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 최대 지략가… 惡行도 선명”

우리가 근대사에서 중국을 말하려면 모택동(毛澤東)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모택동의 공과는 여러 면에서 긍정과 부정의 양면으로 바라볼 수 있겠지만 어쨌든 그가 큰 인물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2만5천리를 행군한 이른바 대장정(大長征)을 거쳐 장개석(蔣介石)을 중국 본토에서 몰아내고 중화인민 공화국을 수립한 의지의 인물이다.
그는 매우 서민적인 풍모를 가진 사람이지만 성품 또한 그러했다. 그는 평생을 두고 헌 옷을 입기를 즐겼고, 심지어는 꿰맨 옷이나 양발을 착용하고 외국 손님을 맞기도 했다.
또 특이하게도 새 신발을 신기전에 사병들에게 신겨서 어느 정도 낡아진 다음에 신었다고 한다. 그것이 ‘촌놈’인 자기에게 맞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옷 한 벌 아끼면 실탄 한 상자를 얻는 것이다.”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이처럼 근검절약을 솔선수범함으로써 그는 민중과 부하들로부터 충성을 이끌어 내었다. 또한 그는 중공군을 한국전쟁에 참여시키면서 자기의 아들을 딸려 보냈고, 결국 아들은 한국전쟁에서 전사했다.
그는 대단한 독서가에다 매우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한시(漢詩)를 잘 지어 시집을 내었으며, 논어(論語)에도 정통했다고 한다.
그는 나중에 난 두 아들을 각각 이눌(李訥 ), 이민(李敏)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그것이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인 “어눌이민행(語訥而敏行): 말은 느리게 하고 행동은 빠르게 하라.” 에서 딴 것이라고 한다.
모택동은 일주일에 30시간을 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어쩌다 한두 번 많이 잔 경우가 35시간 정도였다. 일에 몰두하면 그는 먹고 자는 것을 잊었다고 하니 글자 그대로 망침폐식(忘寢廢食: 이 또한 공자의 말) 그대로 이었다고 한다.
모택동은 우리 민족과도 깊은 관계가 있는 인물이다. 한국전쟁의 참전을 결정함으로써 남북 분단을 고착화시켰기 때문이다.
모택동에 대해서는 어떤 사람은 찬양하고, 어떤 사람은 비난한다. 앞에 든 이야기는 그를 장기간 모셨던 비서의 저작에서 발췌한 것인데, 그는 그 책에서 모택동이야말로 천하의 영웅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책에서는 다르다. 그는 마치 김일성 부자에 대해 ‘아버지’, 또는 ‘위대한 장군님’이라고 부르는 북한 사람들과 그들을 비난하는 재향군인회 사람들을 보는 것만큼 다르다.
모택동을 신격화가 시작되자 그에 반기를 드는 자들이 있었다. 그러자 모택동은 고도의 전략을 세웠다.
마침 소련에서는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을 비난하고 있었다. 이 기회를 보아 등소평(鄧小平)이 지식인들을 후대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자 모택동은 이에 찬성의 뜻을 표했다.
1965년 모택동은 다시 한 번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 자기는 뒤로 빠져 숨은 상태에서 그는 임표(林彪), 강청(江淸)등을 내세워 자기 권력에 장애가 되는 자들을 숙청하기 위해 소위 홍위병(紅衛兵)을 동원한 것이다.
임표가 모택동을 대신해 수정분자를 제거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학생들을 자극하였고, 학생들은 홍위병을 조직하고 모택동에게 충성을 맹세하면서 전국을 시위로 뒤덮었다. 1966년 8월, 모택동이 붉은 완장을 차고 천안문 광장에 나타나자 백만 명의 홍위병들이 천지가 떠나갈듯한 목소리로 “모 주석 만세!”를 외쳤다.
홍위병들은 거의 미쳐있었다. 그들은 국가기관에 속한 공무원이 아니었지만 이제 모택동으로부터 인가를 받은 셈이었다. 모택동은 그들이 일을 벌일 수 있도록 4개월 동안 학교의 문을 닫았다. 이른바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이 시작됐다.
가족관계는 산산이 조각났다. 아들은 아버지를, 아우는 형을. 아내는 남편을 고발하고 비판하였다. 그 과정에서 모택동에게 반발하는 사람들과 중국 체제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모조리 제거됐다.
마치 6.25 당시 좌우가 나뉘고 가족이 흩어져 서로 총부리를 맞대는 참담한 전쟁의 비극이 모택동의 문화대혁명과 비슷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지금도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는 모택동의 초상이 걸려 있다. 그리고 시간을 정해 모택동 시신을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역사는 그를 영웅으로, 또는 정치 모사꾼으로 평가하는 것인 모양이다.
하여간 6.25는 중공군이 개입하는 바람에 남북 분단을 고착화 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모택동은 중국의 영웅이지만 우리로서는 그렇지 않다. 김일성과 합작하여 우리나라를 공산화하려는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서지홍 칼럼니스트 <대구동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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