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국민개개인 청구권 해결에 적극 노력"

노무현 대통령은 "한·일 두 나라 관계 발전을 위해서는 일본 정부와 국민의 진지한 노력이 필요하며 과거의 진실을 규명해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배상할 일이 있으면 배상하고 화해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86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 기념사를 통해 "그간 양국관계 진전을 존중해 과거사 문제를 외교적 쟁점으로 삼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고 지금도 이 생각에 변함이 없지만 우리의 일방적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며 이같이 밝혔다. 노 대통령은 또 "일본인 납치문제로 인한 일본 국민의 분노를 충분히 이해한다"며 "일본도 역지사지로 강제징용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이르기까지 일제 36년동안 수천, 수만배의 고통을 당한 우리 국민의 분노를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노 대통령은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극 노력할 것"이라면서 "이미 총리실에 민관 공동위원회를 구성,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고 좀 더 포괄적인 해결을 위해 국민자문위원회 구성을 준비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의 의견을 모으고 국회와 협의해 합당한 해결책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또 "청구권 문제 외에도 아직 묻혀있는 진실을 밝혀내고 유해를 봉환하는 일 등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올해는 양국 국교정상화 40주년이 되는 특별한 해이고 그간 한일관계는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상당한 진전을 이뤄왔으며 두 나라는 동북아 미래를 함께 열어가야 할 운명공동체"라며 "다만 법적, 정치적 관계 진전만으론 양국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만큼 진실과 성의로써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진정한 이웃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노 대통령은 "일본의 지성에 다시 한번 호소한다"면서 "진실한 자기반성 없이는 아무리 경제력이 강하고 군비를 강화해도 이웃의 신뢰를 얻고 국제사회의 지도적 국가가 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일본의 성의있는 자세를 촉구하고 "하지만 과거 독일은 스스로 진실을 밝히고 사과하고 보상하는 도덕적 결단을 통해 유럽통합의 주역으로 나설수 있었고 그만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프랑스의 경우도 반국가행위를 한 자국민에 대해선 준엄한 심판을 내렸지만 독일에 대해선 관대하게 손을잡고 유럽연합(EU)의 질서를 만들어왔다"며 "우리 국민도 프랑스처럼 너그러운 이웃으로 일본과 함께하고 싶은 소망"이라고 말했다. 이와함께 노 대통령은 "3.1운동은 참으로 자랑스런 역사이고 3.1정신은 지금도 인류사회와 국제질서의 보편적 원리로 존중되고 있고, 상해임시정부에서 오늘의 참여정부에 이르는 대한민국 정통성의 뿌리가 됐다"며 "이런 3.1 운동의 위대한 정신을 이어나가고 다시는 100년 전과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게 애국선열에 대한 도리이자 3.1절에 되새기는 우리의 다짐"이라고 강조했다. ◆ 다음은 노무현 대통령 3.1절 기념사 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독립유공자와 내외귀빈 여러분, 여든 여섯돌 3.1절 기념식을 이곳 유관순 기념관에서 갖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날의 감동이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3.1운동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역사입니다. 인간의 자유와 평등, 나라의 자주와 독립의 권리를 천명한 3.1정신은 지금도 인류사회와 국제질서의 보편적인 원리로 존중되고 있습니다. 또한 상해임시정부에서 오늘의 참여정부에 이르는 대한민국 정통성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3.1운동의 위대한 정신을 이어나가고, 다시는 100년 전과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 애국선열에 대한 도리이자 3.1절에 되새기는 우리의 다짐입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민주주의와 번영의 초석을 놓아주신 애국선열들께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독립유공자와 가족 여러분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국민 여러분, 저는 지난 일요일, 독립기념관을 다녀왔습니다. 구한말, 개화를 둘러싼 의견차이가 논쟁을 넘어서 분열로 치닫고, 마침내 지도자들이 나라와 국민을 배반한 역사를 보면서 오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아울러 우리 땅을 놓고 일본과 청나라, 러시아가 전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힘없는 우리가 어느 편에 섰던들 무엇이 달라졌겠는가를 생각하며, 국력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대한민국이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이제 우리는 100년 전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아무런 변수도 되지 못했던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세계에 손색이 없는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이루고 스스로를 지킬만한 넉넉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북아의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국방력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선열들께서도 지금 우리의 모습을 대견스러워 하실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올해는 한국과 일본의 국교정상화 40주년이 되는 특별한 해입니다. 