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움직이는 노무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말문’을 열었다. 지난해 형 노건평씨와 측근들에 대한 비리 의혹이 잇따라 제기된 후 방문객들을 향한 인사도 접었던 그가 봄을 맞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근황을 전한 노 전 대통령은 앞으로 글을 올리겠다는 뜻을 전하면서도 “무슨 큰일을 도모하기 위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친노계가 워크숍을 갖는 등 부수적인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어 일각에서는 숨죽였던 친노계가 활동을 재개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일고 있다.

침묵 깬 노무현 홈페이지 통해 온라인 정치 재개
“큰일 도모 위한 것 아냐” 부인 뒤로 뭉치는 친노

지난 2월25일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퇴임 후 귀향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생활이 1년을 맞았다.

봉하마을 귀향 1년

이날 주인공이 참석하지 않은 마을잔치가 열렸을 뿐이지만 노 전 대통령의 귀향 1년은 나름대로 뜻 깊었다. 퇴임 후 정치일선에 복귀할 것이라는 세간의 전망을 뒤엎고 노 전 대통령이 살기 좋은 농촌 만들기에 열성을 보이며 봉하마을을 지켰기 때문이다.

그가 고향에 안착하면서 봉하마을은 노사모 회원을 중심으로 평일에는 1000명, 주말과 휴일에는 2500여 명의 관광객이 몰려드는 관광 명소로 거듭났다. 지난해 노 전 대통령의 집을 방문한 관광객은 90만명에 이른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재임 시절 국정기록물 사본의 유출 문제로 청와대와 갈등을 빚었으며 토론사이트 ‘민주주의 2.0’으로 ‘사이버 상왕’으로 정치권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지난해 12월에는 형 노건평씨와 후원자인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세종증권 매각비리에 연루돼 구속되면서 봉하마을을 찾은 방문객들과의 인사도 접고 속앓이를 해야 했다.

그러나 최근 바깥 외출도 삼가던 노 전 대통령에게서 작은 움직임들이 포착되고 있다. 지난달 13일 자신의 홈페이지 ‘사람사는세상’에 정세균 대표의 방문과 관련해 해명하는 글을 올린 후 10여 일만에 다시 글을 올린 것.

지난해 12월 형 노건평씨가 세종증권 비리에 연루되자 방문객들을 만나지 않는 등 바깥활동을 자제하던 그가 귀향 1년을 앞둔 지난달 22일 홈페이지 ‘사람사는세상’ 참여게시판을 통해 말문을 연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충실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는가’ 이런 질문을 받고, 나는 ‘고시공부 하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는 대답을 한 일이 몇 번 있었던 것 같다. 딱딱한 법률 책을, 읽고 또 읽는다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은 아니었지만, 책을 읽을 때마다 하나씩 새로운 이치를 깨우치고 아는 것을 더해 간다는 것이 제겐 참 기쁜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요즈음 다시 그 시절로 돌아온 느낌”이라며 “나를 둘러싼 요즈음의 여러 가지 상황이 마음을 편안하게 가질 수는 없는 형편이지만, 지난 12월 인사를 나가지 않기로 한 이후, 이런 저런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의문을 가졌던 여러 가지 일들에 관하여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근황을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은 “생각이 좀 정리가 되면, 근래 읽은 책 이야기, 직업 정치는 하지마라, 하더라도 대통령은 하지마라는 이야기, 인생에서 실패한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무슨 큰일을 도모하기 위하여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냥 인생을 정리하면서 자라나는 사람들과 삶의 경험을 나누려고 한다”고 혹시나 있을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다.

또한 “앞으로 시간이 나는 대로 글을 올리겠다. 사실 아직 글을 내놓을 사정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귀향 1년의 인사로 이 글을 올린다”고 활동재개를 알렸다.

이후 2월22일 ‘글을 올려놓고 보니’라는 글을 통해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자유이고 야유도 할 수 있을 것이나 아무런 사실도 논리도 없는 모욕적인 욕설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자제를 당부하기도 했다.

다시 말문을 연 그의 글에서는 조심스러움이 묻어난다. 정세균 대표의 방문 내용에 대해 해명을 하거나 귀향 1년 인사를 대신해 올린 글에서 정치적 행보로 보일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한 우려가 적잖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러한 글들을 시작으로 노 전 대통령이 활동을 재개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방문객들과의 인사도 곧 다시 진행될 것이고 8월 생가 복원작업이 완료되면 방문객들이 더 늘 전망이기 때문이다.

다시 뭉치는 친노계

친노계도 결집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6일 이용섭 의원과 유시민 전 의원 등이 노 전 대통령과 회동한데 이어 지난해 8월 경남 남해에서 첫 모임을 가졌던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참모와 관료 출신 모임 ‘청정회’(靑政會)가 같은 달 7일과 8일 양일간 강원도 평창에서 워크숍을 열었다.

워크숍에는 회장인 이용섭 의원을 비롯해 이광재·백원우 의원과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 천호선·윤승용 전 대변인, 전해철 전 민정수석 등 40여 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해찬 전 총리가 이끄는 재단법인 ‘광장’과 안희정 최고위원의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광장’은 상반기 안으로 한국사회의 진로에 대한 대규모 심포지엄을 준비 중이며 ‘더연’은 김병준 국민대 교수, 문정인 연세대 교수, 경북대 이정우 교수 등 ‘참여정부 정책 3인방’을 초청, 릴레이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4월과 10월 재보선, 2010년 지방선거 등을 앞두고 친노계가 결집, 세 확장을 노리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일고 있다.

청정회를 이끌고 있는 이용섭 의원은 “친목 목적으로 분기에 한번 정도씩 만나게 될 것”이라며 정치적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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