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지금] 소리없는 전쟁중

경제 대통령 ‘비지니스 프렌들리’ 정책, ‘대기업에 초점’ 지적 이어져
대기업 ‘상생경영’ 말 뿐인 허울, ‘갑’ 위치 이용 ‘단가 후려치기’해와
대기업 ‘위험 분산’ 가능, 중소기업 납품단가도 올리지 못하고 ‘끙끙’
부도 건설업체 전년 동기 대비 44% 늘어, ‘하루 한 개꼴 문 닫은 셈’

▲ ‘단가 후려치기는 그만’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원자재값 인상에 따른 상승분을 납품 가격에 반영하고 싶지만 행여 거래라인이 끊어질까봐 ‘울며 겨자먹기’로 영업하고 있다”며 ‘원가보상을 현실화하라’고 외치고 있다.


국제 경기악화가 국내 기업들의 한숨을 자아내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서브프라임 신용경색 위기부터 고유가, 고환율 등 갖가지 악재가 몰아닥친 탓이다.

이 같은 환경은 물가인상, 내수부진의 악순환으로 이어지면서 ‘10년전 IMF때보다 지금이 더 견디기 힘들다’는 말까지 자아내고 있다. 하지만 모든 기업이 고충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재계 일각에서는 “진짜 경제 위기를 겪는 것은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시사신문>이 재계의 엇갈리는 희비를 살펴봤다.

국내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표방한 ‘경제 살리기’가 출범 6개월이 지나도록 별 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한 것이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표방했던 ‘경제 대통령’의 ‘비지니스 프렌들리’가 대기업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기업 경제 활동을 규제하던 행정규칙을 풀어주겠다고 공언해 왔지만 정작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이전과 별 다른 체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재계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표정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국제 원자재가 상승

국제적 악재 속에서 직격탄을 맞은 것은 중소기업들이다. 원자재값이 일제히 상승했기 때문이다.

주물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상승분을 가격에 반영하고 싶어도 행여나 거래라인이 끊어질까봐 울며 겨자먹기로 영업하는 곳이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국내 대기업이 표방하는 ‘상생경영’은 허울이라는 것이 이 관계자의 주장이다. 대외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은 ‘협력사’, ‘파트너’ 등으로 불리지만, 실상은 ‘갑’의 위치를 이용해 대기업이 납품업체에 일명 ‘단가 후려치기’(원가절감)를 일삼고 있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도 중소기업들은 거래처를 뚫기 위해 치열한 ‘제 살 깎기’식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사례는 올해 납품업체들의 단체행동에서 절실하게 드러난다. 지난 4월, 결국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경영 부담을 견디지 못한 주물 중소업계가 대기업에 ‘납품 중단’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에 앞선 지난 3월에는 래미콘업계가 공급을 중단한바 있고, 원유가격 인상으로 낙농농가와 유가공업체들도 공급중단의 문턱까지 갔다가 타결된 적이 있다.

아울러 단체행동이 여의치 않은 중소기업의 경우 이런 우려는 더욱 심각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 중소기업인은 “현재 대기업들은 폭등하는 원자재 가격에 비해 납품가는 소폭 인상하거나 아예 동결하고 있다”며 울분을 토로했다.

물론 국제 경기 악화와 원자재가격 상승은 대기업도 공통으로 겪는 악재다. 문제는 대기업에 있어서 이 같은 악재는 ‘위험 분산’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중소기업의 문제와는 또 다른 이야기가 된다.

최근 식품업계는 원자재 상승 등의 위험부담을 과도하게 가격에 반영했다는 지적에 시달리고 있다. 아이스크림 시장의 경우 올해 상반기, 40%가량의 가격 인상을 통해 시장규모가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했다. 또 제과업체들은 3월 이후 아이스크림은 물론 과자 가격까지 20~40% 올려 소비자들의 시름을 더하고 있다.

결국 이런 배경에서 중소기업의 납품에 대한 가격상승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면서 시장이 안정된 대기업의 가격인상 요인은 고스란히 받아드린다는 볼멘소리가 나는 셈이다.

한국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원자재 상승 가격은 고루 분담하게 맞는데 대기업의 경우 100% 납품업체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며 “하다못해 대기업 노사 임금에 따른 부담까지 중소기업이 떠맡는 경우도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흔들리는 건설업계

최근 경기악화에 가장 심한 타격을 받는 곳으로 건설업계를 빼놓을 수 없다. 건설업계는 지난해 말부터 끊임없이 ‘위기론’이 거론돼 왔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 7월 한 달간 부도를 낸 건설사는 모두 36개사로, 올 들어 부도난 건설업체는 총 180개사이다. 전년동기(125개사) 대비 44.0% 늘어난 수치로 하루에 한 개꼴로 문을 닫은 셈이다. 지난 7월2일에도 시공능력 300위권 중견 건설사인 인정건설이 최종 부도 처리됐다.

