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사표’ 전쟁 <막전막후>

▲ 각 부처 고위 공무원의 사표 제출이 잇따르면서 관가와 정가는 ‘개각’의 신호탄이 쏘아졌다는 시선이 불거지고 있다.
공직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각 부처 고위 공무원들이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인적쇄신의 회오리가 몰아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들이 분위기 일신을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라고 그 의미를 축소하고 있지만 청와대의 직·간접적 입김이 있었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반응이다. 특히 정가는 2월에 있을 것으로 보이는 ‘개각’의 사전작업으로 보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집권 2년차에 들어 본격적인 ‘정체성 확립’을 위해 대대적인 물갈이 쓰나미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국무총리실과 교육인적자원부 국세청에 이르기까지 1급 공무원들의 사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줄줄이 사표 날린다

지난 12월15일 교육인적자원부와 국세청 1급 공무원들은 일괄 사표를 제출, 공직 사회에 쇄신의 바람을 불러일으킨데 이어 지난 12월19일 국무총리실 8원 전원, 농림수산식품부 1급 4명이 사표를 제출하며 파급력을 높여가고 있다.
외교통상부도 무보직 고위공무원 10여 명의 사표를 권고했으며 국토해양부에도 쇄신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이에 대해 총리실 관계자는 “한승수 국무총리의 부담을 덜어주고 인사권 재량의 폭을 넓히기 위해 1급 고위공직자 8명이 사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인사와 관련한 장관의 고민을 알고 고위 공무원들이 먼저 분위기를 일신하는 모습을 보이자며 자발적으로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외교부도 “부내 심각한 인사적체를 연내 해소, 조직의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고위공무원 가 등급 이상중 정년과 향후 보직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표권고자를 선정했다”면서 “외교부의 구조조정 문제는 어제 오늘 제기된 사항이 아니며 작년부터 계속 추진돼 왔던 과제”라고 전했다.
또한 “청와대와의 사전 조율은 없었으며 외교장관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청와대 개입설을 일축했다.

관가에 부는 인적쇄신 회오리…각 부처 고위공무원 일괄사표 제출
10년 정권에 물든 ‘코드’ 공무원 걸러내는 개각 사전작업 시작됐다


각 부처는 “분위기 일신을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라고 강조하며 불필요한 뒷말이 나올까 ‘입단속’을 하고 있다. 청와대도 “청와대와는 무관하게 부처 자율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고위 공무원의 잇따른 사표 제출은 ‘공직사회 쇄신설’은 물론 ‘차관 교체설’, ‘4대 권력기관 물갈이설’로 번져가고 있다. 공직사회에 번지는 사표행렬에는 MB의 ‘의중’이 적잖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MB는 당선 후 “부처 이기주의는 소아병적”이라고 꼬집은데 이어 “공직자들이 어쩌면 이 시대에 걸림돌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위험 수위에 와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취임 후 ‘머슴론’을 펴며 공직사회 개혁을 주장하면서도 10년 정권의 그림자를 지우기에는 역부족이었음을 내비쳐왔다.
그러나 최근 ‘걸림돌’을 “뿌리 뽑겠다”는 ‘기세’가 강해졌다. MB는 지난 12월18일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우리가 희생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위기를 극복하는데 방해 요소”라고 말했다.
그는 “일하지 않고 실수하지 않는 공직자를 바라는 게 아니다. 공직자가 일하지 않으면 실수도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일하지 않는 사람이 어부지리를 얻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지난 12월22일 정부부처 업무보고에서도 “대열의 속도에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이 끼어 있으면 그 대열 전체가 속도를 낼 수 없다”면서 “공직자는 국가관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지금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고, 이러한 국가정체성 문제는 지난 10년에 뿌리를 두고 있는 부분도 있다”고 지적하며 “개혁이나 경제문제, 국가정체성 문제 모두 소홀히 할 수 없다. 하나하나 시정해 나가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MB가 국가정체성까지 언급하고 나선 것은 공직사회 ‘물갈이’를 통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이념을 청산하고 자기 방식으로 바꿔나가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10년 정권이 이어지며 ‘코드’를 맞춰온 차관이나 1급 공무원들이 이명박 정부 첫 조각이나 1차 개각에서 조직 안정성을 이유로 상당수 살아남았기 때문에 ‘푸른 피’를 수혈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개각 사전작업 ‘단계설’

여당도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전 정권에서 임명된 공직자들이 움직이지 않는 점을 끊임없이 지적해왔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정권이 바뀌어도 1급 이상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으며 나경원 의원은 “새 정부가 열심히 하려해도 코드가 맞지 않는 공무원들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몽준 최고위원도 “지난 정권에서 임명된 일부 인사들이 아직도 비협조적”이라고 꼬집었다.
이재오 전 의원의 최측근은 진수희 의원도 “대통령의 가치나 국정철학을 함께 공유한다는 점에서 코드 인사는 필요하다”면서 “각 부처들이 한번씩은 자기 점검을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런 일들은 취임 초에 진작 이루어졌어야 했다”고 1급 공무원의 사표행렬을 긍정 평가했다.
공직사회 물갈이는 또한 2월에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연초 개각’에 앞서 전열을 정비하는 사전작업으로도 해석되고 있다. 정부가 고위공직자의 사표를 시작으로 내부 발탁이나 외부 인재 영입을 통해 쇄신을 시작한 후 여당의 도움으로 ‘탄력’을 받겠다는 것. 때문에 일각에서는 의원 내각행을 공공연하게 거론하고 있다.
여권 일부 관계자들은 “지난달 장·차관들에 대한 청와대 내부 업무평가 결과와 업무보고 과정에서 드러난 업무능력과 충실성으로 차관급의 대대적인 교체가 이어질 것”이라면서 “이후 일부 장관들에 대한 교체작업도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단계적 개각설’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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