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터민 中 70%가 해체...더디기만 한 남한사회 적응

[시사포커스=조은위 기자] ‘새터민’ 이라는 용어는 북한을 이탈해 남한으로 이주한 탈북자들을 일컫는 또 다른 탈북자들의 이름이다. 지난 2004년 통일부에서 ‘새로운 터전에서 삶의 희망을 갖고 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새터민’이란 새 이름을 지었다. 그러나 이름만 바뀌었을 뿐 남한사회에서 ‘탈북자’라는 인식은 여전히 쉽게 지워 질 수 없는 주홍글씨와 같다.
본지는 지난 호에서 새터민 청소년들의 교육현실을 진단하면서 새터민 가족 붕괴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새터민 청소년 공동체 ‘우리집’을 운영하고 있는 마석훈 대표에 따르면 남한으로 이주한 탈북자 가족의 부모 70%이상이 이혼을 하는 상태라는 것이다.
이에 본지는 새터민 가족 붕괴의 문제점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현재 이혼을 하고 혼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여성 탈북자와 어렵게 전화인터뷰를 가졌다.

▲ 탈북인단체총연합 회원들이 지난달 9일 오후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 앞에서 '서울시는 탈북자들의 사회정착 지원을 소홀히 한다'고 주장하며 규탄집회를 갖고 있다.
“탈북한지 10년이 지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탈북자들을 바라보는 남한사회는 차갑기만하다”
탈북여성 A씨가 힘겹게 내뱉은 첫마디는 새터민들의 어려운 정착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50대의 이 탈북여성은 현재 남한에서 두 아들을 혼자 키우고 있다고 했다. 어렵게 설득한 끝에 본지 기자와 전화 통화를 허락한 그녀는 남한사회에서 적응하면서 느꼈던 울분을 토로했다.
그녀는 “남한사회에서 탈북자들의 목소리는 그냥 답 없는 메아리로 그칠 뿐이다”며 “제가 느끼기에는 정착을 돕는다고는 하지만 정작 남한주민들의 인식은 바뀌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남한으로 탈북하기 전 북한에서 A씨 가족의 삶은 그런대로 남부러울 것 없는 부유한 층에 속하는 중산층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북한에서 남편과 나는 배우만큼 배웠고 아이들 또한 제대로 교육을 받아서 문제없이 생활하는 화목한 가정이었다”며 북한시절을 회상했다.
A씨 가족은 모두 함께 탈북을 하지는 못해 큰아들이 뒤늦게 탈북을 했지만 북한에서 연좌제를 당해 몸이 좋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힘겹게 탈북에 성공한 기쁨도 잠시, 북한에서 어느 정도의 중산층 계층에서 버젓한 직업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남한사회에 와서는 허드렛일부터 시작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내가 처음 남한에 와서 했던 일은 대형 마트의 위생관리원이었다”고 말했다.
건물을 청소하는 일이라도 가지게 된 그녀지만 남편은 더딘 사회적응으로 마땅한 직업을 찾기에도 힘들어 했다고 털어놨다. 더구나 아직도 북한은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가 존재했기 때문에 남편이 남한에 적응하기란 더욱 쉽지가 않았다고 고백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결국 부부는 이혼을 하게 됐고 두 아이를 홀로 키울 수밖에 없게 됐다고 담담하게 털어놨다.


현실적인 새터민 정착제도 절실

1994년을 기점으로 탈북자가 급증하자 정부는 1997년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국내 입국 탈북자를 ‘보호 대상자’로 여겼다. 이들의 정착지원은 이들을 우리 사회의 주류 문화에 하루빨리 적응시키는 일이었다.
그러나 1999년 148명 입국 이후 매년 수백 명씩 들어오던 새터민 수는 최근 2만 명이 넘게 됐다.
이런 입국현황은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의 핵심 부서인 하나원(1999. 7. 8. 개원)의 수용능력을 초과하게 됐고 정착교육에도 불구하고 새터민들의 부적응과 애로사항은 점점 늘어나게 됐다.
A씨는 탈북자들에게 자본주의 체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충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오랫동안 사회주의체제 속에서 살아왔던 탈북자들에게 몇 일간의 교육만으로 남한사회에 적응하기란 역부족이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녀는 “북한에서는 사회주의이기 때문에 일자리를 의무적으로 준다”며 “하지만 남한에 와서는 경쟁속에서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탈북자들이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강조했다.
더구나 그녀는 남한 사회에서 일자리를 가지게 되더라도 취업한 탈북자들의 80%가 임금을 떼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그녀는 “우리 아들은 백화점에서 일을 했지만 1백50만원을 떼이는 일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최선을 다해 일을 하더라도 제대로 된 임금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탈북자들은 더욱더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새터민 가족붕괴로 인한 청소년 문제 잇따라

그녀는 “부모가 먹고 사는 문제에 급급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이들에 대한 교육은 자연히 소홀해 질 수 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 2010년 4월 기준으로 탈북 청소년은 1천7백11명이다. 이들이 한국에 도착하면 탈북자 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의 하나둘학교를 거쳐 탈북 학생 특성화학교나 일반학교에 다닌다. 적응이 어려운 경우에는 대안학교를 선택하기도 한다.
탈북 학생들의 학교 중도탈락 비율은 상당히 높은 편인데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새터민 가족의 붕괴다.
그녀는 “우리 아이들도 북한에 있을 때는 평범한 학생들이었다”며 “부모의 가정교육이 소홀해 지면서 게임에 빠지거나 공부를 소홀히 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또한 그녀는 “탈북자 학부형으로 남한 교사들과 면담을 여러 번 해보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인식은 탈북청소년에 대한 부족한 이해와 냉대가 자리잡고 있었다”고 지적하며 “탈북자를 차별적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녀는 “우리는 남한에서 열심히 살아가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정작 남한사회는 천안함 사건과 같이 북한과 관련된 사건이 터질 때 마다 우리를 곱지 않는 시선으로 몰고간다”며 남한사회의 냉대적인 시선을 비판했다.
아울러 “이런 사건이 터질 때 마다 우리는 가슴을 졸여야 한다”면서 “우리도 이런 일들에 대해 상당히 미안함을 가지고 있지만 남한사회는 우리를 간첩이라도 된 듯이 바라본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이런 차별적이고 힘든 남한 사회 적응을 못하는 새터민들은 다시 러시아나 제3세계로 이민을 가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또한 하나원 동기들의 새터민 가족들은 그녀 부부가 이혼해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소식을 듣고 무척 놀란다고 말했다.
그녀는 “다들 우리가족이 북한에서는 어느 정도 살았다는 것을 아니까 우리보다 못한 탈북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고 남한사회의 적응이 쉽지 않음을 토로했다.
이어 그녀는 “새터민 정착제도가 있지만 탈북자만 교육을 받을 것이 아니라 남한 사회에서도 탈북자들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A씨는 온·오프라인으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5학년 5반에 다니고 있다는 A씨는 자신의 꿈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내가 지금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는 남북한이 통일이 됐을 때 우리가족처럼 문제가 있는 가족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가정상담연구소’를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며 꿈이 있기 때문에 힘든 상황에서도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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