으로 미국 요구를 들어준다면 국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밝혔다.
그러면서 손 대표를 겨냥해서 “대표가 특위를 구성한다고 했는데 야4당과 시민단체는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고 민주당은 쳐다 보기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도혁신기구 즉각 구성”

손 대표를 향한 견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정 최고위원은 지난 10월 20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 해외 국정감사를 마치고 1주일 만에 최고위원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새로 만들어진 당헌·강령에 대한 후속작업이 진척되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당헌 1조의 ‘당원 주권’ 원칙에 따라 당 개혁을 추진할 제도혁신기구의 즉각 구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당대회 기간 자신과 천정배 최고위원 등이 제기한 ‘상향식 공천’과 ‘전당원투표제’를 공식 논의 테이블에 올리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셈이다.
정 최고위원은 이어 한-미FTA 특위의 결론 도출을 서두를 것과 전면 재협상론자인 최재천·임종인 전 의원 등을 특위에 참여시킬 것 등을 요구했다.
정 최고위원의 이날 발언을 두고 당내에선 자신이 선점한 ‘진보 의제’를 앞세워 손학규 대표에 대한 견제를 시도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정 최고위원과 공조해온 쇄신연대의 한 관계자는 “손 대표의 ‘특위 카드’에 막혀 교착상태에 빠진 에프티에이 재협상론에 돌파구를 확보하면서, 전당원투표제 등 제도개혁 의제를 전면화해 노선 경쟁에 불을 붙이겠다는 의지가 엿 보인다”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정 최고위원의 행보에 대한 비판과 우려도 나온다. 한 초선 의원은 “탈당했다 복당하면서 백의종군하겠다고 한 지 얼마나 됐느냐”며 “자중자애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당 일각에서는 정 최고위원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2007년 대선 때 캐치프레이즈로 ‘가족 행복시대'를 내걸고 사실상 진보를 탈색한 실용 노선을 천명했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정 최고위원측은 “한나라당과의 차별화를 통해 당의 존재 이유를 보이라는 당원 요구를 실천하는 것을 손 대표 견제용으로 보는 것이야 말로 정략적인 태도”라고 말했다.
이렇듯 정 최고위원이 손 대표를 향해 대립각을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정 최고위원은 지난 전대에서 나름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손 대표에 이어 전대 2위 성적을 기록했고, 자신을 포함해 천정배 박주선 의원 등이 주도하는 쇄신연대 인사들 3명이 지도부에 입성하는데 성공했다. 이 때문에 정 최고위원은 추후 쇄신연대를 중심으로 수적 우위를 발판삼아 손 대표를 향해 ‘밀어내기 식’ 공세를 퍼부을 가능성이 높다.
대권을 분리하도록 한 민주당의 당헌·당규에 따르면 대선주자는 대선 1년 전 대표직이나 최고위원 직을 사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차기 총선 공천권 향한 노림수?

만약 손 대표가 대권에 뜻이 있다면 임기는 앞으로 14개월여 밖에 남지 않은 것이 된다. 손 대표는 대선에 출마하려면 2011년 12월 까지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이듬해 4월 치러지는 19대 총선에 앞서 당 대표 자리가 공석이 되는 것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여권 박근혜, 야권 손학규가 각각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현재로서는 박근혜-손학규로 점쳐지는 대선구도가 눈길을 끌고 있는 형국이다. 정 최고위원으로서는 대권만 포기한다면 ‘2인자’인 자신이 당권을 거머쥘 수 있는 시나리오가 성립된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정 최고위원이 이번 전대를 기점으로 대선에 나설 뜻을 접었을 수도 있다”면서 “아무래도 불리한 대권보다는 유리한 당권을 노리지 않겠느냐”고 했다. 실제 정 최고위원이 대권 도전이라는 무리수를 피하고 보다 확실한 당권을 거머쥘 의중을 가지고 있다면 이번 전대 패배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차기 총선 공천권을 손에 쥔다면 ‘2인자’ 정 최고위원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기반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1953년 7월27일 전북 순창에서 태어났다. 전주고를 거쳐 ‘10월 유신’이 선포된 1972년 서울대 국사학과에 입학했다. 서울대 재학중 유신반대 학생시위에 참가해 구치소에 구금됐다.
다음해에는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됐다. 또다시 3개월간의 구치소 생활. 이번에는 출감하자마자 강제 징집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대학 생활은 시위·투옥·징집의 연속 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하고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 웨일즈대 저널리즘학과를 졸업했다. 그 후 그는 1978년부터 1994년까지 MBC 정치부 기자, ‘뉴스데스크’ 주말앵커, ‘통일전망대’ 앵커로 활약하며 대중적인 지지 기반을 확보했다.
1996년 총선 때 전북 전주덕진에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출마해 당선, 15대 국회에 입성했다.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총재 특보·청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에 합류, 대변인·최고위원·상임고문을 맡다 2003년 탈당,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했다.
그는 열린우리당 초대 의장과 참여정부 때 통일부 장관을 지내는 등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원 속에서 ‘참여정부 황태자’로 불리며 승승장구했으나 2006년 5.31 지방선거 참패 후 구 민주당과의 통합 등 여권 진로를 둘러싼 이견으로 노 전 대통령과 갈라섰다.
그리고 17대 대선 직전 열린우리당을 탈당,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로 나섰으나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했다. 18대 총선 때 서울 동작을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뒤 미국으로 떠났다가 지난해 4·29재보선 때 탈당, 전북 전주덕진에 무소속 출마해 당선됐다.
지난 2월 논란 끝에 민주당에 복당한 이후 비주류가 주축이 된 민주희망쇄신연대와 함께 정세균 전 대표를 겨냥한 ‘반정(反丁)연합’을 구성했다.
지난 10월 3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 최고위원은 탈당 이력을 둘러싼 논란을 딛고 민주당 지도부에 재입성, 다시 한 번 저력을 확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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