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본대로 속이고 속아주는 게임

수 많은 이들 미인대회의 본질은 여성에게 요구되는 성적대상화를 거대행사로 공식화시켜, 집단적으로 '관음'을 즐기는 쾌락추구다. 올해도 건재한 미스코리아, 에로미스코리아 지난 5월 21일 리틀엔젤스 예술회관의 밤. 제47회 미스코리아선발대회가 화려하게 펼쳐졌다. 공중파에서 퇴각한 미스코리아가 스포츠 지를 비롯한 상업적 목적을 지향하는 대중매체들을 동원해 건재를 자랑한 올해의 미스코리아 대회는, 우리사회 가부장적 질서를 공고히 하는데 지원병으로 내세울 또 한 명의 신데렐라를 배출함과 동시에, 일년의 할당치를 마치고 또 다시 찾아 올 내년의 쇼와 왕관의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한 술 더 떠 '개방화'라는 미명아래 우리 사회 포르노적 아이템이 공식화되는 분위기 속에서 '슈퍼에배우선발대회'도 등장했다. 지난 5월 13일 한 인터넷 성인방송국(바나나TV)은 거금 3천만 원을 내걸고 기존의 IJ들만이 아닌 일반여성들까지 동원해 즉석에서 가슴노출과 배드신 연출 등 민망한 에로 연기콘테스트를 벌이게 해 남성들을 흥분시킬 수 있는, 최고로 자극적인 슈퍼에로배우를 선발한 것이다. 이번 행사는 인터넷으로 생중계 되는 동시에 동영상으로 제작되어 대대적 선전을 통해 업체 홍보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김포여성민우회 오진희씨는 이러한 '에로배우선발대회' 행태에 대해 "대회주관 측은 인터넷 생방송, 여성권익 등 그럴싸한 소품들로 포장해 여론의 시선을 끌려하지만 내용은 한 마디로‘여성을 성적 상품으로 전락시켜 상업적 이익을 취하겠다는 저급상술’에 불과하다"며 꼬집는다. 여성의 자유는‘몸’과 '섹스', '젊음'이라는 남성호르몬의 환상이 왜곡시킨 여성관 즉, '팜므파탈' 상으로서가 아니라‘삶의 질’측면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여성들의 주장인 것이다. 가부장적 질서를 공고히 하는 퇴행적 행사 그렇다면 우아하고 건전한 미스코리아 대회는 과연 어떤가? 매년 거대자본을 투입하면서 한국의 대표미인을 뽑아 왕관을 씌워 행차를 시켜야 할 존재가치 및 정당성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미스코리아'에게 부여되는 '국위선양'과 '사회봉사',' 인류평화의 메신저' 역할은 과연 한국 여성 평균치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키, 가슴, 눈이 크고 코가 오똑한 여자들에게만 주어져야 할 영광일 것인가? 또 이 대회는 현실 속에서 우리사회 진보와 행복향상을 위해 얼마만큼의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일까? 기호 0번 어느 후보자를 상정해보자. 훈련받은 어여쁜 미소를 짓고, 예쁘게 봐달라는 인사와 함께 웃고 춤추며 쇼를 보여주다가, 드디어 자신의 생각을 발언하는 기회를 가진 기호 0번 왈, "본인은 미스코리아의 가치관을 거부감 없이 수용하여 대회에 출전한 것과 마찬가지로, 잘생기고 섹시한 남자가 좋다. 서구남자들은 우리 미스코리아 후보자들의 대회출전자격에 부여되는 기준과 같이 서구적 미를 갖추고 있으며, 자신의 미를 개발하는 노력도 너무 멋져 보인다. 우리나라 남성들도 자신의 외모를 개발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런 '건방진' 발언을 감히 발설했다면? 혹은 "후보자들을 마치 '여신'으로 모시는 듯한, 미인이니 영광이니 하는 칭송과 미사여구, 값비싼 옷과 음식 따위의 대접으로 후보자들에게 선사되는 여성성에의 존중에 용기를 얻어 "진실로 여성들이 원하는 바인 악법. 호주제 폐지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도 우리 미인들이 여성적 정체성의 삶 속에서 오래도록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도록 호주제 폐지에 동참해 주세요"라고 발언했다면? 기호 0번 후보자의 당선가능성은 그 예쁜 입을 염과 동시에 슬그머니 멀리 도망가 있지는 않을까? 차라리 그녀가 '다이어트는 여성들의 자기개발이자 자신을 사랑하는 표현의 하나이며 부지런함과 건강함의 상징, 밝은 성격과 젊음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라고 발언했다면 당선범주에 더 가까이 다가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녀의 발언은 '미의 대전'이라는 유치한 게임을 소비하는 다수권력인 우리사회 전반적인 지배이데올로기 가부정적 사회구조의 비위와 요구사항에 부합되어 '솔직함, 당당함, 지성미'로 포장될 것이다. 