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죽이는데 너만한게 없지?


일자리는 줄어들고 임금은 삭감되는 장기불황. 경제전문가들은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고 전망하고 있지만 여전히 물건 값은 하늘높이 치솟고 있다. 설상가상 신종인플루엔자A(H1N1)는 환절기인 겨울로 들어서며 더욱더 맹위를 떨치는데다 사람들을 집안으로 묶어두고 있어 소비 심리마저 위축시키고 있는 것. 업체들은 한숨을 쉬며 신종플루의 맹위가 한풀 꺾이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가운데 호황을 누리는 업체들도 있다. 이는 외출을 삼가는 사람들을 위한 인터넷 쇼핑몰이나 배달 업체, 신종플루의 특수를 노리는 건강업체들인 것. 거기다 신종플루에 맞선 그들 나름의 전략도 세우고 있어 최근엔 새로운 업체들까지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본지가 신종플루로 인한 업체들의 불황과 호황, 그리고 그가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봤다.



신종플루가 개인생활의 양상을 바꾸고 있다. 집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안으로 불러들이고 손 씻기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반복케 한다. 이젠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모습이 익숙한 풍경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개인 생활 양상 바꾸는 신종플루 여파, 위생 관념 한껏 높아져
회식문화, 조직문화는 물론 일반시민 의식주문화 전반 일대변혁
소비형태 바꿔, 사람 모인 장소 기피하고 온라인 쇼핑몰 이용해
배달·건강업계 호황, 여행·레저·유통업계 불황, 경기회복 둔화감↑


이처럼 신종플루 감염 우려로 국민들의 위생 관념이 한껏 높아지면서 기업체와 각종 단체 및 모임의 회식문화와 조직문화는 물론 일반시민들의 의식주문화 전반에 일대 변혁이 나타나고 있다. 신종플루 확산 추세가 정점으로 치달으면서 송년모임이나 돌잔치가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기되고 여행·레저·유통업계의 연말특수도 실종되고 있는 것. 그에 따라 사람들의 소비형태도 바뀌고 있다.

너 땜에 웃고

일부 네티즌은 신종플루로 가장 이득을 보는 업체로 제약회사를 꼽았다. 그들은 “타미플루를 만드는 제약업체와 독감백신을 만드는 제약업체들이 이득을 보지 않겠냐”며 “신종플루 유행과 더불어 대중시설에 의무적으로 비치하는 손 세정제, 소독제, 마스크를 생산하는 업체들이 많은 이득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 대형마트의 손 세정제 지수는 2분기 231.8, 3분기 991.7로 크게 상승했다. 지난 10월24일∼27일 손 세정제와 체온계 매출도 전주 대비 각각 89.4%, 131.2% 증가했다.

▲ 승무원들이 기내에서 손세정제로 손소독을 하고 있다.


여기에 감염 우려감에 따른 영향을 받지 않는 온라인업체들의 청결용품 매출이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 오픈마켓 옥션의 경우 저번 달 손 세정제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2배 늘었고, 체온계와 락스 판매량은 4배 가까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오픈마켓 11번가도 저번 달까지 소독제 체온계 마스크 등 상품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배 넘게 늘었다. 이에 대해 11번가 관계자는 “가격 메리트도 있지만 고객들이 신종 플루 영향으로 외출을 꺼린 점이 매출 상승 요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처럼 신종플루가 유행하면서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를 기피하게 되다보니 직접 매장에 가서 물건을 구매하기 보다는 인터넷을 이용해 쇼핑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에 덩달아 호황을 누리는 온라인 업계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

실제로 신종플루 확산 이후 쇼핑 패턴 변화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5.4%는 “매장 방문보다는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한다”고 답했다.

