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이재오’의 ‘개헌 드라이브’...‘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차기 대선을 2년여 가량을 앞두고 정치권을 강타할 개헌론이 꿈틀거리고 있다. 그간 친이계를 중심으로 개헌론 ‘점화’에 나섰지만 뒷심이 부족해 번번이 '공허한 메아리‘에 그쳤다. 하지만 차기 대선이라는 최대 정치일정상 개헌론자들은 마음이 조급할 수밖에 없다. 내년부터 차기 잠용들의 대권행보가 본격화되는 만큼 개헌 논의를 공식화하고, 국민투표 처리까지 시간이 그리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이명박 정권의 실세로 꼽히는 이재오 특임장관의 ‘개헌 드라이브’는 심상치 않다. 공개석상에서 권력분점 개헌과 연내 처리를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까지 언급하면서까지 개헌을 주장하는 모습에서 연내에 기필코 개헌을 처리하겠다는 단호한 의지까지 엿보인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도 최근 측근들에게 개헌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적극적인 처리를 주문하는 등 개헌에 힘을 실어주고 있어, 연말부터 개헌 정국이 도래할 가능성이 커졌다.
문제는 당내 지분을 확고히 하고 있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의중이다. 박 전 대표는 ‘4년 중임제’ 개헌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친이계의 개헌론이 자칫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러한 우려 속에서 이 장관의 개헌론 점화와 이 대통령의 개헌 의지에 힘입어 친이계의 ‘개헌 액션 플랜’에 시동을 걸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12일 한나라당이 “국회 개헌특위 구성을 포함한 4개 요구안을 받아들일 경우 민주당이 요구하는 국회 4대강 사업검증특위 구성 등 4개안을 받아들이겠다”며 빅딜(Big Deal)을 제안한 것은 이런 친이계의 ‘개헌 액션플랜’ 시동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명박 “대통령 해보니 권력 너무 집중” 개헌론 힘실어
이재오 ‘4대강’에서 ‘개헌’ 전도사로

“내가 대통령을 해보니 권력이 너무 대통령에게 너무 집중돼 있더라. 지금은 대통령이 온갖 사안에 대해 결정하게 돼 있다”
이는 지난 14일 한 매체가 보도내용으로, 이 대통령이 최근 여권 핵심인사들에게 이 같은 취지로 말하며, 개헌 추진에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의 강한 개헌 의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재차 개헌론을 꺼내든 바 있다. 당시 이 대통령은 “개헌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비교적 짤막하게 말했다. 지난해부터 여러 차례 정치권에 요구해왔기 때문에 길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임기 내에 개헌을 하겠다는 의지는 확고하다는 게 청와대 참모들의 전언이다. 이 대통령의 당시 언급은 국회내 개헌 논의가 지지부진하자 다시한번 촉구하는 뜻을 담았으며 정치선진화를 위한 큰 틀의 변화까지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 대통령의 생각은 '제한적 개헌'이다. 지난 2월 취임 2주년을 맞아 가진 한나라당 당직자와의 오찬 간담회에서 “남은 과제는 선거법을 개혁해야 하고 행정구역을 개편한다든가 제한적이지만 헌법에 손을 대는 문제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9월에도 행정구역·선거구제·권력구조 등 개편으로 제한한 ‘원 포인트 개헌’을 주장한 바 있다. 
최근 이재오 특임장관은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에 방점을 찍고 ‘개헌 불붙이기’에 적극 나서고 있는 모습이다. 이 장관은 지난 11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현재의 대통령 중심제가 나라를 여기까지 이끌어 오는 데 도움이 됐다면 미래 국가발전을 위한 선진국형 권력틀을 갖추기 위해서는 권력이 나눠져야 한다”고 밝혔다.
올해 안에 개헌이 가능하겠냐는 질문에는 “개헌의 내용들은 논의가 많이 진행돼 이미 다 나와 있기 때문에 국회가 개헌특위를 구성해 국민들이 바라는 안을 선택만 하면 된다”며 “여야 합의만 된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고 가능성을 열어 놨다.
앞서 지난 6일 관훈토론에서 그는 “각종 여론조사를 해 보면 개헌 찬성이 60~70% 나온다. 여야 의원들도 개헌에 대한 어떤 욕구가 있다고 본다”며 “금년에 여야가 합의해 개헌을 발의한다면 시간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고 본다”고 연내 개헌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이 장관은 “동서화합과 계층갈등 해소, 국민통합을 위해서는 정치적 권력분산이 필요하다”며 개헌시 권력체제에 대해서는 “4년 대통령제가 되든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한국식 권력분산형이 되든 국민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고 권력분점 개헌을 강조했다.

