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는 미국에서 존경받는 인물 10명안에 드는 높은 위상을 가지고 있다. 현재 파킨스병과 싸우고 있는 알리는 권투만큼이나 월남전 참전을 거부한 양심적병역거부자로도 이름이 널리 알려져있다. 알리는 국가가 자신을 위하여 4주짜리 훈련과 예비군으로 구성된 입대 프로그램을 제시하였을 때, 그는 자신의 민족을 위하여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은 사람들과는 싸울 수 없다고 결국 참전을 거부했다. 그리고 권투선수 자격이 박탈당하고, 패전 없이 헤비급 챔피언 벨트가 빼앗겼다. 챔피온 밸트를 다시 포먼에게서 되찾아온 것은 그의 나이 32살때다. 너무 쉽고 편한 선택이 있었지만, 그는 가난을 선택하고, 흑인 빈민 운동과 평화라는 두 가지 상징을 어깨에 붙이고 다니게 된 것이다.

당시에는 ‘비겁자’란 비난도 많았지만 요즘은 미국의 모든 큰 행사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아직도 미국에서는 병역거부 문제에 대해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국제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거부한 20대 미군이 징역 1개월을 선고받았다. 화제의 주인공인 빅터 아고스토(24) 상병은 텍사스 포트후드 군법정에서 열린 재판에서 “법원은 군인들이 자신이 불법이라고 믿는 명령을 거부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나는 미래에 법원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국제법을 어겼기 때문에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고스토는 징역형이 선고되자 자신의 제복에서 계급장을 떼어내고, 경호를 받으며 건물을 빠져나갔다. 이후 자신이 복역하게 될 감옥으로 향했다. 아고스토는 복역 기간을 다 채운 뒤 군에서 풀려날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이 분단되어 대치상태에 놓여있는 대한민국의 상황은 이보다 더 심하다. 80년대 한때 정치적 이유로 군입대를 거부하는 청년들이 있었지만 90년대 이후 거의 사라지고, 현재 우리 사회에 남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유일하다. ‘여호와의 증인’의 한국 지부인 ‘워치타워협회’에 따르면, 2008년 11월 현재 종교적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해 구속 수감된 여호와의 증인들은 413명(재판 종결 수감 399명, 구속 재판 중 14명)에 달하고 있다. 병역거부 발생 건수도 지난 1990년 373건에서 2005년 819명까지 늘었다가, 최근 3년에 들어서야 조금씩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특히 국방부는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7년 9월 “대체복무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으나, MB정부가 출범한 뒤 1년 만에 태도를 바꿨다. 마국을 제외한 독일, 대만 등 많은 나라에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 봉사제도가 마련돼 있다. 대체 봉사제도는 현역 복무를 대신해 말기환자 돌보기, 쓰레기 수거, 소방, 경찰 업무 등 공익적인 일을 맡아 하는 것이다. 대부분 나라에서 근무기간이 현역군인보다 더 길다. 독일은 헌법에 양심상의 이유로 인한 집총거부권을 명시하고 있고, 심지어 아랍권과 대치상황에 있는 이스라엘도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선진국뿐 아니라 브라질, 수리남 등 제3세계 국가로 확산되고 있으며, 그 이유도 종교적 양심뿐 아니라 정치적 신념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분단국가인 대만도 군병력을 감축하면서 대체 봉사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의 시행으로 대만의 병역거부자들은 22개월의 현역 복무를 대신해 33개월 공익근무를 하게 됐다. 지난 한해 동안 여호와의 증인 27명과 승려 3명이 대체 봉사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호와의 증인’의 입장은 종교적 신념에 따른 징병거부일 뿐이었지만 시대상황에 따라 징병거부에 대한 평가는 달라져 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서 ‘여호와의 증인’들은 참전을 거부해 수용소에 감금당하고, 대량학살되었다. 일제시대에도 ‘여호와 증인’들은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한 몇 안 되는 종교집단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군사정권 시절, 이들의 병역거부는 ‘이적 행위’ 의혹까지 받았다. 똑같은 종교적 신념에 따라 징병을 거부했을 뿐인데도 시대상황에 따라 어떤 경우는 독립투사가 되고, 어떤 경우는 형사처벌을 받은 것이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양심적병역거부 대처방안의 논의가 빨리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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