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의 과잉 협조로 낙마”보도에 경남도 반박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를 이끌어갈 젊은 인재로 지명했던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가 청문회의 벽 을 넘지 못하고 끝내 낙마했다.
김 후보자는 8·8 개각 당시 40대의 젊은 총리 후보로 주목 받으며 여권의 새로운 인재로 급부상 했으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의혹으로 부정적 여론이 높아져 결국 자진 사퇴의 뜻을 밝히게 됐다.
김 후보자가 총리 후보에서 낙마한 배경에는 도덕적 문제와 부적절한 처신에 있었던 만큼
후임 인선 과정에서는 도덕성이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김태호 전 국무총리 후보자의 낙마에서 드러난 쟁점은 후보자의 ‘도덕성’에 있다. 인사청문회를 통한 후보자의 도덕성 여부가 민심을 움직이는 중요한 요소로 부상한 것이다. 청문회가 진행되면서 야권은 김 후보자의 도덕성을 문제로 삼아 공세를 이어 나갔고 이것이 결국 여권의 의원들까지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결국 김 후보자는 8·8 개각 이후 3주 만에 총리직을 사퇴했다.

김태호 “신뢰가 없으면
총리직도 할 수 없다”

김태호 총리 후보자는 지난 8월29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저의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데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더 이상 누가 돼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총리 후보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그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나온 의혹들에 대해 “각종 의혹에 대해서는 억울한 면도 있지만 모든 것이 제 부덕의 소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 했다.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미덕은 신뢰라고 생각하는데 국민의 믿음이 없으면 총리직에 임명된다 해도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며 사퇴 배경을 설명했다.
또 “공정한 사회를 추구하는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해 국민께서 준 채찍을 제 스스로 달게 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이명박 정부의 성공이 대한민국의 성공이라는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백의종군의 자세로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덧붙였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김 후보자의 사퇴 배경과 관련해 “지난주 금요일 김 후보자로부터 전화 연락이 와서 직접 만났고, 김 후보자가 ‘총리 내정자로서 이번 과정을 통해서 공정한 사회 등 대통령이 추구하는 여러 기조에 조금이라도 걸림돌이 될까 걱정스럽다’는 우려를 전달해 왔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명박 대통령이 김태호 후보자의 사의를 수용했으며 국정운영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후임 인선에 바로 착수했다”고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명박 대통령이 후임 인선에 바로 착수 했지만 이번 총리 후보의 사퇴로 하반기 국정운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 대통령이 내세운 ‘공정한 사회’와 ‘친서민·소통’ 등 후반기 국정운용 계획의 첫걸음이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레임덕 우려까지 들리고 있다.


게다가 야당인 민주당이 재·보궐 선거 패배 이후 여당에게 내준 정국 주도권을 되찾은 점도 신경 쓰인다. 인사청문회 정국 내내 여권을 수세에 몰아넣으며 총리 후보와 장관 후보를 낙마 시킨 기세를 업고 정기국회와 10월의 국정감사에서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관측된다.
김 후보자의 낙마는 여권 내 대선후보 구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초 40대인 김 후보자가 부각되면서 박근혜 전 대표의 위치가 흔들리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었다. 김 후보자를 선두로 여권 내 젊은 잠룡들로 대권주자층이 형성돼 ‘세대교체론’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김 총리 후보자가 29일 후보를 사퇴하면서 박 전 대표는 부담에서 벗어나게 됐다. 자칫하면 젊은 정치인과 구시대 정치인이라는 세대 간 대결구도로 손해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이번 김 후보자 낙마의 최대 수혜자로 박 전 대표가 꼽히고 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이재오 특임장관 후보자 진영도 김 후보자 낙마로 세대 간 대결구도는 벌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 안도하는 분위기다. 이처럼 김 후보자의 낙마로 여당 내부가 변화를 맞고 있는 와중에도 야당은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야당에 이어 경남에서도 비난

