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이명박 회동 후폭풍

▲ “생일상은 받았는데…”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생일상을 두고 얼굴을 마주했다. 그러나 청와대 생일상도 박 전 대표의 쓴소리는 막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표와 회동했다. 최고위원·중진의원 청와대 초청 오찬을 통해 오랜만에 자리를 함께 한 것이다. 일정을 두 번이나 연기한 끝에 이뤄진 오찬에서 MB는 박 전 대표와 화기애애한 모습을 내비쳤다. 이날은 박 전 대표의 생일이기도 해 시종일관 축하와 화답이 오가는 정겨운 분위기로 치러졌다. 청와대는 오찬 후 MB와 박 전 대표의 관계와 관련, “해빙기를 맞고 있다”고 평했다. 그러나 친박계의 생각은 달랐다. 박 전 대표의 회동 참석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던 친박계는 좌초된 계파 인사의 내각행과 친박계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에 ‘건전한 비주류’를 들며 “잘못된 일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려가지고 반드시 지적하고 넘어갈 생각”이라고 못박았다. MB와 박 전 대표의 미소가 얼어붙은 마음까지 녹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생일상 받고 친박계 장관 입각 선물 뺏긴 박근혜
손잡자 내밀어 놓고 측근 홀대에 씁쓸함 안고 간 만남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관계가 갈등에서 화합으로 변화될 수 있을까. 친박계 인사의 내각행이 거론되고 청와대로 초청, 오찬 회동을 갖는 등 다양한 방안이 추진되고 있지만 청와대와 친박계가 각각 채점한 화합성적표의 점수는 크게 엇갈리고 있다.

청와대 채점 화합성적표 ‘우’

MB가 박 전 대표를 향한 구애를 시작했다. 집권 2년차를 맞아 강력 드라이브를 추진하는 동시에 보수세력의 결집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년을 보내며 친박계, 즉 박 전 대표의 동의 없이는 국정 운영에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손 내밀기에 나선 것.
바닥까지 내려간 지지율을 보수로의 전환으로 다시 상승시키고 있지만 이러한 시도가 폭발력을 갖기 위해서는 박 전 대표로 대표되는 범보수층의 결집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화해’와 ‘양보’를 이끌어 냈다는 평이다.
MB는 이번 개각에서 친박계 인사의 기용을 염두에 뒀으며 ‘대통령과의 원탁대화’에서 “박 전 대표와는 밖에 알려진 만큼 서먹한 관계 아니다”고 말했다. 또한 “박 전 대표도 정치를 하는 분이기 때문에 위기 때 협력하는 자세를 취할 것으로 보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긍정론을 폈다.
박 전 대표의 생일이기도 했던 지난 2일 최고위원·중진의원 청와대 초청 오찬에서 생일케이크를 준비하고 축가를 부르는 등 공을 들였다. MB가 직접 접시에 한과를 담아주는 친밀감을 보이기도 했다. 회동 후 MB와 박 전 대표가 아무도 모르게 몇 분간 밀담을 나누기도 했다.
회동 이후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회동을 두고 엇갈린 보도가 나갔더라”면서 “해빙기 때 얼음이 한꺼번에 녹는 것을 봤느냐”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녹아가는 과정에서 약간의 살얼음이 남을 수 있다. 그러나 방점은 ‘얼음이 녹고 있다’는 점이다. 입춘 아니냐”면서 친이·친박간 냉랭한 기운이 녹고 있냐는 질문에 “그렇다. 120%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靑 회동 발언 꿰뚫어보니…

최고위원·중진의원 청와대 초청 오찬 참석자들의 발언을 보면 이 날 분위기와 그들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다.
박희태 대표는 이날 “어려움이 많아서 견디기 힘든 시기지만 다난흥방(多難興邦)이라는 고사를 생각하면서 힘을 내야 할 시기”라며 “다난흥방은 큰 어려움을 겪고 나면 오히려 나라를 융성하게 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합심해서 노력을 한다면 나라 발전을 이룬 기회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한나라당의 당헌에는 대통령은 당의 정강정책을 국정운영에 반영하도록 되어있고 당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으로 되어있는 만큼 당헌대로만 한다면 우리는 다난흥방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당과 청와대의 유기적인 관계를 강조했다.
또한 박 전 대표의 생일을 축하하며 “앞으로는 우리 당을 위해서 좋은 말을 많이 해주고, 당을 잘 지도해주길 바란다. 우리 모두 합심해서 나라를 일으킨 위대한 주역이 되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박 전 대표가 비판적인 발언으로 ‘여당 내 야당’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견제하는 동시에 한발 물러서 있는 박 전 대표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박순자 최고위원은 “청와대에 와서 잡채를 처음 먹어봤는데 아마도 박 전 대표의 생일이라 특별히 마련한 것 같다. 대통령도 청와대 와서는 처음 들어보는 메뉴라고 했고 맹형규 정무수석비서관은 오찬을 한 상춘제는 부시 대통령과 후진타오와 같이 정상들과 만찬을 했었던 자리였다고 소개했다. 그만큼 귀한 분들이 오셨기 때문에 자리 마련하는데 각별히 신경을 썼다는 말”이라고 말했다.
박 최고위원의 발언에서는 ‘특별히’, ‘정상’, ‘귀한’, ‘각별히’라는 단어 등 박 전 대표를 향한 청와대의 배려와 존중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친박계 김무성 의원은 “이번에 뉴욕에 가서 금융기관의 CEO들을 많이 만났는데 뉴욕이나 미국을 덮치고 있는 금융위기, 또 실물경제위기가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체감하고 듣고 왔다”며 ‘경제대통령’을 꼬집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어 김 의원은 “우리 모두 전대미문의 위기를 맞아서 고통을 분담하는 사회 분위기가 되어야겠다”면서 “대통령이 혼자 고생하는 것 같은데 우리가 그 고생을 분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달라”고 친박계의 중용론을 에둘러쳤다.

