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봉중근 의사’ 봉중근 선수

WBC(월드베이스볼 클래식) 개막 후 한경기, 한경기를 더할 때마다 관객의 함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새롭게 떠오른 ‘일본 킬러’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많은 관심 속에 치러진 2번의 한일전에 등판, 2승을 거둔 봉중근 선수다. 봉 선수는 한일전에 선발로 나서 ‘사무라이 재팬’의 칼날을 봉쇄했을 뿐 아니라 일본의 국민영웅 이치로에 대한 견제구로 ‘굴욕’을 이끌어 내 ‘봉중근 의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이번 WBC 대회에서의 활약으로 메이저리그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지 3년 만에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시켰다.

견제 동작에 이치로 두 번 깜빡 속아 ‘몸 개그’
‘닥터 봉’ ‘봉타나’에서 ‘봉중근 의사’로 거듭나

WBC(월드베이스볼 클래식)에 출전 중인 봉중근 선수가 경기장 뿐 아니라 인터넷까지 뜨겁게 달구며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新 일본 킬러 ‘봉중근 의사’

봉중근 선수는 일본에서 벌어진 일본과의 WBC 1라운드 예선 1위 결정전에 출전, 5.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또한 4강행 티켓이 걸린 18일 미국 샌디에이고 팻코파크에서의 WBC 2라운드 본선 1조 한국과 일본의 승자전에서 다시 한 번 5.1이닝을 1실점으로 막아냈다. 일본전에서만 2연승을 거두며 ‘원조 일본 킬러’ 김광현 대신 새로운 ‘일본 킬러’로 자리매김한 것.
승리도 승리지만 일본의 야구 영웅 스즈키 이치로와의 신경전은 단연 주목받았다. 이치로는 “한국이 앞으로 30년간 일본을 넘볼 수 없도록 만들겠다” “한국은 헤어진 연인 같다” 등의 발언으로 한국팬들의 공분을 산 인물.
봉중근은 WBC 1라운드 예선 1위 결정전에서 이치로를 3타수 무안타로 막아 깊은 인상을 남긴데 이어 WBC 2라운드 본선 1조 한국과 일본의 승자전에서는 이치로에게 단 한 차례의 1루도 허용하지 않았다.
봉중근은 이날 볼넷을 3개, 몸에 맞는 볼 1개를 내주며 고전했으나 시속 150㎞를 넘나드는 강속구와 뜬 공이나 병살타를 유도해 내는 탁월한 위기관리능력으로 실력을 드러냈다. 그는 4회에서 우치카와를 유격수 앞 땅볼로 병살 처리했고, 연속 안타로 무사 1, 2루 위기에 몰린 5회에는 세 타자 연속 내야 땅볼을 유도해 1실점으로 막았다.
두고두고 화제가 된 것은 경기 중 견제구로 이치로를 ‘움찔’하게 한 장면. 봉중근은 1루로 나가있던 이치로가 도루 기회를 엿보자 견제구를 던지는 시늉으로 이치로로 하여금 두 번의 ‘헛 슬라이딩’을 선보이게 했다.
봉중근은 시늉만 했을 뿐 실제로 볼을 던지지 않았지만 바짝 긴장해있던 이치로는 깜짝 놀라 빠르게 1루로 돌아가 굴욕을 당한 것. 마치 꿀밤을 때리려는 듯한 봉중근의 손동작과 납작 엎드려 슬라이딩하는 모습은 ‘이치로 굴욕 동영상’으로 인터넷을 달궜으며 이치로에게는 ‘움찔 이치로’, ‘위치로’라는 별명이 붙었다.
경기에서 이치로는 봉중근에게 세 차례 모두 내야 땅볼로 물러나는 등 4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
일본 언론은 이치로의 부진을 두고 “헤어진 그녀 봉중근에게 뺨을 맞은 격”이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으며 일본 대표팀 하라 감독도 경기 직 후 “이치로가 이치로 답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잊혀진 천재’의 부활

봉중근에게 이번 대회는 각별하다. 5년 만에 다시 선 메이저리그 구장에서 한국의 WBC 2회 연속 4강 진출을 이끌어 내며 다시한번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3년 전 그는 고교야구 사상 최강팀 중 하나로 꼽히는 신일고의 중심에 있었다. 투수뿐 아니라 왼손 강타자면서 빠른 발, 강한 어깨를 가진 외야수로도 유명했다.
1학년 때 제 50회 황금사자기 대회에서 팀의 5승 중 4승을 맡았고 제 51회 대회에서는 팀의 4승을 혼자 거두며 2연패로 이끌었다. 1997년 광주일고와의 결승에서 솔로 홈런을 때리는 등 타율 0.571로 타격 2위에 올랐고 도루상도 받았다. 같은 해 열린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도 맹활약, 최우수선수로 꼽혔다.
봉중근은 그 해 겨울 학교를 중퇴하고 메이저리그 애틀랜타와 계약했다. 메이저리그 애틀랜타는 그의 타자로서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 한 것.
2002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봉중근은 이듬해 불펜 투수로 6승 2패 1세이브라는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당시 별명은 ‘봉타나’. 자신감 넘치는 투구가 마치 메이저리그 최고의 좌완 투수 요한 산타나를 연상케 한다는 데서 붙어진 별명이다.