기호 0번의 전자의 발언은 그 영광스런 미스코리아 대회 측이 '전인격'적인 후보자를 꼽는다며 대외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허울좋은 명목, '진선미'와는 거리가 멀다고 판단될 소지가 높은 것이다. 관음증 충족의 유치한 왕관놀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미스코리아대회든 에로미스코리아 대회든 훌륭한 여인들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춘향, 황진이 선발 대회이든 이러한 미인대회들은 분명 권력계층화를 전제로 한다. 아무리 미와 거리가 먼 못난이 총각이나 배가 남산만한 중년 아저씨들이라도 개인적인 여성에 대한 욕망의 환타지를 풀어내며 후보 여성들에 대해 누구의 얼굴과 몸매가 더 낫고 못 나고를 평가하며 점수화한다. 미스코리아 대회 방송이 제공하는 시각적 성적쾌락을 소비하는 남성들의 경우, 잠시 동안이나마 후보자들을 욕구실현의 대상으로 삼고 관음의 욕망을 풀어놓는다. 동시에 남성적 가치관에 부응하는 쇼를 행하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심사자라는 권력자의 위치에 섬으로써 여성에 대한 우월의식과 지배본능을 충족한다. 미인대회가 이러한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미스코리아든 슈퍼에로배우 선발이든, 이들 대회의 가장 본질적인 성격은 바로 여성의 성적매력을 소비하고 즐기는 '관음'의 쾌락 추구다. 미인대회는 여성에 대한 이 '관음과 지배'의 욕구를 공식적으로 충족하는 행사이다. 이를 숨기며 이 놀음을 연명해가기 위해 언론들은 '지성과 미의 겸비'니, '21세기가 요구하는 당당한 여성선발'이니 하는 미사어구로 치장하며 변명하고 있지만, 이러한 게임을 욕구충족 수단으로 즐기려는 자와 상업적 목표와 권력감을 충족하려는 주최측간 성립된 암묵적인 합의하의 속고 속아주는 각본은 더 우스운 희극을 탄생시킨다. 물론 이 행사가 브라운관상에서 관음을 즐기는 (남성)시청자들의 환상이나 소유화욕구를 실제 현실에서 실현해주지는 않는다. 그런 직접적인 실현화와의 거리성과 시선적 폭력이 곧 물리적인 폭력으로 표면적으로 잔인하게 가시화되지 않는다는 사실로서 이 희극행위가 '여성성의 상품화'와 몸을 소비하는 완화된 형태의 성적매매행위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극구 부인한다. 하지만 이러한 미스코리아로 상징화되는 여성에 대한 성적대상화와 욕망의 환타지는 스스로 대상화에 나선 여성들에게만이 아닌 인류의 절반인 모든 여성들을 평가하는 공식적인 가치기준으로 세뇌화 되게된다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한국의 미의 대표라는 타이틀은 한국의 가장 훌륭한 여자라는 비상식적인 공식을 입력시키는 것이다. 영광스럽기엔 너무도 음모적인 미스코리아 왕관의 타이틀로 요약되는 부와 명예, 연예계 진출의 기회를 따내 신데렐라로 서겠다고 나선 그들에게만이 아닌, 모든 여성, 한국 여성들에게 부여되는 욕망이 되고 우리사회의 가부정적인 여성 평가기준과 가치관을 공고히 하는 작업을 충실히 수행한다. 이렇게 키 크고 가슴 큰 여자가 제일 인기가 좋다는 식의 편협한 가치관으로 여성들을 옥죈다는 것만이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근본적으로, 여자는 그 가치 자체를 수영복 입혀서 번호표 달고서 잴 수 있는 노예시장에 상품가치를 재듯 재단할 수 있는, 이를 통해 많은 여성들에게 이러한 자신들의 욕구로 조종되는 가치의 절대화의 사고를 주입시킬 수 있을 거라는 사고방식이 지금 이 시대에도 변명을 뒤집어쓴 변형된 모습으로 통용되며 신세대들에게 주입되고 있다는 사실도 문제다. 미스코리아 대회의 획일화되고 국적 불분명한 서구화된 기준의 여성들이 한국의 미를 대표한다는 건 어폐가 심하며, 그리고 명분 없는 왕자들의, 공주 뽑기 파티의 왕관놀음에 상금을 줄여야 한다. 인류 절반의 자유와 인격적 존엄을 오히려 훼손하며 인류의 휴머니즘과는 거리가 먼 행사를 위해 엄청난 규모의 돈을 대는 스폰서들은 좀더 문화적 가치가 있는 이벤트를 위해 자금을 돌리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이 시대에 공연예술, 문학과 출판 등등의 문화 예술분야가 얼마나 고전을 면치 못하며 얼마나 힘겹게 연명하고 있는가도 생각해 볼 일이다. 정순영 기자 jsy@sisa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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