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회, ‘한일강제병탄 100년 행사’ 맞아 역사적 관심 촉구

[시사포커스=양민제 기자] 지난 8월29일 ‘한일강제병탄 100년’을 맞이해 경술국치 당시의 치욕을 되새기는 행사가 곳곳에서 개최됐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는 광복회와 대한민국독립유공자유족회 등이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참석해 경술국치일 행사를 거행했다. 이들은 행사 직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으로 이동하여 태평양전쟁 희생자 유족회 등의 단체와 함께 집회를 열고 성명서를 발표하는 자리를 가졌다.

<시사신문>은 8.29경술국치일 행사에 참석해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등을 만나 그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지난달 29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3.1독립선언기념비 앞에는 퍼붓는 빗속에서도 ‘한일강제병탄, 그 100년의 기억, 100년의 미래’를 주제로 하는 경술국치일 행사가 진행됐다. 이 날 행사에는 광복회,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대한민국독립유공자유족회 등의 시민단체들을 비롯해 시민, 학생, 각계인사 등 15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엄중히 치러졌다.

▲ 탑골공원에서 개최된 경술국치일 행사에서 시민들이 만세를 부르고 있다
(사진 / 원명국 기자)

‘한일강제 병탄 100년’

이 날 행사를 주최한 광복회는 “100년 전 일제가 우리나라의 국권을 강탈하고 우리민족을 노예처럼 탄압하기 시작했던 치욕적인 날”이라며 “이날을 기억하고 다시는 그와 같은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고 새로운 100년의 미래를 위한 결의대회를 개최했다”고 행사 취지를 밝혔다.

▲ 김삼열 독립유공자유족회장이 약사보고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 원명국 기자)
이날 김삼열 독립유공자유족회장은 약사보고를 통해 “국치일은 우리 민족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날”이라고 전제하고, “아무리 시대가 변한다 해도 치욕의 역사가 주는 교훈으로 미래 역사를 창조하려는 의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현재 일본은 사죄와 반성은커녕 독도영토 등 망언을 계속하고 있다. 이에 우리는 온 국민이 하나 되어 한일강제병탄 100년을 기점으로 새로운 각오와 함께 일치단결된 국민행동으로 일본국의 기만행위를 가차 없이 분쇄해나가는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 나가야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개식사를 맡은 김영일 광복회장은 “경술국치는 비단 일제의 침략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우리 국민 스스로 깨달아야한다”면서 “그것은 우리 내부의 결속이 부족했고, 위정자들의 정치적 식견과 국제적 안목이 없었다. 또한 국력이 약했고 외교적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성숙한 역사의식이 요구된다”며 “일본 정부의 솔직한 사과와 희생자에 대한 보상이 우선되어야한다”고 촉구했다.


'역사적 관심' 촉구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는 일제하 태평양전쟁 당시 희생자와 유족 및 참전생존자에 대한 실태를 조사하고 나아가 그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는 단체다. 또한 한일간 과거사를 청산하여 역사를 바로 정립하고자 하는 데에 의의를 두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 일본대사관 앞에서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등이 만세를 부르고 있다
(사진 / 원명국 기자)

양순임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회장은 지난 2004년 회장직을 역임하면서 “과거 일제하 태평양전쟁에서 희생당한 이들의 과거를 알고 앞으로 반복되지 않도록 유비무환의 기틀을 우리 손으로 세워 후세에 남기겠다”는 각오를 밝힌 바 있다.

▲ 일본대사관을 향해 서서 집결한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의 모습
(사진 / 원명국 기자)
양 회장은 <시사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 유족회는 태평양전쟁 희생자에 대한 보상 처분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미국변호사들과 협의하는 등 그들의 인권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전했다.

또 그는 “명성황후 시해 진상규명을 위해 지속적으로 일왕의 사죄를 요구하는 등 한일 과거사의 총괄적인 청산에 주력해 왔다”고 설명했다. 양 회장에 따르면 이번 8.29 한일병탄 100년 행사도 ‘한일 과거사 청산’을 위한 활동이었다고.

