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대북정책 위기설



이명박 정부가 집권 후 북한과의 관계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정권 초 대북 강경정책을 시작으로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등 악재를 거치는 동안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최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와병설로 혼란스러웠던 상황에서 북의 테러지원국 해제는 남북관계가 개선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미빛 구상’을 안겨줬었다. 그러나 북이 한국 정부가 대북을 적대시하는 정책을 계속해서 펼 경우 남북관계의 전면 차단을 포함한 중대 결단을 내리겠다는 강경대응을 보임에 따라 남북의 외교 기후도도 다시 냉랭해지고 있다. 여기에 국방관계자들의 강경발언이 한랭전선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북정책을 바꾸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등 이 대통령의 ‘대북정책 위기설’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통미봉남 자신감 얻은 北, 남북관계 외면한 南…‘위기’만 찾아든 남북관계
테러지원국 해제 北 독주, 북핵협상 등에서 우리정부 역할은 계속 축소 중



남북의 외교 기후 전선이 하루하루 그 모습을 달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흐림’이지만 최근에는 한랭전선이 더해지며 나날이 악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화해’는 모래밭서 바늘 찾기

이명박 정부가 정권을 잡은 후 대북정책에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대북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정권교체를 계기로 남북의 교류 담당자들이 대거 교체됐으며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등 악재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이 일을 계기로 “남북간 핫라인은 없다”는 게 확실해졌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에 대한 조사에 대해 의견 충돌을 겪으며 더 냉랭해진 관계는 ‘김정일 와병설’이라는 혼란기를 만났다. 대북관계의 개선을 위한 방안뿐 아니라 북한의 최고 권력자인 김정일이 정권의 전면에서 물러나게 될 경우 생기는 권력변화와 대외정책의 지각변동 등을 염려해야 하게 된 것.
남북관계에도 ‘햇살’은 있었다. 지난 2일 북의 요청으로 이명박 정부 들어 처음으로 남북 당국자 간 접촉인 남북군사실무회담을 열며 화해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후 미국이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계기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대대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비핵화와 북·미관계의 진전이라는 호재를 살려 남북관계를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대북전문가는 “때를 놓치면 이후 빠르게 전개될 북·미관계의 구도 속에 우리만 외톨이가 될 수 있다”며 “이 경우 북핵외교와 남북관계 모두에서 주도권을 놓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정부는 ‘돌다리’를 두드렸다. 외교통상부는 12일 낸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관련 성명’에서 “북한이 우리의 진정성을 받아들이고 남북대화에 호응해 남북관계가 상생공영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기를 희망한다”는 원칙적인 태도를 보였다.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은 13일 전날보다 일보 전진해 “테러지원국 해제에 따라 내부적으로 여러가지 대북사업의 재조정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북 죽기 살기 기 싸움

북의 대응은 달랐다. 북은 16일 <노동신문> ‘논평원의 글’을 통해 “남북관계 전면차단을 포함한 중대결단”을 경고하고 나섰다. 노동신문은 “(이명박 정부가) 우리의 존엄을 훼손하며 무분별한 반(反)공화국 대결의 길로 계속 나간다면 우리는 북남관계의 전면 차단을 포함해 중대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며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짓밟는 극우분자들이 들어앉아 있는 이상 북남관계가 정상화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명박 패당의 반공화국 모략 소동을 지켜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18일에는 ‘우리 공화국의 대외정책 이념은 확고부동하다’는 제목의 논설에서 “지난 시기 우리나라(북)와 적대관계에 있던 나라들도 우리나라의 자주권을 존중하고 우리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버린다면 그들과도 관계를 개선하고 정상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자주권을 침해하고 내정을 간섭하며 지배 통제하려는 행위를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
북의 태도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김정일 건강이상설’에 대한 남측의 태도에 불만을 나타내는 동시에 내부 동요를 차단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 혹은 대북정책 전환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나 금융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대북관계가 틀어질 경우 경제살리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노린 ‘남한 길들이기’라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한 정부의 반응도 심상치 않다. 대북 고위 정책 당국자들이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는 것.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과 관련해 이상희 국방장관이 17일 “김정일의 건강에 관해 과도한 관심을 갖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김정일은 그것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고 또 지나친 관심은 버릇을 나쁘게 만든다”고 말해 논란을 불렀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22일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외교통상부에 대한 국감에서 북의 테러지원국 해제 후 우리 정부에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과 관련 “이는 북한의 ‘시대착오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라며 “의원들도 북한을 좀 더 비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장관은 또 북의 핵 검증에서 신고 내용과 검증 내용이 다르게 진행될 경우 복안을 묻는 질문에 “5자간 처리해야 할 문제지만 대북 제재 해제를 복원하는 조치 등이 상정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해 북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조치가 취소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정치권 한 관계자는 “한반도 위기지수가 높아져가는 가운데 적절한 대처는 아니다”라며 “대북관계를 좀 더 폭넓게, 그러면서도 세심하게 살피며 처리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꿔야 살 수 있다?

