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열병식 전례 없는 생중계..

지난 10월 10일 북한에서는 조선노동당 창건 65돌을 기념해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대규모 군부대 열병식이 거행됐다. 병력만 1만5천명, 200여대의 장비가 동원된 이번 열병식은 조선중앙TV와 평양방송, 조선중앙방송 등 관영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을 통해 오전 9시 30분부터 11시 18분까지 1시간 48분 동안 동시 생중계됐다.

이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오른편엔 그의 셋째 아들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공식행사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이 참석한 행사를 생중계한 전례가 없다. 80여명의 해외 취재진까지 초청해 열병식 소식을 보도한 건 그의 후계자, 김정은의 존재를 공식화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 설익은 지도자...北 치명적 위기 도래할 수도

북측이 1982년생으로 퍼트리고 있지만 김정은은 1983년생으로 알려졌다. 신장은 175㎝에 체중은 90㎏가 넘고 고혈압과 당뇨를 앓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90년대에 형 정철, 여동생 여정과 함께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한 뒤 평양으로 귀환해 2002년부터 2007년 4월까지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 다녔다.

채 서른이 되지 않은 그는 지난달 28일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되고 2주 만에 후계자임을 공식화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74년 후계자 내정 뒤 6년 만에 당대회 정치국 상무위원 자격으로 주석단에 오른 것과는 확연한 차이점을 보인다.


김 위원장은 1994년 김일성의 사망까지 14년이라는 기간 동안 후계 과정을 밟았지만 김정은의 경우 김정일의 지병 탓에 급격히 부상해 충분한 준비기간 없이 전면에 등장했다. 현재 김 위원장의 지병은 김정은의 후계를 부추길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김정은은 연륜과 경험이 없으며 측근의 부재 등으로 김 위원장이 오래 살지 못할 경우 커다란 정치적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으로의 권력승계가 최선은 아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서는 불가피했던 선택이라는 게 대체적 의견이다. 지난 12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북한의 3대 세습 전망과 대북정책’ 토론회에서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은 “김정은 후계체제가 순조롭게 구축될 가능성은 10% 미만”이라고 평했다.

김 연구위원은 “심각한 어려움에 부딪히면서도 후계체제의 근간 자체는 20~30% 유지될 가능성이 있고, 후계체제 자체가 근본적으로 뒤집힐 가능성과 북한체제 자체가 치명적 위기로 치달을 가능성은 60~70%”라고 전망했다.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을 예측하는 근거로는 어린 나이와 적은 경험, 간부들과의 소통 문제, 고난을 겪어보지 못한 역량 문제, 3대 세습이라는 권력 세습의 정당성 문제 등을 꼽고 있다.

◆ 극심한 경제난... 김정은의 최대 극복과제

현재 북한은 1990년대 말 기근 이후 최악의 식량난을 겪고 있다. 또 지난해 말 단행된 화폐개혁의 실패와 핵개발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제재조치, 남북관계의 경색 등은 북한의 경제난을 심각한 수준에 이르게 했다.

북한 당국은 시장을 통제하고 외화사용의 금지조치를 완화하는 등 지난해 말 실시한 화폐개혁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생필품의 공급능력이 미진하고 식량난도 가중되고 있어 좀처럼 헤어나기 힘든 경제난 속에 갇혀있는 형국이다. 식량난과 함께 민심 불만은 늘어만 가고 군 내부의 불안 또한 커지고 있어 최대 정치 변혁기의 북한에게 가장 위협적인 위기요인이 되고 있다.


경제 강국 완성을 통해 2012년을 강성대국 건설 진입의 해로 선포한 북한에게 이 같은 비전은 달성 자체가 역부족인 상황이다. 갈수록 통제가 어려워지고 있는 북한 경제는 배급 시스템이 붕괴되고 민간 경제의 비중이 커지면서 시장 경제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고 전해진다.

통제가 어려워진 틈 사이로 다양한 정보가 오가며 북한의 체제 자체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변화되고 있다고 한다. 통제가 어려워진 시장경제와 100만 톤 이상의 식량부족은 김정은의 지지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주민들의 동요는 표면화되고 있고 ‘세습 왕조’에 대한 민심 이반 또한 확산되고 있다고 전해진다.

