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북한의 강경책에 속수무책...두고만 볼 건가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남북갈등이 최고조로 이른 가운데 우리 정부가 PSI전면참여를 유보시키면서 북한과의 경색고조가 어느 정도 누그려진 감은 있다. 그러나 개성공단에서 일하던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가 한 달이 넘도록 억류돼 있는 가운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과 전략은 없고 감정만 앞세우는 신중성 제로인 정부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반면 북한이 벼랑 끝 외교의 하나 인 ‘인질 외교’ 전술을 펴면서 미국, 한국 정부를 상대로 어느 정도 이득을 얻고 있지만 북한이 계속 인질 외교 등 떼쓰기 전술을 핀다면 북한 정권도 머지않아 치명적인 상처를 받을 것이라고 국제사회는 경고했다.

신중-과감성 ‘0점’점인 대북정책

우리정부가 지난 달 로켓 발사를 계기로 PSI전면 참여를 공식화하자 북측은 이를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위협을 주면서 정부는 PSI전면 참여 유보라는 뜻을 밝혀 일각에선 과감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정부를 질책했다. 이를 더해 한 달 넘게 북한에 억류돼 있는 현대 아산 직원 유모씨에 대해 해결점을 찾지 못한 체 전략은 없고 감정만 치우친 외교정책이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했다.

지난 달 22일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북한에 억류 중인 유씨 문제를 유엔 차원에서 공론화하기로 했다. 그는 국회에서 “조만간 유엔 인권위원회에 문제 제기를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얼마 뒤에 정부는 유씨의 가족들이 반발하자 한발 물러섰다.

이와 관련해 문태영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4일 브리핑에서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위에 관련된 중대한 사안인 만큼 가족들과 협의 하에 가족들의 의견을 존중해서 제반사항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외교 전문가들은 “정부가 유씨 문제를 성급하게 유엔에 제기 하려고 한 것 같다며 먼저 유씨의 신변을 제대로 살피고 대응한 것도 아직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남북관계가 어디로 튈지 전망하기 어려운 현 시점에서 정부가 상황 악화를 막도록 신중한 대북접근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전문가는 “2006년 경의선 열차 시험운행이 예정일 하루 전날 군부의 개입으로 무산된 전례에서 보듯 당국간 대화의 분위기가 조성됐다가도 북한 군부에 의해 언제든 틀어질 수 있다”며 “정부가 대북정책을 추진하면서 북한 내 군부와 대남 협상파 간의 역학관계까지 고려하는 세심함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도 “최근 정부를 보면 먼저 말을 꺼내놓고 뒷수습하느라 진땀 빼는 모습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사전에 실효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북한을 상대하다 보니 실용적인 접근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시각에선 정부가 유씨 억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즉 북측이 유씨 문제를 이미 쌍방이 별도로 합의해 처리할 '엄중한 행위'로 못 박은 이상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외교협상 전문가 이 모씨는 “정부는 애써 무표정한 척 하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하다. 가족들의 속 타는 심정도 심정이지만 자국민의 억류가 한 달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는데 지금까지 정부가 한 일은 과연 무엇인지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두만강 부근에서 탈북자를 취재하던 여기자 두 명이 억류된 미국의 경우 열사흘 만에 평양주재 스웨덴대사관을 통해 이들을 접견한 것과 비교할 때 소극적인 한국의 태도가 확연히 들어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며 과감하고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요구했다.

북한 도대체 뭘 바라나

북한의 강경 의도는 남한과의 협상에서 유리하게 작용하려는 목적이 분명하다.

지난 4월 남북 당국자 간 접촉에서 남측은 개성에서 11시간이나 기다리며 유씨를 만나려 했지만 북한은 개성공단 문제만 강조하면서 안타깝게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북측은 “해당 기관에서 조사를 계속 심화하고 있다” “유씨가 엄중한 행위를 감행했다”며 간첩죄로 기소해 사법처리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즉 주변 정황을 살펴 봤을 때 북한은 유씨의 억류를 통해 오는 남북 당국자 대화에서 개성공단 근로자 임금인상, 토지사용료 유예기간 단축 등 경제적 실리를 챙기려는 볼모로 이용할 것으로 보여 지며 우리 정부의 요구를 배제, 유리한 쪽으로 협상 주도권을 쥐려는 포석이 깔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역시 중국계 로라 링(Laura Ling)과 한국계 유나 리(Euna Lee)가 억류돼 북한 당국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유씨 문제와 마찬가지로 북한이 이들 인질을 핵 협상 또는 미-북 간 직접 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압박카드’를 가진 셈이다.

북한의 이러한 강경 행보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체제결집을 위한 수순으로 보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즉 유씨와 미 여기자 억류, 2차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 선언, 6자회담 불참 재확인 등 연일 '벼랑끝 전술'로 치닫는 북한의 강경발언 배경에는 김정일 체제 안정화를 통한 2012년 강성대국 완성이라는 최종 목표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미 지난달 최고인민회의 제12기 1차 회의에서 이 같은 중단기 목표를 설정하고 천명한 바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 입장에서는 올해가 강성대국 건설을 위한 분수령”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북미관계 정상화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과거 같으면 쓰지 않았던 강렬한 언어들을 쏟아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국제사회의 강경 대북 전문가들은 한국은 물론 미국 정부가 ‘원칙’에 따라 ‘당당하게’ 대응하기를 촉구했다. 이들은 북한 정권이 내놓을 카드는 한계가 있으며 ‘인질’들에 대한 위협이 협박을 넘어서 정당한 절차 없이 처벌을 한다던 가 국제법을 어기면서 인질들에게 부당한 행위를 할 경우 로켓 발사 및 핵문제와 맞물리면서 오히려 심각한 역풍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즉 그 중심에는 미국이 있다.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미국으로선 ‘인질’과 ‘테러’를 동일시하게 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즉 북한이 인질외교를 들고 북·미 양자회담을 촉구한다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펼치고 있는 대테러전쟁의 명분을 약화시킬 수 있어 오히려 오바마 정부가‘대화’가 아닌 ‘행동’으로 강경 대응을 취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