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정치가의 낮 뜨거운 ‘거짓말 프레이드’

김 후보자의 재산 도지사 재임 시절 10배 가까이 증가
채무 관련 해명 엉터리…도청보다 거짓말이 더 큰 죄악


1971년 김종필 총재 이후 39년 만에 40대 총리가 탄생하느냐에 관심이 모아지면서 인사청문회에 관심이 쏠렸던 인물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 그가 인사청문회의 높은 관문을 무사히 통과하고 총리로서 자질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 궁금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의혹만 남기고 그에 대한 청문회가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예고했던 대로 선거비용 10억원 대출 및 스폰서 의혹, ‘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 부인의 뇌물수수 의혹, 불투명한 금전거래와 재산관리 문제 등에 대한 명쾌한 해명을 듣지 못했다. 특히 김 후보자의 핵심 의혹인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안 시점에 대한 진술을 번복하는 등 청문회에서 말 바꾸기로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은행법 위반, ‘박연차 게이트’ 연루 등 각종 의혹만 증폭시킨 채 지난 8월25일 마무리됐다.
야권은 ‘양파 총리’, ‘현금 총리’, ‘캐시(현금) 김’이라며 김 후보자를 거세게 몰아세웠지만 김 후보자로부터 명쾌한 해명을 듣지 못했다.

민주당 박선숙 의원은 김 후보자가 2004년 도지사 보궐선거 때 4억원을 빌렸던 H건설 최모 대표와의 관계를 따졌다. 그는 김 후보자의 거창군수 시절 태풍 피해 복구 사업을 H건설이 수주하는 과정에서 거창 부군수가 구속됐지만 이후 부군수가 승진한 데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김 후보자와 최모 대표의 돈독한 관계를 보면 ‘스폰서’ 의혹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김 후보자는 “최모 대표와 잘 아는 사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제도적으로 특혜는 있을 수 없다”고 답변했다. 박 의원은 또 김 후보자가 J건설 안모 사장을 진주경찰서장에게 소개시켜줬다는 사실을 공개하고 김 후보자의 시인을 받아냈다.

김태호 청문회
논란만 증폭

김 후보자가 2004년 6월 경남지사 보선에서 고향 선배인 화성종합건설 최모 대표로부터 빌린 선거자금 4억 원을 갚는 과정도 명쾌하지가 않다. 김 후보자는 3억3000만원은 당선 직후, 나머지 7000만원은 이듬해 2월 부친·동생·형수로부터 돈을 빌려 갚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25일 청문회에서 김 후보자가 형수인 유귀옥 씨에게 써줬다는 차용증 원본의 행방이 묘연한데다 사본에는 유 씨의 도장·사인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유 씨는 “한 푼도 못 받았다”며 이자까지 갚았다는 김 후보자와 다른 얘기를 하기도 했다. 7000만원이 사실상 김 후보자의 차명계좌에 있던 돈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되는 이유다.
김 후보자의 재산이 도지사 재임 시절 10배 가까이 증가했고, 채무 관련 해명이 엉망이라는 지적도 많았다. 민주당 박병석 의원은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도 워터게이트 도청보다 거짓말이 문제가 됐다”며 생활비를 댔다는 장모의 상가 임대계약서가 거짓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이용섭 의원은 한 달 생활비가 400만~500만원이라고 답하는 김 후보자에 대해 부인에게 191만 원짜리 명품 가방을 선물했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2007년 이후 사적인 해외출장이 8차례나 있었는데 생활비로 가능한가”라고 지적했다.
박선숙 의원은 “수입, 재산, 소비의 관계가 불투명하고 아버지, 형수, 동생 등에게 돈을 빌렸다면서 차용증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질타했다. 한나라당 정옥임 의원도 “해석에 따라서는 집안 회계도 못하면서 나라 회계를 잘 하겠느냐는 의구심이 들지 않겠느냐”고 꼬집었다.

처음엔 ‘부인’…
증거 제시하면 ‘인정’

