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오버리 '독재자들'




두 독재 체제의 작동 비밀을 파헤친 기념비적 비교사 연구
히틀러와 스탈린, 지도력 차이가 전쟁 승패 가른 핵심 요인


역사상 가장 폭력적으로 인명을 학살해 ‘20세기의 쌍둥이 악마’로 불리는 히틀러와 스탈린. 두 사람은 수천만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역사상 가장 파괴적이고 치명적인 독재 체제를 지휘했으며,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거대하고 가장 소모적인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수많은 독일인과 러시아인들은 열광적으로 그들을 지지했으며, 그들이 대표한 가치를 옹호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던 걸까.

제2차 세계대전과 제3제국 연구로 이름을 알린 역사학자 리처드 오버리의 ‘독재자들’은 20세기 세계사에서 전무후무한 독재 체제를 수립했던 히틀러의 독일과 스탈린의 소련을 시작부터 끝까지 밀착해 보여주는 독보적인 비교사이자 두 독재자의 정치적 전기이다.

‘독재자들’은 두 체제의 작동 비밀을 토대에서 구조까지 동시에 분석한 최초의 비교사 연구서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독재 탄생의 역사적·사회적 배경에서부터 개인숭배, 대중 선동, 국가 테러, 총력전에 이르기까지 독재의 모든 층위를 속속들이 해부해 보여준다.

히틀러와 스탈린은 서로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두 독재자는 서로를 잘 알고 있었으며, 상대 국가에 대한 지식을 토대로 행동했다. 전쟁이 일어난 후 두 독재자는 잠시 동안이나마 자신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협력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해보았다.

스탈린은 “독일인과 함께했다면 우리는 무적이었을 것이다”라 말했다고 전해진다. 1945년 2월 히틀러는 과거에 자신이 선택했을 수도 있는 대안을 평가하면서 자신과 스탈린이 “양측에서 공히 냉철한 현실주의의 정신을 지녔다면 영구적으로 동맹할 수 있는 상황을 창조했을지도 모른다”라고 가정했다. 다행히도 인류는 이 소름 끼치는 협력에서 벗어났다. 두 사람의 야심이 결합하지 않고 분열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히틀러와 스탈린의 정면 대결에서 히틀러가 패했을까. 1930년대 독일은 군수 생산과 경제에서 모두 소련에 비해 월등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고 오랫동안 전쟁을 준비했는데 어떻게 소련이 승리할 수 있었던 걸까.

나폴레옹이 추위 때문에 러시아에서 물러났듯이 독일군도 혹독한 추위 때문에 패할 수밖에 없었다거나 소련군이 인해전술로 밀어붙여서 성공했다는 통설도 있고, 스탈린이 발군의 리더십을 발휘해 전 소련 인민을 총력전에 동원했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는 식의 설명도 있다.

‘독재자들’은 독일과 소련의 기록보존소에서 1990년대 이후에 발굴된 수많은 통계 자료,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부터 지금까지 두 독재 체제를 분석한 기념비적 연구들, 독재 체제를 살았던 실존 인물들의 증언과 기록 들을 토대로 이 같은 일방적이고 모호한 설명에 쐐기를 박는다.

저자는 여러 물질적?정신적 요인 중에서도 두 독재자가 전쟁 수행 노력에서 보인 지도력의 차이가 전쟁의 승패를 가른 핵심 요인이라고 분석한다. 즉 히틀러와 스탈린, 두 사람이 결정적 요인이었던 것이다.

1941년 여름부터 1945년 봄까지 독일과 소련 사이에 벌어졌던 피비린내 나는 길고 혹독한 전쟁은 두 독재 체제 중 어느 하나의 생존을 결정할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다.

그 전쟁은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이념의 전쟁이자, 어느 한쪽이 완벽하게 파괴되어야 끝날 수 있는 전쟁이었다. 결국 히틀러는 패했고 포로가 되기보다 자살을 택했다. 스탈린의 체제는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그 승리를 바탕으로 더욱 강력해졌다.

‘독재자들’에서 저자는 히틀러와 스탈린, 이 두 체제가 서로 상대를 파멸로 이끌기까지 몰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두 체제의 성립 배경과 작동 방식, 체제의 이데올로기적 지향 같은 좀 더 근본적인 원인에서 찾는다.

역사적 상상력을 강하게 자극하는 이 책은 “독재 체제는 어떻게 가능했는가”, “독재 체제는 어떻게 작동했는가”, “독재자와 민중을 그토록 강력하게 묶은 힘은 무엇이었는가”, “독재자의 대결에서 스탈린이 승리한 이유는 무엇인가”같은 중요한 질문들에 명쾌한 해답을 내놓는다.

독재자들/ 리처드 오버리 저/ 교양인/ 4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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