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채널 OCN에서는 8부작 TV무비 ‘조선추리활극 정약용’(이하 정약용)을 방송한다. 이번에 방송되는 ‘정약용’은 조선최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탐정으로 변신해, 각종 흉흉한 사건을 추리해 나가는 국내 최초의 추리 사극이다. 사실 정약용하면 ‘목민심서(牧民心書)’나 ‘경세유표(經世遺表)’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읽는 재미로만 따지자면 ‘흠흠신서(欽欽新書)’가 최고다.

‘흠흠신서’는 다산이 지은 형법연구서이며 살인사건 실무지침서로 순조 19년인 1819년 완성하여 1822년에 세상에 빛을 본 책이다. 흠흠(欽欽)이란 걱정이 되어 잊지 못하는 모양을 말하는 것으로, 죄수에 대하여 신중히 심의하여 재판하라는 것이다. 조선후기 살인사건의 재판은 대부분 인명이 관련된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재판을 맡은 수령들이 사건 자체만 논했다. 법률을 모르고, 재판하는 법을 알지 못하여 재판을 서리들에게 일임하는 것이 태반 이었다. 이에 정약용이 반드시 법률을 근거로 해야 한다며 재판을 맡은 관리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참고서 내지는 지침서로 지은것이 바로 ‘흠흠신서’ 였다. ‘흠흠신서’에는 실제사례를 기록하였는데, 노비 함봉련에 관한 사건이 특별히 눈여겨 볼만하다.

조선 22대왕인 정조는 다산 정약용을 형조참의에 임명하고 이미 확정 판결된 사건중에서 조금이라도 미심적은 것이 있으면 다시 살펴 보도록 하였다. 특히 12년이나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함봉련에 대해서는 정조가 직접 정약용에게 의문의 꼬투리가 있으니 자세히 살펴보라고 지시 했다. 사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함봉련은 강원도 평창에 살고 있는 김태명의 노비였다. 어느날 평창관아의 나졸이었던 모갑(某甲)이 환곡을 독촉하러 김태명의 집으로 갔다. 환곡이란 국가가 개인에게 빌려주는 쌀로서 현재로 말하면 긴급 생계대출자금같은 것이다. 그런데 김태명이 환곡납부를 거부하자, 모갑은 김태명의 집에 있던 송아지를 압류하여 갔다. 송아지는 매우 중요한 자산으로서, 그냥 빼앗길 수 없었던 김태명은 모갑과 한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그 과정에서 김태명은 모갑의 배를 짚고 무릎으로 가슴을 짓찧은 후 송아지를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던 김태명은 때마침 땔감을 지고 오던 함봉련에게 저자가 송아지를 훔친 사람이니 혼내주라고 하였다. 아무 영문을 모르던 함봉련은 상처를 입고 돌아가던 모갑의 등을 떠 밀었고, 모갑은 밭으로 굴러 떨어졌다.상처의 후유증으로 집으로 돌아온 모갑은 갑자기 피를 토하며 사망하고 말았다. 사망하기 직전 모갑은 아내에게 “나를 죽인 자는 김태명이니 복수하라”는 말을 남겼다. 모갑의 아내는 즉시 관아에 고발했다. 하지만 주범으로 지목된 사람은 함봉련이었다. 당시 함봉련은 조선시대 최약자 계층인 노비이었기에, 모든 수사과정과 증언들이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하였다. 반면 모갑의 유족들이 유언대로 김태명을 범인으로 강력하게 지목해 미제의 사건으로 남게 된 것이다. 덕분에 함봉련의 경우 원치도 않은 12년의 옥살이를 했다. 만약 함봉련이 주 살인범으로 판결났다면 관아의 나졸을 죽였으므로, 함봉련은 사형을 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김태명은 주범으로 고발당한 장본인인데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그의 증언에 의존하여 수사를 하였다. 그러나 시체 검험서를 세세히 살펴본 정약용은 마침내 범인의 꾸며낸 말을 믿고 주범을 바꾸었다고 결론 내렸다. 결국 정조는 함봉련은 즉시 석방시키고, 그와 관련한 모든 심문기록을 삭제하도록 하였다. 다만 김태명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살인할 의도는 없었음을 가만하여, 사형만은 면하게 해 주었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구치소에 수감 되어 있는 사람들 중 30%이상이 “자신은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있다” 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아이를 임신한 처녀도 할말은 있다”고 하지만 그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사회에 억울하게 옥살이 하는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천년이 지난 ‘흠흠신서’를 다시 독자들이 찾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