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전국 정치 지형의 축소판... 그 유리한 고지를 누가 선점할 것인가

당내 지지기반이 약한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극적으로 경선에서 승리해 당 대표직에 오르면서 차기 대권 구도에 예상치 못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최근 손 대표는 여야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2위에 오르면서 1위 자리를 굳히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를 추격하며 진보진영 대선후보 1위를 기록했다.

손 대표가 지난 2007년 대권 도전에 뜻을 품고 한나라당 경선에 뛰어든 이래 민주당 전당대회 이전까지 대선후보로서 그의 지지율은 두 자릿수 미만으로 저조했다.

하지만 최근 손 대표의 지지율이 급격한 상승 곡선을 그리면서 대선판도 전체가 크게 흔들리고 있는 모양새다.

한동안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강원도에서 농사를 지으며 칩거했던 손 대표가 정계 복귀 이후 대선주자로 급격히 떠오르면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그의 지지율 상승폭도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당 내에서도 예상치 못한 급격한 것이었다. 한나라당 소속의 한 의원은 “이 추세로 전체 지지율이 20%가 넘는다면 한나라당내 대선 판도도 완전히 바뀌게 될 것”이라며 손 대표의 상승폭에 긴장감을 드러냈다.

현재 한나라당내 대권구도는 박근혜 전 대표 외에 김문수, 이재오, 홍준표, 오세훈 등이 거론되고 있다. 유력한 대권후보였던 김태호 전 경남지사가 낙마한데다가 정운찬 국무총리도 세종시로 인해 발목이 잡히면서 한나라당내 대권후보지형은 유력 후보인 박 전 대표를 포함, 이들 네 사람으로 잠정 압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비슷한 이력으로 손 대표와 비교되고 있는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부진으로 표심의 수도권 아성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도 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한나라당내 차기 대선 후보로 비중 있게 거론되고 있다고 전해진다.

손 대표의 등장으로 차기 대선에서는 어느 때보다도 수도권의 표심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도 선점이 곧 대선 승리로 이어진다”라고 하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전.현직 경기도지사간의 대권 경쟁 구도에서 누가‘경기대통령’으로 차기 대권을 누릴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손학규 vs 김문수... 전.현직 경기도 지사 간의 미묘한 신경전

손 대표와 김 지사는 차기 대선의 최대 승부수, 수도권 민심의 한 가운데 서있다. 경기도지사라는 배경을 업고 있는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둘은 서울대학교 동문으로 정치와 경영을 각각 전공했다. 두 사람 다 대학 시절 민주화 운동과 노동 운동에 참여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의해 정치에 입문했다.

지역과 지지층, 정치적 성장 배경이 비슷해, 두 사람의 이미지는 중첩되기도 한다. 하지만 김 지사의 경우, 거침없는 발언으로 여당 내에서 개혁적 이미지를 풍기고 말을 아끼고 신중한 편인 손 대표는 친화력을 무기로 전면에 나서며 보수․중도적 이미지가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당을 떠나 보수, 중도, 진보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성향의 정치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손 대표가 대표직 취임 이후 지지율의 상승세를 이어감에 따라 김 지사 측은 손 대표의 예상 외 선전에 긴장하는 눈치다. 경기도 내에서 손 대표와 김 지사의 지지율은 서로 뺏고 뺏기는 상황으로 김 지사 측에서는 돌파구 마련에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손 대표가 여권 내 대선주자 1위인 박 전 대표와 지지율 경쟁을 하고 있는 반면 김 지사는 여당 내에서 박 전 대표와 순위 다툼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김 지사의 대권 도전은 손 대표에 비해 다소 불리해 보이는 측면이 있다.

지난 13일 있었던 경기도 국정감사는 ‘손학규-김문수’간 대권 경쟁으로 비춰졌을 정도다. 당시 민주당 김재윤 의원이 “손 대표가 지사일 때와 비교하면 김 지사 취임 이후 골프장이 너무 늘었다”고 지적하자 김 지사는 “손 대표 시절 인허가를 했고 나는 도장만 찍었다”고 답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경기도에 요청해 제출받은 자료를 제시하며 “손 대표 재임 시절 인허가 했던 골프장은 9개이고, 김 지사가 허가한 것은 38개로 나타났다”며 김 지사를 비난하자 김 지사는 “골프장은 입안에서부터 인허가까지 5년 이상이 걸린다”고 말하면서 “내가 승인한 38개 중 25개는 손 대표가 지사일 때 입안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를 두고 박지원 원내대표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 지사가 38개를 인허가 해놓고 손 지사 때 입안된 것이 25개라고 해서 도장만 찍었다는 것은 궁색한 변명”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당의 맹공에 김 지사는 지난 14일 행안위 국감자리에서 손 대표의 지사 시절 대표적 업적으로 손꼽히는 파주 영어마을에 대해 “학생들의 영어는 도가 아니라 교육청에서 해야 한다”며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며 손 지사를 평가 절하했다.

