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원세훈 행정안정부 장관의 후임 인사와 관련,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양치기 소년’이 됐다가 사과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없다’ 단언은 못 믿을 말

개각을 단행한 후 후속 인선을 속속 발표하고 있는 청와대에 정치권의 시선이 고정됐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의 후임이다. 원세훈 장관이 차기 국정원장에 내정되면서 김석기 내정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떠나게 된 어청수 경찰청장부터 앙금이 남은 친박계 인사의 중용론까지 정치권을 뜨겁게 달궜다.

특히 여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인 입각론’이 제기되며 김무성·허태열 의원이 하마평에 오른 친박계도 내심 기대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정작 자리의 주인은 따로 있었다. 한나라당 이달곤 의원이 행정안전부 장관에 내정된 것. 동아고와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 하버드대에서 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 의원은 한국지방행정연구원장, 서울대 행정대학원장, 한국행정학회·협상학회 회장을 거쳐 지난해 대통령직 인수위원으로 활동한 당내 행정전문가다.

이 같은 사실은 박희태 대표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 의원의 내정이 확정된 지난달 30일 1시 30분께 박 대표가 국회 대표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당에서 행정안전부 장관 후임에 이달곤 의원을 추천했다”며 “훌륭한 인품과 지방행정의 전문성 등을 참작해 조금 전에 청와대 건의했다”고 알린 것.

박 대표는 “(당이) 최종적인 결정권자는 아니지만 대통령으로부터 장관 임명을 받을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이 의원의 내정이 확정됐음을 확인했다.

박 대표의 ‘공개’에 이동관 대변인은 당황하고 말았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정치인 입각은 없다”고 못박았기 때문에 졸지에 ‘양치기 소년’이 되고 말았던 것.

이 대변인은 이날 오전 “여러 차례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씀드렸는데도 자천타천형 기사가 난무하고 있어 정리를 해드리는 게 좋겠다”면서 “이번에 정치인 입각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지난번 박 대표와 만날 때 이번에는 개각폭도 적고 지금 경제부처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이미 밝히신 바가 있다”며 “물론 행정안전부장관 인사가 다시 유턴하는 바람에 그런 의견개진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쨌건 현재로서는 그 원칙과 방침에 변함이 없다는 점을 거듭 밝힌다”고 말했다.

이 의원의 내정소식이 알려지자 청와대도 이를 시인했다. 이 대변인은 “어디 보니 허언했다고 비판했는데 비판한다면 겸허히 받겠다”며 “본뜻은 그런 게 아니었으니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또 “내가 오버한 것 같다”고 실수를 인정했다.

이 대변인은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오전까지 특정 인물을 두고 혼선이 계속돼서 ‘정치인 입각은 없다’고 얘기한 것”이라며 “(이 의원은) 국회의원 신분을 갖고 있지만 당내 최고의 행정전문가의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말, 길게 할수록 꼬인다

‘정치인이기 보다는 행정전문가’라는 이 의원에 대한 궁색한 변명에 이어 이 대변인은 “솔직히 결정의 흐름이 좀 빨라졌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고 거듭 ‘해프닝’을 강조했다.

그러나 의원 입각에 대한 박 대표의 설명은 달랐다. 박 대표는 “며칠 전부터 깊이 논의했다. (청와대와) 계속 교감하면서 몇몇 분들 중에서 당이 선택한 것”이라고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어 “(청와대가) 행정안전부장관 후보로 여러 사람을 물색한 것 같은데 잘 안되고 시간이 가니까 최종적으로 당에서 논의해서 결정했으면 좋겠다고 의논이 돼서 당에서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이 대변인은 ‘당이 장관 내정 사실을 발표한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 의미는 설명 안 해도 다 알 텐데 그런 것으로 보인다고 쓰면 되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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