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푸른 싹’ 열전

▲ “나라도 열심히 뛴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층이 흔들리면서 여권 일각에서 차기주자들의 용트림이 나타나고 있다. 지방선거와 대선을 두고 ‘대안’으로 인정받겠다는 각오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이 지지율 정체기를 보내고 있는 가운데 여권 일각에서 차기 잠룡으로 불리는 이들이 ‘MB 대안’으로 인정받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차기 대권주자 1순위로 꼽히는 박근혜 전 대표는 ‘여름 공부’를 내공삼아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나섰으며 새 집에 자리를 잡은 정몽준 최고위원은 당·정·청의 소통난맥을 지적했다. 또한 박 전 대표와 이재오 의원을 끌어들여 ‘오픈 프라이머리’를 주장, 판메이커로 나섰다. 귀국설로 정가를 흔들었던 이 전 의원은 리모컨 정치를 가동했다. 그러나 강력한 드라이브보다는 자제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과격한’ 측근들과 비교되고 있다. 이 밖에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원희룡 의원과 버락 오바마의 당선으로 ‘호재’를 만난 박진 의원, 김문수 경기도지사, 오세훈 서울시장에 이르기까지 ‘될 성 푸른 싹’들이 자라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정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여당인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높다. ‘같이 욕먹는 처지’라도 한나라당에는 이 대통령에 대한 실망을 희석시켜줄 ‘차기 주자’들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권 초이기는 하지만 경제위기와 엇박자 정책으로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지 못한 이명박 대통령 대신 국민들의 눈은 차기주자를 좇고 있다.

박근혜, 준비운동은 ‘끝’

차기 대권주자 중 단연 선두에 서 있는 이는 박근혜 전 대표다. “손 내밀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적극적인 ‘동조’에 나서지도 않고 “정권 초 잡음을 내서야 되겠냐”며 정중동 행보를 펴온 박 전 대표지만 최근 그는 정부 정책을 비판하며 슬며시 정치 행보에 가속을 걸기 시작했다.
그동안 박 전 대표는 정치 현안에 대한 발언을 최대한 자제해왔다. 미니홈피를 통해 “지도자의 철학과 지도력이 그 나라의 운명을 바꾼다”, “조화로운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지휘자가 잘 하지 못하면 좋은 연주를 할 수 없을 것이고, 더불어 그 악기들이 없다면 지휘자는 또한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며 은근한 ‘어조’를 보였을 뿐이다.
그러나 지난달 말 “이제 며칠 뒤면 11월이 되어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며 ‘11월’과 관련, 강력한 행보가 이뤄질 것임을 내비친 직후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정부의 수도권 규제완화 정책을 겨냥한 것.
또한 17일 경제지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오프더레코드(off-the-record·비보도)’를 전제로 인사·경제·외교 등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총체적인 비판을 퍼부었다.
“정권을 교체해서 어려움이 더 많아졌다. 국민들께 면목이 없다”며 말문을 연 박 전 대표는 “최고로 잘할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사라면 전 정부의 인사라도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인사문제를 꼬집었다.
신뢰 잃은 대통령 대신 한나라당 차기주자 대권행보에 시선 주목
‘여름공부’ 마친 박근혜 복지·경제·대북관계 두드러지는 말·말·말

그는 “여름 내내 많은 책을 읽었고 경제공부도 열심히 했다”며 최근 경기침체 상황에 대해 날선 비판을 이어갔다.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5년마다 바뀌니까 정책 하나 뿌리 내리는 것도 없고, 한번 정권 바뀌니까 사람 바뀌고 정책 다 바뀌고 대북정책 다 바뀌니 이래서야 되겠는가”라고 반문하며 “북측이 강력한 조치들을 들고 나오는데도 우리는 제대로 된 예측과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를 향한 그의 완곡하지만 신랄한 지적에는 각계 전문가들을 과외선생 삼아 ‘여름공부’에 매진했던 내공이 드러난다. 비판 뿐 아니라 ‘대안있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여당 내 야당’으로 이 대통령에 대한 각을 세움으로써 차별화를 보이고 있으며 ‘오프더레코드’에서야 말하는 조심스러움, “새 대통령이 뜻을 펼칠 기회가 초창기 아니겠나. 사사건건 말하면 불협화음 나니까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조용히 있다”는 말로 ‘배려’를 보여줬다.
당에서는 ‘원박’(원조 박근혜), ‘월박’(친이에서 친박으로 넘어온 의원), ‘복박(다시 친박으로 돌아선 의원), ‘주이야박(晝李夜朴·낮에 친이계, 밤엔 친박계)’ 같은 신조어처럼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한 정치분석가는 “이명박 정부의 공과를 함께 가져가야 하는 여당 내에 있는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을 직접 비판 하는 것은 위험한 ‘도발’”이라며 “정권에 협조한다는 인식을 주면서도 ‘차별화’ 되는 것이 중요하다. 정권의 반대편에 섰다고 인식되는 순간, 살아있는 권력의 공격을 받게 되며, 정권과 동일시되면 국민들의 비판의 칼날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틀 짜고 판 키우는 정몽준