◆靑-친이 주류,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 무게
청와대와 여권 주류의 다수가 선호하는 개헌 방향은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분산하는 형태의 '‘분권형 대통령제’다. 대통령이 외교·안보를 담당하고, 국무총리가 내치를 맡는 형태인 이원집정부제에 무게 중심이 쏠려 있는 모습이다.
친이계인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지난 7월 대표 취임 일성으로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꺼냈고, 이재오 특임 장관도 같은 입장이다.
주류측의 고민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은 친박계가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진 ‘대통령 4년 중임제’를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난 점이다. 미디어리서치가 지난 6월 '가장 선호하는 권력구조'를 조사한 결과 대통령 4년 중임제(41.1%), 대통령 5년 단임제(34.1%), 내각제(10.4%), 분권형 대통령제(3.7%) 등의 순이었다. 현행 대통령 단임제를 다른 형태로 바꿀 경우, 내각제와 분권형 대통령제 등 '권력 분산형''개헌을 선호하는 국민(14.1%)은 대통령 중임제를 원하는 비율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
게다가 국민이 선호하는 권력구조가 '대통령에 대한 국정 수행 지지율과 상관관계가 높다'는 분석도 주류측에는 딜레마다. 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높으면 대통령제 자체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고, 지지율이 떨어져야 내각제 등 다른 형태를 지지한다는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불만이 커질 경우엔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시키는 방향으로 개헌이 이뤄지기를 원하는 국민이 늘어난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 2008년 7월 촛불시위의 여파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20%가량에 머물렀을 때에는 '권력 분산형'인 분권형 대통령제 또는 내각제에 대한 선호도가 40%가량에 달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를 상향 돌파한 지난해 중반부터는 '권력 분산형' 개헌을 원하는 비율이 10%대로 하락했고, 이런 추세는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결국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율이 올라가면 분권형 대통령제에 대한 인기가 떨어지기 때문에 '개헌을 위한 국민적 합의'가 어려워지고,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에 대한 국민의 선호도가 높아질 때에는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율이 낮은 '레임덕' 상태라 개헌을 추진할 동력이 약해진다.

◆친이 ‘개헌 액션플랜’ 최대 걸림돌은 역시나 ‘박근혜’
친박계, 유력 대선주자 박근혜 권력 축소 의도

이 대통령과 친이 주류측의 개헌론을 바라보는 정치권은 냉담하다. 더욱이 친박계가 협조해줄지도 미지수다.
친이계에선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선호하지만 친박계는 4년 중임제와 대선과 총선의 동시 실시를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민주당은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여권 주도의 개헌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지난해 미국 스탠퍼드대 초청강연에서 “대통령이 4년 일하고 국민이 찬성하면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게 좋다”며 4년 중임제 개헌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친박 진영은 현 시점에서 벌어지는 개헌 논의 자체에 부정적 반응이다. 친이계 주류가 불을 지피는 개헌 논의가 궁극적으로 박 전 대표를 견제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의구심 때문이다. 박 전 대표가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될 경우 온전한 권력을 넘겨주지 않으려는 ‘꼼수’ 아니냐는 것이다.
친이계 진영의 잠재적 대권 후보인 김문수 경기지사도 권력이 한곳에 집중된 현행 대통령중심제를 비판하면서 권력분산의 필요성엔 공감했지만 “이번 정권에서 개헌을 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선을 긋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개헌 추진의 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야당의 협조와 여론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전에 먼저 여권 내부의 의견 조율부터 마무리해야 할 것으로 분석된다.
민주당은 개헌 논의에 거리를 두고 있다. 손학규 대표는 원래부터 개헌에 부정적이었다. 10·3전당대회 과정에서나 대표 당선 이후 줄곧 여권의 개헌 논의를 ‘정권 연장 술책’이라고 비판했다. 당 안팎에선 손 대표가 야권의 가장 경쟁력 있는 대권주자로 평가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권력을 분점하는 개헌에 찬성하겠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정동영 정세균 최고위원도 개헌에 부정적이다.
민주당 지도부에서 유일하게 개헌 논의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던 박지원 원내대표는 지난 13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원칙적으로 개헌을 찬성하지만 이 대통령이 아무런 얘기가 없다가 (집권) 3년째에 개헌 드라이브를 하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개헌 ‘데드라인’ 코앞...여당 민주에 4:4 빅딜 제안
‘4대강 내주고 개헌 하겠다는 것인가’

