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위한다더니, 뒷돈 챙기기 ‘급급’한 공무원

농기계 임대사업을 둘러싸고 농기계 업체와 공무원 사이에 리베이트가 일어났다. 정부에서 고가의 농기계를 대신 구입해 농업인에게 빌려줌으로써 농업인들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된 농기계 임대사업이 공무원들의 ‘뒷돈 챙기기’의 장으로 변질된 것. 경찰에 적발된 공무원 중에는 예산을 집행하는 농림수산식품부 간부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서울, 부산, 대전, 광주를 제외한 전국의 자치단체 공무원들이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적발된 업체만 해도 6곳이나 된다. 경찰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업체 3곳을 추가수사 중에 있어 토착비리에 연루된 공무원들은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본지가 리베이트의 장으로 변질된 농기계 임대사업의 현주소를 긴급진단 해봤다.



농기계 임대 사업에 필요한 농기계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업체로부터 뇌물과 향응을 받은 농업 분야 공무원 83명이 경찰에 적발됐다.

농기계 구입과정에서 업체에게 뇌물·향응 받은 공무원 83명 적발
서울, 부산, 대전, 광주 제외한 전국의 자치단체 공무원 모두 포함
공무원 도덕 불감증 떠올라, 일부 공무원 “로비 안 받았다” 주장
예산 집행 농림수산식품부, 임대사업 관련 지역별 임대 현황 몰라


충남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20일 서울, 부산, 대전, 광주를 제외한 전국 시군농업기술센터 66곳의 공무원 83명 가운데 충남 천안시농업기술센터 6급 직원 장모씨(54)등 5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나머지는 불구속 입건했다. 또 이들에게 뇌물과 향응을 제공한 혐의로 농기계 제조판매업체 임직원 10명을 적발해 이 중 A업체 대표 김모씨(46)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나머지는 불구속 입건했다.

전국 최대 규모 리베이트

이번 사건은 지금까지 경찰에 적발된 토착비리 가운데 단일 사안으로는 전국 최대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경찰의 수사는 한 시민의 제보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양철민 충남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한 업체가 공무원들에게 로비를 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그러면서 다른 업체가 연루 돼 있다는 것을 알았다. 추가로 5개의 업체를 더 조사해 총 6개의 업체를 조사했고 현재 3개의 업체를 더 조사 하고 있다”며 “혐의를 받고 있는 업체 관계자 10명과 공무원 83명 이외에 더 많은 공무원들이 적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씨 등 공무원들은 지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땅갈이와 퇴비살포기, 쟁기, 폐비닐, 콩 선별기, 목재톱밥 기계 등 농기계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농기계 제조판매업체 6곳에서 구매대금의 5∼10%인 4억여 원을 리베이트로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들 중 일부는 지난 2005년부터 최근까지 꾸준히 로비를 받아왔으며, 대체로 500만원선에서 많게는 2000만원까지 금품을 제공받았다. 경찰조사 결과 공무원들은 조달청 쇼핑몰인 나라장터에 올라온 제품을 직접 선택해 구입할 수 있는 권한을 이용해 리베이트를 준 업체의 제품을 사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경찰은 이들 공무원 가운데 50여명이 업체에서 경비를 지원받아 이탈리아나 몽골, 우즈베키스탄 등에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은 물론, 룸살롱 등에서 술 접대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거기다 일부 공무원은 MP3플레이어나 등산복 등 자신들이 필요한 물품을 지정해 업체에 사줄 것을 요구했다.

광역수사대장은 “업체끼리 연계해 해외여행을 보내 주기도 했다”며 “덕분에 다른 업체로까지 수사를 확대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해 전국적으로 농기계 임대관련 토착비리가 퍼져있음을 짐작케 했다.

비리간부 누군지도 몰라

또한 이러한 ‘농기계 임대사업 관련 토착비리’는 지난 2005년부터(정부가 농업기계화사업의 일환으로 전국 시·군 농업기술센터 주관으로 농기계를 구입해 저렴한 수수료를 받고 농민들에게 농기계를 임대해 주도록 하면서) 지속적으로 나타난 비리라는 지적이다.

