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치가문

▲ ‘가문의 영광’ 정가에 아버지에서 아들로, 손자로 ‘금배지’를 이어가는 정치가문이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대한민국 ‘정치가문’이 뜨고 있다. 대통령, 법무장관, 상원의원 등을 배출한 미국의 유명한 정치명가 케네디가(家)처럼 우리나라에도 대를 이어 정치를 하는 ‘정치가문’이 하나둘 새롭게 생겨나거나 그 역사를 더하고 있다. 아직 ‘정치명가’라는 이름에 부족하지만 대를 이어 금배지를 단 이들의 활약은 ‘명가’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지역 기반·인맥·정치력 대 이어 국회로 흐른다
성공한 2세 정치인 박근혜·정몽준 대권 정조준

우리나라 60여 년 헌정사에서도 대대로 국회의원, 장관 등을 배출해 낸 ‘정치 명가’를 꼽기란 매우 힘들다. 그러나 18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3대째 국회의원’이 나오는 등 그동안 쌓은 내공이 ‘가문’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속속 눈에 띈다.

변치 않은 정치 유전자

대표적인 2세 정치인에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정몽준 최고위원이 있다. 한나라당 4선 의원인 박 전 대표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장녀로 부모님의 이름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녀야 했다.

그러나 2004년 17대 총선에서 탄핵역풍을 뚫고 박풍(朴風)을 일으키며 ‘꼬리표’를 떼어내기 시작했다. 이후 한나라당 대표로 추락한 당 지지도를 50%대로 끌어올리고 유력 대선후보로 자리매김하며 ‘박근혜’라는 이름을 세웠다.

정몽준 최고위원은 14대 의원이자 대선후보로 나섰던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6남이다. 그는 1988년 13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 내리 6선을 한 중진 의원으로 부친보다 먼저 정치에 입문했다. 지난 대선에서 오랜 무소속 생활을 접고 한나라당에 입당, 최고위원에 선출되며 당 내 중추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미스터 쓴소리’로 불렸던 조순형 자유선진당 의원은 유서 깊은 정치가문 출신이다. 현역 최다선(7선)인 조 의원은 우익 독립운동가이자 3, 4대 국회의원, 1960년 민주당 대선후보를 지낸 유석(維石) 조병옥 선생의 3남2녀 중 막내다.

그는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고향은 충남 천안시 병천면으로 3.1운동 당시 유관순 열사가 아우네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던 곳이다. 3.1운동 때 유관순 열사와 함께 아우네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조인원씨가 그의 할아버지이며 6선(5·6·7·8·13·14대) 의원이었던 故 조윤형 전 국회부의장을 형으로 두고 있다.

조 의원은 1981년 정치규제에 묶인 형 조 전 부의장을 대신해 출마하면서 정계에 입문했으며 14대 때는 형제가 나란히 등원하기도 했다.

3대를 잇는 정치가문으로 정대철 민주당 상임고문의 집안도 빼 놓을 수 없다. 부친인 정일형 전 외무부 장관에서 정 고문, 아들인 정호준 전 청와대 행정관으로 이어지는 3대 정치를 하고 있는 것.

신민당 부총재와 대표권한 대행을 지낸 정 전 장관은 1950년 서울 중구에서 당선된 뒤 내리 8선을 했으며 정 고문이 지역구를 이어받아 5선을 했다. 정 전 행정관도 17대 총선에서 지역구 승계에 나섰으나 낙선했다. 이후 18대 총선에는 지역구를 정범구 전 의원에게 양보하고 민주당 비례대표를 신청했으나 결국 출마를 포기했다.

대 이어 ‘기반’ 물려주기

이 외에도 대를 이어 정치를 가업으로 삼고 있는 집안이 상당하다. 남경필 의원은 남평우 전 의원(14·15대)이 임기 중 별세하자 부친의 지역구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내리 4선을 해 당 내 중진의원으로 꼽히고 있다.

정진석 의원의 부친은 내무부 장관을 지낸 정석모 전 의원(6선)이며, 친박계 ‘책사’로 불리는 유승민 의원은 13,14대 의원을 지낸 유수호 전 의원의 차남이다. 김태환 의원의 부친은 故 김동석 전 의원(4대), 형은 작고한 허주(虛舟) 김윤환 전 신한국당 대표(5선)다. 김 의원은 형의 지역구인 경북 구미을에 출마해 당선됐다.

유일호 의원은 민한당 총재를 지낸 故 유치송 전 의원(5선)의 장남이며 장제원 의원은 장성만 전 국회부의장(11·12대)의 차남, 이종구 의원은 지난해 세상을 떠난 이중재 전 의원(6선)의 아들이다.

18대 국회 지역구 최연소 의원인 김세연 의원은 무소속으로 출마, 당선됐다. 젊은 사업가로 별다른 정치 이력은 없었지만 부산 금정구에서 5선(11·13·14·15·16대)을 지낸 부친 故 김진재 전 의원과 장인 한승수(13·15·16대) 총리의 ‘정치력’을 물려받았다. 민주당 김성곤 의원은 선친 故 김상영(8·9대) 전 의원의 지역구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친박연대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김을동 의원은 3,6대 의원을 지낸 부친 김두한 전 의원의 뒤를 이었으며, 정우택 충북지사도 작고한 부친 정운갑 전 의원(5선)을 이어 정계로 들어선 2세 정치인이다.

‘형제 정치인’들도 눈에 띈다. 현 대통령인 MB는 형제가 나란히 정치를 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은 그보다 먼저 정치를 시작한 6선 의원으로 MB의 중요한 정치적 후원자다. 김효재 의원은 15대 의원을 지낸 김의재 의원의 동생이다.

며느리가 ‘정치가문’을 잇기도 했다. 이혜훈 의원은 시아버지 故 김태호 전 의원에게서 정치를 배웠으며 18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은 “가풍이 유전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정치력이나 정치적 감각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를 이어 정치를 하고 있다고 해도 ‘명가’라는 이름은 함부로 붙지 않는다. 위로부터 이어져 온 가풍과 튼튼한 인맥이 정치적 자산이 되고 ‘존경’을 받을 수 있게 되어서야 ‘명가’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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