너 땜에 울고

그러나 이와는 달리 여행업계는 직격탄을 맞고 있었다. 여행업체들은 요즘 사무실에 전화벨이 울리면 ‘또 예약 취소 전화구나’라고 짐작하고 전화를 받는다는 것. 한 여행사 대표는 “이맘때는 연말 여행을 계획하는 고객들이 예약하는 시점인데, 신종플루 때문에 고객들의 취소 전화가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사이판, 괌 같은 휴양지는 신종플루 ‘안전지대’로 불리지만 인파가 몰리는 인천국제공항에서 감염될 우려 때문에 수요가 줄었다는 것. 그는 “동종업체 사정을 들어봐도 ‘올해 영업은 다 끝난 것 아닌가’라는 우려 분위기가 강하다”며 “불황으로 신혼여행과 기업들의 출장이 줄어든 데다 고환율에 이은 신종플루 영향으로 여행업계는 힘든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더욱이 일부 전문가들은 “대형 마트들도 인파가 몰리는 업체 특성 때문에 고민이 적지 않다”며 “위생용품 매출로 작은 위로를 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영·유아와 노약자 등 고위험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돌잔치나 회갑연 등도 줄줄이 취소되거나 가족모임으로 대체되고 있다.

돌잔치·회갑연 대행업체를 운영하는 한 관계자는 “회갑연은 70% 이상 줄었고, 돌잔치는 아예 없다고 봐도 된다”며 “18년 동안 이 사업을 해왔지만 최근처럼 사업하기 힘든 때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가을 수학여행철과 ‘대학수학능력시험 특수’ 등을 기대했던 여행 및 레저업계도 울상이다. 초·중·고교 수학여행과 소풍 등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지난 10월 한 달 동안 전국의 전세버스 3만 여대 중 40% 정도만 운행됐다. 에버랜드나 롯데월드, 서울랜드 등 테마파크들은 학생 단체입장객들이 발길을 뚝 끊어 지난달 이후 입장객이 전년 동기대비 평균 20~30%가량 줄어들었다.

이처럼 학교들이 수학여행과 소풍을 연기 내지 취소하고 있어 국내여행 상품을 내놓은 여행사는 물론 해외여행 상품을 내놓은 여행사들이 타격을 입고 있다. 이와 연계한 숙박업소와 음식점들도 줄줄이 영향을 받고 있는 것.

여기에 대표적인 집객시설인 영화관과 영화관 내 매점이나 커피전문점 등도 줄어든 매츨에 울상 짓고 있다.

때문에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신종플루로 인해 위축되는 소비활동이 경기회복의 흐름의 맥을 끊을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거기다 신종플루에 전염될까 봐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하면서 전반적으로 소비가 감소 돼 GDP의 5.6%가 줄어들 수 있다는 보고서도 나온 것이다.

이제는 안녕할 때

사실 신종플루로 인한 첫 사망자가 발생한 지난 8월 유통업계 대표주자인 백화점과 대형마트에 비상이 걸렸었다. 호흡기를 통해 전염되는 신종플루의 특성으로 많은 사람이 모이는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기피시설’로 부각돼 매출이 크게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기 때문.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두 자릿수 이상 매출이 증가하는 등 애초 예상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지난 16일 증권 및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 8월 롯데백화점 매출은 작년 동기보다 14.3%가 늘었다. 분야별로도 화장품과 해외명품, 아웃도어, 여성 등 전 분야의 판매가 11.1∼25.1%씩 증가했던 것.

이마트의 매출은 8월∼10월 작년 동기보다 7.1%∼12.9%, 롯데마트는 8.1%∼19.1%가 증가했다. 오히려 신종플루를 예방하기 위해 홍삼 등 건강상품 등을 구매하러 온 소비자들로 매출이 늘어나는 의외의 소득이 있었다고 업체 관계자는 전했다.

이에 따라 유통업계에선 소비심리 회복이 신종플루를 눌렀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경기회복세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기 시작하면서 신종플루의 악영향 속에서도 매출이 오히려 늘었다는 것이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남녀정장, 가전 등과 같이 불황기에는 매출이 저조한 부문의 매출이 늘고 있어 소비심리가 확실히 살아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거기다 대형마트들과 달리 인터넷 쇼핑몰 업체들 가운데는 최근 3개월간 40%가 넘게 매출이 늘어난 곳도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신종플루로 새로 생긴 업체들도 있었던 것. 신종플루 증상이 7일 이내 37.8도 이상의 발열로 알려지면서 온도 측정기 전문 업체부터, 신종플루 소독 업체까지 등장했다. 건강 공포시대에 업체들 역시 건강 전도사로 나선 것이다.