광역수사대장은 “전국이 한꺼번에 터진 것도 그렇지만, 마치 관행인 냥 공무원들이 업체들에게 로비를 받고 있었다”며 “업체들도 문제지만, 공무원들의 도덕 불감증이 수면위로 들어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거의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혐의를 인정하고 있지만, 일부는 안 받았다고 잡아떼고 있다”며 “비슷한 사례가 더 있다는 첩보를 입수해 농기계 임대사업과 관련된 자료 일체를 농림수산식품부에서 넘겨받아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본지 확인결과 농림수산식품부는 간부의 비리 가담 여부는 물론, 경찰이 적발한 비리 간부가 누군지도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경찰에서 통보한 농림수산식품부 간부 5명이 경찰조사를 받고 있다는 것 외에는 아는바가 없다. 다만 현재 농기계 임대사업 관련자 중에는 경찰조사를 받은 사람이 없어 그 전 관계자일 것으로 짐작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정부에게도 책임이 있다”면서도 개인의 도덕적 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그렇게 따지면 기관의 일이란 게 개인이 하지 않는 일이 어디 있겠냐”며 “제도적으로 문제가 없고 기관이 관리를 잘해도 개인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어 맘먹고 하는 일을 저지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본지가 ‘대책 마련’에 대해 묻자, 그는 “아직은 없다. 제도가 문제인지, 사람이 문제인지,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면 그때 가서 그에 맞는 제도나 처벌을 강구할 계획”이라고 말해 다소 미루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임대사업 관련 지역별 임대 현황을 묻는 질문에 그는 “시·군을 통해 자료를 받아 확인을 하긴 하지만 전체적인 평가나 정리는 하지 못했다. 앞으로 외부기관을 통해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해 예산을 집행한다는 기관이 임대사업의 경제적 효과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의미 퇴색된 임대사업

사실 농기계 임대사업은 농업생산비 절감을 통한 농가소득의 향상을 목적으로 지난 2005년부터 추진된 정부의 정책이다. 농민들의 농기계구입부담을 덜어 생산비부담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지자체별로 시행하고 있는 사업인 것.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농기계 임대사업을 하는 지자체나 농기계를 임대하는 농가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며 “지난 2008년도에 약 3만9000호 정도였던 농가가 지난 2009년도에는 약 5만 농가 정도가 임대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연히 정부의 지원도 늘어났다고 한다. 지난 2005년도에는 10억에서 20억정도였던 소규모 임대사업이 지난 2008년도에는 160억이 지원될 정도로 활성화되고 있다는 게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예산부족 등으로 인해 농민들의 수요를 충분히 감당할 수 없어 예산확충의 문제가 계속적으로 제기되던 사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농민총연맹의 곽길자 정책국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농민들이 바쁜 농사철에 임대할 수 있는 농기계가 부족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며 “임대 순서를 기다리다 지친 농민들이 민원을 해온다”고 전했다.

농업인들은 대체로 “농기계 임대사업은 필요한 사업이며 농민들의 수고를 덜어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지만, 필요한 수요만큼 임대할 수 있는 농기계가 모자라 반발하거나 확충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일부 농민들은 비싼 농기계를 사들이고 부채를 떠안게 되는 경우도 있다. 곽 국장은 “농가의 일손이 부족해 임대사업을 벌인 것인데, 기계마저 빌리지 못한 농민들은 어쩔 수 없이 빚을 내서 비싼 농기계를 산다”며 “가뜩이나 부족한 예산을 공무원들이 축냈을 뿐 아니라 써야 될 예산이 새나가 농민들을 더욱 어렵게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전체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농림수산식품부의 간부까지 뒷돈을 챙겼다는 것에 농민들은 분노하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정부가 영세농, 창업농, 귀농인들에게 영농의욕과 희망을 주기 위해 벌인 농기계 임대사업이, 지자체 공무원의 뒷돈 챙기기 장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따라서 한 농업 전문가는 “임대농기계 구입에 따른 관계공무원들의 불식을 해소하기 위해 엄격한 기준을 정하고 조달청에 구입 의뢰해 추진해야 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해당 지자체는 확정된 농기계임대사업을 조기에 착수해 농업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재정 조기집행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그는 “모든 지원 및 보조 사업은 객관성, 투명성, 공정성을 갖고 추진하여 지역 농업인들에게 고루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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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농민회총연맹 한도숙 의장[미니인터뷰]
썩히는 기계로 예산 낭비하는 정부!