이에 조대현 부대변인은 “영어 마을은 해외 유학, 조기 유학을 못 가는 일반 국민들,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한, 교육양극화 해소 목적의 교육복지사업”이라고 설명하며 “김 지사는 영어 학원으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이 같은 신경전은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골프장 공방’이지만 차기 대선 구도를 염두에 둔 힘겨루기로 보는 견해가 많다.

차기 대권의 결정적 요인은... 수도권 표심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손 대표는 서울, 인천.경기, 대구.경북, 호남 지역에서 지지율이 높게 나타났다. 2년여의 칩거 끝에 경선 1위를 차지하며 화려하게 당에 복귀한 손 대표는 수도권 지역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지난 11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정세균, 정동영 의원이 대표에 선출됐다면 민주당은 여전히 호남 정당으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손 대표가 경선에 승리함으로써 민주당의 수도권 지지세가 상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홍 최고위원은 차기 대권의 결정적 요인으로 ‘수도권 표심’을 들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수도권의 압도적 지지로 대선에서 압승을 했고 다음 대선 역시 수도권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여당 내 한 친이계 의원은 “다음 대선은 젊은이와 수도권 표의 싸움이다”라고 하면서 “대선 주자들은 수도권 표심 얻기에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정치인사는 “지금 젊은 세대들이 느끼는 좌절감은 크다. 6.2 지방선거에서 볼 수 있듯 현 정부에 대한 불신과 민심이반은 젊은 사람들을 대거 투표장으로 이끌 수 있다”라고 내다보며 “차기 대선 때 이와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진다면 한나라당에겐 크게 불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하지만 수도권을 중심으로 하는 보수 세력의 결집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MB의 비판을 자제하면서 보수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 김 지사의 행보는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경기도의 중요성... 김문수 vs 박근혜...
김문수에게 박근혜는 넘어야 할 산

경기도 인구는 1172만여 명, 전국의 24%에 해당된다. 출신지역도 골고루 분포돼 있고 지리적으로 도시, 농촌, 어촌, 중국과 북한까지 인접한 위치에 있어 전국 정치지형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경기도에서 행정경험이 있는 정치인들이 꾸준히 대권에 도전하거나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이유도 경기도가 갖는 이러한 이점이 작용한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손 대표의 등장으로 다음 대선에서 수도권의 표심 잡기가 주요 관건으로 떠오르면서 인구 분포가 가장 많은 경기도 지역의 중요도가 커지고 있다.

이미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는 박 전 대표와 경기 지역에서 지지율이 높은 김문수 지사 간의 대권 경쟁도 조기에 가시화될 전망이다. 현재 김 지사는 보수 세력 끌어안기에 힘을 쏟고 있고 박 전 대표는 친이 세력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다. 박 전 대표의 집권에 부담을 안고 있는 친이계 쪽에서는 김 지사를 박근혜의 대항마로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친이계 의원은 “수도권 출신의 손 대표가 대선 후보로 나올 경우 박 전 대표보다 김 지사를 내세우는 게 더 유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여론 조사에서 호조세를 보이고 있는 김 지사는 손 대표의 등장으로 잠시 주춤하는 형국이다. 하지만 여당 내에서 김 지사는 기반 지역이 수도권인 점과 여성 대통령이 아직 어려운 한국적 정서를 감안해 남성이라는 점이 유리하게 평가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은 지난달 당헌 개정안을 의결해 광역단체장들의 당내 주요회의 참석을 가능케 했다. 이는 김 지사에게 당무 참여의 길이 열려 입지 굳히기에 좋은 발판이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하지만 지지 세력이 약한 김 지사의 경우, 당내 경선에서 박 전 대표을 넘어서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또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 기반이 약해 폭 넓은 기반 구축이 필요한 것도 과제로 남아 있다.

