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개각' 후폭풍 정권 2인자 시대 개막인가

이명박 대통령이 국무총리를 비롯 9개 부처 장관을 교체한 ‘8.8 개각’을 놓고 정치권의 평가가 엇갈리면서 이번 개각에 따른 정국의 방향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번 개각을 “화합과 소통, 친서민 개각”이라고 환영한 반면 민주당 등 야당은 “헌정 사상 최악의 개각, 친정체제 구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한나라당내 친박계에서도 “친이체제 속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며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하지만 일각에선 이번 개각의 의미를 다른 시각에서 찾고 있다.

‘정권의 2인자’로 불리는 이재오 의원이 지난 재보선에 당선된 뒤 불과 11일만에 특임장관에 내정된 것을 두고 여권의 하반기 정국 구상과 연결시켜 ‘개헌 국면’으로 진입하기 위한 수순이라는 것이다.

이번 개각의 내용과 배경, 그리고 이에 따른 향후 정국 추이를 관측해 본다.

먼저 이명박 대통령은 신임 국무총리에 만 48세인 김태호 전 경남지사를 내정했다.

김 내정자가 국회에서 인준을 받게 되면 지난 3공화국 당시 45세였던 김종필 전 총리에 이어 39년 만에 40대 총리가 탄생될 전망이다.

김 총리 내정자는 서울대 농업교육학과를 나와 경남도의회 의원과 거창군수를 역임했다.

정무와 대북관계 등을 담당할 특임장관에는 ‘정권의 2인자’로 불리는 이재오 의원이 내정됐다.

韓 “화합, 소통, 친서민, 젊음”
民 “헌정 사상 최악의 개각”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는 이주호 교과부 차관이 승진 기용됐으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는 신재민 문화부 1차관이 승진 발탁됐다.

농림수산부 장관에는 박근혜 전 대표의 비서실장이었던 유정복 의원이, 보건복지부 장관에는 진수희 의원이 기용됐다.

또 고용노동부 장관에는 박재완 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이, 지식경제부 장관에는 이재훈 전 지경부 차관이 내정됐다.

대신 교체가 점쳐졌던 장수장관들 중 외교, 국토, 통일, 국방부 장관이 유임됐다.

유명환 외교장관은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있고, 정종환 국토부 장관은 4대강 사업 추진 등 현안의 연속성을 고려한 선택으로 보인다.

현인택 통일, 김태영 국방장관 등 외교안보부처 장관들도 유임돼 대북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 같은 이 대통령의 이번 개각에 대해 정치권의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여권 내부에서도 친이계와 친박계에 따라 반응을 각각 달리했다.

당장 한나라당은 “변화, 화합, 소통, 친서민, 젊은 개각”이라고 개각의 의미를 확대시켰다.

김무성 원내대표는 “친서민 정부정책이 안정적으로 추진되게 개각이 구성됐다”면서, 김 총리 내정자에 대해서도 “검증된 행정력과 정치적 감각으로 젊은 내각을 안정되게 이끌어 나갈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반면 친박계 반응은 예민했다.

친박계 현기환 의원은 김태호 총리 내정자, 이재오 특임 장관을 겨냥해 한 라디오에 출연 “박 전 대표와의 건전한 경쟁을 해쳐 독선과 오만함이 우려된다”고 털어놨다.

농림부 장관에 기용된 친박계 유정복 의원에 대해서도 “친이체제 속 구색 맞추기”라며 냉담한 반응이 친박계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야권의 평가는 더욱 싸늘하기만 했다.

민주당은 “헌정 사상 최악의 개각”이라며 인사청문회에서의 철저한 검증을 벼르고 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헌정 사상 최악의 개각”이라면서 “이번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김태호 총리 내정자와 장관 내정자들의 도덕성과 자질 등 모든 문제를 검증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유선진당도 “노골적인 친정체제 구축 의도가 드러났다”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고, 민주노동당은 “쇄신을 요구했던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다”고 혹평했다.


겉으론 ‘세대교체론’
내면엔 ‘개헌 추진’

물론 일각에선 이번 개각에 대해 상당히 공감하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새 내각의 상징인 김태호 총리 내정자가 40대 젊은 인물로, 총리를 포함한 17개 부처 장관의 평균 연령이 지난 내각 보다 훨씬 젊어졌다.

또 ‘부자 정권’이라는 지난 내각과는 달리 이번 개각으로 국무위원들의 평균 재산이 크게 줄어든 것도 들고 있다.

이 같은 점을 들어 정가에선 “이번 개각의 의미는 한마디로 ‘소통과 통합의 젊은 내각’”이라면서 “이를 바탕으로 친서민 중도실용 중심의 국정운영 기조를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개각 속에 ‘숨은 그림자’를 들여다보면 정권 후반기 ‘친정체제 강화’라는 분석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권의 2인자’로 불리는 이재오 의원의 특임 장관, 이 의원계의 진수희 의원의 보건복지부 장관, 현 정권 교육정책의 실무자 이주호 교육부 차관의 장관 승진, 박재완 전 국정기획수석의 노동장관 기용 등이 ‘친정체제 구축’이라는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박근혜 전 대표의 최측근 유정복 의원의 입각에 대해선 “친박계에 화해의 손짓을 보냈다”는 해석과 “친정체제 구축을 ‘물타기’ 하기 위한 인사”라는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정가 한 관계자도 “이번 개각의 ‘키워드’는 임기 후반기 국정운영 장악을 위한 실세들의 전진배치”라면서 “그 중에서도 이재오 장관의 역할이 향후 가장 주목된다”고 예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난 재보선에서 당선된 지 불과 10여일만에 특임 장관으로 돌아온 이재오 의원의 향후 중요 역할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정가에선 이 의원이 현 정권의 국정과제인 4대강 사업에 이어 개헌, 선거구제 개편, 보수대연합, 남북관계 등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이란 말들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중에서도 당장 올 가을부터 개헌 추진에 적극 나설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하다.

친이계측도 이에 대해 “이 의원의 전격 기용은 개헌론과 연계되어 있다”고 해석하고 있고, 친박계 진영도 “이 대통령이 그간 개헌을 하반기 중요 국정운영 과제로 제시한 만큼, 이 장관을 통해 이를 추진하려 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이 의원이 장관으로 정식 임명되면 그간의 그의 정치역량이나 추진력으로 볼 때 ‘개헌논의 공론화’는 시간문제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이 장관이 개헌문제를 주도할 것이라는 예상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표출하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그는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개헌 문제는 숫자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고, 권력자의 입장에서 권력체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야당에서 그걸 순수하게 받아들이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 장관의 ‘개헌 추진 가능성’과 관련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개헌 논의는 여야 의원모임인 미래한국헌법연구회가 주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 장관의 ‘개헌 추진 가능성’과 관련 여권 수뇌부에서 이를 둘러싸고 벌써부터 미묘한 갈등이 표출되기 시작된 양상이다.

결국 이번 ‘8.8 개각’의 의미는 겉으론 ‘세대교체론’을 내세운 김태호 총리 내정에 있지만, 이면에는 ‘정권 2인자’로 알려진 이재오 의원의 특임 장관 역할이 ‘개헌 추진’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당·청 관계는 물론 여권 내부의 역학 구도가 주시되는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