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주여성 리사의 솔직담백 인터뷰

지난해 결혼한 100쌍 가운데 13쌍이 외국인 배우자를 맞을 정도로 국제결혼은 이제 자연스러운 사회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다문화가정을 바라보는 서선은 여전히 곱지않다. 외국인 배우자들이 한국사회에 적응하는데도 필요한 지원 프로그램이 체계화되어 있지 않다. 특히 가정폭력과 부부갈등 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결혼이주여성들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 한국 남성과 결혼했다 남편에게 흉기로 찔려 숨진 베트남 여성 탓티화앙응옥(20) 씨 사건이 그 단적인 예이다.

<시사신문>은 지난 11일 이주여성들의 결혼생활과 다문화가정의 현주소를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현재 한국으로 시집 온지 6년째라는 리사(30,필리핀)를 만나 얘기를 들어보았다.
 

 

 

“쉬는 날이라 집안 청소 좀 하느라고 늦었어요.”

인터뷰를 하기로 했던 시간을 조금 넘겨 나온 리사는 능숙한 한국말로 이렇게 첫마디를 건넸다.

외모는 전형적인 필리핀 사람이지만 말투는 평범한 한국아주머니와 전혀 다를 게 없어 보였다.


2004년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한국으로 시집온 리사는 이제 결혼 한지 6년이 다되어 간다고 한다. 리사는 기자에게 ‘이채빈’이라는 한국이름으로 나온 주민등록증을 내보였다.

“결혼하고 6년째 화곡동에서 살고 있어요. 성당을 다니다 보니 길거리에서 자주 부딪히는 주민들과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될 정도로 많이 친해졌어요.”

리사의 지금 남편의 형 부인도 필리핀사람이라고 한다. 가족 중 2명이나 국제결혼을 한 것이다. 리사가 한국에 와서 살게 된 것도 아주버니와 결혼한 형님의 소개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결혼하기 전 필리핀 마닐라에서 가사도우미 일을 했던 리사. 그녀는 한 다리 건너 알게 된 형님의 권유로 자신의 이력서를 결혼상담소에 신청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어서 안하려고 하다가 형님의 권유에 이력서를 제출했죠. 솔직히 외국사람이면 얼굴이 가장 먼저 궁금할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서로 비디오로 얼굴을 찍어 보내 얼굴을 익힐 수 있었죠”라며 “남편의 실물은 결혼할 때 처음 보게 됐어요”라고 리사는 말했다.

한국 사람과 결혼할 때 두렵지 않았냐고 묻자 리사는 “처음에는 무서웠죠. 제가 결혼했을 당시 나이가 22살이었으니까 어리기도 했죠. 하지만 워낙 필리핀에 계시는 부모님이 형편이 좋지 못해서 제가 일하면서 월급의 일부를 드리고 있었던 상황이었어요”라며 “결혼해서 한국 가면 남편이 준 돈 말고도 제가 한국에서 일하면서 도와드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라고 어린 나이에 외국인과 결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을 털어놨다.

그러나 리사는 남편을 처음 보았을 때 낯설지 않았다고 한다.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예전부터 알았던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그게 신기하다고 생각했죠”라고 남편과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리사의 남편은 결혼하기 전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화상을 입어 3년 정도 병원치료를 받았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혼할 당시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이 호전된 상태였다고.

또한 리사는 결혼 할 당시 가족과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에게 결혼사실을 뒤늦게 알렸다고 한다.

“부모님과 통화하기가 힘들어서 주로 편지로 연락을 주고받았어요. 엄마가 제 결혼소식을 들으시고 처음에는 무척 걱정 하셨죠.”

리사의 부모님은 1998년 당시 한국으로 시집온 필리핀 여성이 한국인 남편에 의해 살해된 사건을 떠올리며 처음에는 반대를 많이 했다고 한다.

리사의 어머니는 ‘리사,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한거니?’라고 물었고, 아버지는 무척 화를 내셨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아버지도 이미 결혼했으니 잘 살라고 허락했다고.

리사의 가족은 부모님과 동생 3명을 포함해 모두 6명이다. 리사가 맏이이기 때문에 어려운 가정형편상 일을 해서 부모님을 도와 드려야만 했다.

리사는 이러한 어려운 가정형편이 한국으로 시집오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고 담담히 털어놨다.

리사와 남편의 나이 차이는 15살이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만큼 결혼을 결정하기까지 쉽지 많은 않았을 것이라는 기자의 생각과는 달리 오히려 리사는 나이차이가 나서 좋다고 했다.

리사는 “남편이 때론 아버지 같기도 하고 오빠 같기도 해서 나를 잘 이해해 주는 것 같아요”라며 “저보다 남편이 살림을 더 잘해서 잘 도와주는 편이예요”라고 은근히 남편자랑을 늘어놨다.

필리핀에서 남편과 결혼을 한 뒤 한국에 온 리사가 처음 겪었던 문제는 음식이었다.

“처음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김치 냄새 때문에 힘들었어요. 너무 매워서 잘 먹지도 못했거든요. 더구나 결혼하고 얼마 안 돼 임신을 해서 입덧이 겹치면서 음식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죠.”

리사는 현재 시어머니와 남편, 그리고 5, 6살짜리 두 딸과 함께 화곡동에서 6년째 살고 있다.

