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철 대법관 이메일 파문

지난해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촛불’이 법정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 신영철 대법관이 ‘촛불재판’에 개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촛불재판을 특정 판사에게 몰아주기 배당했다는 의혹으로 시작된 파문은 신 대법관이 촛불집회 관련 재판을 맡은 판사들에게 보낸 이메일로 옮겨지며 확산되고 있다. 이메일을 통해 신 대법관이 촛불집회 관련 재판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진상조사에 나선 가운데 시민단체는 ‘자진사퇴’를 촉구하고 있고 정치권은 공방전으로 시끄럽다.

신영철 대법관 촛불재판 관련 이메일 파문 확산…들끓는 정치권
행정 주문인지 재판 개입인지, 발동 거는 제2의 촛불 ‘정치전쟁’



신영철 대법관은 서울 중앙지법원장이었던 지난해 ‘촛불집회’ 담당 판사들에게 여러 차례 이메일을 보낸 것으로 확인되며 재판 개입 의혹 파문이 커지고 있다.

“촛불은 통상적으로…(유죄)”

신 대법관은 지난해 10월14일 “법원이 일사분란한 기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야간집회 위헌제청에 관한) 나머지 사건은 현행법에 의해 통상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이후 11월6일 보낸 이메일에서는 “부담되는 사건을 후임자에게 넘기지 않고 처리하는 것이 미덕이다. 통상적으로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 어떠냐”고 말했다.
신 대법관의 이메일은 서울중앙지법 박재영 형사단독 판사가 야간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한 법률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내서 촛불사건 재판부들이 헌법재판소의 위헌 여부 결정 이후로 판결을 미룬 시점에 보내졌다.
특정 법 조문에 대해 위헌 제청이 된 경우, 이 조문과 관련된 사건을 맡은 판사들은 ‘소신’에 따라 헌재 위헌 결정이 나올 때까지 재판 중단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데 당시 박재영 판사를 비롯한 몇몇 단독 판사들은 헌재 결정 때까지 야간 불법 집회를 개최한 혐의로 기소된 시민들의 재판을 중단한 상황이었던 것.
‘후임에 넘기지 말고 처리하는 것이 미덕’이라던가 ‘통상적’으로 처리하라는 신 대법관의 이메일이 ‘촛불재판’에 헌재 위헌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현행법대로 ‘유죄’를 주라는 압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불거지는 이유다.
신 대법관도 이 같은 이메일이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듯 이메일에 이 내용을 대내외에 비밀로 할 것을 당부하면서 본인이 직접 읽어보라는 뜻의 ‘친전’이란 한자어를 적었다.
신 대법관은 이후 같은 달 24일과 26일에도 이메일을 보내 “통상적인 방법으로 재판을 끝내고 현행법에 따라 결론을 내달라”, “부담되는 사건을 적극 해결해 달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는 조속한 진상조사와 함께 신 대법관의 자진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독립적’이어야 하는 재판에 개입, 압력을 행사했다는 이유에서다.

신 대법관은 파문이 확산되자 “법대로 하자고 했을 뿐”이라면서 “소신에 따라 메일을 보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진사퇴 의사를 묻는 질문에는 “사퇴할 의사는 전혀없다”고 답했다.
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 의혹 규명을 위한 대법원 진상조사단은 지난해 촛불재판을 맡았던 서울중앙지법 형사단독 판사들을 상대로 조사에 나섰다. 문제는 신 대법관의 언행이 ‘정당한 사법행정’인지, ‘부적절한 재판 간섭’의 여부다.
이에 대해 촛불집회 관련 사건 재판을 맡았던 20명의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단독판사 중 몇몇 판사들이 “이메일을 받고 심리적 압박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이 중 한 판사는 “근무평정을 매기는 법원장이 재판 독촉 메일을 받고 신경이 쓰였다”고 말했으며 또 다른 판사는 “법원장의 발언을 재판과 연결시키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판사들이 내부 압력에 정신적인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진보진영의 공격” vs “사법부 위기”

진상조사와는 별개로 이번 사건은 정치권의 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한나라당은 법원의 진상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신 대법관의 재판개입 문제가 의혹을 넘어 객관적 물증과 증언이 나타나면서 사실확정단계로 나아가고 있다”며 “이는 사법부의 위기”라고 지적했다.
신 대법관에 대한 자진사퇴 요구가 빗발치자 홍준표 원내대표는 “신 대법관이 다소 부적절한 사법 지휘권의 행사가 있었는지는 모르나 그것만으로 대법관직을 사퇴할 만큼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며 감쌌다.
홍 원내대표는 이어 “지금 신 대법관에 대한 소위 진보진영의 공격이 노골화되고 있다. 지난 10년 진보정권하에서 사법부에서는 과연 국민들을 위해서 재판을 해왔고 사법부 내에는 진보좌파 성향의 분들이 없었는지 그건 사법부 스스로 생각해 볼 일”이라고 말했다.
김유정 대변인은 MB정권을 ‘촛불 알레르기 정권’으로 규정하고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그 원인은 소위 ‘좌파정권 10년 탓’으로 돌리는 희한한 정권이다. 말 바꾸기는 선수인 정권”이라고 되받아쳤다.
김 대변인은 “신 대법관 이메일 파동이 불거졌을 때만 해도 법원의 진상조사 결과를 지켜보자며 그때까지 야당은 잠자코 있으라고 훈계하던 한나라당이 아니었나. 그러더니 조사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진보진영의 공격이다. 경험 없는 젊은 판사가 문제다, 좌파 법조인을 정리해야 한다’는 등의 무책임한 궤변으로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국민의 67%가 명백한 재판개입이라고 생각하는 사건을 두고 얼토당토않은 색깔론으로 문제를 덮으려 한다면 국민과 대결하겠다는 것”이라고 소리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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