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국정감사 기간 불거진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 등의 쌀 소득보전 직불금 불법 수령 파문이 가을녘 풍년을 만끽하며 황금빛으로 물들어야 할 우리내 농민들의 가슴을 숯검뎅이처럼 태워버렸다.

쌀농사를 지으며 하루도 쉴틈없이 그 얼마나 허리를 굽히고 땀을 닦아냈던가. 논 한마지기 붙여봐야 비료값이며 일손들 일당이며 감당할 길 없어 막막했던 우리내 농민들 그들의 시름을 덜어주고자 마련했던 제도가 쌀 소득보전 직불금인 줄 높으신 양반님들이 알았다면 정말 그 피땀 어린 돈에 손을 댈 수 있었을까?

그러나 이같은 의문이 분노로 바뀌는데는 파문이 불거진 후 몇일 걸리지도 않았다. 그들에게 우리는 노브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사회적 지위에 맞는 도덕적 의무)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정말 양심이라는 것이 있는 것인지.

파문이 불거지고 정치권은 이 제도를 만든 노무현 정권과 현 정부가 편가르기라도 하듯 나뉘어 쌀 소득 직불금 부당 수령 의혹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여야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의혹을 파헤치겠다며 서로 주장하고 나섰고, 국정조사에 전격 합의했지만 현재 그들의 자세로 보아서는 국회가 관련 의혹을 낱낱이 밝히고 불법 지급된 직불금 환수와 제도 개선의 토대를 마련할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민주당은 감사원 명단을 공개하라며 이명박 정부의 책임을 부각할 것이 뻔하고 한나라당은 감사원의 은폐의혹과 지난해 6월 보고 이후에도 정부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기한 점을 들어 노무현 정부에 책임소재를 넘길 심산인 것.

정작 농민들이 밖에서 “농사지을 의욕마저 빼앗겼다”며 울분을 터뜨리는 아우성은 듣지 못한 채 정치공방과 정쟁만 난무하는 국정조사가 예상된다. 안봐도 비디오다. 지난 24일에도 농민들은 정치의 본산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집회를 열고 국회의원과 공직자들의 ‘쌀 소득 보전 직불금’ 부정수령을 규탄하고 농가대책을 요구했다.

그들의 요구는 간단했다. 집회를 주도한 전국농민회총연맹의 주장을 빌리자면 “직불금 불법수령 사태는 빚 갚을 걱정에 막막하기만 한 농민들에게 농사 지을 의욕마저 빼앗았다”며 “정부가 직접 나서 직불금 불법수령 고위공직자와 공무원을 발본색원하고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혹의 대상이 된 대부분의 공직자들이 해명처럼 가족이나 친척이 농사를 짓고 있다면 부재지주의 직불금 불법 수령은 더욱 확인하기 어렵고 문제가 되더라도 “대신 받아서 전했다”는 해명이 통하기 쉽다. 한국사회 친인척관계에서는 가능한 얘기다.

그래서 하는 얘기지만 결국 이같은 느슨한 규정, 잔꾀를 쓰면 쓸수록 구멍이 커 보이는 허술한 법규를 제대로 된 틀에 놓고 세밀하게 짜내는 것이 시급하다. 결함을 고치지 않고 결함에 빠진 이들만을 처벌한다면 언제든 재발할 수 있고, 검게 탄 농민들의 가슴은 영원히 황금빛을 덧칠 할 수 없을지 모른다.

지난 정부가 쌀시장 개방에 대한 농민근심을 덜고자 졸속법안을 추진하고 제도를 시행했던 것도 이해할만 하지만 지난 얘기일 뿐 국회는 향후 국정조사에서 정쟁이 아닌 농심을 헤아리는 ‘농쟁국조’를 해야 한다. 그리고 쌀 소득보전 직불금 파문을 보면서 가슴 한쪽이 서늘하거나 식은땀이 흐르는 인사들은 알아서 자진신고해서 광명 찾아야 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