민주당 정세균 전 대표는 “김태호 총리 후보자를 포함한 부적격자들의 사퇴는 자진 사퇴가 아니라 민심에 따른 ‘낙마’다”라고 말했다.
그는 “부적격자를 지명한 것이 문제지만, 지명을 수락하고 인사청문회에서 얕은 수로 국민을 속이려 했던 것은 더더욱 큰 문제”라며 맹비난 했다.
이어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직접 사과해야 한다. 국민에게 너무나 큰 실망과 좌절을 안겨준 개각에 대해 직접 사과하고 이와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이번 청문회를 반면교사로 삼아 다음에는 국민의 뜻에 역행하지 않는 후보자를 내놓기 바란다. 또다시 부적격자를 지명하는 우를 범한다면 대통령의 사과로도 국민의 울분을 달랠 수 없을 것이다”며 경고했다.
야당의 공세에 이어 김 후보자가 두 번이나 도지사를 지냈던 경남에서도 그를 정면으로 비난하고 나서 논란이 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편집국장은 기고문에서 “낙마한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가 두 번이나 경남도지사로 재임하던 동안 지역 언론은 그의 권력남용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의혹을 해소하기는커녕 증폭만 시킨 채 허망하게 무너지는 ‘경남의 아들’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전하며 “지역 언론의 감시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했었더라면 사전에 예방하거나 바로잡을 수 있는 일이었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밝혔다.


김 후보자의 낙마 원인이 경남도가 야권에 필요이상의 자료협조를 했기 때문이라는 발언도 제기됐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전날 천안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에서 “만약 무소속인 김두관 경남지사가 지방선거에서 당선되지 않았더라면 청문회 상황이 상당히 달라졌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여당 지사인데도 그 많은 자료가 나올 수 있었겠느냐. 지사가 같은 야권이라 민주당 등이 달라는 대로 경남도가 응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 최고위원의 주장에 김두관 경남도지사는 즉각 반발하며 나섰다. 박재현 경남도 기획조정실장은 “경상남도가 제출한 자료는 야당뿐만 아니라 한나라당도 함께 요구한 자료이며,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여야 합의로 특위에서 공식 요구한 것으로 가감 없이 제출했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마치 경남도에서 필요이상의 자료를 제출했기에 김태호 후보자가 낙마한 것처럼 발언하고 보도한 것에 대해 실망을 금할 수 없다”며 “2만2천여 도 공직자와 330만 도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해명과 사과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같은 주장은 김두관 지사의 입장이기도 하다”고 밝히며 사과를 요구했다.

한나라 “인사검증
시스템 개선해야”

한편, 한나라당은 충남 천안에서 의원 연찬회를 열고 김 후보자의 사퇴 이후 국정 운영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한나라당 국회의원 연찬회에서는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를 비롯한 장관 후보자 2명의 낙마를 두고 청와대의 인사검증라인에 대한 문책필요성과 인사검증 개선안에 대한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김 후보자와 장관 후보 두 명이 사퇴한 만큼 연찬회에서 의원들의 발언 수위가 높진 않았지만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 개선안은 거론됐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사람을 인선하는데 안이했다”며 “결과적으로 책임은 청와대 인사라인에 있다”고 밝히며 개선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김무성 원내대표도 “이번 인사검증에 관련된 청와대 인사는 누가 됐던 문책을 해야 한다”며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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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언 최고위원은 “잘못한 게 있어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기강이 안 선다”며 ‘신상필벌은 인류가 원시시대부터 만든 조직 관리의 기본“이라고 말했고, 서병수 최고위원 역시 ”책임 있는 사람은 마땅히 책임져야 하고, 자리와 사람도 필요에 따라 바꿔야 한다“고 가세했다. 반면에 청와대를 상대로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초선의 홍정욱 의원은 “김 후보자 외에 장관 내정자 두 명도 사퇴하면서 청와대가 초상집인데 여기에다 대고 뭐를 하라고 요구하면 나쁜 사람이 된다”며 “청와대의 인사검증이 실패했다는 지적은 맞지만 그것도 대통령이 책임지고 해결하면 될 문제”라고 말했다.
안상수 대표최고위원은 “이번 인사검증에 이번 김태호 총리를 비롯한 사퇴에 대해서 어제 비서실장과 장시간 얘기를 나누며 청와대의 인사검증시스템이 개선되어야 된다는데 뜻을 모았다”고 말한 뒤 “대통령께서도 이것을 말씀하셨고 그동안 보안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까 통보하면서 인사검증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며 청와대의 입장을 해명했다.


이날 한나라당 연찬회에서는 인사검증시스템의 개선방안으로 과거보다 기준을 강화하고 검증기간을 충분히 가지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김 후보자의 총리 후보 낙마로 청와대의 인선작업은 신중해질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노림수로 김 후보자를 지명했다 도덕성 문제로 큰 손실을 입었기 때문에 청문회 통과가 용이한 인물로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다음 후보를 통과시키기 위한 야권의 기준과 민심이 만만치 않은 만큼 청와대와 여당의 고심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 유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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