유족회의 활동은 이뿐만 아니다. 지난 2008년부터 개최하는 ‘비둘기 마라톤’은 특히 그 의미가 특별하다.

‘젊은 층’의 역사의식 고취 필요

양 회장은 “해마다 광복절, 3.1절이면 망언하는 일본정부에 대해 대응키 위해 일본대사관 건물에 계란을 던지는 등의 행위를 한다. 그럴 경우 던지는 우리나 그것을 치우는 일본 모두 힘드니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취지로 비둘기 마라톤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이에 대해 일본 대사관 측이 유족회 측에 축사를 보낸 것. 양 회장은 “한국 내 민간단체에 일본대사관이 축사를 보낸 것은 최초의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유족회는 지난 2009년 한국 내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이 태평양전쟁 피해 희생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화해 세족식’을 개최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유족회 측은 세족식을 한 일본인들의 손을 씻겨주기도 했다고. 더불어 유족회 측은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진상규명과 일왕 사죄를 촉구하는 행사도 광화문에서 개최했다.

▲ 2009년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주최 '화해 세족식'(사진 제공 :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양 회장은 “유족회와 명성황후는 밀접한 관계다”고 전제하며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10년 후 을사보호조약에 체결됐다. 또 5년 후 경술국치 한일병탄이 돼 결과적으로 명성황후 시해가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된 시발점이 된 셈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부모들이 그로 인해 목숨을 잃었으니 후손인 우리가 명성황후 시해에 대해 진상규명과 사과 등을 요구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유족회 측은 “특히 올해는 한일병탄 100년이 되는 해로 특별하다. 특별한 만큼 그동안 줄기차게 주장해오던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진상규명’, ‘대한제국 문화재 반환’, ‘특별조치법 재정’ 등을 일본 정부가 들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처럼 다양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양 회장은 유족회의 고충에 대해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유족회가 끊임없이 활동을 하는 것에 반해, 일본은 한일회담을 미루거나 독도 등에 대한 망언을 계속하고 있고, 과거사에 대해 한국 정부에 보상을 다 했다고 주장하고 있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일본의 하토야마 총리는 비공식적이나마 과거사에 대한 보상 의사를 밝힌 바 있지만, 이마저도 ‘순차적 보상 용의’라고 알려졌다. 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제시된 사안인데 이제 와서 점진적으로 하겠다니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양 회장은 우리나라 정부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그는 “우리 정부도 유족회의 활동 등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지 않고, 간혹 오히려 일본의 눈치를 보는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

한 유족회 측은 저조한 시민 참여율을 지적했다.

양 회장은 “광화문 같이 번화한 곳에서 행사를 진행해도 젊은 층은 쉽게 지나치기 때문에 큰 문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역사를 왜곡하는 것보다 역사에 구멍 뚫는 것이 더 큰 문제”라며 역사에 대한 무관심을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젊은 층의 역사에 대한 무관심으로 인해 명성황후의 시해가 115년이 지난 지금도 진상규명이 안 되고 있다는 것.

양 회장은 “국민들이 역사를 꿰뚫고 활동에 힘을 보태줘야 하는데 서로 나 몰라라 하니까 행사 진행이 더욱 힘들다”며 젊은 층의 역사에 대한 의식 고취를 촉구했다. 또한 “행사를 진행하는 데에 있어서 유족회 자체적인 진행은 다소 힘들다. 유족회 회원 모두가 60대 이상의 고령이며, 실질적으로 80~90대가 평균연령이기 때문에 행사를 진행을 하기에 기동력이 많이 부족하다. 젊은 사람들이 도와줘야하는데 요즘 젊은 층이 원하겠냐”고 반문했다.

양 회장은 무엇보다 가장 큰 고충으로 ‘부족한 재정’을 꼽았다. 양 회장은 “회비 거의 받지 않고 활동하니까 재정상황이 힘들다. 실제로 명성황후 시해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운동을 할 때 서명해준 사람들에게 기념품을 주며 더 많은 서명을 받고자 해도 재정 부담에 걱정부터 앞선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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