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발 개헌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다. 얼마전 개헌의 전도사격인 이재오 특임장관이 분권형 개헌론을 주창한 뒤 얼마되지 않아 한 언론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개헌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낸 언급을 했다.
이 대통령과 친이 주류측의 ‘개헌 띄우기’는 일단 성공했지만 정치권의 부정적 반응에 청와대가 ‘개헌을 추진할 동력이 없다’며 한발 물러서면서 개헌론을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 했다.


이러한 청와대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가 개헌론을 또다시 불을 지피고 나섰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이후 개헌을 논의하겠다는 다소 구체적인 입장도 내놨다. 또한 G20정상회의가 끝나는 대로 의원총회를 통해 당내 입장 정리를 위한 절차를 밟아가겠다고도 했다.


국회의 공식 기구를 통해 공론화해 보자는 것이다. 그 의도는 비록 순수할지 몰라도 막상 추진하려면 앞뒤를 잘 살펴봐야 한다. 자칫 논의가 소모적인 양상으로 전개된다면 안 하느니 못하다. 개헌론은 4대강특위와 개헌특위 등의 ‘빅딜’ 논란으로 출발부터 헝클어졌다. 김 원내대표가 정치적 흥정을 배제하면서 다시 가다듬으려고 시도하지만 쉽지 않은 사안이다. 개헌 논의는 명분도, 공감대도 확보돼야 가능하다.


개헌 논의가 본격화되면 모든 정치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공산이 크다. 다음달 G20회의 이후로 공론화 시기를 늦춘 것은 엄청난 파급력 때문일 것이다. 그 이후에도 정치적 파급력이 변하지 않을 것인 만큼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여야 내부는 개헌론에는 동의하지만 연내 개헌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특히 여권내 유력 대선주자인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진영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친이 주류측이 개헌을 이슈로 대선 구도를 흔들고, 그 중심에 서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친박계 서병수 최고위원이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수석부대표의 빅딜 제안을 비판하며 “헌법을 고치는 것은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판단이 아니라 국민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다. 김문수 경기지사, 원희룡 사무총장 등도 개헌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실현 가능성에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개헌은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다. 국회 의석 3분의2 이상을 확보해야 강행처리라도 시도해볼 수 있다. 한나라당 친이-친박 간 이견이 없고, 여야 합의가 전제돼야 가능하다. 여권은 대통령 권력 분산에 개헌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헌법과 민주주의 정신만 살린다면 지금도 가능하다며 반대하고 있다. 제1야당의 대표가 명분에 동의하지 않으면 개헌론은 추진 동력을 얻기 어렵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선호한다. 여권 내부의 공감대조차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막상 논의가 본격화되면 소모적인 갑론을박으로 이어질 소지가 다분하다.


공론화 전에 서로 머리를 맞대는 절차가 필요하다. 아니면 말고식으로 일단 추진부터 해보자는 건 위험한 발상이다.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조율도 하고, 여야 원내대표 회담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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