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보호법은 소리없는 사형선고

"저는 징역 5년을 살았고 이어 5년간 청송보호감호소에서 보호감호처분을 받았습니다. 한 눈 팔지 않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올 연초 청송을 떠날 때 손에 쥔 돈은 고작 43만원이었습니다. 10년간 교도소와 감호소에서 사회복귀를 위해 몸부림을 쳤지만 그 결과는 기십만원, 제가 이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솔직히 말하면 저는 지금도 범죄의 유혹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김모씨, 연초 청송보호감호소 출소) "2평이 안되는 작은 방에 5명씩 수감돼 '칼잠'을 잡니다. 곰팡이 피는 여름에도 선풍기조차 없는 곳이 많아요. 화장실은 칸막이가 없고, 방문은 밖에서만 열 수 있습니다. 모든 편지를 검열받고, 달랑 1개뿐인 접견실에서의 접견에도 교도관들이 지키고 서 있지요. 벽돌쌓기 등 사회적응을 위해 마련된 교육프로그램은 시대에 한참 뒤떨어져 출소 후 아무 도움도 안되고, 하루 1400원에서 최고 5800원인 근로보상금을 3년간 모았지만 겨우 5만원입니다"(김모씨, 작년 10월 청송보호감호소 출소) "시험문제가 사전에 유출되는 것은 몇 가지 유형의 실기시험 문제가 반복해서 수십년 동안 출제되기 때문에 실기시험 재료 준비 목록만 보면 어떤 문제인지 금방 파악할 수 있고, 직업 훈련 공과가 워낙 오래된데다가 낙후된 기능인 탓에 관련 기능교사에 종사하는 직업훈련교사가 극히 일부이므로 극소수의 직업훈련교사가 거의 이동이 없이 같은 감호소에 근무하고 있으며, 감독위원 또한 그리하여 부정적 상호협력이 나타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조모씨, 현 청송2보호감호소 수감중) 피보호감호자들은 청송보호감호소에서의 수감 생활을 이렇게 표현했다. 지난 1980년 전두환 정권은 '사회 정화'라는 미명하에 계엄포고령을 발동, 3만9천7백42명을 군부대로 강제 이송시킨 후 삼청교육을 실시했다. 삼청교육의 만료시한이 다가오면서 불안해진 전두환 정권은 교육생들의 사회 복귀를 차단, 장기간 격리시키기로 결정하고 청송보호감호소를 설치했다. 이들에겐 '보호감호'라는 형벌이 다시 부과됐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법률이 바로 '사회보호법'이다. 현재 청송보호감호소에 수용된 사람은 모두 1500명이며, 2000년 출소자들의 재범율은 35.5%에 달한다. "여전히 살아남은 악법" 지난 22일 천주교인권위원회와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26개 민간단체로 구성된 '사회보호법 폐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오후 3시 국가인권위 배움터에서 '사회보호법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 이날 참석자들은 보호감호제도의 반인권성을 주장하며 한결같이 '사회보호법 폐지'를 촉구했다. 최명모 사회보호법폐지공대위 공동대표(민변회장)은 "사회보호법의 보호감호처분은 이중처벌 원칙에 위배되며, 가혹함과 위헌성이 크다. 이 법은 또한 비보호감호자를 사회로부터 철저히 격리시키고,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권과는 거리가 멀다. 군사독재의 잔재 중 하나로 민주화 시대의 여전히 살아남은 악법이다"고 규정했다. 주최측에서 편집한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인권의 무덤 '청송보호감호소' 〉편이 약 5분간 상영된 후, 담당 책임프로듀서인 채환규씨의 청송 취재기가 이어졌다. 채환규 PD는 "사회보호법은 삼청교육대와 연관이 있다. 잘못된 과정을 거쳐 탄생한 제도이며, 특별한 제동없이 23년간 내려왔다"면서 당시 사회보호법 제정에 관할한 담당자들을 거론했다. "범법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바뀌어야" 채환규 PD는 "취재를 하는 동안 500여명의 감호자를 만났다. 이들은 인생의 절반 이상을 교도소나 감소호에서 지냈으며, 결혼을 하지 못하거나 가정이 파괴된 사람이 다수였다. 만나본 감호자 가운데 유일하게 1명만이 가정이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동대문에서 노점상이나 경비를 하는 분들이 그나마 잘 된 경우였으며, 나머지는 막노동이 대부분이었으며 특정 직업이 없었다. 또한 청송 출신의 감호자들이 모여있는 '믿음의 집' 소속 30여명은 화장지를 판매하며 살고 있으며, 이들의 재범율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채 PD는 "사회는 감호자들을 전혀 수용하지 않으며, '청송 출신의 감호자'라고 하면 무서워하거나 피하려 한다. 