한나라당이라는 새 ‘둥지’를 만나 힘을 키우고 있는 정몽준 최고위원은 당 내 ‘깊이 있는 비판’을 하는 중진이자 정부와 당에 국민과 의원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전달자’, 차기 대선의 ‘판메이커’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정 최고위원은 16일 당내 최고위원회의와 고위당정회의의 운영방식과 관련한 비판을 쏟아냈다. 이미 여러차례 이에 대한 비판을 하고 최고위 회의를 보이콧하기도 했던 정 의원이지만 이날 발언은 좀 더 의미가 깊었다. 수도권 규제완화 등에 당정청의 목소리가 엇박자를 내고 당 내 불협화음이 나오는 등 ‘소통’에 대한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 나온 ‘쓴소리’였기 때문이다.
정 최고위원은 “한나라당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조심스럽지만 당이 새롭게 발전하는 게 바람직한 의견이라고 보면서 제 나름대로 목소리를 높여봤지만 한나라당이 많이 변화한 것 같지는 않다”며 말문을 열었다.

▲ “푸른 피 이어받은 푸른 싹” 박근혜 전 대표 뿐 아니라 한나라당 곳곳에서 차기, 차차기를 노리는 야심가들이 힘을 모으고 있다. 사진은 순서대로 김문수 경기도지사, 박진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원희룡 의원, 정몽준 최고위원.
그는 최고위 회의에 대해 “당헌상 최고의사결정 기구로 1주일에 2회 열리지만 보고와 의결사항이 많아 실질적 회의가 이뤄지는 데 한계가 많다”며 “최고위 회의를 토요일이나 일요일 오후에 열어 당내 현안에 대해 충분한 논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고위당정회의에 대해서도 “사실 정부정책의 설명만 듣는 자리가 돼서는 안 되며 실질적으로 토의를 하는 자리가 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연말, 연초 개각설과 관련해 “5년 단임제로 재선의 부담이 없기 때문에 정당이란 울타리에 갇히면 안 된다”면서 야당을 포함한 ‘초당적 거국내각’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공천문제에 대해 “벌써부터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문제를 놓고 잡음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당은 지금부터라도 공천방식 개혁을 위한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 여론을 수렴하는 일종의 국민경선 방식인 미국의 ‘오픈 프라이머리’ 제도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 최고위원이 청와대에 ‘주문’을 하고 당 운영과 민감한 ‘공천’ 문제에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내는데 대해 정치권은 그가 당에서 자리를 잡았다는 자신감의 발로로 보고 있다. 실제 정 최고위원은 당내 초선의원이나 친이계 인사들과의 접촉 빈도를 부쩍 늘려오는 등 ‘홀로서기’를 벗어나고 있었다.
또한 “박 전 대표뿐 아니라 야당에서도 쓸 만한 사람은 내각에 중용해야 한다”, “워싱턴에서 이재오 전 의원과 만나 하루속히 돌아오라고 말할 계획이다. 그가 내각에서 해야 할 역할이 있지 않겠느냐” 등의 언급은 당의 차기 주자들을 끌어내고 당의 변혁을 이끄는 등 ‘판 메이커’의 행로를 걷으려 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에 대해 정치권은 그가 당에 공헌을 하면서 분위기를 주도하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차기 주자를 강조하면서도 이를 전체적으로 조율할 수 있어 그의 역할이나 비중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것. 마지막에 뛰어들어 삼파전이나 연합전선 구축을 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편 국회 한미의원외교협의회 회장이자 당 한미비전특위 위원장인 정 최고위원은 12월1일 한나라당 의원대표단을 이끌고 워싱턴 DC를 방문,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인맥 쌓기에 나선다.

‘싸움쟁이’ 이재오는 가라!