시어머니와 살면서 고부갈등은 없었냐고 묻자 리사는 “저희 시어머니 사투리 때문에 힘들었죠. 심부름을 시키시는데 설탕을 사탕으로 말하셔서 제가 사탕 없다고 하니까 왜 사탕이 없냐고 화를 내셨던 적이 있어요. 그 이후로 시어머니와 같이 한글교실에 나가게 됐어요”라며 활짝 웃었다.

이어 리사는 처음 한국에 와서 돈쓰는 방식부터 필리핀과 달랐다고 한다.

리사는 “필리핀에는 저축이라는 개념이 없어요. 돈을 벌면 필요한 곳에 다 쓰는 편이죠. 그런데 한국은 일정부분 저축을 하고 나머지 돈을 가지고 생활비로 쓴다는 게 이해가 안갔어요. 어렵기도 했고요”라고 한국에 와서 처음 겪었던 문화적 차이점을 털어놨다.

리사는 현재 서울 글로벌 센터에서 다른 결혼이주여성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을 상대로 통역을 도와 상담원으로 일하고 있다.

리사가 한국말을 좀 더 배우기를 원하는 이유도 필리핀사람과 한국사람 간의 거리감을 좁히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리사는 여러 곳의 다문화 지원센터에서 한글을 배웠다고 한다.

“혜화동에 있는 미리암 센터라고 하는 곳에서 선생님이 나오셔서 이주여성 친구들과 같이 교육을 받기도 해요.”
리사는 지금도 한국말 중 존칭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존칭에 대해 많이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남편이 항상 제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해도 된다고 용기를 줘요. 한국 사람도 한국말 잘 모르는 사람 많다고 하면서...”라고 남편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얼마 전 있었던 베트남 신부의 피살사건에 대해 리사는 “무서운 일이예요. 그렇지 않아도 제가 일하고 있는 서울 글로벌 센터에 베트남 동료가 있는데 같은 나라 사람이 당한 일이라서 그 친구는 더 힘들어 했어요”라며 “하지만 내 생각에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다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필리핀에도 나쁜 남자가 많기 때문에 한국 사람이 다 나쁘다고 할 수는 없죠”라고 말했다.

이 같은 사건들이 발생할 때 마다 이주여성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리사에게 결혼이주 여성의 어려움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결혼이주여성의 어려움은 남편으로부터 폭행을 당해도 이혼의 주도권은 남자가 가지고 있다는 게 문제예요. 국적을 취득하기까지 2년 정도가 소요되는데 그 사이 남편이 이혼소송을 해버리면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여자는 남자의 결정에 따라야 된다는 거예요”라고 이주여성들에 대한 법, 제도적 차별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한국 국적 취득위해 결혼

이주여성들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도 쉽지 않은 데다 다는 게 라사의 설명이다.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남편이 일정적인 재산이 있어야 하고 필요한 서류도 많다고 한다. 또한 살고 있는 관할 동사무소에서 직원이 1년3개월 정도의 기간 동안 3, 4번 정도 조사를 나온다고 알려줬다. 이렇게 오랜 기간 검사를 하는 이유는 이주 여성이 정말 결혼을 하고 사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는 것.

리사는 한국으로 시집오는 외국여성들 중 한국 국적 취득이 주목적인 사람이 있다고 귀뜸해 줬다. 그런 외국이주여성 때문에 결혼해서 잘살고 있는 이주여성을 바라보는 시선도 나빠졌다고 했다.

리사는 “결혼을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단순히 돈을 번다고 생각하고 오는 이주여성도 일부 있어서 문제예요”라고 언급했다.

리사는 다문화 지원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말문을 열었다.

리사는 “우선 의사소통의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것 이 중요해요. 저도 처음 의사소통이 안돼서 생겨난 문제들이 많았거든요. 현재 많은 다문화 지원센터에서 한글교실을 여는 건 좋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문화에 대한 교육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다문화라고 하면 이주여성의 나라에 대한 이해도 필요한데 그런 교육을 해주지 않아요. 부부가 서로의 나라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일어나는 일들이 많거든요”라며 일방적인 한국문화만 강요하는 다문화교육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리사는 두 딸에 대한 교육도 고민 중이라고 했다. 한국에 와서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자신도 당해봤기 때문에 더욱더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했다.

“학교에 가면 아이들이 ‘너네 엄마 어느 나라 사람이야’라고 물어본다고 하더군요. 필리핀사람이라고 하면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아이들이 싫어한다고 들었어요.”

자신 또한 한글교실을 다니면서 센터에서 자신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하는 것을 들었던 경험이 있었던 터라 더욱 걱정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한국 사람은 미국 같은 잘사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은 좋아하면서 나 같이 못사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은 업신여기는 경우가 있어요.”

리사는 두 아이에게 필리핀어와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다문화 가정의 장점 중 하나가 2개 국어 이상의 언어교육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 살면서 겪었던 안좋았던 기억에 대해 묻자 리사는 “다문화 가정을 싫어하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바로 앞에서 싫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 내가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런데 나는 다 알아들으니까 기분이 안좋았죠”라고 심각한 표정이 지어보였다.

리사에게 앞으로 이루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었다.

그녀는 “한국말을 더 잘해서 지금하는 상담일을 더 잘하고 싶어요. 무엇보다 우리아이들이 나중에 내가 필리핀 사람이라고 해서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사랑스러운 엄마라고 생각해 주기를 바래요”라며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끝으로 리사는 “돈보다는 행복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나라 사람과 만나 다문화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지만 열심히 살면 행복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요”라고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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