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노무현 죽이기’ 막전막후

▲ “한번 붙어볼까”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박지원 의원의 견제가 이어지고 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정체성과 진로 고민과 맞물려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의 기세대결이 심화되고 있다. 민주당은 호남이라는 ‘집나간 집토끼’를 회복하고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대한 ‘재평가’를 통해 ‘민주당’의 기둥을 세우려 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호남해체론’을 주장하며 ‘영남스타론’ 등을 강조하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은 당 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지지층이 달라지고 있다”, “호남의 지지층만 복원해서는 가망성이 없다”는 지적과 함께 파급력을 높여가고 있다. 정체성을 둔 이견은 급기야 호남에서의 기반을 강조하고 있는 동교동계, 구민주계와 확고한 야성과 영남으로의 지지기반 확대를 강조하는 열린우리당계의 세력갈등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상황. ‘정체성’이 곧 민주당 내 상왕의 정치적 영향력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해 두 전 대통령의 일전은 확대되는 양상이다.


‘뉴민주당’을 둔 노무현·김대중 두 전 대통령의 기 대결이 심해지고 있다. 분열을 넘어 새롭게 태어나려는 민주당이 어떤 기반과 정체성을 가지느냐에 따라 ‘상왕’의 영향력도 크게 변할 수 있어 두 전 대통령은 물러설 수 없는 전쟁터에 놓였다.

뉴민주당 영·호남 전쟁

자신의 토론사이트 ‘민주주의 2.0’을 통해 활발히 의견을 개진하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최근 “호남의 단결로는 영원히 집권당이나 다수당이 될 수 없다. 호남이 단결하면 영남의 단결을 해체할 수 없다”는 ‘호남해체론’을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은 더 나아가 “땅 짚고 헤엄치기를 바라는 호남의 선량들, 호남표로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수도권의 정치인들이 민주당을 망치고 있다”며 “지역주의로 국회의원이나 쉽게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달라지기를 바란다”고 충고했다.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 최고위원도 “호남 향우회 조직만으로는 영원히 초등학생과 대학생의 싸움이어서, 호남 대 영남의 구도는 이길 수 없다”고 말하는 등 ‘새로운 지지기반’을 둔 당 내 갈등을 수면위로 끌어올렸다.

당 내에서는 ‘호남’이라는 전통적 지지기반을 확신하는 이들과 회의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상존하고 있다. 이중 일부는 ‘촛불집회’를 예로 들며 “시민세력이 변하고 있다”며 새로운 정치 지지기반으로 지역이 아니라 촛불시민으로 불리는 새로운 시민세력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뉴민주당’ 새로운 지지층 둔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 세력다툼 팽팽
盧 “호남(만)의 단결로는 영원히 집권당이나 다수당 될 수 없다” 경고


그러나 ‘집토끼’로 불리는 호남에 대한 영향력 강화를 주장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동안 ‘전국정당’을 강조하며 호남에 소홀했기에 ‘집토끼’를 잃고 지지율 정체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

DJ의 ‘복심’으로 불리는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에도 ‘호남 사람들이 노무현 좋아서 투표했느냐’ ‘호남 민심이 더 나빠져야 한다’는 등 유독 호남 사람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을 많이 했다”며 “그러면 노 전 대통령 자신은 어디 표로 당선이 됐느냐. 굉장히 불쾌하다”고 꼬집었다.

박 의원은 또 “민주당을 망친 분은 노 전 대통령”이라며 “민주당의 정책·공약·지지세력으로 당선했으면서 당을 분당시키고 자신이 받았던 지지표를 반토막 내서 한나라당에다 정권을 바쳐준 꼴 아니냐”고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한나라당 공천이면 무조건 당선되는 영남 의원들에게 먼저 말 해야지, 표 찍어준 호남 분들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말이라고 생각한다”며 “(정당이) 지지 기반을 기초로 영역을 넓혀 가야지 지지 기반을 아예 없애자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 ‘호남기반론’을 강조했다.

‘주도권’ 둔 내부 갈등 ‘부글부글’

박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정치 현안 언급에 대해 “노 전 대통령과 측근들이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국민들은 믿지 않더라”라며 “전직 대통령이라고 정치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최소한 지켜야 할 금도가 있다. 노 전 대통령의 말이 민주당 지지도에 나쁜 영향으로 나타나고 있으니 깊이 헤아려 줬으면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정치권은 박 의원의 발언에는 김 전 대통령과의 교감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지기반을 둔 전 대통령의 발언은 당 내 ‘상왕’의 위상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의 복당이 줄기차게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기반으로 어디로 하느냐는 향후 당 내 영향력을 가늠하게 한다는 것.

민주당 내 DJ의 영향력은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보다 커진 상황이며 정세균 대표 체제 후 민주당은 ‘떠나간 집토끼’를 잡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 파장을 일으킨 것도 당 지도부는 광주를 방문, 최고위원회의를 갖고 전통적 지지층 확보에 나서려던 시점이었다.

장성민 전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추구하는 지역주의 타파의 본질이 추악한 영남 패권주의임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라고 비판했으며 박주선 최고위원은 “민주당이 앞으로는 호남에 가서 지지를 호소하지 말라는 얘기냐”고 소리 높이는 등 동교동계와 구민주계는 호남을 기반으로 전통적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전국정당화를 추진하자는 의견에 공감하고 있다.