박 전 대표의 경우 지난 8월 이명박 대통령과의 회동 이후 보폭을 넓혀 친이계와의 접촉을 늘리는 등 외연 확장이 한창이다. 홈페이지와 트위터 등으로 국민과의 접촉을 늘리고 있고 친이계 소장파, 여성 의원들과 잇따라 회동을 갖는 등 대선 행보에 시동을 거는 모습이다.

이에 친박 의원들은 지난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대선 캠프를 늦게 꾸러 패한 경험을 들어 내년부터 본격적인 대선 행보에 나서야하지 않겠냐며 박 전 대표를 설득, 동의를 얻어낸 것으로 전해졌다. 한 친박계 의원은 “박 전 대표가 올 가을에는 국회활동에 주력하고 겨울부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내공을 쌓을 계획이다”라고 전하며 “내년 봄부터는 본격적인 대권행보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현재 차기 대선 주자로 박근혜 전 대표와 손학규 민주당 대표로 시선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손 대표의 지지율이 급등하더라도 박 전 대표의 위상에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손 대표가 대선주자 선호도 3위를 달리고 있는 유시민 전 장관과 단일화 할 경우, 2012년 대선은 치열한 양상을 띨 것으로 내다봤다.

2012년 대선의 핵심 코드는 수도권 민심과 경제

내년 상반기까지 손 대표의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오른다면 민주당의 정권 탈환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 야당 의원은 “영남과 호남은 이미 표가 갈려 있어 수도권 지역의 표심을 누가 잡느냐 그게 관건인데 현재 김두관 경남지사가 경남 지역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영남의 표도 갈릴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어 “만약 부산․경남 지역에서 손 대표보다 지지율이 높은 유시민 전 장관과 김두관 경남지사가 손 대표와 후보 단일화라도 이루게 된다면 민주당의 정권 탈환은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는 유 전 장관과 김두관 지사 보다 지지율이 높고 지역감정에서 보다 자유로운 손 대표가 대권 주자로 나설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측된다.

여당 쪽에서는 손 대표의 지지율이 상승할 경우 김문수, 홍준표, 이재오, 오세훈 등 차기 대선주자들의 연합 카드를 제기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표만으로는 위기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견해와 여당 내 박 전 대표의 집권에 부정적인 시각이 반영돼 친이계를 중심으로 반(反) 박근혜 연합이 이뤄질 개연성도 있다는 것이다.

여권 내 박 전 대표와 경쟁이 가능한 후보로는 현재까지 지지율이 가장 높은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친이계 의원은 “다음 대선은 젊은이와 수도권 표심 싸움이다”라며 “영남은 어차피 한나라당의 텃밭으로 굳이 박 전 대표가 아니더라도 해볼 만하다”라고 말했다.

현 상황에선 친 이계 후보군 중에서 차기 주자로 김 지사를 지목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아직 김 지사의 지지율이 박 전 대표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지만 일부 친박계 의원들 사이에서는 김 지사가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걸로 알려졌다.

한 정치 원로는 2012년 대선의 핵심 코드로 ‘경제’를 꼽았다. 현재 심각한 경제위기에 봉착한 세계 경제와 국내 경기 침체가 한나라당의 정권 재창출에 ‘최대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 살리기’를 내세워 압승을 이뤄낸 것처럼 다음 대선 또한 경제에 초점을 맞춘 후보에게 유리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한 여론 조사에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경제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 만족한다는 의견은 20%가 조금 넘었다. 반면 만족하지 못한다는 대답은 40%가 넘는 걸로 나타났다. 대권 후보 1위를 달리고 있는 박 전 대표를 지지하면서도 차기 대선에서는 야권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응답이 30%가 넘게 나타났다. 이는 보수층조차 등을 돌릴 만큼 현 정권의 경제 극복의 의지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결과로 해석된다.

최근‘서민 대통령’을 내세우며 민생행보에 나선 손 대표는 강원도 고랭지 배추밭 방문, 청년실업을 주제로 한 영화 관람, 쌀값 폭락과 관련한 농가 방문 등 서민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 같은 손 대표의 정치 노선은 ‘경제’가 전제돼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은 “손 대표의 서민 이미지는 한나라당에 위협적”이라고 말하며 “한나라당이 살 길은 서민정책뿐”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박 전 대표가 경제와 복지 분야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손 대표의 서민행보는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서민과 중산층의 민심에 부합되는 것으로써 향후 대권 도전에 낙관적인 전망을 가능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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