이 대통령이 대선을 치르는 동안 ‘야전사령관’으로 활약했으며 투사 이미지가 강한 이재오 전 의원이 변하고 있다. 최근 조기복귀설로 정가를 흔든 이 전 의원이지만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며 ‘변신’은 이미 이뤄지고 있었다.
미국에서의 생활 중 홈페이지에 올린 글들을 통해 근황과 심경 변화를 전해온 이 전 의원은 미국에 도착한 직후 “어려울 때 일수록 자기주장이 강하면 분열되기 쉽다. 개인이나 나라가 모두 마찬가지”라면서 “애정을 갖고 하나 됨을 위해 토론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또한 “정상은 어디서나 오래 머물 수 없는 것”, “이웃과 함께 잘사는 사회가 되어야 자기도 잘 산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로 ‘포용의 정치학’을 논했다.

자리 굳힌 정몽준 당·정·청 비판 목소리 키우고 판메이커로 뛴다
이재오 ‘야전사령관’서 ‘화합형’으로 변신 중 “싸우지들 말라니까”

최근 행보에서도 측근들을 자제시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조기귀국설’이 나오자 진수희 의원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 “이번 학기말까지 강의를 계속한다는 계획 이외에 다른 일정은 확인된 게 없다. (이 전 의원은) 자신의 문제가 이 와중에 이슈가 되는 걸 전혀 원하지 않는다”고 여론의 관심에 대한 부담스러움을 전했다.
그를 사냥개로 비유한 권영세 의원에 대해 친이계 원외위원장들의 모임인 ‘거해’의 안병용 서울 은평갑위원장이 “긴급회의를 소집해 권 의원을 탈당시키거나 당 윤리위에서 제명조치 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을 모았다”면서 권 의원 탈당 촉구 기자회견을 논하자 안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현재 경제가 어렵고 나라가 혼란스러운데 집권당 위원장들이 기자회견을 할 경우 국민들이 보기에 좋지 않다”며 “정치하는 사람이 이런저런 말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극구 만류하기도 했다.
“박 전 대표의 반감을 사게 한 투사형 이미지는 버리고 이재오계는 없다는 걸 분명히 해야한다”는 한 원로 정치인의 조언처럼 여러모로 ‘조심스런’ 태도다.

거목 꿈꾸는 여당 새싹들

이외에도 여권에는 ‘될 성 푸른 싹’들이 ‘거목’을 꿈꾸고 있다. 원내에서는 투탑인 홍준표 원내대표와 임태희 정책위의장이 힘을 키우고 있으며 고군분투하는 원희룡 의원은 중립지대에서 힘을 키우고 있다.
원 의원은 이 대통령이 국가성장 비전으로 제시한 녹색성장문제를 화두로 ‘저탄소녹색성장국민포럼’을 꾸리고 새로운 국가비전 찾기에 몰두하고 있으며 경제문제를 두고 수시로 각계의 경제 환경 외교 전문가들을 만나 금융위기 극복 및 남북문제 등 현안에 대한 콘텐츠 확보에 열중하고 있다.
그는 당·정·청의 엇박자에 대해 “당이 청와대 서슬에 눌려 무기력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면서 “한나라당이 여당으로서 민심에 귀를 기울이고 민심을 반영해 견제할 것은 견제하고 국민에게 신뢰와 조정력을 보여줘야 하는데 당의 정치력과 역할이 너무 위축돼 있고 보이지 않는다”고 쓴소리를 했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23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이명박 대통령에게-손학규가 아깝습니다’라는 글에서 차기 대통령 감으로 꼽은 박 전 대표와 김문수 경기도지사, 박진 한나라당 의원도 주목할 만하다.
그가 꼽은 이들 중 박진 의원은 지난 4·9 총선에서 민주당 손학규 전 대표를 꺾고 당선된 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이 되는 등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또한 최근 미국 대통령으로 버락 오바마 후보가 당선되며 한미 FTA와 남북문제 등 현안을 협의하며 ‘외교통’의 진가를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수도권 규제완화’로 이 대통령과의 각 세우기에서 소기의 성과를 올렸다. 대선을 위한 의도적 행보가 아니었냐는 뒷말이 나오고는 있기는 하지만 ‘소신있고 추진력 있는 지도자상’을 세웠다는 평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연임을 위한 행보를 걷고 있다.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통해 이 대통령처럼 확실한 치적을 쌓을 수 있다면 차차기 정도는 사정권 안에 둘 수 있다는 계산이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