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이명박 회동 후폭풍
청와대 생일상 받고 친박계 장관 입각 선물 뺏긴 박근혜
손잡자 내밀어 놓고 측근 홀대에 씁쓸함 안고 간 만남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관계가 갈등에서 화합으로 변화될 수 있을까. 친박계 인사의 내각행이 거론되고 청와대로 초청, 오찬 회동을 갖는 등 다양한 방안이 추진되고 있지만 청와대와 친박계가 각각 채점한 화합성적표의 점수는 크게 엇갈리고 있다.
청와대 채점 화합성적표 ‘우’
MB가 박 전 대표를 향한 구애를 시작했다. 집권 2년차를 맞아 강력 드라이브를 추진하는 동시에 보수세력의 결집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년을 보내며 친박계, 즉 박 전 대표의 동의 없이는 국정 운영에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손 내밀기에 나선 것.
바닥까지 내려간 지지율을 보수로의 전환으로 다시 상승시키고 있지만 이러한 시도가 폭발력을 갖기 위해서는 박 전 대표로 대표되는 범보수층의 결집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화해’와 ‘양보’를 이끌어 냈다는 평이다.
MB는 이번 개각에서 친박계 인사의 기용을 염두에 뒀으며 ‘대통령과의 원탁대화’에서 “박 전 대표와는 밖에 알려진 만큼 서먹한 관계 아니다”고 말했다. 또한 “박 전 대표도 정치를 하는 분이기 때문에 위기 때 협력하는 자세를 취할 것으로 보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긍정론을 폈다.
박 전 대표의 생일이기도 했던 지난 2일 최고위원·중진의원 청와대 초청 오찬에서 생일케이크를 준비하고 축가를 부르는 등 공을 들였다. MB가 직접 접시에 한과를 담아주는 친밀감을 보이기도 했다. 회동 후 MB와 박 전 대표가 아무도 모르게 몇 분간 밀담을 나누기도 했다.
회동 이후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회동을 두고 엇갈린 보도가 나갔더라”면서 “해빙기 때 얼음이 한꺼번에 녹는 것을 봤느냐”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녹아가는 과정에서 약간의 살얼음이 남을 수 있다. 그러나 방점은 ‘얼음이 녹고 있다’는 점이다. 입춘 아니냐”면서 친이·친박간 냉랭한 기운이 녹고 있냐는 질문에 “그렇다. 120%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靑 회동 발언 꿰뚫어보니…
최고위원·중진의원 청와대 초청 오찬 참석자들의 발언을 보면 이 날 분위기와 그들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다.
박희태 대표는 이날 “어려움이 많아서 견디기 힘든 시기지만 다난흥방(多難興邦)이라는 고사를 생각하면서 힘을 내야 할 시기”라며 “다난흥방은 큰 어려움을 겪고 나면 오히려 나라를 융성하게 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합심해서 노력을 한다면 나라 발전을 이룬 기회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한나라당의 당헌에는 대통령은 당의 정강정책을 국정운영에 반영하도록 되어있고 당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으로 되어있는 만큼 당헌대로만 한다면 우리는 다난흥방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당과 청와대의 유기적인 관계를 강조했다.
또한 박 전 대표의 생일을 축하하며 “앞으로는 우리 당을 위해서 좋은 말을 많이 해주고, 당을 잘 지도해주길 바란다. 우리 모두 합심해서 나라를 일으킨 위대한 주역이 되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박 전 대표가 비판적인 발언으로 ‘여당 내 야당’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견제하는 동시에 한발 물러서 있는 박 전 대표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박순자 최고위원은 “청와대에 와서 잡채를 처음 먹어봤는데 아마도 박 전 대표의 생일이라 특별히 마련한 것 같다. 대통령도 청와대 와서는 처음 들어보는 메뉴라고 했고 맹형규 정무수석비서관은 오찬을 한 상춘제는 부시 대통령과 후진타오와 같이 정상들과 만찬을 했었던 자리였다고 소개했다. 그만큼 귀한 분들이 오셨기 때문에 자리 마련하는데 각별히 신경을 썼다는 말”이라고 말했다.
박 최고위원의 발언에서는 ‘특별히’, ‘정상’, ‘귀한’, ‘각별히’라는 단어 등 박 전 대표를 향한 청와대의 배려와 존중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친박계 김무성 의원은 “이번에 뉴욕에 가서 금융기관의 CEO들을 많이 만났는데 뉴욕이나 미국을 덮치고 있는 금융위기, 또 실물경제위기가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체감하고 듣고 왔다”며 ‘경제대통령’을 꼬집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어 김 의원은 “우리 모두 전대미문의 위기를 맞아서 고통을 분담하는 사회 분위기가 되어야겠다”면서 “대통령이 혼자 고생하는 것 같은데 우리가 그 고생을 분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달라”고 친박계의 중용론을 에둘러쳤다.