반면 정세균 대표의 비서실장 강기정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호남해체론’에 대한 박지원 의원의 직격탄에 표현이 과했다”면서 “정치 선배 지도자의 훈수 정도로 봐도 충분할 텐테 정치적 뜻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 2.0’싸이트에 여러 현안들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고 있는 것에 대해 “과거 지도자들이 감옥에 가거나 집에 갇혀 지내던 모습을 모던 입장에서 참 신선하다”면서 “정치일선을 떠난 노 전 대통령의 훈수로 봐야 된다”고 긍정평가했다.

노 전 대통령의 ‘호남 해체론’에 대해서도 “노 전 대통령의 오랜 신념 아니었냐”면서 “전국정당을 해야 되고 전국정당을 하는 데 영남의 뿌리를 튼튼히 가져야 되고 제도 개선을 해야 된다는 신념의 표현”이라고 해석했다.

친노그룹도 반격에 나섰다. 안희정 최고위원은 박 의원의 “배은망덕” 발언에 “전직 대통령에 대해 소속 의원이 적절치 못한 단어를 쓴 것은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안 최고위원은 “민주당이 배출한 전직 대통령에 대해 당 소속 의원이 그렇게 공격하고 비난하는 것은 당 지도부의 입장에서 용납하기 어렵다”면서 “자제하라”고 박 의원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비호남권 의원들도 노 전 대통령의 발언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영남몫 최고위원인 윤덕홍 최고위원은 “박 의원이 노 전 대통령에게 전직 대통령이 현실정치에 대해서 언급할 때는 금도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며 “박 의원의 전직 대통령을 대하는 태도에도 금도가 있어야 한다”고 노 전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퍼부은 박 의원을 겨냥했다.

윤 최고위원은 “박 의원의 호남중심적 발언에 영남쪽 당원들의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며 “노 전 대통령이 비판한 호남 일부 의원들이 지역주의에 안주하는 태도는 사실이 아닌가. 현상적으로만 보면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되는 영남 한나라당과 호남 민주당의 모습은 거울을 마주보는 것처럼 닮아있다”고 말했다.

윤 최고위원은 이와 함께 영남권에서의 민주당 지지세력 복원을 위해 가칭 ‘10인 회의’를 구상하고 있다. 대구경북 출신 추미애·김부겸 의원에다 이미경 사무총장의 지원을 바탕으로 이강철 전 청와대 정무특보, 추병직·권기홍·유시민 전 장관 등이 참석하고 부산경남지역에는 조경태·최철국 의원 등이 중심이 돼 뉴스를 생산하고 지역활동을 강화하는 비공식 모임이다.

남북문제서도 은근한 기싸움

정치적 논쟁이 일 것을 염려한 듯 공식 입장을 자제하며 내부 분위기를 다스리고 있는 당 지도부의 노력에도 불구, 박 의원은 ‘노무현 때리기’는 계속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2일 ‘10·4 남북정상선언 1주년 기념식’에서 ‘대북정책,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제로 열린 특별강연에서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에 대해 “이 선언은 버림받은 선언”이라며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가 남북공동선언을 존중하지 않고, 그 결과로 남북관계가 다시 막혀버렸다. 관계 복원을 위해 허겁지겁 이런저런 제안을 하는 모습이 좀 초조해 보인다”며 “그야말로 자존심 상하게 퍼주고 끌려 다니는 모습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자존심 상하고 퍼주고 끌려 다닌다는 비판은 지난 10년간 한나라당의 전매특허였다”고 꼬집었다.


‘DJ 복심’ 박지원 “노무현 어디표로 당선됐냐, 배은망덕한 발언” 일침
노무현 대북발언에 박지원 특사교환 문제 ‘태클’로 盧상왕 독주 견제

남북문제를 다루는 정치권의 태도에 대해 “빨갱이 만들기, 친북좌파 만들기 같은 맹목적 이념대결과 정치공작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며 “이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면 통일은 가망이 없다”고 비판하는 등 강도 높은 발언으로 파장을 몰고왔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햇볕정책은 한반도와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하며 노 전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해 “미국에서 네오콘이 집권한 상황에서도 그 만큼의 포용정책을 펼친 점은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2003년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특사 교환 약속을 어겨 당시에 정상회담을 성사시키지 못한 점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정부가 취임 초기에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특사교환 합의 약속을 어겨 2003년 남북정상회담의 기회를 놓쳤다는 것. 박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노 전 대통령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라고 권유했으나 북핵 문제를 이유로 만나지 않았다”며 “남북 정상이 일찍 만났다면 얼마나 많은 합의들이 이루어졌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6·15를 기념일로 지정하기로 해놓고 국무회의 의결만 거치면 되는데도 그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명박 정부에 10·4 선언 준수를 요구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이에 노 전 대통령측 인사는 “특사교환 문제가 논의됐던 것은 맞지만 북측이 쌀 지원 문제를 연계한데다 북핵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어 큰 의미가 없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백원우 의원은 박 의원의 주장에 “사실 관계를 잘못 알고 있다”고 지적했으며 이광재 의원은 “국가의 중대한 문제에 있어서는 말을 아끼는 중요하다. 국가의 중요한 자리에 있었던 사람은 ‘말을 아끼라’는 말을 하고 싶다”고 박 의원을 겨냥하는 등 민주당을 둔 상왕들의 파워게임은 쉽사리 마무리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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