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통일세’ 돌출 발언, 왜?

MB 통일세 깜짝 발언, 與 심기불편
여야, ‘통일세’ 놓고 갑론을박 대치

통일세 언급은 남북관계 출구전략 노림수
통일세 ‘국민동의’가 선결과제 ‘첩첩산중’

이명박 대통령이 통일세를 언급하고 나서면서 여야를 비롯한 정치권의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65회 광복절을 맞이한 경축사에서 “남북통일에 대비해 통일세 등 현실적인 방안을 준비할 때가 됐다”고 밝히며 “이 문제를 우리 사회 각계에서 폭넓게 논의해 달라”고 제안했다. 천안함 사건으로 남북 관계가 악화된 시점에서 나온 발언이기에 그 속내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오가고 있다. 야권은 남북관계 파탄으로 대화가 단절된 시점에서 느닷없는 통일세 발언은 흡수통일을 염두에 두어 둔 것이라며 맹비난에 나섰고, 여권 역시 당정소통 없이 여론의 추이를 떠보는 대통령의 행동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형국이다.

취재 이경익 기자

MB 광복절 경축사에서 ‘통일세’ 언급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통일세를 언급하며 정부의 집권 후반기 구상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3월26일 북한의 천안함 공격은 평화에 대한 희망을 저버리는 도발이었다. 남과 북은 더 이상 불신과 대결로 점철된 과거의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며 “우선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는 '평화공동체'를 구축한 뒤 남북 간의 포괄적인 교류·협력을 통해 ‘경제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통일은 반드시 온다”며 “그 날을 대비해 이제 통일세 등 현실적인 방안도 준비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를 우리 사회 각계에서 폭넓게 논의해 달라”고 제안했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 제안에 여론은 뜬금없다는 반응이다. 천안함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냉랭한 시점에 통일세는 이르다는 반응과 서민 세금징수와 관련된 불만들이 터져 나왔다. 이 대통령은 여론이 악화되자 “당장 과세할 것은 아니다”며 진화에 나섰고 청와대 역시 이 대통령의 통일세 언급은 통일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계층의 의견 수렴을 위한 큰 화두를 던진 것이라며 해명했다.
이 대통령의 깜짝 통일세 발언은 내부 불만도 터져 나오게 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통일세 도입을 사전 조율 없이 언급한 것에 대해 “당을 이렇게까지 무시해도 되는 거냐”며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친이계 한 의원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던지는 통일세와 개헌을 대통령이 언급하려면 사전에 당과 충분히 논의돼 대통령 발언이후의 당의 후속 대응, 입법추진 과정 등의 액션플랜이 준비돼야 한다”며 “지금 청와대와 정부는 아무 대책 없이 마치 여론의 추이를 떠보듯 한번 던져보는 식의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고흥길 정책위의장 역시 “통일세 문제를 경축사 현장에서 처음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대통령 국정연설을 할 때 사전에 당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면 좋겠느냐는 의견이 오고가야 한다”며 “이런 점 없이 통일세 제안이 불쑥 나와서 유감”이라고 말했다.
당 내에서는 불만을 비롯한 우려 섞인 의견도 속출했다.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은 “통일세는 평화공동체가 정착된 후에 공격적으로 해도 늦지 않다” 생각 한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서병수 최고위원 역시 “통일세는 세금이고 성격 자체가 훗날에 대비해 부담해야 할 것이어서 자칫 잘못하면 국민적 합의를 얻기 어려운 상황도 있다”며 “북한이라는 상대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신중하게 접근해 주길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이렇게 당 내 이견과 불만들이 있지만 대다수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실천적 통일방안을 준비하기 위한 TF팀을 구성키로 해 정책적 백업은 충실히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안형환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대통령이 통일세 화두를 던진 만큼 당과 정부가 나서서 바람직한 결론이 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합의가 있었다”면서 “정기국회에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TF팀의 활동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무성 원내대표 역시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언젠가 이룩될 통일을 위한 준비 일환으로 통일세를 검토할 때가 됐다”며 “정부 안이 나오면 야당과 논의를 해보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먼저 남북관계 개선해야” 공세