뿔난 친박계 “안 줄 거면 아예 말도 꺼내지 말 것이지…”
어르고 때리고, 친박 정신 못 차리게 하는 MB 양면정치
또한 “사회통합과 더불어 한나라당 내부의 통합을 이룰 수 있는 계기도 만들어달라”는 말은 친박계가 당 내 비주류라는 점에 비춰봤을 때 친이계의 ‘양보’를 바라는 말로 비춰진다.
김 의원은 “역할을 주면 최선을 다하겠다”며 “당의 통합의 계기도 마련해주고 당정협의도 더 자주 마련해주고 박 전 대표와도 더 자주 만나서 말을 나눠달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대통령이 직접 생일을 축하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그동안 국내외적으로 상당히 여건이 어려워서 정부도 대통령도 고생이 무척 많았다. 세계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경제를 꼭 살려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특히 박 전 대표는 “2월에 국회가 곧 시작되는데 쟁점법안들은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면서 청와대의 ‘속도론’을 지적하며 “사회통합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는데 큰 힘이 되게 마련이다. 쟁점법안은 정부와 야당, 그리고 국민간의 관점의 괴리가 큰 것 같은데 당·정부가 긴밀히 협조하고 보완책을 만들어 경제를 살리고 쟁점법안도 잘 처리되면 좋겠다”고 ‘소통’을 당부했다.
친박계 채점 화합성적표 ‘양’
생일상에도 박 전 대표의 비판은 흔들리지 않았다. 또한 박 전 대표의 뒤에 선 친박계는 ‘환한 얼굴’의 청와대를 ‘분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 말로는 ‘화해하자’, ‘풀자’고 하고 진정성 있는 행동이 나오고 있지 않다는 게 그 이유다.
언론에서 행안부 장관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김무성 의원은 “한나라당은 좌파 정권의 지난 10년 동안의 적폐를 빠른 시간에 이소하기 위해 단결해야 하는데 인사 때마다 당을 분열시키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실제 제안은 없이 ‘떠보기’에 그친 것이라는 비판도 만만찮다. 박 전 대표의 ‘대북특사설’이나 ‘총리기용설’처럼 실제적인 제안은 없이 언론에 말을 흘려 반응을 보다가 “그런 일 없다”고 일축하고 나선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친박계 일각에서는 “공식적인 요청이나 행동이 없는 한 앞으로도 청와대의 제안에는 가치를 두지 않을 것”이라며 “정치권에서 시작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청와대도 염두에 두고 있었으면서 이렇게 뒤통수를 쳤어야 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썩 좋지 못한 관계를 보여주듯 김무성 의원은 청와대 회동 후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우리에게 기회를 주면 역할을 할 준비가 충분히 돼있다는 발언을 했다”고 브리핑하자 “마치 내가 한 자리라도 요구한 것처럼 브리핑했다”며 즉각 기자간담회를 열어 반박했다.
김 의원은 “우리가 공감대를 형성해서 같이 가자는 것을 대통령 앞에서 충정을 가지고 이야기 했는데 이것이 한 줄로 돼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며 “(이동관 대변인의) 이런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을 다치게 한다. 신중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 3일 “2월 국회가 끝나면 건전한 비주류로서 역할을 할 생각”이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김 의원은 “MB에게 협조할 것은 적극 협조하겠지만 잘못된 일이 있으면 건전한 비판을 강하게 할 생각"이라면서 “대통령 임기 1년 동안은 조용하게 협조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해서 일절 소리를 내지 않고 협조해왔는데 이것을 고맙게 생각하지 않고 일부에서 왜 비협조적이냐고 비판을 해왔다. 앞으로는 잘못된 일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려가지고 반드시 지적하고 넘어가겠다”고 말했다.
친박계 좌장격인 김 의원은 특히 이러한 견해가 ‘친박계 내부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친이계 일각에서 “냉소적이고 방관자적 자세로 이 정권을 바라보거나 반대만 하면서, 순간적 인기에 연연해 다음 주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잘못됐다”면서 박 전 대표를 겨냥하고 있는데다 친박계를 향해 시퍼런 공천칼날을 휘둘렀던 이재오 전 의원이 복귀를 앞두고 있어 계파갈등은 격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