김 후보자의 말바꾸기도 도마에 올랐다. 청문회에서 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으로 지난해 검찰의 조사를 받을 때 박 전 태광실업 회장이 운영하는 골프장인 정산CC 인허가와 관련해 조사를 받았느냐는 민주당 박병석 의원의 질문에 처음에는 “그런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같은 당 박영선 의원이 다시 추궁하자 “인허가 과정에서 그런 부분은 있었던 것 같다”며 답변을 번복했다.
그는 또 박 전 회장을 만난 시기에 대해서도 말을 바꿨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박 전 회장이 운영하는 경남의 정산CC 내장객 현황기록을 제시하며 “2006년 10월3일 오후 1시에 박 전 회장과 골프를 친 게 맞느냐”고 묻자 “가을쯤 운동을 한 번 했다”고 시인했다.
박 의원이 “(어제 청문회에서) 왜 거짓말을 했느냐”고 추궁하자, “그렇게(2007년 후반으로) 답변했는데 정확하게 기억을 못한다. 정확하게는 2006년 가을부터 알게 됐다”고 말을 바꿨다. 박 의원이 “골프비용을 누가 냈느냐”고 하자, “박 전 회장이 치자고 했으면, 박 전 회장이 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박 의원이 “정산CC에서 나오다가 박 전 회장을 우연히 만났죠”라고 질문하자 김 후보자는 “목욕탕에서 (만났다)”라고 했다.
이어 “저녁식사를 같이했느냐”고 묻자, “예, 저녁만…”이라고 했다. 김 후보자는 전날 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이 ‘박 전 회장의 기내 난동 전날 함께 술자리를 가졌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부인한 바 있다.
그는 “‘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에 대한 무혐의 내사종결을 통보해 준 사람이 누구냐”는 박영선 의원의 질문에 대해 “검찰간부”라고 답했다가 “지인”이라고 말을 바꾼 뒤 말을 왜 자꾸 바꾸냐고 질책을 받자 “기억을 더듬어 보겠다”고 군색한 답변을 했다.
여기에 2007년 4월 박연차 전 회장의 돈, 수만달러를 건넨 장소로 지목됐던 뉴욕의 강서회관(식당)을 간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간 적이 없다고 했다가 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증언을 확보했다고 하자 그제서야 “간 적이 있다”고 시인했다.
박 전 회장의 부탁을 받고 이곳에서 자신에게 수 만 달러를 건넸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곽모 사장에 대해서는 “일면식도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이 부분도 석연치 않다는 게 야당 시각이다. 박영선 의원은 “뉴욕한인 식당 사장인 곽 사장을 김 후보자가 만찬에서 만났고, 두 사람이 ‘같은 경상도 사람이어서 반갑네예’ 했다는 제보가 있다”며 “김 후보자가 뉴욕 출장을 가기전 곽 사장 전화번호를 물어봤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김 후보자는 “그런 기억이 없다”고 답했다.
식당 주인인 곽현규 씨는 검찰 조사과정에서 “김 후보자가 오면 여비를 주라는 박 전 회장의 부탁을 미리 받고 식당 여직원에게 돈을 건네줄 것을 지시했다”고 진술했지만, 김 후보자가 총리직에 내정되자 돌연 종적을 감췄다.

연거푸 ‘말 바꾸기’ 눈총

그는 또 “2007년 12월3일 박 전 회장의 비행기 난동사건이 있기 전날 박 전 회장과 술을 마시지 않았느냐”는 박 의원의 추궁에 대해서도 “맞다”고 뒤늦게 인정했다.
김 후보자는 전날에도 각종 의혹에 대해 오리발을 내밀다가 야당의원들이 증거를 제시하자 마지못해 시인하기도 했다.
은행의 직·간접적 정치자금 대출을 금지한 은행법을 위반했다는 논란도 거셌다. 그는 2006년 경남도지사 재선 당시 금융기관에서 빌린 선거자금 10억원과 관련해서도 2차례나 말을 바꿨다.
당초 부친 명의로 6억원, 당시 경남도 정무부지사였던 안상근 국무총리실 사무차장 명의로 4억원을 대출했다고 밝혔다가 재차 확인 작업에 들어가자 본인 명의로 3억원, 부친 명의로 3억원, 안 차장 명의로 4억원을 빌렸다고 정정했다.
박영선 의원은 “선거자금을 대출받은 안상근씨를 국무차장으로 발령한 것은 대가성”이라고 추궁하자 김 후보자는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는 점이 확인됐고, 은행법에서도 대출한 사람은 처벌받지 않는다. 선거 때 아는 사람에게 빌려서 하지, 가난한 사람은 정치하지 말라는 건가”라고 맞섰다. 자유선진당 조순형 의원은 “후보자는 처벌받지 않아도 은행 관계자들은 처벌받게 돼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김 후보자는 도지사 재임 당시 관용차를 부인이 개인용도로 사용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부인하다가 민주노동당 강기갑, 민주당 박병석 의원이 해당 직원 면담 결과와 운행일지를 증거로 제시하자 뒤늦게 사실을 시인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김 후보자는 야당뿐 아니라 여당 의원들로부터도 질책을 받았다. 민주당 이용섭 의원은 “40대 후보자가 이렇게 기억력이 나빠서 어떻게 총리직을 수행하느냐”고 날을 세웠다.
한나라당 정옥임 의원은 “혹독한 검증을 예상했을 텐데 본인도 실무진도 너무 준비가 안 돼 있어 실망”이라며 “전날엔 (박 전 회장 만난 시점을) 몇 번 확인할 때마다 2007년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두 달이나 한 달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정직하게 대답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질타했다. 정 의원은 “반성하겠다”는 김 후보자의 말에 “반성 정도로는 안 될 것 같다”고 잘라 말했다.
이범래 의원역시 “후보자의 기억에 대해 화가 나려고 한다”며 “바쁘다면 1주일 전에 만난 것도 생각 안 날 수 있지만 청문회장에서 그렇게 말을 하면 되느냐. 걱정스러운 건 (만난 시점이) 2006년보다 더 전으로 내려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문환 의원 역시 “이제 와서 다시 기억을 더듬어보겠다고 하면 얼마나 파장이 큰 것이냐. 지금까지 진술한 모든 부분들이 다 의심받는다”고 말했다. 조 의원은 “청문회가 몇시에 끝나든, 내일 아침에라도 모든 걸 다 확인해서 제출해 달라”고 몰아붙였다. 어떻게든 감싸주려고 했던 한나라당 의원들도 더는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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