건설업계의 전망은 아직도 어둡기만 하다. 기름값은 물론 철근 및 기타 기초자재, 내외장재 등 전반적인 건자재 값이 지난해 말보다 평균 40%이상 급등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미분양아파트다. 현재 미분양 아파트는 공식집계만 13만 가구가 넘어, 12년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비공식 미분양 세대를 포함하면 이같은 수치는 더욱 확산된다는 것이 업계의 전언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대형건설사과 중소건설사의 표정은 희비가 엇갈린다.

대형 건설사들은 해외수주 및 공공기관 발주를 토대로 수익을 유지하는 반면, 중소건설사들은 올해 계획한 주택·자체사업을 늦추거나 아예 사업을 접는 경우도 허다하다.

특히 지역 정착을 통해 공공공사 수주로 연명해온 지방 중소건설업체의 경우엔 당장 부도를 걱정해야 할 정도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상위 10개사가 공공공사 대부분을 수주하면서 건설업계 수주 양극화가 심화되는 탓이다.

지난 8월21일 정부의 부동산 시장 활성화 대책 발표가 있었지만, 재계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지금 정부의 건설규제 완화 정책이 당초 예상보다 약해, 결국 정부의 정책은 중소기업의 회생에는 별 다른 도움을 주기 힘들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정부 고위직에 대기업 출신이 많아서 그런건지 잘 모르겠지만, 과거 정부와 비교해 봐도 현 정부의 중소건설사에 대한 정책지원은 전무한 편”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소화불량 걸린 기업들

그렇다면 소위 ‘블루오션’을 개척한 중소기업들은 이런 난국 해법으로 거론될까.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블루오션이라고 해도 그 수명은 무척 짧다”면서 “‘돈 되는 사업’에 대기업들이 앞다투어 세를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대기업의 무분별한 영토 확장이 중소기업의 영역마저도 허물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들은 지난 2006년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 폐지로 인해 그동안 중소기업들이 뛰어들어 시장을 닦아 놓은 인터넷 쇼핑몰과 택배 등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이미 중소기업들이 호황을 맞던 택배시장에는 지난 1, 2년 전 출범한 신세계, 금호아시아나, 유진그룹 등이 대부분의 물량을 소화하고 있고, 자금력과 규모에서 뒤떨어지는 중견 택배업체들은 모두 고배를 마셔야 했다.

IT기업의 각축장으로 불리는 인터넷 오픈마켓 등에도 KT, SK텔레콤 등이 인터넷 오픈마켓 G마켓의 매각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SK텔레콤은 이미 올해 초, 온라인 쇼핑몰 ‘11번가’를 오픈해 선두업체를 위협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결국 중소기업의 호황은 ‘대기업이 진출하기 전까지’가 되는 셈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대기업의 사업확장이 무분별한 문어발식 확장이라는 우려가 나온다는 점이다. 그동안 주식시장에서 대형 호재로 꼽혀왔던 기업 M&A(인수합병) 테마가 악재로 바뀌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대형M&A로 몸집을 확대한 기업들의 유동성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실제 일부 M&A로 몸집을 불린 기업은 ‘소화 불량’에 걸려 자산·계열사 매각은 물론, 인수한 기업을 헐값에 되파는 사례도 나오고 있어 재계는 ‘승자의 저주’ 경계령이 나돌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출자총액제한제(이하 출총제)를 폐지하려 하자, 야당들도 “출총제는 IMF 사태를 불러온 재벌의 ‘문어발식 경영’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라며 강력하게 폐지를 반대하고 있다.

한 중소기업 단체 관계자는 “경기침체 장기화로 휴·폐업하는 상공인이 많다”면서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늦출 수 있는 사업조정제도 강화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중소기업중앙회 2006년 통계에 따르면 국내 기업 중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99.9%로 나머지 0.1%가 대기업이다. ‘중소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중소기업의 주장도 이런 배경에서다. ‘경제발전’이란 큰 틀을 위해 정부의 중소기업 경기부양책이 필요한 시기이다.

중소기업인들도 이처럼 국제적 악재로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는 정책이 지나치게 대기업 위주로 흐르고 있다”며 “정부가 확실한 중소기업부응정책을 내놔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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