때문에 신종플루의 등장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건강에 대한 관심을 높여주는 효과를 주기도 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신종 인플루엔자가 유행함에 따라 평소 면역력 강화와 체력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건강식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늘고 있다는 것. 특히 이러한 소비자들이 인식변화가 향후 건강식품에 대한 대중화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신종플루에서 비롯된 사회적 ‘격리현상’이 경기회복의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특히 국내에 잇따른 경기 회복에도 불구하고 둔화 우려감이 상존하고 있는 가운데 이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신종플루의 확산을 꼽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 3분기 우리 경제가 깜짝 성장을 거두는 동안 교육서비스업은 지난해보다 0.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교육서비스업 부문이 마이너스 성장을 한 건 1999년 1분기 이후 10년 6개월 만에 처음이다.

결국 금융위기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찾아온 신종플루의 확산이 세계 경제와 우리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국민 건강뿐아니라 경제 회복을 위해서라도 신종플루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사회 안팎의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연구원 송원근 위원 [미니인터뷰]
“신종플루 없었으면 경기둔화 덜 했을 것”

▲ 한국경제연구원 송원근 위원


일부 경제전문가들이 신종플루 여파로 경기회복이 둔화된다는 전망을 내놓은 가운데 본지가 지난 20일 한국경제연구원 송원근 위원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신종플루가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들어봤다.

신종플루가 한국경제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나.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만 확연한 결과로 나타나지 않은 거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신종플루가 사람들에게 준 영향은 사회적 격리현상이다. 여행이나 관광을 하지 않고 심지어 직장을 안 나가는 경우를 만든다. 가족들의 경우 누가 아프다 보면 직장이나 학교를 가지 못하게 하고 그러다 보면 노동공급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물론 그 정도가 크지는 않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신종플루와 소비플루의 상반관계는 어떤가.
아무래도 신종플루의 여파로 사람들의 불안감이 상승하면서 소비가 많이 위축됐다고 볼 수 있다. 일단은 사람들이 모이는 백화점이나 슈퍼마켓 보다는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물론 그것이 크게 소비판매를 줄어들게 했다는 확연한 결과로 나오진 않았지만 지금 같은 경기회복세에 비하면 매출이 둔화되고 있다는 게 일부 전문가들의 의견이기도하다.

신종플루의 어떤 점이 소비를 위축시키고 있는가.
불안감이 가장 큰 원인이다. 실제로 사망자가 늘면서 사람들의 불안감도 커졌다. 아직까지는 소비에 미치는 영향이 심하게 나타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새로운 질병이라 사람들의 불안감도 더 높아진 것이다.

하지만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등의 매출이 지난해보다 상승한 결과를 가져다주었는데.
그것은 경기회복으로 인한 매출상승이다. 알다시피 경기침체가 장기화됐었고 이제 조금씩 경기회복단계로 들어가는 상태에서 매출이 지난해보다 상승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더 상승할 수 있는 매출이 신종플루의 영향으로 둔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불안감 해소를 위한 대안은 어떤 게 있을까.
사실 신종플루가 감염율이 높은 거지 취사율은 낮은 편이다. 신종플루를 특별한 것이 아닌 겨울에 생길 수 있는 또 하나의 질병으로 생각하고 대응하는 것도 불안감을 없애는 방법일 것이다. 결국 감염 회피를 위한 사회적 격리(social distancing)의 확산을 막는 것이 소비 감소와 같은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이라는 거다. 즉, 정부가 백신공급을 서두르는 등 불안감을 최소화 시키고 필요 이상의 패닉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준다면 경기를 활성화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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