전국농민회총연맹에서 지난 20일 ‘농기계 임대사업관련 공무원 비리사건’을 철저히 수사하고 진상을 규명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제출했다. 이에 본지가 전국농회총연맹 한도숙 의장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농기계 임대 사업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 전국농민회총연맹 한도숙 의장님.


성명서를 제출했다. 이번 토착비리의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돈이면 다 넘어가는 세상이 문제다. 비싼 농기구를 시·군에서 팔아주면 농기계 업자들은 1년 먹고 살 수 있다. 예컨대 2000만원이 넘는 비싼 농기계 하나를 팔면, 500만원 이상이 남으니까 로비를 해서라도 무조건 팔겠다는 거다. 여기에 공무원들이 이런 것들을 은근히 바라는 것도 문제다. 농민에게 부담을 덜 줘야겠다는 생각은 못하고 가격을 싸게 하려는 게 아니라, 업체들에게 이익을 돌려받으면서 실속을 챙기는 고질적인 병폐가 드러난 거라 할 수 있다.


농기계 임대사업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아무래도 농민들이 이해를 못할 정도로 농기계 임대사업이 복잡하다는 데에 있다. 정부는 세 가지 종류의 임대사업 정책을 내놓았지만, 그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활용하는 농민들은 드물다.


이번에 적발된 시·군농업기술센터를 이용한 임대사업의 경우에는 어떤가.

농업기술센터는 비교적 다양한 농기구를 보유하고 있지만 효율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썩히고 있는 실정이다. 예컨대 콤바인이나 트랙터처럼 집에 두고 계속해서 사용해야 되는 기계를 누가 2~3일 빌리냐는 거다. 자연히 활용빈도가 적고 비싼 특수기계를 농민들이 빌리게 되는데 그러한 기계들은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다 보면 시기를 놓쳐 필요한 기계를 사용 못하는 농민들이 더 많다. 농민은 농민대로 시기를 맞춰 필요한 작업이 있는데 필요할 때 임대를 못하고 정부는 정부대로 썩히는 기계가 생겨 예산을 낭비하고 있는 실정이다.


농민들의 불만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불만이 당연히 많다. 그들에겐 농기계를 빌리는 것도 문제다. 시·군에 하나밖에 없는 센터까지 가서 기계를 싣고 와야 하는데, 이동 거리가 멀 뿐 아니라 노인들은 무거워서 운반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급하게 필요해도 쉽게 갈 엄두를 못 내는 거다. 그러다 보면 이용을 안 하게 되고 농민들은 불편을 겪게 된다. 여기서 무거운 기계를 운반하다 다치거나하는 안전상의 문제도 생길 수 있다.


농기계 임대사업이 어떤 식으로 바뀌어야 된다고 보는가.

시·군이 아닌 마을단위로 운영을 해야 된다. 정부의 지원 하에 일종의 ‘기계영농계’를 맺는 거다. 가까운 곳에 농기계를 임대할 수 있도록 두고 언제든지 기계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물론, 특수기계의 경우 마을사람들끼리 협의 하에 순번을 정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기계가 노는 일 없이 쉬지 않고 효율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그러려면 정부의 지원도 더 늘려야겠지만, 농민 스스로의 의식도 변화해야 된다. 흔히 농민들은 농기계를 재산으로 생각해 기계를 개인이 가지려고 한다. 영농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면 농민 스스로가 협력 공동체적 인식을 가지고 농기계를 공동체가 운영할 수 있게 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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