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진은 눈먼 장님이었나?

천문학적 손실·직원들 비리에 전전긍긍
[시사포커스=양민제 기자]

주로 저축은행에서 발생하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대출이 국내 대형은행에서 잇따라 발생하면서 금융권이 큰 충격에 빠져 있다.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이 진행한 지난해 종합검사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지난 2002년부터 6년간, 4조2000억 여원의 부동산 PF대출에 대해 부당 지급보증을 해오면서 은행 내규인 여신업무지침을 위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우리은행은 여신협의회 등의 승인도 거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6년 동안이나 지속적으로 내규 지침이 위반됐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의 예방 조치 등이 없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를 질타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무엇보다도 사전 리스크(risk) 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은행 경영진의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게다가 우리은행은 부동산 PF시행사가 발행한 자산유동화 기업어음(ABCP)을 갚지 못할 경우 이를 대신 갚아주거나 대출로 전환시켜준다는 이면 계약을 맺은 것으로 드러나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이처럼 부당하게 지급 보증한 부동산 PF 거래에 대해 우리은행은 작년과 올해 각각 2900억, 2000억 원 정도의 대손충당금을 쌓았다. 하지만 아직도 9200억여 원의 부실화가 우려되고 있어 사후관리를 진행 중에 있다. 특히 이 중에는 우리은행 신탁사업단이 중국 베이징 소재 상업용 건물(1200억 원), 양재동 물류센터(1800억 원) 등과 맺은 부동산 PF대출 매입 문제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우리은행은 국민의 세금인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이라는 점에 있어서, 허술한 투자 위험 관리와 부당 지급 보증, 내부 규정 위반 등을 일으켰다는 자체가 가벼이 여길 수 없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국민들의 혈세가 투입됐다는 것에 있어 좀 더 막중한 책임감을 가져야 할 은행이 외형 부풀리기에만 집중하고 내부적인 문제는 게을리 했다는 점에 대해 우리은행에 대한 질책은 쉽게 끝나지 않을 형국에 놓여있다.

직원들 도덕적 해이 극치

금감원은 우리은행 신탁사업단의 일부 직원들이 은행 내규를 어기고 부동산 PF 시행사가 발행한 ABCP에 대해 지급보증을 해주는 이면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수재, 배임, 횡령 등 개인 비리를 저지른 혐의를 포착했다.
이에 우리은행은 비리에 연루된 직원들에 대해 검찰에 고발 조치하는 한편, 신탁사업단장 해임, 신탁사업부장 지점 전보 조치 등의 내부 징계를 단행했다. 특히 경찰 수사 과정에서 담당 팀장의 경우 횡령 혐의가 인정됐으며, 그 외의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도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경찰 수사를 통해 징계를 받은 우리은행 신탁사업단의 비리 혐의, 이면 계약 체결 등으로 맺은 거래는 총 4000억 원대에 달해 결과적으로 우리은행은 큰 손실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와 관련해 우리은행 홍보팀 관계자는 “이번 일은 사고가 아닌 부실”이라고 반박하면서 “물론, 향후 몇 년의 상황을 미리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우리은행이 처음 부동산 PF대출을 할 때에는 부동산 시장이 매우 좋았었다. 부동산 PF대출을 많이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여신 업무 지침을 지키지 않고 부당 지급보증을 한 행위와 일부 신탁사업단 관련자들의 개인 비리 혐의에 대해서는 “그에 대한 내부적인 징계 조치 등을 내렸고, 시스템을 강화하고 보완하는 등의 모습으로 대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번 사태는 크게 리스크(risk) 관리와 직원들에 대한 교육 및 통제 등에 있어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향후 우리은행은 제도 시스템 보강 등 규제적인 방안을 통해 리스크를 철저히 관리하고, 직원들이 발생 가능한 리스크를 최대한 정확하게 예상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개인 비리 혐의를 저지른) 직원들에 대한 특별 통제 및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밝혔다.
부동산 PF 대출의 문제는 그동안 저축은행만의 문제로 치부되어왔으나 건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시중은행 등 금융권 전체로 번지는 양상이다.
지난 2000년대 중반 부동산의 가치가 정점에 달했을 때, 부동산 PF 대출은 은행, 저축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거품이 빠지면서 치솟던 부동산 값이 하락세를 면치 못하며, 부동산 PF 시행사들은 지급 불능 사태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에 금감원 측은 우리은행에 대한 부동산 PF대출 부실 문제에 대해 전 금융권과 더불어 “올 하반기에 예정된 우리은행 종합검사 때, 내부통제 시스템에 대해 다시 점검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또한 금감원은 “다른 은행에 대해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는지 상세히 파악할 것”이라며, “앞으로 연례적으로, 상시적인 금융 감독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금융기관 전체의 건전성을 확립할 것”이라고 덧붙여 향후 위험 요인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부동산 PF대출은 앞으로 부동산 및 건설 경기 침체가 지속될 경우 부실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가능성이 더 커다는 점에서 금융권을 위협하는 시한폭탄으로 지목되고 있다.

 

취재/양민제 기자 minje3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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