자체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지속적인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법무부는 보호 대상자 전부를 석방했을 때 범죄가 더욱 늘어나 사회 혼란을 야기시킨다며 사회보호법 폐지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폭력배나 깡패, 강간 등 강력범이 아닌 학생, 노조원, 절도범 등 평범한 사람들이다"며 "범법자들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채 PD는 "취재 기간 법무부에 일반 교도소와 감호소의 재범율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정부는 삼청교육대 관련기록을 전부 폐기했다. 88년 400명이 사망했으며 후유증으로 정신 이상을 보이는 사람도 많다"면서 "이 사건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역사적 과제다"고 마무리졌다. "보호감호제도는 명백한 이중처벌" 유해정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발제문 '보호감호제도의 실태와 그 대안'을 통해 "보호감호소내의 처우는 이미 위험 수위를 넘은 지 오래고 시설이나 집행, 처우 등이 교도소와 사실상 동일한 점을 감안하면 보호감호제도는 명백한 이중처벌이다"며 "재범의 위험성이라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이유로 형사책임이 종료된 사람을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구금하는 보호감호제도는 개인에 대한 적나라한 폭력인 만큼 어떠한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유씨는 "피보호감호자의 대부분은 빈곤계층으로 이들 범죄의 원인과 책임은 사회적 불평등과 빈부 격차 등의 사회정책적 노력을 통해 해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에게 모든 범죄의 책임이 전가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씨는 전날 자신에게 온 한통의 편지를 소개했다. 『청송 감호소에서 5년간 교도관 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부산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90년대 중반에도 보면 감호소에 들어오던 분들이 사회에서 자리잡지 못하고 2번 3번 이상 수감이 되는 것을 보고 너무도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분들과 진지한 대화를 해보면 거의 대부분이 불우하게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반복적인 범죄 생활로 인해 사회에 나가도 아무 기반도 없거니와 더불어 사는 방법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더욱 적응하지 못하고 차라리 감호소 가는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막상 수감되면 또 자유가 그리고 자학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바로 눈앞에 보이는 교도관리에게 짜증을 내게 되고 교도관이 그것을 이해해 주지 않으면 설움이 복받쳐 싸움을 하게 됩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은 감호소 문을 나서는 그분들이 갈데 올데도 없고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가 너무도 힘들다는 것입니다. 현재 경제가 가뜩이나 어려운 이 현실에 학력 좋고 가정있는 사람들도 신용불량이 되고 살기가 힘든데 누범자인 그분들이 갈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법과 제도는 과거 위에서 힘있는 분들이 다 만들어 놓았는데 불합리한 그 제도로 인해서 감호자와 교도관리간에 불신과 반복을 양상하는 결과가 됨도 참 갑갑한 현실입니다』 "개인을 철저히 파괴하는 법률" 박찬운 사회보호법폐지 공대위 집행위원장(변호사)는 '보호감호제도 왜 폐지되어야 하는가'에서 "보호감호의 현실은 수형생활과 다르지 않다"면서 "교정공문원들은 이구동성으로 현재의 보호감호소시설은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보호감호소는 대도시나 공단지역으로 옮겨 소규모 시설로 운영되어야 하며 기본적으로 피감호자들은 범죄로 인한 형벌을 받는 사람들이 아니므로 원칙적으로 외부의 기업체 등에 출퇴근할 수 있도록 시설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보호감호소에서의 작업은 사회복귀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으로 오히려 재범의 위험성을 가중시키는 상황이다"면서 "현재 하루 1천400원에서 5천800원의 근로보상금(최저임금과 비교하면 대체로 10분의 1의 수준임)은 사실상 노역 착취이며, 수감 기간을 마치더라도 사회적 기반이 없어 피감호자들이 출감 후에 더 큰 죄를 저지르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또 "사회보호법은 사회를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개인을 철저히 파괴하는 법률이며, 결국은 사회를 파괴하는 법률이다"며 "보호감호는 한 인간을 범죄기계로 만드는 제도이다"고 못박았다. 한영수 경원대학교 법대교수는 '사회보호법상의 보호감호제도와 독일의 보안감호제도의 비교고찰'에서 "사회적으로 크게 위험하지도 않은 자에게 자유를 박탈하는 보안처분을 부과하는 것은 비례성의 원칙에 반하며 법률적 근거규정도 사회보호법 제7조 이외엔 없다"며 "현행 사회보호법 상의 보호감호는 보안처분의 간판만 달고 있을 뿐 실제내용은 형벌집행으로 대부분의 감호자들이 절도범이라는데서도 이 제도의 실효성이 부족한 것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중화가 급선무 이들의 발제가 끝난 후 이호중 한국외국어대학교 법대교수는 ""사회보호법의 보호감호제도는 근본적으로 이중 처벌이다. 이 목적이 교도소 출소 후의 교정에 의한 사회복귀와 같다면 보호감호제는 동일한 형벌의 연장선상에 있다. 