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TV 자명고 출연 계기로 두각

“사람과 경험을 얻은 것. 어디 가서 돈 주고도 못살 소중한 거잖아요” 자신을 표현함에 있어 진솔하고 담백한 연기자 임병욱. 그는 스스로 천운과 인복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평했다.

뮤지컬 배우이자 탤런트인 그는 연기자로서 첫 드라마에 도전. 연기에 도전한 많은 뮤지컬 배우 들이 비판받고 잘해야 본전이란 소리를 들었지만 그는 다행스럽게도 일단은 합격 통지서를 받아놓은 상태다.

지난 26일 행주산성 한 음식점에서 시사포커스와 인터뷰를 가진 임병욱은 “더 많은 대중과 가까워 질 수 있는 계기”에 끌려 안방극장에 도전장을 던졌다고 밝혔다.
임병욱은 촬영을 시작하기 전부터 많은 준비를 하는 배우로 정평이 나있다. 이번에도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시청자들에게로 나아갈 다짐이다.

그는 87년도에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일에 대한 열정과 자신에 대한 노력으로 발전해왔다. 88서울예술단에서 뮤지컬 1.5세대로 연기와 연을 맺은 이후 다양한 무대에서 스펙트럼을 넓히며 자신만의 연기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의 늦은 나이에도 공중파 탤런트에 도전장을 던질 수 있었다. 이후 SBS TV 자명고의 출연을 계기로 두각을 나타내고, 지금은 인기드라마 산부인과에 출현하는 등 연기자의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내성적인 소년 악기와 음악을 만나다

임병욱은 독립운동가 출신인 아버지를 둔 내성적인 소년이었다. 3대독자인 아버지가 59살 때 얻은 늦둥이이기 때문에 위로 누나만 다섯명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어린 시절에는 남들 앞에 나서기를 주저하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는 지금도 어린 시절에 대해 “전 굉장히 내성적인 사람으로 컸는데, 지금은 배우라는 직업을 하고 있으니 참 재미있죠”라고 미소 지었다.

그가 자신의 내성적인 성격을 극복하기 시작한 것은 악기를 다루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우연한 기회에 교회에서 처음 기타와 피아노를 배우면서 음악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곧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일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는 음악과 함께 자신의 재능을 키워나가며 19살부터는 레스토랑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올드팝을 부르면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악기에 몰입하며 노래를 부르게 되자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게 되었고 자신만의 음악공간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그는 성악을 전공한 뒤 84년 KBS합창단에 출연을 시작했다. 그러나 합창단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다. 1986년 북한예술단이 내려와서 성황리에 공연을 마치고 가자 한국도 정부차원에서 가장 큰 예술단을 만들기 위해 전국의 재능 있는 인물들을 모집을 하기 시작했다.

엄격한 기준으로 88서울예술단이 탄생되었고 임병욱은 이곳에서 뮤지컬과의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88서울예술단에 지원한 동기에 대해 그는 “늘 마음속으로는 무대에 서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뛰어난 예술단원들을 모집한다고 해서 공개적으로 오디션을 봐서 들어간 것이다”고 대답했다. 임병욱은 가수 생활을 청산하고 88서울예술단으로 들어가서 거기서부터 다시 연기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뮤지컬 배우로 거듭나기까지

뮤지컬 배우로 거듭나면서 그가 굉장히 힘들었던 것은 춤이었다. 기본적으로 전공이 성악이었던 그에게 춤은 낯선 장르였다. 하지만 뮤지컬은 연기와 춤 노래의 삼박자가 맞아야만 제대로 된 기량을 보여줄 수 있는 장르였다. 임병욱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브레이크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지독한 연습과 노력이 지나자 자신의 몸이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결국 춤을 극복하고 나서야 세 가지를 모두 소화할 수 있었고 뮤지컬 배우로 도전할 수 있었다.

88서울예술단에서 뮤지컬을 배우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그는 프리랜서로 배우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이곳저곳에서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다양한 배역을 소화해 나갔다. 오랜 세월 뮤지컬과 연극을 통해 경험을 쌓던 그가 공중파 배우에 눈을 돌린 것은 최근이었다. 많은 연예인들이 대중들의 인지도를 가지고 뮤지컬계에서 큰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서 느낀 점이 많았다고 한다. 결국 임병욱은 대중들에게 자신을 알리고 사랑을 받고 싶다는 생각에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공중파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50대 신인 공중파에 진출하다

그를 공중파에 이끌어준 것은 SBS 자명고의 연출자인 이명우 감독이었다. 임병욱은 늦은 나이지만 자명고에서 환관 역할로 연기 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TV 연기자는 뮤지컬 배우와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이 달랐다. 뮤지컬에서는 연습과정이 있어서 3개월 혹은 6개월 동안 준비를 하고 공연을 하지만 TV는 연습의 경로가 따로 없고 대본을 주면 대본대로 리허설을 하고 연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첫 TV연기에 대해 그는 “내가 연기를 하면서도 무얼 하는지 잘 모를 정도였죠. 나중에 티비를 보면서 편집된 것을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라며 크게 웃었다.

존경하는 사람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뮤지컬 배우로서는 이인철 선배를 존경합니다. 어느날 티비에서 그분의 연극을 보고 순간적인 재치와 코믹 부분에 감탄 했습니다”라고 대답한 뒤, “공중파에는 연기의 모든 것을 갖춘 문성근 선배를 존경합니다” 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그동안 악역을 맡아 본적이 없는데, 악역이나 괴짜 역을 해보고 싶고, 이런 비중 있는 역할을 통해 인지도를 쌓아 가수지망생인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라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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