급변하고 있는 남북관계에 대한 전문가들의 조언도 이어지고 있다.
정가 한 대북통은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나서고 싶어도 지금 여건으로는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대북정책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대통령의 ‘비핵개방 3000’은 북핵폐기를 남북관계의 전제조건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중 비핵화는 국제공조가 필요한 부분인 반면 남북관계는 민족 내부 문제”라고 강조하며 “두 부분은 따로 분리되어 처리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로 상충하는 부분이 한꺼번에 묶이다보니 경협이나 이산가족, 신뢰구축 등 남북간 풀어야 하는 문제들도 처리하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남북관계는 여러 복잡하고 다양한 사안이 얽혀있어 꼭 이기고 지는 ‘싸움’이라고 말하기 힘든 만큼 이 대통령이 북이 먼저 고개를 숙이고 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남북관계의 단절을 부르는 일”이라며 “남북경협이나 타국들과의 협력관계에 있어서 남북관계의 호전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 것이 곧 ‘실용’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일각에서는 미국에 새 정부가 들어설 경우 대북정책에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서둘러 북과의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날이 거세지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공언해 온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미 대통령이 될 경우, 대북정책에서 우리 정부의 위상이 더 좁아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북 “한국정부 대북적대시 정책…남북관계 전면차단 포함 중대결단” 강공
대북통들 “미국에 새 정부 들어서기 전 대북관계서 ‘우리 자리’ 찾아라”



의원들 사이에서도 대북관계에 대한 조언이 쏟아지고 있다. 한나라당 공성진 최고위원은 한국 정부가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상실하는 것이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 섞인 목소리에 대해 “겉으로야 북한이나 미국 간의 테러 지원국 해제에 협의가 있었다고 보이지만 실제로는 물밑에서는 대한민국 정부가 미국과 협의를 원활히 잘 진행해 왔다”며 “우려는 겉으로만 드러나는 우려일 뿐이지 내막은 그렇지 않다”고 설명하며 ‘위기론’을 일축했다.
반면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은 “MB 정부가 과감하게 노선 변경을 하지 않는다면 정치경제외교 무능정권으로 전락, 결국 신공안독재로 갈 것”이라며 “이대로 간다면 2년 후 최악이 온다. YS·부시 대통령 꼴 난다”고 경고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도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 북미관계가 엄청나게 변할 것”이라면서 “이 대통령은 눈 가리고 아웅하지 말고 직접 6·15 정상선언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고 촉구했다.
민주당 문희상 국회부의장은 이명박 정부에 “대북정책의 전면 재검토에 들어가야 한다. 6·15와 10·4 선언을 인정하고, 이행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안을 만들어 선 제안을 해야 한다”고 촉구하며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기 위해 대북 특사가 필요하다. 외교안보에 여야가 따로 없으니 누구라도 최적임자를 선택해 특사로 파견해야 한다”고 ‘대북특사’를 주장했다.

움직이는 MB 측근들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을 벗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 측근들의 방북이나 방북추진이 시선을 모으고 있다. 최근 이 대통령이 대북관계에 대한 이전보다 진일보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측근들의 방북계획은 남북문제의 해결을 위해 ‘대북특사’를 파견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는 것이다.
지난 14일부터 19일까지 북한을 방문한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청와대 특사로 북한에 간 것이 아니다”라며 “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자격으로 북측 조선불교도연맹과 북관대첩비 복제본을 독도에 세우는 문제를 논의하고 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청와대 비서관을 했었고 대통령 측근이라는 걸 알면서도 초청해준 것을 보면 북측에서도 상당히 전향적인 자세로 나오는 것으로 긍정적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 핵심측근인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은 남북경협 업체인 안동대마방직의 초청으로 권영세·김광림 의원과 29일부터 3박 4일간 방북을 추진했다. 이중 북측의 불허로 정 의원과 권 의원의 방북은 무산됐다.
이어 대해 정 의원은 “북한이 방북 허가를 내주기에 좀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며 “하지만 북한의 나무 심기 사업은 계속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대북 지원단체인 사단법인 남북나눔공동체는 “현재 남북관계를 고려할 때 방북에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라는 의견에 따라 30일 방북 계획을 연기했다. 이에 따라 이 단체의 이사장인 이기택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 부의장의 방북도 무산됐다.
정가 대북소식통들은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변함없이 추진되고 있지만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측근들을 북으로 보내는 등 ‘메시지 전달’을 통한 ‘대화’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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