교정은 국가의 권한이 아니다. 개개인을 구금함으로 인해 사회적 범죄를 야기시킬 뿐이다"면서 "동일한 범죄에 대해서는 두 번 처벌하지 않는다는 헌법에 위배된다"고 밝히며 사회보호법이 위헌성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호중 교수는 미국 플로리다주 대법원의 사례를 들며 "교도소에서 범죄자 1/3을 석방했으나 국민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재범은 일어나지 않았다"면서 "피보호감호자의 80%는 절도범이며, 먹고 살기 위해 저지르는 생계형 범죄가 많다"고 말했다. 김동한 법과인권연구소 소장(사회보호법폐지공대위 자문위원)은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첫 말문을 꺼내며 "1989년 이후 사회보호법이 문제가 많다며 끊임없이 문제 제기가 이어져 왔었다. 왜 운동단체는 가만히 있었나?"고 시민단체를 질책했다. 또한 "발제문 가운데 사회보호법이 생기기 전후의 범죄율을 비교 분석하는 자료가 없어 아쉽다. '유행성 상품으로의 인권'이 아닌 '존엄성을 가진 인권' 차원에서 바라봐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동한 소장은 "헌법재판소 위원들의 구성을 보면 어렸을 때부터 고생 한번 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어찌 감호자들의 마음을 알겠는가. 이들은 인권 의식이 함양되어 있지 않다"면서 "국가인권위원회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권고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또 "과거는 용서하되 잊어서는 안되며, 인식의 전환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출소한 감호자들이 직접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생생한 경험담을 널리 알려 대중화시키는 작업이 급선무다"고 주장했다. "국회 폭파시키고 싶다" 이날 토론회에는 인권위 관계자, 이병래 법무부 정책보조관, 공대위 이상희 변호사, 청송감호보호소 출소자들이 참석했다. 이외 당시 보안2과장이었던 이준하씨도 참석했지만, 일찍 자리를 떴다. 공문서 위조 혐의로 징역 3년 보호감호 7년형을 받고 출소한 김모씨는 "청송보호감호소는 교도소보다 감호 처우가 더욱 나쁘다. 시계를 착용해서도 안되며, TV 시청 불가, 난방시설도 갖춰져 있지 않다"면서 "부당한 처우에 대해 항의해 돌아오는 것은 독방 신세가 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김씨는 "제2청송감호소에 처음 입소했을 때 책 4권을 분실, 이에 대해 항의하자 자동차 체인으로 손발을 묶어 2주간 독방에 가뒀다"면서 "교도관은 잠금장치가 이중으로 돼있는 보관함을 뜯어내 가져갔으며, 목도리도 함께 훔쳐갔다. 목도리는 3주 후에 돌려받았으나 상표가 다른 목도리였다"고 말했다. 또한 "소장이나 보안과장을 만나 항의하려 했으나 만나주지 않았다. 불만을 표출시키는 감호자들은 출소할 때까지 불이익을 받으며 구속, 감시가 강화된다"고 밝혔다. 김씨는 "출소할 때 손에 쥔 돈은 고작 13만몇천원의 영치금이다. 감호소에서 받은 돈이 아닌 외부에서 보내준 돈이다"면서 "국회를 폭파시키고 싶다. 대구지하철 참사와 같은 대형 범죄를 일으키고 싶지만, 다치는 건 정치인이 아닌 서민들이라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계명대병원에서 갑상선 수술을 받은 후 종합검진을 받아야 하는데 돈이 없어 약도 못먹고 있는 신세다. 조금만 걸어도 땀으로 몸이 흠뻑 젖으며, 정신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잠잘 곳이 없어 박스 주워 다 계단에서 살았다"면서 울먹였다. 김씨는 가출소 전에 갱생보호공단에 일정기간 체류하는 것이 가능한지 여부를 확인해 갱생보호공단으로부터 '숙식 제공' 결정을 받았다. 그러나 갑상선 수술 후 일하는 것이 어렵게 되자 갱생보호공단에서는 '숙식을 제공할 수 없다'며 김씨의 체류를 거부했다. 갱생보호공단측은 "환자요양을 목적으로 수용할 수 없고, 대상자가 취업해 저축을 해 출소 후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곳이다"고 해명했다. 법무부, 전면적인 검토 작업 진행 인권위 송도진씨는 "사회보호법에 대해 대중이 관심을 갖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이병래 법무부 정책보조관은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법무부에서도 전면적인 검토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토론회에서 나온 다양한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상희 변호사는 "대안이 없다고 무조건 가두는 것은 명백한 인권 침해다"고 규정하며, 사회보호법 폐지를 주장했다. 한편 경북 청송 제2보호감호소에 수감중인 감호자 400여명은 사회보호법 폐지 등을 요구하며, 23일 오후부터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다. 감호자들은 "재범 위험이라는 추상적인 이유로 형사 책임이 종료된 사람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보호감호제와 사회보호법은 철폐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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