언젠가 북한의 실상을 드러낸 TV방송에서 어느 한 북한 주민은 “현재 북한 주민들은 전쟁을 원한다”고 말했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 상황에서 굶어 죽으나 전쟁으로 죽으나 같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한 탈북자는 “북한 주민들이 전쟁을 원하는 건 애국적 충성심이 아니라 체제 전복이나 폭동 구실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3대 세습이라는 모순... 국제적 비난 초래

1980년 김일성의 공식 후계자로 등장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0년 만에 이제는 김정은을 다음 후계자로 내세웠다. 북한의 3대 세습은 왕조 국가를 제외하곤 근현대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는 권력 승계로 국제적 비난을 사고 있다.

영국의 더 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북한 민중들이 아들의 독재에 다시 직면하게 되었다는 내용의 글을 실었고 일본 언론들은 당 창건 기념행사를 통해 왕조시대에나 가능한 3대 세습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홍콩의 유력지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기사를 통해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공산주의 이념에 모순되는 것”이라며 “정보화 시대인 21세기에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북한의 ‘3대 세습’은 예상 가능한 일이었지만 이러한 체제가 과연 북한 사회에 제대로 정착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해 보인다. 권력 이양 과정 상 북한 사회는 지금의 경직되고 폐쇄된 사회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실제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은 11일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3대 세습’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한 바 있다.

그는 “김정은이 후계자가 된 것은 부친의 결단”이며 “동생 정은이 북한 주민들을 위해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재 북한은 김정은에로의 권력세습을 3년 이내로 앞당기고 있다. 정당성과 명분이 결여된 3대 세습 문제는 북한 내부에서조차 문제될 소지가 다분하고 민심 이반이 표면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적인 비난과 제재로 자칫 큰 돌발변수가 될 수도 있다는 견해가 일부 제기되고 있다.

◆ 회복이 힘겨운 남북관계

일단 북한은 급격한 정책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당분간 김정은은 세습체제의 안정화에 주력하며 통치기반의 강화에 힘쓸 것으로 전망된다. 향후 정책은 북한의 내부 사정과 미국, 중국, 일본 등의 움직임에 따라 변화 가능한 것으로 쉽게 단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김정은의 후계 안정화를 위해 대외 및 남북관계에서 유연한 입장을 취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천안함 사태 이후 북중 정상회담 등을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6자회담 복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고 남측에 수해지원 요청과 이산가족 상봉 등과 같은 제의를 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풀이된다. 다만 김정은의 후계 체제가 안정화 될 경우 치적의 필요성으로 대외정책과 남북관계에 의외의 변수가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한다.

최근 북한이 유화적 조치와 태도로 남측에 접근하는 것은 아직 인도주의적 차원의 지원과 민간차원의 경제적 접근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권을 얻고 난 이후 지난 10년간 쌓아온 대북정책을 뒤집고 강경 드라이브로 일관해온 현 정권에게도 북한이 유화적인 태도를 유지할지는 미지수다.

지난 3월 ‘천안함 사건’이후 한반도를 중심으로 실시된 군사훈련은 전쟁으로 치달을 만큼 위기를 고조시켰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해야 남북관계의 진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2년 반 동안 이명박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단절과 천안함 사태 등으로 남북관계를 회복불능의 상태로 이끌어왔다. 최근 북측의 수해지원 요청과 이산가족 상봉 등으로 남북관계는 소통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미 ‘북한의 급변사태’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대북고립 압박정책의 유지를 시사한 바 있다. 남한과의 대립구도하에 북한의 선택은 중국뿐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강경정책의 유지는 남북 간의 교류로 인해 발생되는 경제적 이윤을 고스란히 중국에 넘겨주는 결과로 이어진다. 북한은 남한과의 협력 속에서 개혁개방으로 나아가기보다 중국과의 연대속에서 경제적 예속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한 북한 전문가는 “권력 이양, 극심한 경제난, 체제 불안 등 현재 북한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에 더해 남측의 지원과 경제교류의 중단은 북한의 부담을 가중 시키는 결과”라고 말했다.

근래에 들어서 MB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이 기존의 ‘강경 원칙주의’에서 소통이 가능한 ‘유연한 합리주의’로 변화를 모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반도를 둘러싼 6자회담 재개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데다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뚜렷한 성과가 없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방한한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가 “우리는 남북 간 대화와 포용의 신호가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며 남북관계가 진전되면 6자회담 재개에 나설 수 있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미국이 여러 차례 이 같은 입장을 밝힌데 대해 한국 또한 그에 상응하는 입장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최근 북한의 상황과 남북관계에 있어서 13일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한 발언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북한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일본인 납북 문제를 들어 “북한 지도자의 마음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북한의 문제는) 경제 제재 등 압력만으로 해결하기는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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