이 같은 개헌론이 일단 이명박 정부 내에서 실제 개헌이 성사되려면 지금이 ‘데드라인’이란 인식이 대체적이다. 여야의 차기 대권 구도가 정립되는 내년으로 갈 경우 권력구조를 바꾸는 개헌은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는 여권 주류의 경우 권력분점 개헌을 통해 차기 대통령의 힘을 약화시키겠다는 의도가, 야당의 경우 독식성 대통령제보다는 권력분점이 현실적이란 정치적 셈법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차기 주자들이 대체로 개헌에 부정적이고 정파별 이해관계가 다른 점을 감안하면 개헌, 특히 권력구조 개헌의 현실화는 쉽지 않아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다.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이 민주당에 제안한 4:4 빅딜은 이러한 정치적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방안으로, 친이 주류의 ‘개헌 액션 플랜’이 가동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한나라당 이군현 수석부대표는 지난 12일 열린 여야 원내수석부대표 회담에서 민주당 박기춘 원내수석부대표에게 '4 대 4대 패키지 빅딜'을 제안했다. 한나라당이 요구하는 ▲국회 개헌특위 구성 ▲정기국회 회기 내 내년도 예산안 처리 ▲야간집회를 제한하는 집회시위법 개정안의 25일 국회 본회의 처리 ▲대기업슈퍼마켓(SSM) 규제 관련 유통산업발전법과 대·중소기업상생촉진법의 분리 처리 등을 야당이 수용할 경우 ▲4대강사업검증특위 ▲연금제도개선특위 ▲남북관계특위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특위 구성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이에 일단 민주당은 거부입장을 분명히 했다. 전현희 원내대표인은 “(한나라당의 제안은)민주당의 일방적 양보를 요구하는 것일 뿐”이라고 거부했다. 4대강 사업이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데다, 개헌특위를 구성해도 올해 안에 결론을 지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
한편으론 한나라당의 빅딜 제안 배경으로 개헌 뿐 아니라 집시법 처리도 시급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 대통령과 친이 주류측이 분권형 대통령제에 공을 들이고 있고, 야간 집회를 제한하는 집시법 개정안은 다음 달 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앞둔 만큼 절박한 사안이라는 얘기다.
주목할 것은 그동안 군불만 때며 여론을 지켜보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명박 정부의 역점사업인 4대강 사업의 일부를 내주고라도 개헌을 추진하겠다며 ‘이대도강’(李代桃畺·작은 손해를 보는 대신 큰 승리를 거둔다)의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친이 주류가 개헌 강경 드라이브를 걸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더욱이 친박계가 개헌에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개헌 추진의 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친박의 지지를 이끌어내기보다는 ‘4대강’을 내주고서라도 야당의 지지을 얻기 위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에 일각에서는 친이 주류측의 개헌 드라이브에 청와대의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추측이다.

◆개헌-4대강 빅딜, 친박계 ‘발끈’
서병수 “헌법을 거래 대상자로 전락시켜”

일단 ‘개헌-4대강 빅딜’을 놓고 한나라당 안에서 갈등의 불씨가 재점화되고 있다. 민주당이 빅딜에 반대하고 있는 가운데 친박계가 헌법을 흥정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고 강력히 비판하고 나서면서 빅딜론은 하루만에 강한 역풍을 맞고 있다.
친박계 서병수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지난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고 규범인 헌법을 거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납득하기 어려운 제안이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서 의원은 이 자리에서 ‘개헌특위-4대강특위 빅딜’과 관련, “개헌은 의총 의결이나 최고위 논의를 거쳐야 할 사안이지 원내대표가 처리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공식 논의도 없이 최고 규범인 헌법을 흥정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이런 일이 다시는 있어선 안된다”고 지도부의 업무방식을 비판했다.
서 의원의 이러한 지적은 이재오 특임장관의 개헌 발언 이후로 친이계 의원들 사이에서 일고 있는 연내 개헌 추진 움직임에 대한 경고성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시기적으로 개헌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견은 있을 수 있지만, 잘못된 헌법을 고쳐야 한다는 논의조차 거론 못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여야 간의 협상과정에서 나온 이런저런 이야기가 밖으로 흘러나온 것이 잘못이지 이를 흥정 또는 거래라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서 의원의 발언을 반박했다.
이처럼 여권 내 불협화음 속에 청와대 내부에서도 개헌추진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한 언론과 통화에서“개헌론이 국민으로부터 추동력을 확보하기 힘들기 때문에 ‘공허한 테마’로 남을 것 같다”며 “(개헌론에 대한) 대선 주자 간의 이해관계도 다르고, 여야 주요 인사들의 목소리도 제각각이어서 시간이 갈수록 현실화 가능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두언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이날 SBS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일단 논의는 하되 어떤 방향으로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더 깊은 고민이 있어야할 것”이라며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기본적으로 국민이 개헌에 관심이 없고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고 말했다.

일단 ‘개헌-4대강’ 빅딜이 민주당의 반대로 무산됐지만 개헌에 대해선 민주당도 원론적으로 공감하고 있어, 빅딜이 무산됐다고 보기는 힘들며 당분간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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