그러나 민주당 등 야당은 통일세 논의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민주당 박지원 비대위 대표는 16일 “지금은 남북협력기금을 어떻게 사용해 남북 화해협력의 길을 틀지 생각할 때”라면서 “통일세는 북한을 자극해 마치 흡수통일을 생각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많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박 원내대표는 “통일 후 비용에 집착하기보다 먼저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화해평화협력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통일세 신설보다 현재 남북협력기금을 어떻게 활용할지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동영 의원 역시 이명박 대통령의 통일세 제안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통일세는 사실상 통일 포기세”라고 비판했다.
정 의원은 성명을 통해 “8·15 경축사에서 앞으로 대북정책을 어떻게 풀어나가겠다는 남북관계에 대한 그림은 한마디도 없이 느닷없이 통일세를 말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민주정부 10년간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 간의 교류협력을 통한 사실상의 통일 상태 실현을 목표로 했다”며 “그것이 통일비용을 최소화한 가장 효과적인 통일방법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를 중단시키고 모든 교류를 끊었다”며 “통일비용을 가장 높게 만들어놓은 상황에서 통일세를 걷어 국민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지도자로서 매우 무책임한 행위”라고 맹비난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정부는 국민들의 공감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통일세를 제안하기 보다는 기존의 남북협력기금을 우선적으로 집행하고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먼저 제시했어야 옳다”며 “통일에 대한 진정한 의지가 있다면 통일세를 말하기 전에 현실적으로 남북교류를 재개해 통일비용을 낮추는 것이 우선”이라고 꼬집었다.
정치권 일각에선 민주당이 통일세 문제에 민감한 것은 단순한 세금 영역을 넘어서 대북관계의 기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고 내다봤다. 민주당이 주도권을 갖고 남북관계 및 통일문제를 리드해야 하는 정세적 판단이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두고 대립을 이어 나갈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통일세 발언을 두고 군소정당들의 비난도 이어졌다. 평화민주당 한화갑 대표는 16일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통일세 신설’ 논의를 제안한 데 대해 “양두구육”이라며 강력 비판했다.
한 대표는 “양두구육은 양의 머리를 내걸어 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판다는 얘기로, 진실을 숨기고 거짓으로 행세한다는 말”이라며 “이명박 정부 출범 이래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태가 됐는데, 그에 대한 책임을 통감해야 할 대통령이 미사여구를 동원해 아무 책임이 없는 것처럼 국민을 호도하는 양두구육적 사고방식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난했다.
한 대표는 “당장 통일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는 것도 아닌데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자신이 통일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뿐이지 실제로 통일을 위해 한걸음 전진하는 정책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진보신당 역시 논평을 발표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통일세’ 제안에 대해 비난했다. 이들은 “왜 이런 제안을 느닷없이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서 “불과 며칠 전까지 의혹투성이 천안함 사건을 핑계로 동서해상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인 정부가 통일세를 걷자니 어느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나”고 지적했다. 이어서 “제안을 해도 상식적인 제안을 해야 한다”며 충고하기도 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도 주요당직자회의에서 통일세 신설과 관련, “참으로 엄청난 비용을 국민의 혈세로 부담시켜 미리 비축한다는 것이 과연 현실성 있는 대안인지 의문”이라며 “통일비용의 큰 부분은 한반도 안정에 이해관계가 있는 동북아 국가들이 참여하는 동북아 개발은행이나 기금 방식으로 대비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라고 비판했다.

MB 통일세로 남북관계 국면전환 시도

정치권에선 이 대통령이 통일세를 언급하여 야권의 강도 높은 공세를 받고 있지만 나름 수확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 대북정책으로 ‘비핵·개방 3000’을 내세우며 이전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과 분명한 선을 그어왔다. 그러나 남북관계를 진전시키지 못하고 긴장감만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통일세 언급은 이를 돌파하기 위한 출구전략으로 보인다. 천안함 사태로 경색 국면에 빠진 남북관계에 ‘통일’이라는 쟁점을 부각시키려는 것이다.
실제로 야권의 많은 비난을 받고 있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통일에 대한 논의가 찬반으로 나뉘어져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동안 남북관계 개선에 인색했다는 이 대통령의 정권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한 포석 차원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렇듯 수확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으나 이 대통령의 발언이 충동적이고 치밀하지 못했다는 지적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정치권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국민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통일세를 밀어 붙일 경우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 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통일세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이를 감당할 국민의 능력과 의지”라면서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강조했다.
모 정치원로 역시 “국민에 대한 설득과 동의 절차 없이 통일세를 밀어 붙인다면 새로운 갈등의 소지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며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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