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골머리’ 앓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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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남한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구상 PSI 전면 참여 문제를 놓고 개성공단 운영과 개성공단에 억류돼 있는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의 신변 위협으로 남북 관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1일 개성공단에서 이뤄진 남북 당국 협의에서 북한은 개성공단 사업을 위해 한국에 제공했던 모든 제도적 특혜 조치들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PSI 참여를 놓고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개성공단의 패쇄 조치를 막고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일각에선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에 아무런 전전이 보이지 않고 로켓발사로 인한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 채택으로 북한이 6자회담 합의 내용을 파기하는 등 남북관계 개선에 큰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 50km 앞에 있다” 선전포고

정부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PSI 전면 참여를 놓고 결정 시기를 고려 중인 가운데 지난 19일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가 “남한 PSI 참여 시 한반도의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위협을 가하면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앞서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남한이 대량살상 무기 확산방지 구상(PSI)에 전면 참여하는 것은 선전포고”라며 “이명박 역적 패당은 서울이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불과 50Km안팎에 있다는 것을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 했다.
이에 정부는 북측이 군사적 대응을 시사한 것과 관련해 유감을 표명하고 PSI 참여가 남북관계와 별개의 조치임을 강조했다. 이날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PSI는 국제사회의 대량살상무기 비확산 노력으로, 특정 국가를 겨냥한 것이 아니며 남북관계와 별개의 조치로 북한에 대한 대결·선전 포고가 아님을 명백히 밝힌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은 18일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을 통해 로켓발사 이후 국제사회 및 우리의 움직임에 대해 비난하면서 군사적 위협을 했다”며 “정부는 북한의 거듭되는 위협적 언동과 긴장조성 행위를 개탄스럽게 생각하며 그러한 언행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남북관계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일각에선 정부의 속내는 “‘서울이 군사분계선(MDL)으로부터 50Km 안팎에 있다’는 북 총참모부의 발언을 간과 할 수 없고 도발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PSI 전면 참여 발표를 계속 미루면서 남북 갈등 고조를 최대한 막고자 신중을 기하고 있는 것 같다”고 내다봤다.

“개성공단 토지 사용료 내고 임금 올려라”

북한은 남한의 PSI 전면 참여와 더불어 개성공단 사업과 관련해 21일 남북 당국자가 만나 한국 측에 제공한 개성공단 특혜 조치들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북한은 7차례의 예비접촉 등 난항 끝에 이날 저녁 늦게 열린 남북 당국자 접촉에서 이 같은 입장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채 22분 만에 접촉을 끝냈다. 북한은 남측에 전달한 내용은 개성공단 토지임대차 계약을 다시 체결하고 2014년부터 받기로 했던 토지 사용료를 내년부터 받을 것을 요구했다. 즉 북한은 지난 2004년 한국 정부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10년 간 징수를 유예키로 했던 개성공단 토지사용료에 대해 유예 기간을 6년으로 줄여 내년부터 받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또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의 임금도 현실에 맞게 재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어길시 개성공단 사업 폐쇄라는 압박 카드를 제시함에 따라 우리 정부는 PSI참여로 인한 도발 가능성과 함께 큰 골치 덩어리를 떠안게 됐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 같은 조치에 대해 ‘이중 실리’를 얻고자 하는 포석으로 분석했다. 먼저 한국 정부가 PSI에 참여 할 경우 뜻 하지 않는 상황에서 개성공단 패쇄 조치라는 카드를 꺼내 한반도 도발이라는 명분을 쌓아 더욱 한국 정부를 계속 압박 할 것으로 보여 진다. 즉 북한은 ‘남한이 한민족에게 총부리를 겨냥하고 그 핏줄인 우릴 저버리려고 하고 있다’는 정당성을 내세우면서 PSI 참여-개성공단을 결부 시켜 우리 정부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하려는 포석이 깔려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또 다른 시각에서 볼 때 북한이 개성공단 혜택 재검토 통보는 현금 수입을 늘리려는 실리적 목표를 담고 있다고 보고 있다. 우선 그동안 북한이 취해온 극도의 적대감을 감안해 우리측이 수용하기 어려울 정도의 높은 액수를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 류길재 북한대학원 대학교 교수는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개성공단을 통해 양자택일을 요구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가 북한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개성공단이 폐쇄로 치닫는 상황까지 올수 있겠지만 북한으로서도 부담스러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류 교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군부의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직접 결단한 사업이니 만큼 현재 임금으로만 3천 4백만 달러 이상의 현금 수입을 거둘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북한이 이번 계기로 수입을 극대화하면서 개성 공단 사업을 지속 시키겠다는 의중이 들어있다”고 내다봤다.

정부 끌려만 갈건가

정부가 PSI 전면참여 발표를 미룬 가운데 일각에선 정부의 이 같은 신중한 태도가 북한에 끌려만 가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즉 정부가 아무런 결단 없이 미적거리다가 북한에게 기선을 빼앗겼으며 정부가 고려하고 있는 신중론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는 관측이다.
단적인 예로 정부가 지난 21일 남북 당국 간 첫 접촉을 앞두고 “이번 방북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3주 넘게 억류 중인 현대아산 직원 유모(44)씨 접견과 석방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 대표단이 이 같은 발언이 무색할 만큼 개성공단 문제에 휩쓸려 그의 신변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돌아와야만 했다. 이처럼 정부는 북측에게 개성 공단 체류인원 축소와 통행 제한, 북한 근로자 철수, 근로 조건 변경 요구, 남측 인원 추가 억류, 공단 관련 남북합의서 파기 요구 등 쓸 수 있는 압박 카드를 양산했다는 점으로 미뤄 볼 때 우리 정부가 단순 무지함으로 일관했다는 비판여론을 받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에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에 이끌려 가는 정부가 매우 안타깝다”며 정부의 과감한 외교정책을 요구했다. 그는 “우리의 국익을 위한 냉철한 판단과 이성적 분석을 조합해 어떤 문제든지 지혜롭게 조율 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지고 현 위기국면을 합리적이고 과감하게 맞서야 한다”고 정부에 쓴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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