한편으로는 한일협정 문서가 공개되면서 아직 해결되지 못한 과거문제가 되살아나 또 다른 어려움이 제기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동안 한일관계는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상당한 진전을 이뤄왔습니다. 95년 무라야마 일본 총리는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했고 98년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총리가 신한일관계 파트너십을 선언했습니다. 2003년에는 나와 고이즈미 총리가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를 위한 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한일 두 나라는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함께 열어가야 할 공동운명체입니다. 서로 협력해서 평화정착과 공동번영의 길로 나아가지 않고서는 국민들의 안전과 행복을 보장할 수 없는 조건 위에 서 있습니다. 법적, 정치적 관계의 진전만으로 양국의 미래를 보장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할 일을 다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 이상의 실질적인 화해와 협력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진실과 성의로써 양국 국민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진정한 이웃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프랑스는 반국가행위를 한 자국민에 대해서는 준엄한 심판을 내렸지만, 독일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손을 잡고 유럽연합의 질서를 만들어왔습니다. 지난해 시라크 대통령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60주년 기념식에 처음으로 독일 총리를 초대해서 "프랑스인들은 당신을 친구로 환영한다"며 우정을 표했습니다. 우리 국민도 프랑스처럼 너그러운 이웃으로 일본과 함께 하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국민의 분노와 증오를 부추기지 않도록 절제하고, 일본과의 화해 협력을 위해서 적극적인 노력을 해왔습니다. 실제로 우리 국민은 잘 자제하고 사리를 따져서 분별 있게 대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동안의 양국관계 진전을 존중해서 과거사 문제를 외교적 쟁점으로 삼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과거사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교류와 협력의 관계가 다시 멈추고 양국간 갈등이 고조되는 것이 미래를 위해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방적인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두 나라 관계 발전에는 일본 정부와 국민의 진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과거의 진실을 규명해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배상할 일이 있으면 배상하고, 그리고 화해해야 합니다. 그것이 전 세계가 하고 있는 과거사 청산의 보편적인 방식입니다. 저는 납치문제로 인한 일본 국민의 분노를 충분히 이해합니다. 마찬가지로 일본도 역지사지해야 합니다. 강제징용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이르기까지 일제 36년 동안 수천, 수만 배의 고통을 당한 우리 국민의 분노를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일본의 지성에 다시 한번 호소합니다. 진실한 자기반성의 토대 위에서 한일간의 감정적 앙금을 걷어내고 상처를 아물게 하는 데 앞장서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선진국임을 자부하는 일본의 지성다운 모습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과거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경제력이 강하고 군비를 강화해도 이웃의 신뢰를 얻고 국제사회의 지도적 국가가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독일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만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 스스로 진실을 밝히고 사과하고 보상하는 도덕적 결단을 통해서 유럽통합의 주역으로 나설 수 있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한일협정과 피해보상 문제에 관해서는 정부도 부족함이 있었다고 봅니다. 국교정상화 자체는 부득이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언제까지 국교를 단절하고 지낼 수도 없고, 우리의 요구를 모두 관철시킬 수 없었던 사정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피해자들로서는 국가가 국민 개개인의 청구권을 일방적으로 처분한 것을 납득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 노력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의 의견을 모으고 국회와 협의해서 합당한 해결책을 모색해 나갈 것입니다. 이미 총리실에 민관공동위원회를 구성해서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고, 좀 더 포괄적인 해결을 위해서 국민자문위원회 구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청구권 문제 외에도 아직 묻혀있는 진실을 밝혀내고, 유해를 봉환하는 일 등에 적극 나설 것입니다. 일본도 법적인 문제 이전에 인류사회의 보편적 윤리, 그리고 이웃간 신뢰의 문제라는 인식을 가지고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3.1운동의 정신을 되새기면서 선열들이 꿈꾸었던 선진한국의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갑시다. 일제의 총칼에 맞서 일어섰던 선열들의 용기와, 모든 것을 뛰어넘어 하나가 됐던 대동단결의 정신이 우리의 앞길을 이끌어 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05년 3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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