뿔난 친박계 “안 줄 거면 아예 말도 꺼내지 말 것이지…”
어르고 때리고, 친박 정신 못 차리게 하는 MB 양면정치


또한 “사회통합과 더불어 한나라당 내부의 통합을 이룰 수 있는 계기도 만들어달라”는 말은 친박계가 당 내 비주류라는 점에 비춰봤을 때 친이계의 ‘양보’를 바라는 말로 비춰진다.
김 의원은 “역할을 주면 최선을 다하겠다”며 “당의 통합의 계기도 마련해주고 당정협의도 더 자주 마련해주고 박 전 대표와도 더 자주 만나서 말을 나눠달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대통령이 직접 생일을 축하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그동안 국내외적으로 상당히 여건이 어려워서 정부도 대통령도 고생이 무척 많았다. 세계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경제를 꼭 살려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특히 박 전 대표는 “2월에 국회가 곧 시작되는데 쟁점법안들은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면서 청와대의 ‘속도론’을 지적하며 “사회통합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는데 큰 힘이 되게 마련이다. 쟁점법안은 정부와 야당, 그리고 국민간의 관점의 괴리가 큰 것 같은데 당·정부가 긴밀히 협조하고 보완책을 만들어 경제를 살리고 쟁점법안도 잘 처리되면 좋겠다”고 ‘소통’을 당부했다.

친박계 채점 화합성적표 ‘양’

생일상에도 박 전 대표의 비판은 흔들리지 않았다. 또한 박 전 대표의 뒤에 선 친박계는 ‘환한 얼굴’의 청와대를 ‘분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 말로는 ‘화해하자’, ‘풀자’고 하고 진정성 있는 행동이 나오고 있지 않다는 게 그 이유다.

▲ “해빙기는 착각?” 청와대는 MB와 박근혜 전 대표의 관계를 ‘해빙기’로 표현했다. 하지만 친박계는 “건전한 비판을 강하게 할 생각”이라며 이러한 ‘착각’을 꼬집었다.
이번 개각에서 친박계는 내심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탕평인사’를 들며 청와대와 친이계 일각에서 친박계 인사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친박계 인사의 기용이 예상됐던 행정안정부 장관에 이달곤 한나라당 의원을 내정하자 친박 내부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언론에서 행안부 장관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김무성 의원은 “한나라당은 좌파 정권의 지난 10년 동안의 적폐를 빠른 시간에 이소하기 위해 단결해야 하는데 인사 때마다 당을 분열시키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실제 제안은 없이 ‘떠보기’에 그친 것이라는 비판도 만만찮다. 박 전 대표의 ‘대북특사설’이나 ‘총리기용설’처럼 실제적인 제안은 없이 언론에 말을 흘려 반응을 보다가 “그런 일 없다”고 일축하고 나선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친박계 일각에서는 “공식적인 요청이나 행동이 없는 한 앞으로도 청와대의 제안에는 가치를 두지 않을 것”이라며 “정치권에서 시작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청와대도 염두에 두고 있었으면서 이렇게 뒤통수를 쳤어야 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썩 좋지 못한 관계를 보여주듯 김무성 의원은 청와대 회동 후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우리에게 기회를 주면 역할을 할 준비가 충분히 돼있다는 발언을 했다”고 브리핑하자 “마치 내가 한 자리라도 요구한 것처럼 브리핑했다”며 즉각 기자간담회를 열어 반박했다.
김 의원은 “우리가 공감대를 형성해서 같이 가자는 것을 대통령 앞에서 충정을 가지고 이야기 했는데 이것이 한 줄로 돼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며 “(이동관 대변인의) 이런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을 다치게 한다. 신중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 3일 “2월 국회가 끝나면 건전한 비주류로서 역할을 할 생각”이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김 의원은 “MB에게 협조할 것은 적극 협조하겠지만 잘못된 일이 있으면 건전한 비판을 강하게 할 생각"이라면서 “대통령 임기 1년 동안은 조용하게 협조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해서 일절 소리를 내지 않고 협조해왔는데 이것을 고맙게 생각하지 않고 일부에서 왜 비협조적이냐고 비판을 해왔다. 앞으로는 잘못된 일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려가지고 반드시 지적하고 넘어가겠다”고 말했다.
친박계 좌장격인 김 의원은 특히 이러한 견해가 ‘친박계 내부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친이계 일각에서 “냉소적이고 방관자적 자세로 이 정권을 바라보거나 반대만 하면서, 순간적 인기에 연연해 다음 주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잘못됐다”면서 박 전 대표를 겨냥하고 있는데다 친박계를 향해 시퍼런 공천칼날을 휘둘렀던 이재오 전 의원이 복귀를 앞두고 있어 계파갈등은 격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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