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약자들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야만의 시대이다"

시민들의 발이 되고 있는 대중교통인 버스와 지하철. 특히 지하철에서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안전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5월 지하철 5호선 발산역에서 1급 중증장애인 윤재봉(남·63)씨가 리프트를 이용하다 추락, 사망한 사건에 이어 올 4월 3일 서울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 승강장에서 시각장애인 이모(31)씨가 객차와 승강장 사이에 떨어져 중상을 입었다. 또한 같은 달 24일 4호선 동대문운동장역에서는 리트프 고장으로 역무원이 200kg의 전동스쿠터에 탄 시각장애인을 이동하던 중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계단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했다. 5월 10일에는 같은 역에서 이규식(뇌성마비 1급)씨가 같은 이유로 추락, 부상을 당하는 사고가 발생했으며, 이달 14일에는 송내역에서 장영섭(시각장애1급)씨가 선로로 떨어져 열차에 치여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광화문역 철로 기습 점거 연이은 장애인 지하철 참사가 이어지면 지난 28일 낮 12시 20분경 중증장애인 이광섭씨는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지하철 철로를 점거했다. 이씨는 5호선 광화문역 철로를 기습 점거, 쇠사슬로 철로에 몸을 묶고 1인 시위를 벌였다. 이씨는 20여분간 시위를 벌이다 종로경찰서로 경찰에 의해 연행됐다. 1급 지체장애인인 이씨는 "장애인의 이동권을 위해 철로에 내려섰다"며 점거 이유를 밝히고 "모두들 리프트를 한 번 타 보라"고 말했다. 또한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1∼2분내에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지만, 리프트를 이용하면 계단을 오르는 데 20분, 내려가는 데 20분이 걸린다"며, 장애인 이동의 어려움을 지적했다. 특히 "리프트 시설 자체가 안전하지 못해 '장애인의 이동은 곧 죽음과 사고의 위협'이다"고 강조했다. 이씨의 연행 소식을 접한 장애인이동권연대 회원들은 오후 2시 서울 혜화동 로타리에서 '23차 장애인 버스타기' 행사를 하며, 안국동 종로경찰서까지 버스로 이동했으나 경찰들의 철통 수비에 막혀 장장 8시간 동안 맞은편 길에 격리되기도 했다. 장애인이동권연대 박경석 공동대표와 몇몇 회원들은 쇠사슬을 몸에 묶은 채 경찰에 둘러쌓여 이동권의 제약을 받았으며, 일부 도우미 대학생들은 버스에서 내리지 못했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장애인을 둘러싼 채 도로를 점령한 경찰의 행태에 '너무하다'란 반응이 우세했다. 쇠사슬 몸에 묶어 항의 지난 26일 1호선 전철 세류역에서 70대 노인이 전철과 승강장 사이에 발이 끼어 사망한 사고와 관련해 박 공동대표는 "승강장과 지하철 사이의 간격을 좁히거나, 경사로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는 장애인뿐 아니라 모든 교통약자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박 공동대표는 "현재 사고책임을 전동차 운전자에게 몰아가고, 근본적인 책임이 있는 관계 당국은 안전대책의 마련은커녕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고 비난했다. 이날 종로경찰서 앞에 모인 장애인들은 계속되는 사고에도 책임지는 곳 하나 없는 현실에 분개하며 "교통 약자들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야만의 시대이다"며 개탄했다. 지난 20일 이동권연대는 △서울시와 서울도시철도공사는 발산역 리프트 장애인 추락참사에 대해 책임 인정,공개사과△지하철리프트고장에 대해 즉각적인 안전대책 마련, 전담역무원 배치 △장애인전용콜택시 운전자 노동자로 인정, 장애인전용콜택시 운행 차량 대수와 운행시간 확대 △지하철과 플랫폼 사이의 넓은 간격에 대한 안전대책 즉각 강구 △2012년까지 기존의 노선버스 중 단 20%만 저상버스로 변경하겠다는 계획 철회, 모든 버스 저상버스로 대체 등을 촉구한 바 있다. 서울시 '책임 없다' 박경석 대표는 서울시의 답변에 대해 "상가집에 가서는 누구나 죽음에 유감을 나타내는 법이다"며 "서울시의 유감표명은 바로 이와 같은 것으로 사고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최옥란열사추모사업회(준) 김태현 사무국장 또한 "줄기차게 요구안을 제시했지만, 서울시는 '검토중이다. 기다려달라'는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서울시는 '현재 발산역 참사 사건이 민사소송에 계류 중에 있으니까 법의 판단에 따르겠다'며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천경실련 김동선 집행위원장은 "당초 시설관리는 보건복지부에서 관할했는데, 대구지하철대책위에 의해 건교부로 이관됐다"며 "건교부는 장애인 이동권과 관련된 모든 시설 규격을 만들고, 충분한 예산을 책정해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