베네수엘라 펠릭스와 WBC대회 최고 투수 UP
‘일본 킬러’로 떠오르고 메이저리그 주목 사고


하지만 그는 갑자기 평범한 투수가 됐다. 볼 스피드가 떨어졌고 어깨 부상마저 당했다. 결국 그는 2004년 어깨 수술을 받고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됐다가 2006년 5월 신시내티에서 방출돼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당시 신시내티는 부친의 병환 등 개인 사정을 감안해 무조건 방출한다고 밝혔으나 팔꿈치 수술을 받고 투구 스피드가 떨어지는 등 그의 가능성에 고개를 저었던 것이다.
지난해까지 그가 LG에서 2년 동안 거둔 성적은 17승 15패에 평균자책 3.65. 빼어난 성적은 아니었다. 봉중근은 2006년 WBC와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때도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WBC 3경기, 올림픽 2경기에 출전해 1승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올 초 대표팀 최종 명단에 포함되며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겠다”고 말한 그는 무시할 수 없는 ‘도움’을 주며 잊혔던 천재성을 드러냈다.

WBC 선전에 큰 무대 ‘눈독’

봉중근은 베네수엘라의 펠릭스 에르난데스와 함께 WBC 최고 투수로 떠올랐다. 공의 위력은 ‘킹 펠릭스’라 불리는 에르난데스가 앞서지만 종합적인 경기운영 능력은 봉중근이 한수 위.
둘 다 2승을 거뒀지만 일반적으로 투수의 객관적인 실력을 나타내는 ‘평균 자책점(방어율)’에서 평균 자책 0의 완벽한 투구를 뽐낸 에르난데스가 평균 자책은 0.66인 봉중근을 따돌렸다.
그러나 단기전인 WBC에서 평균 자책 못지않게 중요한 팀 기여도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투구 수 제한이 있는 WBC 규정 상 투수는 적은 투구로 많은 이닝을 소화해줘야 한다. 봉중근은 13.2 이닝을 던져 16개국 출전투수 가운데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하면서도 실점은 단 1점에 그쳤다.
그는 일본과의 2경기에서 각각 5.1 이닝을 막았으며 대만전에서도 구원 등판해 3이닝을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봉중근이 큰 꿈을 접고 돌아서야 했던 메이저리그도 ‘봉중근의 재발견’에 시선이 쏠렸다. 특히 메이저리그를 놀라게 한 것은 WBC 1라운드 예선 1위 결정전. 메이저리그가 눈여겨보고 있는 다르빗슈 유를 상대로 승리를 얻어냈기 때문이다.
미국 서부 지역 최대 일간지 ‘LA 타임스’는 한국과 일본의 경기 결과를 보도하며 “메이저리그가 세 시즌 동안 78이닝 만에 포기한 봉중근이 메이저리그가 가장 탐내고 있는 다르빗슈 유에게 승리했다”며 그를 높이 평가했다. 다르빗슈는 메이저리그 팀들의 영입리스트 1순위에 올라있어 파장은 더 컸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도 19일 인터넷판에서 “메이저리그가 포기했던 봉중근이 메이저리그가 탐내는 일본의 젊은 투수 다르빗슈 유를 눌렸다”며 봉중근의 활약을 다뤘다.
LAT는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메이저리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신시내티 레즈에서 투수로 활약한 봉중근에 대해 “메이저리그는 한국의 봉중근을 3시즌 78이닝 만에 포기했다”면서 “반면 메이저리그는 일본의 젊은 투수 다르빗슈 유가 언젠가 미국에서 뛸 가능성을 두고 침을 흘리고 있다”고 전했다.
봉중근의 활약이 두드러지자 그에 대한 칭찬 릴레이도 이어지고 있다. 네티즌들은 수많은 패러디물을 통해 봉중근의 활약을 되새겼으며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뛸 때 맏형 노릇을 했던 박찬호 선수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그의 쾌투를 칭찬했다.
박찬호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곳 미국에서 야구하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때의 마음은 어땠을까. 고교시절 최고의 선수, 최고의 유망주였던 그가 미국에 와서 마이너에서 고생하고 메이저에서 짧은 경험한다며 갖가지 맘고생이 심했던 그가 고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던 순간은 어땠을까. 한국으로 돌아가서 고전을 겪었던 첫해의 심정은 어떠했을까”라며 봉중근의 마음고생을 담아냈다.
이어 “작년에 좋은 성적으로 대표팀에 발탁되어 드디어 조국을 위해 큰 일하는구나. 그가 나라를 위해 큰일 한번 저질렀으니 그가 받은 지난날들의 상처를 씻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며 “참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그리고 아주 많이 축하하고 싶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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